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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고전

마키아벨리

by Diligejy 2022. 5. 29.

p.14

마키아벨리를 과학자로 보는 것 역시 적어도 그를 애국자로 보는 것만큼 잘못이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가치 판단'을 고려하지 않거나 그것을 할 만한 능력이 없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저작들은 '가치 판단'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사회 연구는 규범적이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를 굳이 애국자라거나 과학자라고 마지 못해 인정하더라도, 그가 악의 교사임을 반드시 부인할 필요는 없다. 애국주의로 이해된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집단적 이기주의이다. 조국을 위해서는 선악을 구별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는 자기 자신의 편의 또는 영광을 위해 선이든 악이든 개의치 않는 것보다는 반감을 덜 산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그런 태도는 더 유혹적이고, 따라서 더 위험하다. 애국이란 자기애에 속한다. 자기애는 자기 자신과 선을 모두 사랑하는 사랑보다 저열하다. 그래서 자기애는 자신을 선하다고 내세우거나 자신을 정당화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마키아벨리의 무시무시한 가르침을 그가 애국자였다는 주장으로 정당화한다면 애국의 미덕은 보되 애국보다 더 고귀한 미덕에, 또는 애국을 신성화하거나 제한하는 미덕에 눈을 감게 된다. 마키아벨리를 애국자라고 말한다 해서 악의 일부라도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진정한 악을 불투명하게 만들 뿐이다.

 

p.27

[군주론]의 헌정사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본성(nature)"과 "인민의 본성"을 말한다. 그런데 그 본성이란 변하지 않는다. 국민, 국민성, 국가적 필요성 등에는 본질적 성향이 존재하며, 인문학의 연구자는 그런 성향에 필히 통달해 있어야 한다. 기적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중요한지를 생각해보더라도, 정치가는, 그리고 정치가들의 스승은 더더욱, "자연사의 통달자"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반드시 사람의 본질적 성향에 속하지 않는 분야에도 통달해야 한다.

 

p.42~43

[로마사 논고]의 거의 중간쯤에서, 마키아벨리는 그 장 첫머리에서 밝혔던 내용, 즉 돈이 언제나 전쟁의 원동력이라는 통념이 잘못임을 증명하려고 시도한다. 장의 첫머리에서 통념에 도전한 그는 그 통념을 계속해서 반박하다가, 장의 끄트머리쯤에 이르러서 리비우스의 권위를 빌린다. "그러나 티투스 리비우스는 이 견해에 대한 누구보다도 확실한 증인이다. 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탈리아까지 원정했다면 로마인들을 정복했을지를 논하는 곳에서, 전쟁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다수의 훌륭한 병사들, 현명한 지휘관들, 그리고 행운이다. 이 세 가지 점에서 알렉산드로스가 로마인들보다 앞섰는지를 검토하며, 그는 돈을 전혀 거론하지 않는다." 리비우스가 돈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사실은 단순히 리비우스가 돈 문제에 대해 올바른 시각을 가졌다는 모호한 추정 근거에 그치지 않고, 마키아벨리의 견해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 가장 중요한 권위를 갖는 전거로 받아들여졌다. 돈에 대한 리비우스의 침묵은 그가 실제로 언급했더라면 얻을 수 없었을 강한 인상을 남겼다.

 

리비우스는 침묵을 통해 가장 중요한 사실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이 글쓰기 규칙을 마키아벨리는 조용히 응용하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풀이할 수 있다. 어떤 현명한 사람이 논의하는 주제에서 어떤 통념에 대해 침묵한다면, 그것은 그가 그 통념을 하찮게 여긴다는 뜻이다. 현명한 사람에게 침묵이란 언제나 의미가 있다. 단지 생각이 모자라서 언급을 빠트린 것이 아니다. 리비우스의 견해는 통념과 다르다. 통념에 반대하려면 단지 그것을 언급하지 않으면 된다. 그것은 통념을 부정한다는 뜻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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