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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종횡무진 역사(8)

by Diligejy 2015. 10. 6.

 


종횡무진 역사

저자
남경태 지음
출판사
휴머니스트 | 2014-07-28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동양사와 서양사, 시사와 역사가 한눈에!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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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6~167

8세기 초부터 당 제국이 멸망하는 9세기 초까지 100년동안 모두 11명의 황제들 가운데 단 한 명만 빼고는 전부 환관들이 옹립했다. 환관의 테스트를 거쳐 제위에 올랐다고 해서 그 황제들을 문생천자門生天子라고 불렀을 정도다(문생이란 '제자'라는 뜻이니 얼마나 경멸스러운 표현인가).

 

중앙정부가 이 지경이라면 지방행정은 말할 것도 없다. 균전제의 지방판에 해당하는 제도는 부병제府兵制다. 부병제란 변방의 농민들이 중앙정부에 내는 세금을 면제받는 대신 자비로 국방을 담당하는 병농일치의 제도다. 균전제와 마찬가지로 부병제도 제국이 안정적인 상태일 때는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농민들이 토지를 버리고 유민의 길을 택하는 마당에 그러너 변형 징병제가 유지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자구책으로 변방의 절도사들은 모병제를 취했는데, 이 병사들이 누구에게 충성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당 제국을 결정적인 위기로 몰아간 안사의 난을 일으킨 안녹산安祿山은 바로 절도사였고 사사명史思明은 그의 부관이었다. 우리 현대사에서도 보듯이, 중앙 권력이 불안정할 때 군대의 지휘관이 전방의 사단 병력을 빼내 군사 쿠테타로 집권하는 사례는 개발도상국들이 통과의례처럼 거치는 과만이 아니라 지극히 동양적인 전통에 뿌리를 둔 것인지도 모른다.

 

p.171

로마의 느슨한 제국 체제는 끝내 강력한 중앙집권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그런데다 제국이 멸망하고 게르만 문명권과 융합되어 로마-게르만 문명으로 형질 변화되면서부터는 분산화의 노선이 더욱 두드러졌다. 그래서 로마의 역사가 부여하는 현실 정치적 동질성은 중세 초기에만 작용했을 뿐 곧 사라져버렸고(제국 체제의 실패) 나머지 요소들, 예컨대 법 제도나 군대 조직만 로마 문명의 전통으로 남았다. 그러므로 로마의 전통보다 더욱 지속적이고 강력한 동질성의 축은 그리스도교다. 말하자면 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정치적 동질성이 크게 약화된 대신 그 빈자리를 종교적 동질성이 차지하게 된 셈이다.

 

p.177

로마 제국의 멸망은 단순히 라틴 문명의 패배와 게르만 문명의 숭리가 아니라 라틴 문명이 로마-게르만 문명으로 통합되고 발전하는 결과를 빚었다. 제국의 붕괴를 기점으로 남유럽에 국한되어 있던 라틴 문명권은 중부 유럽까지 영역을 확장했고, 반대로 중부 유럽의 게르만 문명은 라틴 문명에 일방적으로 흡수되거나 물리적으로 결합되는 데 그친 게 아니라 서로 접촉해 화학적 변화를 일으켰다. 그 결과 게르만족이 로마 문명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교를 수용하면서 로마-게르만 문명은 서유럽과 중부 유럽을 아우르는 커다란 문명으로 발돋움했다.

 

p.181

중심이 없는 상태에서의 통합이라면 이질적인 문명권들이 합쳐진 뒤에도 이질적인 요소가 상당히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유럽 문명은 대륙 전체를 권역으로 삼자마자 곧바로 본래의 이질성이 무시해도 좋을 만큼 희석되어버렸다. 심지어 노르만 문명처럼 수백 년 동안 독자적으로 발전해온 요소도 쉽게 기존의 문명과 통합을 이루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환경이 좋았다. 모든 이질적인 요소가 동시에 섞이면서 혼잡을 이룬 게 아니라, 먼저 로마-게르만 문명이 순조롭게 통합을 이루어 새로운 문명의 성격이 뚜렷하게 형성된 뒤에 노르만 문명이 더해졌다. 만약 유럽의 민족이동이 게르만과 노르만의 2차에 걸쳐 이루어지지 않고 한꺼번에 일어났더라면 문명의 성격과 역사의 과정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노르만이 쉽게 통합될 수 있었던 데는 또 다른 강력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교다. 이제 우리는 서양의 중세사에 고유한 통합성을 부여한 그리스도교를 살펴볼 시점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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