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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일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1

by Diligejy 2019. 3. 15.



p.94~96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은 참으로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믿을 수 없이 갑작스러운 우연과 예측 불가능한 굴곡진 전개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진행되는 동안에는 대부분 아무리 주의깊게 둘러보아도 불가해한 요소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눈에는 쉼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 지극히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치에 맞는지 아닌지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드러난다.


그러나 이치에 맞건 아니건, 최종적으로 어떤 의미를 발휘하는 것은 대개 결과뿐일 것이다. 결과는 누가 봐도 명백하게 실재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그 결과를 가져온 원인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원인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이거야'하고 남에게 보여주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물론 원인은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달걀을 깨뜨려야 오믈렛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장기튀김처럼 하나의 장기짝(원인)이 먼저 옆에 있는 장기짝(원인)을 넘어뜨리고, 넘어진 장기짝(원인)이 다시 옆에 있는 장기짝(원인)을 넘어뜨린다. 그것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사이 가장 먼저 일어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는 대개 흐릿해져버리는 것이다. 혹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지거나. 혹은 딱히 아무도 알고 싶지 않거나. 그리하여 '어쨋든 많은 장기짝이 연달아 넘어졌답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p.175

전 누구나 인생에서 그렇게 대담한 전환이 필요한 시기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포인트가 찾아오면 재빨리 그 꼬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단단히 틀어쥐고, 절대 놓쳐서는 안돼요. 세상에는 그 포인트를 붙들 수 있는 사람과 붙들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p.378

세상에는 모르는 편이 더 좋은 일도 있어, 라고 아마다는 말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듣지 않는 편이 더 좋은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원히 듣지 않고 버틸 수는 없다. 때가 오면 아무리 단단히 귀를 틀어막아도 소리는 공기를 진동시키며 사람의 마음을 파고든다. 그것을 막기란 불가능하다. 그게 싫다면 진공의 세계로 가는 수밖에 없다.


p.451

좁고 어두운 공간에 혼자 갇혀 있을 때 가장 무서운 건 죽음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영원히 여기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공포로 숨이 막히는 느낌이지요. 주위의 벽이 점점 좁혀들어 이대로 으스러질 것 같다는 착각에 사로잡힙니다.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그 공포를 넘어서야 합니다. 스스로를 극복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에 무한히 근접할 필요가 있습니다.


p.468

진실이 때때로 사람에게 얼마나 깊은 고독을 가져오는지.


p.484

우리는 손에 쥐고 있는 것, 혹은 장차 손에 넣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잃어버린 것, 지금은 손에 없는 것을 동력 삼아 나아가고 있다.


p.501

역사에는 그대로 어둠 속에 묻어두는 게 좋을 일도 무척 많다네. 올바른 지식이 사람을 윤택하게 해준다는 법은 없네. 객관이 주관을 능가한다는 법도 없어. 사실이 망상을 지워버린다는 법도 없고 말일세.


p.556

지금까지 내 길인 줄 알고 별생각 없이 걸어왔던 길이 갑자기 발밑에서 쑥 사라져버리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허허벌판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런 느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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