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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흐름이해

권력과 진보

by Diligejy 2023. 12. 28.

p.7

만약 공장의 기계가 갖는 잠재력이 현재의 공장 시스템이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과 결합한다면, 우리는 누그러지지 않는 잔혹함으로 전개되는 종류의 산업혁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 시기를 해를 입지 않고 지나가고자 한다면, 유행하는 이데올로기를 볼 게 아니라 사실관계를 봐야 한다.

- 노버트 위너 Nobert Wiener, 1949

p.16-17

이 모든 낙관이 무색하게 지난 1,000년의 역사는 발명과 혁신이 "공유된 번영"과는 딴판인 결과를 불러온 사례로 가득하다.

  • 개선된 쟁기, 더 체계화된 윤작, 말의 사용 확대, 훨씬 개량된 수차와 풍차 등 중세와 근대 초기 농업에서 나타난 일련의 기술 발달은 인구의 90퍼센트 가까이를 차지하던 농민에게 거의 아무런 이득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 중세 말부터 시작해 유럽에서 선박 설계가 개선되고 대양을 가로지르는 교역이 가능해지면서 유럽의 일부 사람들이 막대한 부를 획득했다. 하지만 동일한 종류의 선박이 아프리카에서 수백만 명을 노예로 납치해 신대륙으로 운송했고 수 세기간 이어진, 그리고 오늘날에도 그 끔찍한 영향이 남아 있는 억압적인 시스템을 불러왔다.
  • 영국 산업혁명 초기의 직물 공장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막대한 부를 창출해 주었지만 노동자들의 소득은 100년 가까이 증가하지 않았다. 직물 노동자 본인들이 절절히 잘 알고 있었듯이, 되레 노동 시간이 늘었고 공장의 노동 여건과 인구가 밀집한 도시의 생활 여건 모두 가혹하게 악화되었다.
  • 혁명적인 혁신이라 할 만한 조면기로 면화 재배의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고 미국은 세계 최대의 면화 수출국이 되었다. 하지만 이 동일한 발명이 남부 전역에서 면화 대농장이 운영될 수 있게 함으로써 노예제의 가혹함을 한층 더 강화했다.
  • 19세기 말에 독일 화학자 프리츠 하버가 발명한 합성 비료는 농업 산출을 크게 증대시켰다. 그러나 하버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동일한 원리를 적용해 화학 무기를 고안했고, 화학 무기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수십 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 이 책의 후반부에서 상세히 논의하겠지만, 지난 몇 십년 사이 컴퓨터의 놀라운 발달로 소수의 사업가와 기업계 거물이 지극히 부유해졌다. 그러는 동안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대부분의 미국인은 뒤로 밀려났고 많은 이들의 실질소득이 심지어 감소했다.

이 지점이면 몇몇 독자들이 다음과 같은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결국에는 우리가 산업화에서 막대한 이득을 얻은 게 사실 아닌가? 쥐꼬리만큼 얻기 위해 고된 노동을 해야 했고 떄로는 굶주려 죽기까지 했던 과거 세대보다 우리는 제품과 서비스의 생산 방식을 향상시켜 훨씬 더 번영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p.19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솽보다 생활 수준이 높은 이유는 우리 앞에 있었던 산업 사회 국면들에서 시민과 노동자가 스스로를 조직해 테크놀로지와 노동 여건에 대해 상류층이 좌지우지하던 선택에 도전했고 기술 향상의 이득이 더 평등하게 공유되는 방식을 강제해 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일을 우리가 다시 해야 한다.

좋은 소식은 자기공명영상, mRNA 백신, 산업용 로봇, 인터넷, 막대한 컴퓨팅 역량, 전에는 측정이 불가능했던 것들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 등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도구가 우리 손 닿는 곳에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혁신을 진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놀라운 역량의 방향이 사람들을 돕는 쪾을 향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현재의 방향은 그렇지가 못하다.

p.20

테크놀로지에 대해 더 포용적인 새 비전이 생겨날 수 있으려면 사회의 권력 기반이 달라져야 한다. 19세기에도 그랬듯이, 그러려면 통념에 맞설 수 있는 조직과 반론이 있어야 한다. 널리 퍼진 비전에 도전하고 테크놀로지의 방향이 협소한 지배층의 통제를 벗어나게 하는 것은 19세기 영국이나 미국에서보다 오늘날이 더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결코 그때보다 덜 필요하지는 않다.

p.32-33

널리 믿어지는 개념과 달리 생산성 증가가 반드시 노동자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생산성"은 노동자 1인당 산출량, 즉 총산출을 초고용으로 나눈 값으로 정의된다. 노동자 1인당 산출량(평균생산성)이 증가하면 기업이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싶어지리라는 것이 생산성 밴드왜건 개념에서 기대되는 바다.

하지만 노동자 1인당 산출량이 증가한다고 해서 꼭 기업이 더 많은 노동자를 채용하고자 할 인센티브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 고용을 늘릴 것이냐 아니냐를 결정할 때 중요한 고려사항은 한계생산성이다. 이는 한 명의 노동자를 추가로 고용할 때 그 노동자가 추가로 기여할 산출량(추가적인 생산량 또는 추가적인 고객 서비스의 양 등)을 말한다. 한계생산성과 평균생산성은 다른 개념이다. 평균생산성이 늘어나도 한계생산성은 변하지 않거나 심지어 감소할 수도 있다.

평균생산성과 한계생산성의 차이를 더 분명히 알기 위해 우스개로 자주 이야기되는 미래 시나리오 하나를 생각해 보자. "미래의 공장은 사람 한 명과 개 한 마리, 이렇게 딱 둘만 고용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은 개밥을 주는 것이고 개가 하는 일은 사람이 기계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가상의 공장이 굉장히 많은 양의 제품을 생산한다면 평균생산성, 즉 총산출을 한 명의 (인간) 노동자로 나눈 값은 매우 높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의 한계생산성은 미미하다. 유일한 인간 노동자가 하는 일은 개밥을 주는 것이고, 이 이야기에 함의된 바로는 개와 사람 둘 다 내보내도 산출량은 크게 영향받지 않을 것이다. 더 좋은 기계를 들여온다면 1인당 산출량이 한층 더 높아지겠지만 이 공장이 노동자와 개를 더 고용하려 하거나 유일한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주지는 않으리라고 예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이야기는 극단적이지만 현실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점 하나를 말해준다. 20세기 전반기에 포드와 GM이 그랬듯이 자동차 공장이 더 나은 제품을 선보이면 그 회사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며, 이는 노동자 1인당 매출과 노동의 한계생산성을 모두 상승시키는 경향이 있다. 회사는 늘어난 제품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용접공, 도색공 등 노동자가 더 필요해질 것이고, 필요하다면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하려 할 것이다. 이와 달리, 회사가 산업용 로봇을 도입하기로 했다면 어떻게 될까? 로봇이 용접과 도색 업무 대부분을 수행할 수 있고 인간 노동자를 대규모로 고용하는 생산 방식에 비해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면, 노동자의 평균생산성은 상당히 증가하겠지만 인간 용접공과 도색공은 덜 필요해질 것이다.

이것은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다. 산업용 로봇 같은 많은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이 기계와 알고리즘이 수행하는 업무군을 확대하면서 전에 그 업무들을 수행했던 인간 노동자들을 대체한다. 자동화는 평균생산성을 높이지만 노동의 한계생산성을 높이지는 않으며 오히려 감소시킬 수 있다.

p.36

한 업계에서 자동화가 도입될 때 비용이 충분히 많이 줄거나 생산성이 충분히 많이 높아진다면 자신의 업계에서, 혹은 경제 전체적으로 고용을 끌어올릴 수 있다. 이 경우에 새로운 일자리는 그 업계의 자동화되지 않은 업무들이나 연관 업계들의 활동이 확대되는 데서 발생한다. 20세기 전반기에 자동차 산업의 빠른 성장은 자동차 산업에서 자동화가 되지 않은 기술직, 사무직 노동자의 수요를 증가시켰다. 또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으로, 자동차 공장의 생산성 증가는 석유, 철강, 화학 업계의 확대를 촉진한 주요 동력이었다 (휘발유, 차체, 타이어를 생각해 보라). 또한 자동차의 대량생산은 교통 분야에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불러왔고 다시 이는 특히 도시의 지리를 변모시키면서 유통,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업계에서 새로운 업무를 창출했다.

하지만 자동화로 인한 생산성 증가의 이득이 작으면 새로운 일자리가 거의 창출되지 않는다. 9장에서 우리는 이러한 자동화를 "그저 그런 자동화 so-so automation"이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슈퍼마켓에 무인계산대를 도입하면 바코드 찍는 일을 노동자에게서 고객에게로 전가함으로써 생산성에 약간의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계산원 고용이 줄 때 다른 곳에서 동시에 새로운 업무가 창출되지는 않는다. 슈퍼마켓 제품 가격이 획기적으로 낮아지지도 않고 식품 생산이 획기적으로 확대되지도 않으며 고객의 삶의 방식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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