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종횡무진 역사(5)

by Diligejy 2015. 10. 2.

 


종횡무진 역사

저자
남경태 지음
출판사
휴머니스트 | 2014-07-28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동양사와 서양사, 시사와 역사가 한눈에!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가격비교

p.135

모든 토지를 국가가 분급한다는 발상도 그렇지만 국가고시를 통해 관리를 선발한다는 신선한 구상은 중앙집권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제국체제가 아니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실은 백성들에게 일정액의 세금을 부과한다는 발상도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것이었다.

특히 서유럽 세계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9세기 초반 샤를마뉴의 시대까지도 서유럽에는 세금이라는 게 없었고, 국가 재정은 귀족과 지주들의 기부금으로만 충당했다.

그러나 조세租稅라는 말에 벼를 뜻하는 '화禾;자가 붙어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동양에서는 일찍부터 토지 생산물을 기반으로 한 세금의 관념이 존재했다. 그런 전통이 당 제국에 들어 더욱 체계화된 결과가 균전제였다.

사실 율령이나 과거제, 균전제 같은 행정제도는 발상만이 아니라 집행도 중앙 권력이 안정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권력의 뒷받침이 없는데 세금을 낼 백성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오늘날 법과 제도를 강조하는 것은 흔히 서양의 합리주의적 전통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 모든 일을 법과 제도로 해결하려는 '시스템적 발상'은 역사적으로 보면 지극히 동양적인 것이었다(이에 관해서는 4부에서 상세히 다룰 것이다).

 

p.136

로마 말기의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313년에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를 공인했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한 신앙의 문제가 아니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일종의 반란을 거쳐 제위를 무력으로 쟁취했기 때문에 초기에는 권력의 정통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쿠테타로 집권한 자는 일단 이전 정권의 부정부패를 비난하면서 출발해야 차별성을 기할 수 있다. 전임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그리스도교를 심하게 박해했다. 또한 그는 방대한 제국을 동서로 나누어 분할 통치 체제를 확립했다. 콘스탄티누스는 전임 황제의 그 두 가지 방책을 다 뒤집어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고 황제 전제 체제를 구축했다. 좋았던 옛날의 로마 제국으로 돌아가자! 얼추 이런 취지였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시대착오였다. 유럽 세계에서 제국의 시대는 이미 가버렸기 때문이다.

 

p.137~138

콘스탄티누스가 수백 년 동안 제국의 수도였던 로마를 버리고 멀리 동유럽의 옛 도시인 비잔티움의 터에 신도시를 건설하고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 것도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분명히 로마 기득권층의 영향력을 위축시키고 판을 완전히 새로 짜려는 의도를 가졌더 것이다.

그런 의도는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에서도 드러난다. 자신이 직접 유럽 각지에서 300명의 주교들을 소집하고 진행까지 맡은 최초의 공의회에서 콘스탄티누스가 급선무로 여긴 것은 '어떤 형태로든' 종교를 통합하는 일이었다. 그리스도교가 탄생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 그러니까 300년 이상이 지났다. 수백 년간 공인되지 못한 상태에서 발달하면서 그리스도교는 종파, 교단, 교리, 율법, 예배 절차 등 모든 부분이 극히 다양해져 사실 단일한 종교라고 보기에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어떤 종파, 어떤 교리로 통합할 것인지는 콘스타티누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공의회에서 주교들은 아리우스Arius를 이단으로 몰기 위해 단결했지만, 콘스탄티누스는 설령 아리우스파가 정설로 채택된다 해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아리우스파의 교리가 그와 로마 제국에 더욱 유리했을지도 모른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과세계 강의노트1  (0) 2015.10.03
종횡무진 역사(6)  (0) 2015.10.02
종횡무진 역사(4)  (0) 2015.10.02
종횡무진 역사(3)  (0) 2015.09.26
총, 균, 쇠(2)  (0) 2015.08.3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