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2-53
한국전쟁 때 중국인들은 미군 포로를 다루는 데 잠재의식에 대한 지식을 사용한다. 미군 포로들이 협력하기를 바랐던 중국인들은 아주 효과적이며 잔인하고 교활한 전술을 다양하게 사용했다. 로버트 치알디니 교수는 [설득의 심리학]에서 한국전쟁 때 중국인들이 사용했던 전술들을 자세히 설명한다. 그 중에는 사람의 잠재의식을 조종하기 위한 점증적 접근법도 포함되어 있다. 잡히자마자 전적으로 협력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극단적인 행동을 하도록 내몰렸다. 결국에는 미군 포로 세 명 중 한 명이 심각한 협력 행위를 했고, 일부는 다른 미국인들을 학대하기까지 했다.
완강히 저항하는 미국인들에게 중국인들은 때때로 간단한 요청을 하곤 했다. "당신이 미국에 반하는 진술을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당신 동료 중 한 명이 쓴 진술서를 다시 쓰기만 하면 된다. 미국에 반하는 진술서에 이름을 쓸 필요도 없고 당신이 뭘 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중국인들은 이 간단한 단계가 협력으로 가는 중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단계를 받아들인 포로는 스스로 미국에 반하는 진술을 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졌다. 단순히 무언가를 말하거나 쓰게 하는 것만으로도 태도를 바꾸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p.58
위대한 트레이더는 우리처럼 편향적일 리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생각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 역시 편향에서 피해갈 수 없고, 단지 인간 본성의 자기파괴적 측면 때문에 생기는 손해를 제한하는 데 매우 뛰어날 뿐이라고 느꼈다. 내가 폴 튜더 존스를 찾아갔을 때 그의 책상 위에는 손으로 쓴 메모가 두 개 놓여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전두엽 피질이 도마뱀의 뇌를 통제할 수 있도록 직접 써놓은 메시지 같았다. 그 중 하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잔디 깎는 기계에 저항하는 잔디는 잘려나가지만 구부러지는 잔디는 잘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라."
우리는 인생에서 여러 번 갈림길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중 올바른 길은 대개 자존심을 버리고 손해를 받아들이되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잔디 깎는 기계에 저항하는 풀잎처럼 굽히려 하지 않으면 오히려 고통을 받을 뿐이다.
p.61-62
최후통첩 게임에서 제안을 거절하는 것은 비합리적인가? 반드시 비합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거절이 실험 참가자들에게 금전적 손해를 입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게임은 일반적으로 다시는 서로 만날 일이 없는 익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단 한 번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조건에서 제안을 거절한다는 건 금전적 손실을 결코 만회할 수 없다는 의미다.
여러 가지 경제적 상황에서 우리는 당장의 작은 손실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자기 입장을 완강히 고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사실 돈을 벌고 싶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작은 패배 따위는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폴 튜더 존스가 책상 위에 걸어놓은 글은 전두엽 피질이 도마뱀의 뇌에게 보내는 편지 같았다.
"도마뱀의 뇌 님, 당신이 고집도 세고 자존심도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행동하고 싶으시겠지만 나(전두엽 피질)는 돈이 더 좋아요. 그래서 나는 당신이 자존심을 세우는 쪽보다 이익을 취하는 길을 택하게 할 것입니다."
p.65
언뜻 손실 회피 성향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돈을 잃는 걸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돈을 '조금' 잃었을 때를 생각해 보자. 손실에 대한 강한 혐오가 비뚤어진 인센티브를 만들어낸다. 바로 '패배자'라는 꼬리표를 피할 수 있다는 작은 가능성을 핑계로 크고 어리석은 위험에 기꺼이 뛰어드는 것이다.
닉 리슨도 한 번에 10억 파운드를 잃은 것은 아니었따. 사실 리슨의 거래 손실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작은 손실을 받아들이는 대신 거래 규모를 파격적으로 늘렸다. 만회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판돈을 계속해서 늘린 것이다. 결국 그를 막대하고 파괴적인 손실로 이끈 것은 바로 손실에 대한 혐오였다. 닉 리슨이 나락으로 떨어진 데는 손실 회피 성향 이상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보편적인 교훈을 전달해 준다. 손실에 대한 혐오는 우리를 더 나쁜 위험을 감수하도록 몰아붙이고, 끝내는 돈을 잃게 만든다는 것이다.
p.93-94
어떤 싸움이든 적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헐 장군은 작은 군대를 대규모 병력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에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한 것이다.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생각은 기껏해야 가설일 뿐이며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의 효율성이라는 환상에 굴복한 투자자들은 투자라는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해 버린다.
세상에 대해 증명된 과학적 견해를 '이론'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중력이 실제로 존재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를 이론으로 분류한다. '가설'은 증명된 이론과는 다르게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다. 중요한 건 시장의 합리성을 옹호하는 사람들조차도 자신의 생각을 '가설'로 분류하며, 이것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사실 효율적 시장에 대한 믿음은 '가설'이라 하기도 적합하지 않다. 위대한 과학 철학자 칼 포퍼는 "과학적 진술이 현실에 대해 말하는 한 그것은 반증 가능하다. 반증이 불가능하다면 현실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썼다. 즉 어떤 생각이 가설의 기준에 도달하려면 증명이 가능해야 하는데, 이 말은 반대로 그 생각을 반증할 증거도 잠재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앞서 확인했듯이 효율적 시장에 대한 논리는 기본적으로 반증할 방법이 없다. 포퍼는 반증 불가능한 논리는 과학의 범주에서 제외시키고 단순한 믿음(dogma)으로 분류한다.
p.102
높은 수익률을 얻으려면 투자자는 소외된 주식을 매수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남들과 다를 때 느끼는 감정적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2000년 초 내가 만기 10년물 국채 매수 주문을 내자 중개인은 비웃었따. 그는 채권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모든 '스마트 머니'는 국채를 매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경기를 보러갔을 때와는 달리, 채권에 투자했던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늘 그렇듯 일반적인 합의는 틀렸고 내가 산 채권은 곧 가치가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무시당했던 길은 사실 성공의 길이었다.
p.144
신장을 교환하는 기증자와 환자는 동시에 수술을 진행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확신하는 반면, 화폐를 사용하는 거래는 거래 당사자 중 한쪽이 미래 가치를 약속받는 대신 즉각적인 가치를 포기해야 한다. 오늘 1달러를 받고 햄버거를 팔아서 이 돈을 다음 주 화요일 또는 10년 후의 화요일에 사용할 사람은 돈을 쓰기도 전에 이 1달러의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 위험성은 다소 덧없는 화폐의 본질에 있다.
p.150-151
1920년대 독일 바이마르 사람들도 비슷한 문제에 부딪혔다. 일이나 물건의 대가로 지폐를 받던 사람들은 곧 그것에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당시 독일의 인플레이션은 이해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1920년에는 편지 한 통을 보낸느 데 1마르크가 채 들지 않았다. 그런데 1923년에는 이 비용이 500억 마르크로 뛰어올랐다. 이 기간에는 물건이나 서비스의 가격이 하루에도 두 배씩 뛰곤 했다.
이러한 일화를 두고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인플레이션이 심할 때는 택시를 타는 게 낫고, 인플레이션이 적을 때는 버스를 타는 게 낫다"라는 농담을 했다. 택시는 내릴 때, 버스는 탈 때 요금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하이퍼인플레이션 시대에는 요금을 늦게 낼수록 실제 경제적 비용이 낮아진다. 비슷한 이치로 1970년대 인플레이션이 극심하던 시기, 내 친구 제이의 아버지는 제이에게 항상 신용카드를 사용해 지불을 미루라고 가르치셨다.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은 할머니는 내게 그때의 경험을 말씀해 주신 적이 있다. 당시 할머니는 가족이 월급을 받으면 즉시 가게로 달려가 가격이 오르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은 물건을 쟁여놓았다. 교사였던 할머니의 얼마 안 되는 월급조차도 나중에는 엄청난 지폐 더미가 되어서, 그 돈을 집에 가져가려면 유모차를 사용해야 할 정도였다.
가게들은 인플레이션을 따라잡을 만큼 가격을 빨리 바꿀 수 없었기에 몇몇 가게는 '배수 제도'를 도입했다. 식료품점이 수프 한 캔당 가격을 '1만'이라고 적어놓는다면 구매 시 수프의 실제 가격은 가게 앞에 게시된 배수를 곱한 값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제의 배수가 3, 오늘의 배수가 4라면 수프의 가격은 각각 어제 3만, 오늘 4만이 된다. 이런 방식으로 가게들은 배수만 바꿔서 빠르게 모든 상품의 가격을 33%나 인상할 수 있는 것이다. 할머니는 돈을 지불하기 전에 가격이 인상될까 봐 얼마나 두려웠는지, 그래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였는지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p.167
이쯤에서 밀턴 프리드먼이 말한 이 장의 핵심 문구를 다시 강조하려 한다.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 따라서 통화량 증가를 예의 주시하다 보면 인플레이션에 대한 조기 경보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통화량이 늘어나면 인플레이션이 뒤따르고, 그러면 금과 토지 등 유형자산 및 미국 달러 이외의 통화에 투자해야 한다. 반대로 통화량 증가가 둔화되어 디플레이션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면 특정 채권 등 금융 자산이 좋은 투자처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국채 수익률은 연 5%밖에 안 되지만, 디플레이션 시기에는 수익성이 매우 좋은 상품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p.168
재난이 벌어진 후 보험사 주식에는 흥미로운 일이 일어난다. 허리케인, 화재, 지진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보험사는 수십 억 달러에 달하는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렇다면 재해가 발생한 직후 이들 회사의 주가 어떻게 될까? 아마도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니, 이것이 반영되어 주가가 하락하리라고 예측하기 쉽다. 하지만 의외로 주가가 오르는 경우가 많다. 왜 보험사의 주가는 악재에 오르는걸까? 그 답은 큰 재난을 겪은 후엔 사람들이 보험에 새로 가입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으로 손실을 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품을 팔아 이익을 얻는다. 종종 신규 가입에서 오는 이익이 손실보다 큰 경우가 있기 때문에 재난 후의 보험사의 주가가 상승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보면, 대부분의 살마들이 돈을 버는 전략과는 정확히 반대로 행동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보험을 가입해야 하는 시기는 사건이 터지기 전, 아무도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보험료가 낮을 때다. 사건이 발생한 후에는 여기저기서 보험을 가입하고 싶어 하므로 보험료는 잔뜩 높아질 테니 말이다.
p.178
생산보다 소비가 많으면 빚을 갚아야지, 안 그러면 관계가 끊어진다. 경상수지는 한 나라가 생산량 대비 얼마나 소비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일본처럼 경상수지가 흑자인 나라는 소비량보다 생산량이 더 많다. 일본은 잉여 생산물을 해외로 수출하고, 그 대가로 화폐라는 형태의 차용증을 받는다. 경상수지는 한 나라의 소비를 측정하는 가장 광범위한 척도로 자동차부터 영화, 법률 서비스, 투자 소득에 이르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경상수지는 무역수지와는 달리 모든 국제 거래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p.180~181
빚은 되갚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돈을 빌리든 빌려주든 그것은 영구적인 상태가 아니다. 평생을 채무자로 사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내가 식당에서 만난 구두쇠는 그랬던 것 같지만).
즉, 경상수지가 적자인 국가들도 언젠가는 흑자로 전환해야 한다. 따라서 세계 최대의 순 소비국인 미국도 언젠가는 순 생산국이 될 것이다. 나중에 우리는 미국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며,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 국가에서 흑자 국가로의 불가피한 조정은 세계 경제와 개인의 투자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p.182
경상수지 적자는 한 국가가 생산량보다 더 많이 소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적자를 줄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소비 가격을 올리는 것이고, 이는 화폐의 가치를 변화시킴으로써 마법처럼 달성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유로화 대비 미국 달러화의 가치는 3분의 1이나 떨어졌다. 달러를 기준으로 했을 때 부는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미국 소비자들은 몇 년 전보다 훨씬 더 가난해졌고, 이러한 달러 약세는 해외 소비를 줄인다. 또한 미국 제품은 상대적으로 더 저렴해지므로 외국인들의 구매를 증가시킬 수 있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수입이 줄고 수출이 늘어나 경상수지 적자는 줄어들게 된다.
p.184
환율에 대해 논할 때는 상대적 인플레이션을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교환할 수 있는 화폐량(명목환율)이 아니라 화폐의 구매력(실질환율)을 따져봐야 한다. 실질 환율은 인플레이션율을 고려한 개념이다.
p.192
결국 수수께끼는, 생산량 3개월 치에 지나지 않는 사소한 부채가 어째서 미국에 문제가 되었냐는 것이다. 정답은 하버드경영대학원의 조지 베이커 교수가 말했듯이, 이용 가능한 신용의 양이란 '채무자의 소득'과 '채권자의 상환 강요 능력'의 함수이기 때문이다.
p.193~195
신용 한도를 이해하는 열쇠는 채무자의 재정 상황, 그리고 채권을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부분 사람들이 가장 크게 일으킬 수 있는 대출이 주택담보대출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보통 은행은 신용대출을 받을 때보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훨씬 많은 돈을 빌려주는데, 만약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는다 해도 주택을 회수하면 쉽게 돈을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엄지손가락이나 주택을 가져갈 수 없다면 마피아도, 은행도 많은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다.
국제적 대출 기관들은 항상 채무 불이행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2001년 12월 아르헨티나는 채무 불이행을 선언하고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기관들에 상환하는 것을 중단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1,000억 달러 이상의 빚을 지고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이 부채를 갚을 수 있었을까? 당연히 가능했다. 1,000억 달러는 아르헨티나의 약 1년치 총생산에 불과한 금액이었다. 주택 소유자가 비슷한 비율의 빚을 몇 년에 걸쳐 갚아나가듯이, 아르헨티나도 충분히 빚을 갚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빚이 너무 많아져서 감당이 안 될때가 아니라, 빚을 안 갚는 편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될 때 채무 불이행을 선언한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었던 네스토르 키르치네르는 소비를 줄이느니 채무 불이행으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했다. 그는 "빚은 국민들의 땀과 노력으로 갚는 것"이라고 말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만약 당신이 은행에 100파운드의 빚을 진다면 당신에게 곤란한 일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그 대출액이 100만 파운드라면 곤란해지는 건 은행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다른 국가들에게 3조 5,000억 달러를 빚지고 있고, 케인스의 말에 따르면 이는 미국보다도 채권국들에 더 큰 문제가 된다.
채권국들은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빌려주기를 꺼린다. 이것이 경제 규모에 비하면 적은 금액임에도 미국의 부채가 문제로 거론되는 첫 번째 이유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어떤 은행이나 국가도 미국에 상환을 강요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채무 상환은 오직 미국의 선의에 달려 있다. 이 이유만으로도 미국은 최악의 채무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특징들 때문에 사실상 미국이 채무 불이행을 선언할 위험은 낮다. 미국은 세계의 석유, 자동차, 기타 제품을 소비할 때 미국 달러로 표시된 차용증을 발행한다. 그럼 상환에 필요한 만큼의 미국 달러를 창출할 능력이 누구에게 있을까? 바로 미국에 있다. 미국은 달러를 무한히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채무 불이행을 할 리가 없다.
p.200
일본과 중국 정부는 모두 인위적으로 자국 화폐 가치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 개입은 장기적으로 보면 늘 실패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위안화와 엔화의 가치는 향후에 적정한 수준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1992년 영국 중앙은행도 영국 파운드의 가치를 인위적인 수준으로 유지하고자 했는데, 조지 소로스는 영국 중앙은행의 시도가 실패할 것이라는 데 베팅했고, 이 생각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소로스는 무려 11억 달러를 벌 수 있었다. 그러므로 달러 가치는 엔화와 위안화 대비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시장이 극단으로 흐를 때, 도마뱀의 뇌는 항상 기회가 있는 곳의 반대쪽을 가리킨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성적인 경제 수치들이 주요 화폐에 대한 달러화의 하락세가 끝났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해도, 비열한 시장은 '적정 가격'에서 멈추지 않았다. 달러가 상승을 멈추기 전에 엄청나게 고평가되었듯이, 비합리성의 과학에 따르면 달러는 상당히 저평가되고 전문가들의 멸시를 받은 다음에야 하락세를 끝낼 수 있을 것이다.
p.201-203
미국 화폐 가치가 떨어져도 손해를 입지 않으려면, 무너지는 집에서 탈출하면 된다. 즉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달러 외의 화폐에 투자하는 것이다. 미국 외의 주식이나 채권을 사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다. 첫째, 어떤 기업의 달러에 대한 노출 정도는 본사의 지리적 위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가령 일본 기업인 도요타가 오히려 미국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보다도 달러의 하락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을 수 있다. 도요타는 미국 내에서 자동차를 많이 판매하는 반면,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 밖에서 소프트웨어를 많이 판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외의 주식'을 찾아볼 때는 해당 기업의 판매가 어디에서 많이 이루어지는지도 중점적으로 살펴야 한다.
둘째, 달러 가치의 하락은 외국 기업에 압력을 가한다. 달러 약세는 독일 제품의 매력을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 독일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줄이는 데 기여한다. 미국인들이 이탈리아제 가방과 독일제 자동차의 소비를 줄이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줄어든다는 점을 떠올려보라. 이는 곧 이탈리아제 가방과 독일제 자동차를 만드는 기업들의 고용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현명한 투자자라면 달러 가치 하락이 미국에 가져올 영향은 물론, 해외에 전파할 영향까지도 피해야 한다.
그렇다면 달러 외의 자산에 얼마나 투자해야 할까? 나는 보통 투자자에게는 순자산의 15% 정도를 추천한다. 환율 변동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신의 소비 형태에 따라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인들은 평균적으로 수입의 약 15% 정도를 외국 상품 소비에 지출한다. 그러니 순자산의 15% 정도를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이고 위험이 낮은 전략일 것이다.
p.209
스무 살짜리 대학생인 가일라가 시겔 교수와 똑같은 대답을 한 것이다. 주식을 사되 분산투자하며 비용을 낮게 유지하는 것. 이는 많은 책에서 투자자에게 전하는 주요 메시지이기도 하다. 실제로 부자가 되고 싶다면 주식을 사야 한다는 게 통설이다. 이 말은 너무 널리 퍼져 있어 거의 마법의 주문처럼 여겨진다. '주식은 최선의 투자 대상이다, 주식은 최선의 투자 대상이다, 주식은 최선의 투자 대상이다......'
가일라는 잘 대답했다. 대답은 투자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전문가들의 조언과 아주 똑같았다. 그렇다면 피터 보리시는 가일라의 대답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는 가일라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학생은 백미러를 보고 차를 운전하나요?"
주식에 관한 한 피터의 질문은 아주 중요하다. 미국 주식이 지나온 과거는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찬란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82년이나 1802년(시겔 교수는 그의 책에서 1802년 차트부터 분석을 시작했다)의 주식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에게 관건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주식시장의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분석하고, 과거 주식에 활황을 불러왔던 요인이 미래에도 과연 계속될지를 살펴봐야 한다.
p.218
엘로이 딤슨, 폴 마시, 마이크 스탠턴은 저서 [낙관론자들의 승리]에서 사람들이 주식의 수익률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분석한다고 주장했다. 주식 수익률이 부진했던 시기나 국가는 무시한 채 분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들은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16개 주요 국가의 주식시장을 살펴보면 일반적인 분석들이 투자자들에게 주식의 장기적인 수익률에 대해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큼 지나치게 우호적이라고 쓴소리를 던진다.
생존편향에 대해 주장하는 학술 논문들도 있다. 이 연구들은 미국 주식이 좋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일부 생존편향의 영향이 컸다고 이야기한다. 즉 미국 주식의 환상적인 수익은 펀더멘털이 좋아진 덕이 있었지만, 운도 좋았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미국 주식의 미래가 과거처럼 한없이 밝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게 얼마나 순진한 일인지 이해할 수 있다.
p.241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대상에 투자를 해야 수익률이 높다는 것을 잊지 마라. 1982년이 미국 주식을 사기에 가장 좋은 시기였다. 당시 주식은 보편적인 미움과 무시의 대상이었다.
p.247
설사 주식을 직접 보유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주식시장의 호라황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주식의 가치가 상승하는 호황기에는 더그가 보유한 부동산이나 사업체의 가치도 높아진다. 더그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다. 주식을 직접 보유하고 있지 않아도 우리는 사실상 주식 활항이 주는 효과를 그대로 누린다. 일자리 전망도 주식시장과 더불어 좋아지기도, 나빠지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자산의 대부분을 주식으로만 보유하고 있다면, 갑자기 돈이 필요해졌을 때 투자해 놓은 자산의 가치가 떨어져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주식시장의 상승세를 놓칠까 봐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2035년의 시점에서 되돌아봤을 때 시장 환경이 장밋빛이었다면 우리는 충분히 그 호황을 누렸을 것이다. 이를테면 높은 연봉, 집값 상승 같은 것들로 말이다. 그리고 반대로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다면 돈을 모두 주식에 투자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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