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6
여기서 우리는 거의 예외 없이 적용되는 일반적인 원칙을 끌어낼 수 있다. 즉 타인이 강력한 권력을 거머쥐도록 자초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반드시 자멸한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p.47
데이비드 소여는 일국의 대통령이든 담배회사 사장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고객에게 스스로를 규정짓지 않으면 적에게 규정당한다고 역설했다.
p.49
정치 컨설팅을 그만두고 말쑥한 뉴욕의 금융업자이자 미국 정보기관의 전문가, 그리고 한때 우디 앨런 영화에 배우로 출연했던 소넌버그는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데이비드는 아이러니하지만 네거티브 캠페인이 포지티브 캠페인보다 더 정직하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포지티브 캠페인은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말하는 것이고, 네거티브 캠페인은 그 후보를 연구하고 그와 관련된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지요."
스콧 밀러는 네거티브 전술과 관련하여 체계적인 논리를 개발했다. 그는 많은 후보자들과 고객들에게서 네거티브 광고는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사실 사람들은 멋진 싸움을 좋아한다. 네거티브 광고는 효과가 크고 그렇기 때문에 흔히 사용된다. 밀러에 따르면 네거티브 광고가 효과를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 세 가지 있다. 만약 그 광고가 사실이 아니라면 공격을 당하는 쪽보다 공격을 하는 쪽이 더 손해를 볼 것이고, 그 광고가 개인적인 것이라면 유권자들은 공격을 당한 개인에게 동정심을 느낄 것이고, 그 광고가 부적절한 것이라면 유권자들은 자신들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가려는 시도라고 생각해서 분노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네거티브 광고는 효과가 있다.
p.50
소여와 밀러는 네거티브 광고의 논조를 대단히 중시했다. 네거티브 광고는 품격과 재치를 갖추어야 하고, 불쾌한 정치적 난투극이 아니라 그 자체가 유쾌함을 선사해야 한다.
p.90
그 순간 나는 깨달았습니다. 조직의 두뇌 역할을 할 작정이라면, 마키아벨리 역할을 할 작정이라면, 사람들이 내게 의지하면서 '나는 지금 뭘 해야 하지?'라고 물을 때 나는 마땅히 그 대답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요.
p.98~99
소여 밀러는 1960~1970년대에는 정치계가 마케팅 산업을 모방했지만 몇 년 후에는 마케팅 산업, 더 나아가 모든 산업이 정치계를 모방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소여 밀러는 자사의 방침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도 상관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유권자를 한 사람의 소비자로, 모든 소비자를 한 사람의 유권자로 말이다. 1980년대 콜라 전쟁은 미국 산업이 정치화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코카콜라와 펩시의 전쟁은 정치인과 상품은 똑같다는 신념을 가진 소여 밀러 사람들의 용기를 복돋아주었다.
p.106
코카콜라와 펩시의 싸움은 신기하게도 대통령 선거전과 비슷했다. 한쪽에는 기득권자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도전자가 있었다. 어떤 선거에서나 그랬듯이 미국 대중은 자신이 지닌 보수적인 본능과 그것을 거스르는 변화를 향한 갈망을 헤아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펩시가 마련한 싸움판에 들어와서 싸우기를 주저하는 코카콜라의 태도는 오만한 기득권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코카콜라는 기득권층이자 과거에 집착하고 과거를 동경하는 미국이며, 경력을 앞세워서 재선을 노리는 정치인이었다. 반면에 펩시는 약자의 처지를 최대한 활용했다. 펩시는 차이를 약속하고, 젊음을 구현하고, 미래를 지향했다. 펩시는 변화를 제공하고 그 결과 미국 대중과의 대화 통로를 장악했다. 이런 인식은 밀러 자신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체득한 것과 일치했다. 운명을 판가름하는 대접전이 차츰 임박하고 있었다.
p.115~116
미국인들의 원성에는 "배터리액처럼 톡 쏘는 맛"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코카콜라 맛에 대한 변치 않는 애정을 넘어서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뉴코크는 생살이 드러난 미국인의 상처, 즉 사람들이 현대 사회에서 작은 변화들을 무수히 겪으면서 느끼는 불쾌감을 자극했다. 미국 군대는 베트남 때문에 상처를 입었고, 미국 대통령의 명예는 워터게이트 떄문에 땅에 떨어졌다. 미국의 전화회사 AT&T는 24개로 쪼개졌고, 아이비엠은 기관이 아니라 개인을 위한 새로운 컴퓨터인 애플 매킨토시의 도전을 받았다. 미국식품의약국은 얼마 전 에이즈라는 신종 질병에 대한 혈액 테스트를 승인했다. 무하마드 알리가 권투계에서 은퇴하고 탈색한 금발의 레슬링 선수 헐크 호건이 미국의 넋을 빼앗았으며, 미스아메리카는 [펜트하우스]에 게재된 나체 사진 때문에 왕관을 반환해야 했다. 사람들은 변화가 미국의 국력과 고결함을 무너뜨린다고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에 대한 향수와 통제할 수 없어 보이는 미래에 대한 극심한 불안감을 키워 가고 있었다. 뉴코크는 이런 감정을 가장 나쁜 방식으로 자극했다. 사람들은 변화가 신성한 미국을 쪼갠다고 보았다.
뉴코크가 노출시킨 현대화와 전통 사이의 분열은 1990년대와 그 이후의 정치계를 특정짓는 단층선이 되었다. 신경제에서 정치인의 임무는 흥분한 대중이 급격하고 무자비한 변화의 세계를 건너도록 안내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정치인으로 성공하려는 사람은 새로운 것들이 끝없이 몰려드는 데 따른 대중의 당혹감을 어루만지는 동시에 정부의 역할은 대중이 위기 속에서 기회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해야 할 터였다. 바로 이런 자질 때문에 빌 클린턴이 1990년대의 가장 훌륭한 정치 커뮤니케이터라는 위상에 오른 것이다. 클린턴은 대통령 취임식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뿌리가 깊고 강력한 힘이 우리 세계를 뒤흔들고 뜯어고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긴급한 과제는 저거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친구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p.116
스콧 밀러는 이대로 일 년이 지나면 코카콜라 회사의 상당 부분이 날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코카콜라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뉴코크 출시는 대단한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지만 전통의 코카콜라를 철수시킨 것은 자살 행위였다. 그러나 밀러는 출구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의 열정은 정치에 꽂혔다. 밀러는 당시 상황을 어떤 후보가 선거 기간 중에 거짓말이나 부정행위, 간통 따위의 약점이 드러난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역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사실을 인정한다고 고백하는 것뿐이었다. 후보는 이런 고백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들의 말을 늘 귀담아듣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즉 사람들에게 권력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의 후보로 부각되는 것이다.
p.118~119
밀러가 구축한 이론에 따르면 시장, 유권자, 회중, 청중 등 모든 지지기반은 강력한 지지자, 온건한 지지자, 태도가 분명치 않은 사람, 온건한 반대자, 강력한 반대자, 이렇게 5개 그룹으로 분류된다. 후보자(혹은 상품)는 도저히 설득할 수 없는 강력한 반대자들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강력한 반대자들은 그 후보자는 물론이고 후보자가 탔던 말까지 미워한다. 그 후보자가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해도 강력한 반대자의 눈에는 그것이 훌륭한 일로 보이지 않는다. 후보자는 강력한 지지자들에게도 역시 관심을 많이 기울이지 않는다. 강력한 지지자들에게는 조금만 신경을 쓰면 그만이다. 물론 후보가 자신들을 당연한 지지자라고 여겨 푸대접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을 만큼은 신경 써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후보자와 생각이 같고 후보자의 반대자를 격렬히 성토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절대로 다른 데로 가지 않는다. 가령 낙태를 반대하고 세금 삭감을 주장하고 총기 소지를 찬성하는 공화당 지지자는 한 달에 몇 번뿐인 이리요일에 민주당원에게 표를 던지러 가지는 않는다.
따라서 실질적인 행동은 온건한 반대자, 온건한 지지자, 태도가 분명치 않은 사람들 그룹에서 일어난다. 온건한 반대자는 후보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때로는 수긍하기도 한다. 수긍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기껏해야 후보에게 표를 던지지 않는 것으로 만족한다. 다음으로 온건한 지지자들이다. 이들은 강력한 지지자 그룹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도가 분명치 않은 사람들인데 이들이야말로 확실하게 장악해야 하는 대상이다. 이들은 유권자(혹은 시장)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경쟁이 점점 더 막상막하가 되어 가기 때문에 승리의 열쇠는 이들이 쥐고 있다.
p.120~121
충성파 추종자들의 요구와 중립파 사람들의 환심을 사야 할 필요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현대 정치 전략에서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계속 나오는 주장인데, 코카콜라 회사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것을 무시했다. 이런 균형은 모든 선거운동이 직면하는 선택의 문제다. '알파독'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중간에서 동요하는 유권자를 움직여야 선거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투표에 참여하는 강력한 지지자들의 수를 불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부류다. 스콧 밀러와 제임스 카빌은 전자이고, 리처드 워슬린과 칼 로브는 후자다.
코카콜라가 겪은 치욕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여론의 흐름에 관한 또 하나의 교훈도 시사한다. 그것은 사람들의 태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교훈이다. 수십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시음 및 설문 조사 결과는 사람들이 뉴코크를 좋아하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포커스 그룹 연구 결과는 코카콜라 열성 지자자 한 사람이 격분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감정을 휘저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수적인 면에서는 전혀 틀린 것이 없었다. 여덟 명 가운데 일곱 명이 뉴코크의 출시를 환영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열성적인 반대자가 상황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 그런 열정은 쉽게 옮아간다. 질적인 측면의 연구는 미국의 여론에는 중요한 역동성이 있다는 것, 대중의 분노는 전염성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p.122
말콤 글래드웰이 자신의 책 [블랭크]에서 지적한 바에 따르면 시음 테스트에는 결함이 있었다. 사람들은 한 모금 마실 때는 펩시의 "더 부드럽고 더 달콤한 맛"을 선호했지만, 많은 양을 마실 때(여섯 개 묶음을 구입할 때)는 코카콜라를 더 선호했다. 여론조사가 안고 있는 위험 가운데 하나는 결과는 정확하지만, 질문이 잘못된 경우에는 완전히 틀린 대답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p.122~123
조 맥기니스는 [대통령을 팝니다 1968]이라는 훌륭한 책에서 리처드 닉슨이 미국 국민의 여론에 맞추어 다시 포장된 이야기를 다룬다. 텔레비전 정치 시대의 개막을 알린 닉슨과 케네디의 텔레비전 토론회로부터 8년 뒤 닉슨은 다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그가 8년 전에 겪은 이미지 문제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스물여덟 살 먹은 프로듀서 로저 에일스가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닉슨의 이미지를 뜯어고치는 임무에 투입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닉슨은 따분한 사람, 지루하고 골치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닉슨이 항상 책가방을 챙겨 다니는 아이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닉슨이 태어날 때부터 마흔두 살 먹은 늙은이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아이들이 축구공을 선물로 받는 크리스마스에도 닉슨은 가방을 선물받고 그것을 무척 아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에일스는 국민들 마음 속에 새겨진 닉슨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세세하게 기획했다. 방청객을 세심하게 서너발하고, 박수 소리가 나와야 할 시점을 계획하고, 마지막에는 사람들이 닉슨을 에워싸고 환호하도록 각본을 짰다. 닉슨이 인기가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였다. 재치나 식견 대신 인기를 선택한 것이다. 에일스는 정책 공약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다운 권위를 부각하는 데 집중했다.
조 맥기니스는 대통령 후보는 상표를 갈아 붙여 다시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텔레비전은 일부 사람들이 바라는 것처럼 강자가 쓴 신비의 가면을 벗겨 내는 대신 사라져야 마땅한 신비를 더욱 강화시킨다고 말했다. "우리는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뿐 아니라 목청껏 자기 이야기를 외치는 사람들을 유명 인사로 만든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미국인의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은 정당을 거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현실의 이슈를 직접 전달하는 가두연설용 연단의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는 마셜 매클루언의 말을 인용해서 "텔레비전에서는 그에게 아이디어가 없다는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스타일이다. 미디어는 마사지고, 마사지를 잘하는 사람이 표를 얻는다."라고 썼다. 맥기니스는 미래에는 미국의 정치인들이 소비재와 마찬가지로 여론에 맞추어 포장되고 진열될 거라고 꿰뚫어 보았다. 정치라는 견고한 세계에 광고업계의 능란한 예술적 수완이 적용되었으며, 후보들은 코카콜라 캔처럼 관리되었다.
p.125
기업가들은 사람들과 더 자주 더 많이 소통해야 했다. 데이비드 소여는 미국의 기업가들이 비평가들로부터 규정받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규정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날마다 재당선에 성공하기 위해서 뛰는 정치인처럼.
p.131
소여와 밀러는 먼데일의 실패를 통해서 선거운동의 영향력은 후보가 발산하는 확신과 카리스마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다.
p.135
소여는 선거운동에는 기술뿐 아니라 과학도 필요하다고 확신하는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기술은 정치인과 유권자의 대화 방식뿐 아니라 정치인이 유권자를 파악하는 방식까지 바꾸어 놓았다. '전자 민주주의'는 텔레비전에 의한 정보 전달뿐 아니라 데이터 수집을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이스라엘의 경우 소여가 페레스에게 한 말을 옮기면 "숫자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바", 즉 데이터는 야당인 리쿠드당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한다는 거서을 보여 주었다. 기업과 자유시장을 통해서 중산층이 성장하고,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 이후에 태어난 유권자의 수가 증가하고, 경제나 안보가 아니라 종교적 인종적 정체성을 기준으로 투표하는 그룹이 증가하고 있었다. 캐를리어리의 히상에 따르면 당시 소여는 십 년 후 이스라엘 정치에서는 이데올로기 대신 인구 구성과 관련한 이슈가 중심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페레스는 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p.139
페레스는 정치와 관련해서 소여에게 한 가지 교훈을 배웠다. 페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거울 효과라는 걸 배웠습니다. 거울과 유리는 다르지요. 유리는 투명해서 밖이 내다보이기 떄문에 앞에 있는 물건이 똑바로 보입니다. 그러나 선거는 후보가 가진 견해와 이미지를 달라 보이게 하는 거울 같은 것이지요. 소여는 내게 거울 효과에 대해서 충고를 했습니다. 내가 말하는 바가 똑바로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지요. 따라서 자신이 가진 견해 뿐 아니라 상대방의 반응을 동시에 고려해야만 합니다."
p.146
이스라엘의 선거는 외교 정책을 쟁점으로 삼는 선거와 국내 정책을 쟁점으로 삼는 선거, 이렇게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중동에서 후자는 호사스러운 일이다. 이스라엘에서 국내 정책이 쟁점으로 두드러졌던 선거는 1981년, 1984년, 1999년 세 차례 뿐이다. 1977년 선거와 1992년 선거는 국가 안보 문제가 쟁점이 되었다. 1973년에는 선거 직전에 욤키푸르 전쟁이 발발했다. 그 후 4년 동안 전쟁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감과 공포, 격분으로 인하여 노동당 정부를 지탱하던 지지 기반은 차츰 무너져서 거의 공동화되었다.
1992년 선거는 1977년 선거와 비슷하게 리쿠드당에게 일대 타격을 안겨 주었다. 4년 반 동안 지속된 팔레스타인의 인티파다가 끝난 후 은근히 끓어오르던 국민의 욕구불만이 솟구쳐 오른 결과였다. 욤키푸르 전쟁과 인티파다는 즉각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않았지만 4년 뒤 이스라엘 정치는 그로 인한 충격을 감당해야 했다. 정치는 여러 가지 사건과 사회저거인 분위기가 복잡한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사건들은 즉각적이고 파격적으로 전개되는 반면에 사회적인 분위기는 쉽게 깨달을 수 없을 만큼 서서히 변화한다.
p.152
"상대방의 자제력을 흔들어 놓는다면 승리는 따놓은 당상이다." 로브가 즐겨 하는 말이다.
p.166
그는 다음과 같이 '실질적인 선거'와 '부수적인 선거'를 구분했다. "실질적인 선거는 모든 요소가 결합하여 제지할 수 없는 힘을 형성하는 선거로서 사건의 향방, 여론의 형세, 지도자의 능력, 현대적인 정책, 탁원한 선거운동 등이 모두 융합하여 확고한 승리를 만든다." 실질적인 선거의 사례로는 영국의 마거릿 대처가 좌파를 물리친 1979년 선거,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이 보수적인 표심을 획득한 1984년 선거, 영국의 토니 블레어가 현대화한 노동당을 집권당으로 만든 1997년 선거를 들 수 있다. 이 선거들에서는 선거운동이 대단히 화려했지만 정작 선거 결과에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역설을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굴드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역사의 전환기에는 선거운동이 아무리 화려하게 진행된다고 해도 그것이 선거의 최종 결과를 판가름하지는 못한다."
반면에 부수적인 선거는 선거운동에 의해서 좌우된다. 1988년 미국의 조지 H.W 부시는 역사적인 조류와 무관하게 선거운동으로 듀카키스를 무너뜨렸고, 1992년 영국의 보수당은 수세에 몰려 있었지만 '과세하고 지출하는' 노동당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을 극도로 자극하여 승리를 거머쥐었다. 2000년과 2004년에 조지 W 부시가 거둔 두 차례의 승리는 선거운동의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미국인들은 부시라는 특정 인물과 그의 견해에 끌려 권력을 쥐어 준 것이 아니었다. 부시의 승리를 가능케 한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탁월한 선거운동(그리고 대법원의 결정)이었다.
p.171
마지막으로 전체 선거운동은 한 편의 멋진 쇼가 되어야 한다. 화려하고 찬란하고 사람들의 눈길을 끌 뿐 아니라 최고의 볼거리와 최고의 권위로 치장한 쇼가 되어야 한다. 손쓸 방법이 있기만 하다면 비도덕성, 탐욕과 뇌물 문제 등 경쟁자의 인품과 관련된 추문을 퍼뜨려야 한다.
- 퀸투스 키케로 [선거전략 안내서] (기원전 63년)
p.200
그는 정치인에게 인터뷰가 어떤 의미인가를 설명했다. 어떻게든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의무가 아니라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회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헨리 키신저는 기자회견장에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자, 제가 준비한 답변들 가운데 어떤 것에 대해서 질문이 있으십니까?")
p.221
텔레비전 시대에 후보들은 원칙주의자냐 기회주의자냐, 다시 말해서 신념에 의해서 움직이느냐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느냐에 따라 분류된다. "우리가 세계 전역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정치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도덕적인 지도자로 평가받는 사람이 이깁니다. 1981년 이스라엘에서는 베긴과 페레스의 대결이, 1983년 영국에서는 대ㅐ처와 푸트의 대결이, 1984년 미국에서는 레이건과 먼데일의 대결이 그랬지요."
모리는 김대중에게 과거 소여 밀러가 지원한 미국의 몇몇 후보들이 그랬듯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에드워드 케네디다. 198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노리던 에드워드 케네디는 CBS 앵커인 로저 머드에게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명쾌하게 답변을 하지 못했다. 이 질문은 후일 '미드의 질문'이라고 불리게 된다. 모리는 김대중에게 한국을 도덕적으로 통합시킬 인물임을 자처하면서 사명감과 목적의식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것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p.222-223
모리는 소여 밀러가 미국 정계에서 명성을 날리게 된 기본적인 원칙을 김대중에게 차근차근 전해 주었다. "비결은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찾고 희망을 불어넣는 겁니다. 정치 캠페인의 승리는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로널드 레이건은 1980년에 큰 정부가 경제를 죽이고 있다고 사람들을 위협했고, 1984년에는 월터 먼데일이 당선되면 안 된다는 불안감을 유권자들에게 심어 주었습니다. 투표 행위의 핵심적인 동인은 두려움입니다.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겨 준 다음 대안을 내놓는 겁니다." 소여 밀러는 여론 형성에 관한 지침을 제시하고, 김대중이 주도하는 정당의 간부진이 치밀하게 계획된 메시지 규율을 준수하도록 강조하고, 정당을 부각시키는 대신 김대중 개인을 부각시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p.255
저는 노련한 정치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도 어느 정도 정치 경험이 있으니 이런 것쯤은 압니다. 모든 정치 캠페인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이 승자가 되기에는 부족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승리를 하는 것이지요.
- 아들라이 스티븐슨
p.257
메모는 컨설턴트의 삶의 증거다. 허풍선이들이 많은 산업의 경우에는 메모가 허풍과 계획을 구분해 준다.
p.285
바르가스 요사는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이것은 후보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다. 1960년에 리처드 닉슨 역시 이와 똑같은 공약을 내걸었다. 이 공약은 생색내기에는 좋으나 후보 스스로 제 발목을 묶는 결과를 낳았다. 자신이 나라의 지도자로서 전국 모든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리려는 의도에서 마련한 공약이었지만, 닉슨은 실제 선거 유세 과정에서 여러 차례 찾아가 집중적으로 유세해야 하는 주요 유권자들과 접전 지역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 닉슨은 이미 수중에 들어 있던 표를 관리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50개 주를 여행하느라 심신이 지쳐 버렸다.
p.306
소여 밀러의 장기 고객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아멕스)는 은행카드인 비자카드와 마스터카드에 맞서서 매일 선거를 치르듯 싸우고 있었다. 롭 셰퍼드슨의 말에 따르면 당시 소여 밀러는 "집에 불이 나면 물동이를 들고 불을 끄려 들지 말고, 먼저 이웃집에 불을 붙여라."라는 정치계의 오래된 격언을 따랐다. 그들은 비자카드 같은 신용카드를 쓸 때 들어가는 비용의 공개를 요구하는 대중적인 캠페인을 구상했다. 19퍼센트에 달하는 이자율에 대해 사람들의 반감을 부채질하고, 의회를 자극하여 비자카드의 사업 실태를 조사하게 하는 방안을 찾았다.
p.318~319
케넌은 대중심리 정치학을 좋아했다. 그는 기회만 있으면 다른 나라 사람들의 심리를 탐구하려고 들었다. 소여 밀러가 폴란드 정부에 경제 개혁 프로그램의 집행에 관한 자문을 제공하기로 계약한 1990년에 케넌은 폴란드의 시인과 작곡가, 화가, 전설 등에 깊이 빠져들었다. 늘 그렇듯이 그는 가족 내 어머니의 역할과 형제자매, 그리고 부모 자식 간의 유대감의 본질을 파고들었다. 언젠가 그가 당시 포커스 그룹에 질문한 내용을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당신이 처한 상황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음악이 좋습니까? 어떤 작곡가를 원합니까? 이유는 뭐지요? 당신이 처한 상황을 차로 비유한다면 어떤 차가 좋습니까? 음식이라면 어떤 음식이 좋습니까? 시라면 어떤 시가 좋습니까?"
그는 질문을 계속했다. "당신 가족 중에서 재무장관과 가장 비슷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누가 가장 닮았지요?"
만일 그들이 "글쎄요. 그 사람을 보면 할아버지가 떠오릅니다."라고 대답하면 케넌은 이렇게 묻곤 했다.
"왜요? 당신은 할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그분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저는 바르샤바에 살았고 그 분은 멀리 떨어져 사셨거든요."
"그 분은 외할아버지입니까, 친할아버지입니까?"
"외할아버지입니다."
"당신 아버지는 그분을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그 분을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랬지요?"
케넌의 요점은 이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느냐보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무엇을 생각하느냐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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