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4~25
외환위기 극복을 'IMF에서 빌려 온 달러 빚을 모두 갚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당시 제 생각이 맞을 겁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전의 건강한 우리나라 경제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면 아마 이 책을 읽고 있는 지금도 완벽하게 극복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죠.
보다 직관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이런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홍길동이 큰 병에 걸렸습니다. 워낙 큰 병이기에 병원에 오랜 기간 입원했고 힘든 치료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약 3년 후에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하게 된 거죠. 병이 완치된 것은 맞지만 퇴원 이후 홍길동의 체력이 병을 앓기 이전과 같을까요? 아마도 상당히 허약해져 있을 겁니다. 병 자체가 치료되었는지를 완치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외환위기의 극복'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죠. 하지만 병에 걸리기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여전히 외환위기의 후유증에서, 그 상흔 속에서 살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렇듯 외환위기는 저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에 정말 큰 영향을 미친 한국 경제사의 거대한 충격이자 단절이었습니다.
p.35~36
이제 자금의 공급과 수요를 합쳐보겠습니다. 외환위기 이후의 경기 둔화를 방어하고자 완화적 통화 정책으로 돈의 공급을 늘렸는데, 설비투자가 줄어들면서 돈의 수요는 크게 위축되었죠. 돈의 공급은 넘치는데 수요가 부족한 상황으로 돈의 가격인 급리는 하락하게 되겠죠. 위 그래프는 2000년 8월 이후부터 2021년 8월까지 한국의 10년 국채금리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 크게 오른 것을 제외하면 일방적으로 하락하는 모습이죠. 외환위기가 낳은 상흔, 그 다른 하나가 바로 저금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프를 통해 금리가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그래프를 보고 '금리가 낮아지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끝내시면 안됩니다. 금리가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관성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흐름이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거죠. 그런데 저금리가 20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어느 누가 내일 금리가 크게 뛰어오를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 현재의 금리 하향 흐름, 혹은 저금리 기조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할 겁니다.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이후 단순히 저금리가 나타난 것뿐 아니라 경제 주체들의 마음 속에 '저금리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합리적 기대가 쌓여갔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지나 2021년 하반기부터 금리가 급등했습니다. 그러니 이 금리 변화가 사람들에게 더욱 큰 부담으로 느껴진 겁니다.
p.47
어느 국가나 수출 혹은 내수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 부동산 버블 붕괴와 갑자기 들이닥친 고베 대지진이라는 재해로 인해 일본의 내수 성장은 침체 일로에 있었죠. 내수가 어려우면 수출로 성장해야 하는데요. 슈퍼 엔고의 파고 앞에서 일본의 수출은 전례 없는 고전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의 경제가 이른바 퍼펙트 스톰을 맞게 된 것이죠. 퍼펙트 스톰이란 개별적으로는 위력이 크지 않은 태풍 등이 다른 자연현상과 동시에 발생하면서 엄청난 파괴력을 보일 때를 일컫는 기상 용어입니다. 경제 분야에서는 나쁜 상황이 겹쳐서 심각한 경제위기가 생겨나는 상황을 말하죠.
일본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1995년 4월 대표적인 선진국 회담인 G7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요청 내용은 '내수 침체와 함께 슈퍼 엔고로 인해 급격하게 진행되는 수출 둔화를 막기 위해 엔화를 약세로 전환시킬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거였죠. 결국 일본의 요청이 받아들여지며 각국은 엔저를 유도하기로 합의했고, 이를 1985년 엔고를 유도했던 '플라자합의'와는 반대되기에 '역플라자합의'라고 불리게 됩니다.
p.94
국제 금융에서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안정적인 환율, 독자적인 통화 정책, 자유로운 자본 이동'입니다. 어느 국가도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가질 수 없다는 것이 '불가능한 삼위일체'이론의 핵심입니다.
p.96
실제로 이 조합을 택한 국가들이 있습니다. 바로 달러화 페그제, 즉 달러 대비 고정환율제를 사용하고 있는 홍콩과 중동의 걸프 국가들입니다. 홍콩이나 중동 국가들은 자본시장은 활성화되어 있는데, 달러 대비 고정환율을 유지합니다. 이걸 이어가기 위해서는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때마다 따라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죠.
p.117~118
외환위기는 국내 경제 구조 때문이 아니라 외채 때문에 일어난다. 그것도 만기가 짧게 돌아오는 단기외채를 갚지 못하는 것이 외환위기의 원인이다. 이것은 1997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도 마찬가지였다. 동아시아 국가 중 아무리 부실한 기업과 금융, 불투명하고 부패한 정부를 가진 나라라도 단기외채가 적은 나라는 외환위기가 일어나지 않았다.
반면 아무리 건전한 기업과 금융기관, 투명한 시스템을 가진 나라라도 단기외채가 많으면 외환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Steil and Lithan, 2006. p.104). 실제로 1990년대 중반 중국은 아직 과거의 사회주의체제로부터의 이행이 다 이루어지지 않아서 국영기업과 금융기관 부실이 한국보다 더 심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단기외채가 적었기 때문에 외환위기를 비켜갈 수 있었다.
범위를 동아시아 바깥으로 넓혀 보아도 기업과 금융기관 부실이라는 구조적 문제는 개도국의 공통된 현상이지만 모든 개도국에서 외환위기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제민, [외환위기와 그 후의 한국 경제], 한울엠플러스, 2017, p.107~108
p.177~179
정리를 하면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있었고, 1998년 러시아 위기, 1999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위기가 발생했죠. 외환위기까지는 아니었지만 일본 경제는 침체 일로에 있었고, 중국 역시 국가 계획 경제하에서 크게 늘렸던 부채가 대규모로 부실화되면서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독일 통일 이후 유로존은 여전히 회복세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었으니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미국을 제외한'이라는 말을 했는데요. 당시 미국 경제는 '신경제(New Economy)'라는 컨셉으로 강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1995년 넷스케이프의 상장과 함께 기술주를 중심으로 한 나스닥 시장이 뜨거운 모습을 보였죠. 신흥국을 비롯한 미국 이외 국가들과는 전혀 다른 온도를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투자자들이라면 불안한 신흥국과 안정적으로 강한 성장을, 그것도 인터넷이라는 신기술에 힘입어 차별화된 생산성을 보여주는 미국 중 어디에 투자하고 싶었을까요? 당연히 미국이었을 겁니다. 미국으로서의 자본 유입이 크게 늘면서 미국은 강한 성장뿐 아니라 글로벌 투자자금까지 집중되는 호시절을 맞이하게 된 겁니다.
그렇지만 다른 국가들은 모두 어려운데 미국 혼자 잘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외국 투자를 늘려왔던 미국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에는 Non-US 국가들의 부진 충격이 그대로 전해져 왔겠죠. 대표적인 케이스가 당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했던 LTCM이라는 헤지펀드의 파산이었습니다. LTCM은 당시 러시아 쪽 투자를 크게 늘려 놓았는데, 뜻밖에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고 파산 선언을 하게 됩니다. LTCM이 파산한 것 자체로도 충격이 컸지만 보다 두려운 것은 이런 파산의 불안감이 다른 헤지펀드 등으로 전이되는 것이었겠죠. 미국 경제의 성장세는 탄탄하지만 다른 국가의 불안, 그리고 이런 불안이 금융기관의 부실을 타고 미국 경제로 전이되는 것은 상당히 큰 위협이었을 겁니다. LTCM의 파산에 직면한 당시 미국 연준은 전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금융시장 불안을 해소하는 데 앞장서게 됩니다.
p.230
주택 가격 하락은 주식 가격 하락(IT 버블)이 초래했던 충격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을 금융시스템과 실물경제에 안겼습니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폭제와 취약성 개념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택 가격의 하락과 주택담보대출의 손실은 하나의 기폭제였습니다. 불쏘시개 위로 던져진 성냥 같다는 뜻이지요. 바싹 마른 상당량의 가연성 소재가 주변에 놓여 있지 않았더라면, 대형 화재는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최근 금융위기의 경우는 어떤 의미에서 주택시장 붕괴의 불똥이 경제에 그리고 금융 시스템에 내재한 취약성으로 옮겨 붙으면서 큰 화재로 번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다지 심하지 않은 경기침체를 겪는 것으로 지나갈 수도 있었던 일이 금융 시스템의 약점들 때문에 훨씬 더 격렬한 위기로 변형되었다는 것이지요.
벤 S. 버냉키, 김홍범 나원준 옮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 미지북스, 2014, p.91
p.260
금융위기의 한복판에서는 단순히 주가만 하락하는 것이 아니라 환율 및 금리의 급등, 그리고 극단적인 달러 현금 선호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런 위기를 직접 겪어보신 분들은 '달러가 무섭다'는 말에 공감하실 겁니다. 그래서 달러가 약세를 보이는 시기에 달러를 조금씩 사 모아두곤 하죠. 위기 상황에서 제대로 빛을 발하는 안전자산인 달러화에 대한 예비 수요가 외환위기, 금융위기, 그리고 코로나19 등을 거치면서 조금씩 더 강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p.314-315
신흥국과 산유국은 상당한 달러를 벌었습니다. 그리고 그 달러를 미국에 빌려주고 국채를 받았습니다(미국 국채에 투자했습니다). 미국 내 달러 유동성이 넘치면서 이 돈이 미국 주택 시장을 향했고, 주택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미국 사람들의 소비가 늘어난 겁니다. 그러면 미국의 소비가 늘어나니, 즉 시장에서 사주는 사람이 늘어난 만큼 신흥국과 산유국들은 미국에 더욱 많은 수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달러를 더 많이 벌고, 그걸로 미국 국채에 투자를 하고, 미국에 다시 돈이 넘치고, 주택 가격이 오르고, 소비가 늘고, 산유국이 수출을 늘리고, 달러를 더 벌고, 미국 국채에 투자하고......
자, 물건을 만든 A가 B에게 물건을 팝니다. 돈이 없던 B는 더 이상 A의 물건을 살 수 없었지만, 다행히 A가 B에게서 받은 돈을 다시 A에게 빌려주면서 계속 A의 물건을 살 수 있게 되었죠.
무언가 신기한 시스템이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이런 프로세스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을까요? 문제는 이겁니다. 신흥국은 계속 물건을 팔면서 달러를 쌓게 되죠. 즉, 대규모 무역 흑자를 기록하는 겁니다. 반면에 미국은 계속 외국의 물건을 사들이면서 무역 적자가 쌓이게 됩니다. 적자가 늘어난 만큼 달러 부족을 겪어야 하는데, 신흥국들이 미국의 국채를 사들이면서 자금이 유입되어 들어오죠. 바꿔 말하면 미국 정부가 빚을 내면서 외국으로 나갔던 달러를 빌려오게 되니, 미국의 재정 적자가 크게 늘어나게 되는 겁니다.
미국의 무역 적자가 늘고, 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 달러를 빌려오면서 재정 적자도 늘어납니다. 국채를 많이 발행한 만큼 그 국채 보유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이자 비용도 크게 늘어나겠죠? 그 이자 역시 국가가 지불해야 하니 미국의 재정적자는 더욱더 크게 늘어날 겁니다. 신흥국과 산유국의 흑자가 계속해서 쌓이는 만큼, 미국의 재정 및 무역 적자 역시 천문학적으로 불어나게 됩니다.
p.318
당시의 미국 재무장관 존 스노가 2003년 10월 27일 전 세계 20개 주요국이 모이는 G20 회의 때 중국이 변동환율제를 도입하도록 압박했다는 기사입니다. 갑자기 왜 중국의 환율을 건드리려고 한 것일까요?
1994년 중국은 큰 폭으로 위안화를 평가 절하하면서 중국의 수출을 크게 늘리려고 했죠. 1994년 달러당 4위안 수준이었던 위안화 환율이 2003년에는 8.28위안으로 상당히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중국 제품이 저렴해지니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만큼 중국의 대미 수출이 강해질 수 있었고요.
스노 장관은 중국의 대미 수출을 줄여서 무역 적자를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중국에게 지금처럼 달러당 8.28위안으로 위안화 가치를 고정하는 고정환율제에서 벗어나 변동환율제를 쓰라고 압박한 겁니다. 위안화가 변동환율제가 되면, 중국으로 달러 유입이 엄청나게 많은 만큼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위안화 가치가 높아지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중국 수출품의 가격이 높아지는 셈이니, 중국의 대미 수출이 위축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무역 적자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지는 겁니다. 스노 장관은 그걸 노렸던 것이죠. 그리고 미국의 압박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집니다.
p.323-324
중국의 위안화 절상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위안화 절상이 중국 이외의 다른 신흥국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미국의 무역적자 문제 중 가장 큰 부분을 중국이 차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외의 국가들 역시 미국에 수출하면서 상당한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이들 국가에게도 당연히 통화 절상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런데 중국 외의 다른 신흥국들은 이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중국은 수출 경쟁을 하는, 이른바 수출 경합국입니다. 위안화가 절상되지 않는데 미국 등의 압박으로 성급하게 내 나라 통화만 절상해 버리면 중국과의 수출 경쟁에서 매우 불리해지겠죠. 그래서 중국이 위안화 절상을 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자국 통화를 절상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중국이 위안화 절상에 나서게 되니, 다른 신흥국들도 자국 통화 절상을 시작하게 된 거죠. 2005년 7월 22일 이후 신흥국 통화는 보다 전반적으로 강한 흐름을 이어가게 됩니다.
p.365~368
이제 은행의 채권자인 예금자들을 안심시키는 방법이 대충 나온 것 같습니다.
1. 자본을 늘려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 위험한 부실 자산들을 없애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3. 유동성이 떨어지는 장기 자산들을 현금으로 바꾸어 준다
이 세 가지 방법을 진행해 줘야 했던 것이죠.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타프(TARP, 부실 자산 구제 프로그램)라는 대규모 구제금융 법안입니다.
TARP는 'Troubled Asset Relief Program'의 약자인데요. 무언가 트러블이 있는 자산(Asset)을 구제하는 프로그램이라는 뉘앙스가 느껴지죠. 앞서 설명한 방법 중 2에 해당이 될 겁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인 7,000억 달러 규모로 TARP가 진행되었습니다. 다만 TARP는 초기 취지인 은행의 부실 자산을 줄이는 2의 방향보다는, 은행의 자본을 늘리는 1의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정부 재정으로 은행의 자본을 늘리는 데 7,000억 달러를 썼고, 은행의 자본이 늘어난 만큼 은행의 예금자들은 안심할 수 있었겠죠. 관련 기사를 잠시 보겠습니다.
美 7,000억 불 구제금융법안 합의 ... 긴박했던 1주일
<이데일리>, 2008. 9. 28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금융위기가 클라이맥스에 달했던 때가 2008년 9월 15일이었으니,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7,000억 달러라는 메가톤급 은행 안정책이 발표되었던 겁니다. 다만 이런 부양책은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요. 당시 의회에서는 이렇게 거대한 국가 재정을 은행을 구제하는 데 쓰는 것에 대해 상당한 반발감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은행이 자체 수익을 올리기 위해 불안한 투자나 대출을 해주면서 스스로 위험에 처한 것인데, 왜 납세자들의 돈인 국가 재정으로 은행들을 구제하느냐는 비판이 그 핵심이었죠. 그리고 이런 날선 비판이 힘을 얻으면서 TARP 법안은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부결됩니다. 잠시 당시 기사 인용합니다.
美 하원, 구제금융안 부결 ... 주가 700P 넘게 폭락
<연합인포맥스>, 2008. 9. 30
미 하원 구제금융안 부결... 월가 '졸도'
<한겨레> 2008. 9. 30
美 구제금융안 부결 '후폭풍' "괴물같은 공포가 일고 있다"
<한국경제>, 2008. 9. 30
2008년 9월 30일 기사를 보면 의회의 반대로 인해 TARP 법안이 부결되었고, 대규모 구제금융 법안 통과에 기대를 걸면서 활로를 모색하던 글로벌 금융시장은 보다 큰 폭풍에 휩싸이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08년 10월 주식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의 떨림은 결코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습니다. 특히 TARP 부결 직후의 흐름이 가장 극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해당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재차 의회를 설득하게 되는데요. 이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미국 금융시장 뿐 아니라 미국의 실물경제가 녹아내릴 수도 있다는 절박함이 설득력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TARP 법안이 결국 통과되죠.
법안이 통과되고 불과 10여일 정도가 지난 이후부터 TARP 자금이 은행 자본을 확충하는 데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네, 독감으로 힘겨워하던 환자에게 약이 투여되기 시작한 것이죠. 물론 어떤 감기약도 먹은 순간 씻은 듯이 낫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후에도 금융시장의 혼란은 수개월 더 지속되었죠.
p.372~373
은행 위기의 극복 차원에서 양적완화를 설명하다 보니 양적완화가 은행의 현금 늘리기 정도로만 비쳐질 수 있는데요. 이외에도 양적완화의 효과는 상당히 강했습니다.
가장 큰 효과는 연준이 돈을 찍어서 장기국채를 사들이면서 나타납니다. 장기국채를 엄청난 규모로 사들이게 되면 장기국채 쪽으로 상당한 자금이 유입되겠죠. 장기국채 시장에 돈이 넘치니 장기국채 금리가 크게 낮아지게 될 겁니다. 장기국채금리가 크게 하락하면 이에 연동되어 있는 다른 채권이나 대출의 금리 역시 함께 낮아지게 되겠죠. 금리가 낮아진 만큼 실물경제의 부담 역시 줄어들게 되면서 내수 소비를 부양하는 효과까지도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안전자산인 장기국채금리가 크게 낮아진 만큼, 장기국채 투자의 매력이 사라져 가죠. 그러면 조금이라도 위험한 자산에 투자를 해야 보다 높은 금리를 받게 되지 않을까요? 네. 금융위기 이후 크게 위축되어 있던 위험한 투자자산 쪽으로도 자금이 유입되게 하는 효과 역시 상당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양적완화의 도입 역시 쉽지는 않았죠. 너무 많은 돈을 풀게 되면 화폐의 가치가 크게 하락하고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 위험이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적완화를 시행하기 불과 2개월여 전인 2009년 1월에도 연준 내부에서 무분별한 양적완화에 반대하는 위원들이 있었죠. 해당 기사를 읽어보시죠.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양적완화 정책에 대한 신중론이 대두하면서 정책에 제동이 걸리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4일(미 시간) 찰스 플로서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델라웨어 대학에서 가진 연설에서 "FRB가 무분별(Unconstrained)'하게 자산 규모를 늘렸을 때의 결과를 무시한다면 값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발언은 벤 버냉키 FRB 의장이 전날 런던정경대(LSE)에서 했던 발언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중략)
제프리 랙커 리치몬드 연은 총재를 시작으로 플로서 총재까지 FRB 내부에서 양적완화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들은 자산 규모 증가분을 양적완화를 제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은행 시스템에 무분별하게 유동성을 공급하지 말고 특정한 '목표치(Target)'를 설정해 양적완화 정책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연합인포맥스>, 2009. 1. 15
연준 내에서도 당시로서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인 양적완화 정책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명시적으로 나왔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문단을 보면 '은행에 무분별하게 유동성을 공급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옵니다. 적당한 목표치를 설정해서 진행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죠.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는 과감하게 양적완화 정책을 금융위기의 돌파구로 채택했고, 이후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양적완화 정책은 금융시장을 혼란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p.410-411
2010년 5월 그리스의 재정 부실 윟머이 부각되면서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는 2012년 7월이 될 때까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강한 부양책이 필요했죠. 결국 부양책은 정부가 빚을 내서 돈을 풀어주는 재정 정책, 그리고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를 통해 돈을 풀어주는 통화 정책 중 하나로 진행되어야 할 겁니다.
유럽 재정위기라는 단어에서 직관적으로 느낌이 '팍' 오시겠지만, 유럽의 재정이 파탄 상태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경기 부양을 위한 국가의 재정 지출을 더 늘릴 수 있었을까요? 유럽 재정위기로 인해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이 재정 부양에 매우 소극적으로 바뀌고 있었죠.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 지출을 늘릴 때 유럽처럼 국가 자체가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금융시장을 비롯한 국가 경제의 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작용했던 겁니다.
재정 지출이 어렵다면 통화 정책 측면에서 중앙은행이 돈 풀기에 나설 수밖에 없죠. 여기서 문제는 여러 유로존 국가 중앙은행의 연합체인 유럽중앙은행의 실세가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이고, 분데스방크는 과거에 아주 큰 아픔을 겪었다는 겁니다. 아마 TV나 역사책에서 보셨을 텐데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너무 많은 마르크화를 찍는 바람에 마르크화 가치가 폭락하고 물가가 크게 뛰어오르는, 이른바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었기 때문이죠. 하이퍼 인플레이션의 아픔을 기억하는 분데스방크는 연준처럼 적극적으로 돈을 풀어주는 양적완화에 대해 단연코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부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채를 탕감해 주거나 혹은 돈 풀기를 이어가면서 금리를 낮추고 부채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답일 텐데, 유럽중앙은행이 천수답 행보를 보이고 있으니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유로존 부채 위기는 해결 불가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죠. 2010년 5월에 본격화되었던 유럽의 위기가 2012년 7월이 되도록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이유입니다. 그러던 중 2011년 11월 새롭게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된 드라기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유로화와 유로존을 지켜내겠다고 발언한 것이죠. 관련 기사를 인용합니다.
"어떤 조치라도 하겠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26일(유럽 시간) 런던의 한 투자 콘퍼런스에서 내놓은 이 세 단어(Whatever it takes)에 국제 금융시장이 열광했다. 유로화는 급등했고, 유럽 뉴욕 증시까지 동반 상승했다. 유동성 위기를 겪는 유로존 국가에 대한 국채 매입을 강력하게 시사한 발언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 등 대다수 외신은 진단했다.
금융 전문 매체인 마켓워치는 발언 타이밍도 완벽했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스페인이 위기를 맞고 있었다. 지방정부 파산에 따른 국채금리 급등으로 전면적인 구제금융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외환시장에서 유로화 '숏 스퀴즈' 현상이 나타났다. ECB가 유로안정화기구(ESM)에 은행 기능을 부여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지만 트레이더들은 믿지 않았다. 수년간 구체적인 '액션'에 유보적이었던 ECB를 믿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순간에 나온 "어떤 조치라도 하겠다"는 발언의 파워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연합인포맥스>, 2012. 7. 27
p.448-449
1970년대 이전 10년 이상 안정되었던 물가가 왜 오르기 시작했을까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겠지만, 저는 1960년대 후반 린든 존슨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에서부터 인플레이션의 싹이 텄다고 봅니다. 그린스펀과 에이드리언 올드리지가 공저한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찾아볼 수 있죠.
1970년대 비관론이 횡행하게 된 한 가지 이유는 이전 10년의 과도한 낙관론이었다. 승리에 도취한 자유주의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모델을 한계점까지 밀어붙였다. 정치인은 오래 유지하기에는 너무나 달콤한 약속을 내걸었다. 노동자들은 생산성을 높이지 못한 상태에서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경영자는 내일의 전쟁이 아니라 어제의 전투에 초점을 맞췄다. 황금기에서 침체기로 나아가는 과정의 핵심 인물은 린든 존슨이었다. (중략)
그(린든 존슨)는 케네디가 암살된 지 6주 뒤 의회에 나가 '빈곤에 대한 무조건적 전쟁'을 선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는 이 전쟁에서 이길 형편이 됩니다. 오히려 질 형편이 안됩니다." 그는 "우리는 부유하고 강력한 사회만이 아니라 위대한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며 1965~1966년 단일 회기 동안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수많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앨런 그린스펀, 에이드리언 울드리지, 김태훈 번역, 장경덕 감수,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 세종서적, 2020, p.356~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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