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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한국소설

천국보다 낯선

by Diligejy 2016. 6. 12.

p.29

불행한 일이지만, 이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사랑의 길이 아니다. 사랑은 때때로 우리를 구원하지만, 아니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사랑이 세계의 진실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세계의 진실이란 밤처럼 냉정한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사랑이 완전하게 사라진 상태에 가깝다. 우리가 그것을 깨닫는 것은, 대개 이미 늦은 다음이지만


p.30

죽음이란, 말하자면 저 높고 거대한 밤하늘과 같지 않은가.

우리의 인생이란 저 밤하늘에서 희미하게 떨어지는 눈송이 하나에 불과한건 아닌가......


p.36

평정을 잃는다는 것은 곧 실패를 의미하니까, 실패한다는 것은 이 세계의 주변부로 밀려난다는 걸 의미하니까


p.56

무수한 원인과 결과가 얽혀 이 세계가 만들어지고, 유지되다가, 무너지는데 5분이란 얼마나 긴 시간인가, 아무리 태엽을 돌려도 되돌아갈 수 없는 그 머나먼 세계 5분의 저편


p.88

무언가를 사랑할 때 내가 어쩔 수 없이 택하는 방법은 그것에 가까이 있는 것이다. 단지 가까이 있는 것...... 그것의 부침과는 관계없이...... 그것의 흥성이나 몰락과 무관하게......

단지 가까이 있는 것...... 대상이 멀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더 강렬해진다고? 그건 환각에 다름 아니다. 사랑은 사랑의 대상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그것을 향한 열정과 환멸을 견뎌내는 것이다.


나도 알고 있다. 어떤 사랑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어떤 사랑은 대상 자체가 되는 데까지 나아간다. 나와 그것의 구분을 지우는 것, 경계를 없애는 것 그러면 그것의 장점이나 단점같은 걸 따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환멸의 차가움도 염원의 뜨거움도 희미해져 버린다. 마치 일상 속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그러한 것처럼


p.89

그녀의 말은 옳았다. 우리는 두 번 다시 강물에 손을 담글 수 없다. 우리는 두 번 다시 같은 길을 지나갈 수 없다. 나는 어제의 너를 다시 만날 수 없다. 우리는 영원히 우리를 스쳐 간다. 실은 그렇게 스쳐 가는 나 자신 조차도 다시는 만날 수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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