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55
몇몇 지식인 집단이나 지도층 인사들이 우리 사회의 이념대립이나 갈등을 우려하는 것은 공허한 외침일 수밖에 없다. 격차가 심화된 사회, 민생이 붕괴되는 사회에 대립과 갈등이 없다면 그것은 오히려 생명력 없는 '죽은 사회'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재 나타나는 극한의 이념 대립을 떠받치는 동력은 바로 양극화와 가계 부채 등으로 '붕괴된 민생'과 '생존을 위한 밥그릇 싸움'에 있다.
p.168
현재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갈등 해결의 칼자루를 쥔 것은 산업화 정치 세력이라기보다는, 고도성장 시기에 경제 권력을 선점한 산업화 지배 엘리트들이기 때문이다. 즉, 건국 이후 지난 수십 년간의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일이 간단할 리 없으며, 양보하고 희생해야 할 주체, 즉 산업화에서 사회 권력을 선점한 측이 기득권을 내놓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합의, 또는 사회적 대타협 없이 정권 교체로 모든 것이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p.169
보수 정치 세력의 종말은 결국 대중의 분노가 이제 특정 정치 세력으로부터 한국 사회 전반의 구조를 향해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실패 이후 새로운 선택지도 없이 대중의 불만이 전체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확산되어 갈 수 있다. 아무래도 그것은 대한민국 공동체의 진짜 위기가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더 이상 실패하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p.173
우리 정치에서 선거 결과를 분석하고 예측할 때 유권자의 '출신 지역'은 부동의 제1변수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고향에 대한 애정 때문일 수도 있고, 고향만큼 확실한 연줄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따. 또 태어나 살면서 자기도 모르게 스며든 지역 문화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고향 사람들끼리 정겹게 소통하게 공감하는 것을 망국적 지역주의라며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의 잔소리가 더 쌩뚱맞을 수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지역주의는 끊임없이 비판받았지만,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과연 대중이 우매해서 그런 것일까?
p.179~180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만으로 지역주의 정치 현상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정치적 사건이 역사적으로 지역 간 갈등과 대립을 키워 온 측면 역시 무시하기 힘들다.
p.186
한국 정치에서 지역 정치 구도가 여전히 강력한 제1변수로 남은 원인은 '오랜 역사적 경험의 차이'와 '사회경제적 격차와 차별'뿐만 아니라 특정 정치 세력이 특정 세력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대표하면서 지역과 이념이 결합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p.187
여기서 제기할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는 과연 특정 지역이 인물과 연고 중심의 단순한 파벌 구조를 벗어나 역사적 지정학적 맥락에서 이념적 특성이 뚜렷해진 경우, 이를 단순히 '지역주의'로 명명하고 해체와 극복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지에 있다. 쉽게 말해 보수적 지역의 보수적 유권자가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된 것이야는 것이다. 이 지점은 지역주의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지역 간 이념적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은 1987년식 정당 지형이거나, 아예 지역에 따른 이념적 정체성과 무관하게 '연고와 인물 중심의 맹주 정치'가 나타난다면, 그것은 소모적 지역주의로 청산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지역의 이념적 정체성과 지지하는 정당의 정체성이 일치한다. 이는 물리적 지역주의 타파 주장이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으며, 만일 지역주의를 없애야 한다면 먼저 해당 지역민의 이념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불가능해진 상황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진보 개혁 노선을 표방하는 노무현 정부가 보수적 가치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여기는 영남 유권자를 상대로 지역주의 중심 지지를 '나쁜 것'으로 규정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개혁'이라고 주장했던 것은 별로 현실적이지 않았다.
p.208~209
대중의 가치판단은 일관되어 있지만, 대중에게 드러나는 정치인의 이미지는 항상 불안정하며, 지지한다고 해도 반드시 충성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
p.219
"당통! 가면을 벗어 버리게." 친구 콜론의 말을 들은 당통이 대답한다. "가면을 벗으면 얼굴마저 없어질 걸세." 프랑스혁명의 주역들을 다룬 뷔히너의 희곡 <당통의 죽음>에 나오는 대사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당통의 대답이다. 그는 '가면이 바로 자신의 얼굴'이라고 얘기한다. 이렇듯 욕망의 주체인 인간은 가치나 신념으로 자신을 가장한다. 사실 인간의 생각은 무엇인가에 대한 믿음으로 구성되며, 믿음이 아닌 나머지 생각들은 동물적 본능 외에는 별것이 없다. 다만 이 믿음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맞지 않으면 오래 지니고 있기 어렵다. 나아가 옳다고 생각되는 신념들이 한데 모여 여러 사람들의 생각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그들의 이해관계와 맞물리면, 이를 이데올로기, 즉 '이념'이라고 부를 수 있다. 사람이 사람을 짓밟으면서 옳은 일이라고 믿을 수 있는 것도 이 이념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분명한 것은 인며의 뒷면에서는 항상 욕망이 존재하며, 인간이 살아 있는 한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특정 사회의 이념 지도는 궁극적으로 대중의 욕망을 그려 낸 지도가 된다. 나아가 '논리'로서 대중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정치는 곧 이념의 전쟁이다. 현재 한국 정치의 문제를 이념의 과잉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동안의 상황을 보면 당면한 대중의 욕망을 해소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이념이나 사상이 없는 것이 훨씬 더 큰 문제였다.
p.244
분명한 것은 대중들이 정치적으로 '친미' 또는 '반미' 선상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개 사안에 따라 합리성에 근거해 판단할 뿐이며, 그 과정에서 자국의 이익에 불리하거나 일방적 굴종으로 여겨지는 점이 있을 때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내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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