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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박태균의 이슈 한국사(1)

by Diligejy 2015. 11. 13.

p.13

독도 문제의 뿌리는 냉전체제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p.14~15

카이로선언의 핵심은 사실 그 내용이 아닙니다. '일본의 패망 이후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가 가장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즉 '종전 후 일본의 책임을 어떻게 묻느냐'가 핵심이었던 거죠.

 

p.15

이 회담에서 결정한 것들 중 눈여겨볼 첫 번째 내용은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조건도 붙지 않습니다. 일본의 전쟁이 정의로운 전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 거죠. 두 번째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개시 이후에 일본이 탈취 또는 점령한 태평양의 도서 일체를 박탈할 것"이라는 부분입니다. 일본은 침략뿐만 아니라 조약을 통해서 영토를 확장했지만, 모두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죠. 그러고 나서 한국과 타이완의 해방을 언급했습니다. 이 카이로선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일본이 차지했던 영토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최초의 그리고 아주 중요한 선언인 동시에 이후 일본 문제의 논의에서 근본적인 준거가 되는 국제법적인 함의를 갖는 선언이 됩니다. 그래서 1951년에 일본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평화조약이 체결될 때에도 카이로 회담이 제일 중요한 모델이 되었습니다.

 

p.17~18

다른 지역에 대해서는 "1914년 이후에 일본이 탈취 또는 점령한 태평양의 도서 일체"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이라고 되어 있지만 어떤 지역인지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국만 명시한 거죠. 강대국들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기 이전부터 독립국이었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는 또한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열심히 노력한 것을 인정해준 것이기도 합니다. 전세계에서 펼친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이 카이로선언으로 결실을 맺은 셈이죠. 또 3.1 운동의 공도 큽니다. 3.1운동을 통해 세계적으로 한국 사람들은 독립을 운하고 있고, 원래 독립국가였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다는 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p.18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 패배하면서 식민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전후 독일 자체를 분할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는 유럽에서 미국뿐만 아니라 소련이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기 떄문에 제국으로서 식민지와 점령 지역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일본에 대해서는 제국을 해체하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이는 아시아에서 소련이 거의 역할을 못 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소련은 일본과 불가침조약을 맺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일주일 전에서야 일본의 항복을 받기 위해 만주와 한반도 북부로 진격했을 뿐이었습니다.

 

p.19

카이로선언은 두고두고 영토 문제를 일으키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명확하게 명시하지 않은 지역들 때문입니다. 그중 문제가 되는 대표적인 지역이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서 문제가 되는 독도,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문제가 되는 센카쿠 또는 댜오위다오 지역입니다.

카이로 선언에서는 이 섬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작은 무인도이기 때문에 세계대전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죠. 그리고 이 섬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전쟁 책임을 결정지은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회담에서 또 빠집니다. 결국은 오늘날 동북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중일 사이의 영토분쟁이 카이로 회담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p.21

독도와 센카쿠/댜오위다오가 카이로선언과 샌프란시스코조약에 언급되지 않은 까닭에 오늘날까지 많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지만, 사실 이 모든 문제의 기원은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바로 시모노세키조약에서부터입니다.

 

p.25

시모노세키조약이 없었다면 일본은 남쪽으로 진출하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면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가지고 태평양전쟁이나 제2차 중일전쟁을 일으키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겠죠. 이 조약을 통해서 일본은 제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즉 시모노세키조약은 일본 제국주의의 시작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모노세키는 굉장히 역설적인 지역입니다. 이토 히로부미라든가 지금의 아베 신조 총리가 이 지역의 야마구치현 출신인데, 원래 이 지역은 서양 세력을 제일 강하게 배척했던 곳입니다. 서양과의 전투까지 벌어진 곳이죠. 그 지역에서 일본이 서양 제국주의를 배우겠다며 시모노세키조약을 맺었으니 말입니다.

 

p.29~30

사실 미국은 일본을 파트너로 삼고 싶어서 전쟁 책임을 철저하게 묻지 않았던 거죠. 미국은 전쟁에서 승리하고도 일본으로부터 어떠한 배상금도 받지 않았습니다.

 

실제적으로 샌프란시스코조약에서 중요하게 다룬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일본이 이전에 불법적으로 취득했던 영토의 반환'입니다.

두 번째는 '전쟁이나 점령을 하면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줬던 피해에 대한.

세 번째는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을 일으키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 중에 영토 문제가 첫 번째로 규정됩니다. 샌프란시스코조약을 보면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고 및 울릉도를 포함한 모든 지역에 대한 일체의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거문도가 포함된 것은 1885년에 영국이 이 섬을 점령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는 구실로 1년 동안 거문도를 점령했습니다. 영국의 거문도 점령은 영토 문제와는 다른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영국군이 점령하는 1년 동안 영국 배를 통해 그 지역에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일반적으로 전기는 고종 황제가 경복궁에 처음 들여왔다고 알려져 있지만, 거문도에 사는 사람들은 그때 영국배가 먼저 전기를 들여왔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p.30

원래 샌프란시스코조약 초안에는 독도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한국 정부도 초청하게 되어 있었지요. 그런데 이게 다 무산되어버렸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시볼드William J. Sebald라는 미국인이 일본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준 것입니다. 또 영국도 일본정부의 편을 들며서 독도 문제가 빠지게 된 것입니다.

 

p.30~33

샌프란시스코조약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한국정부가 참여하지 못하는 원인에 대한 것입니다. 당시 한국은 전쟁 중일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 아니라는 논리였죠. 오히려 제국의 일부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한국의 반일 독립운동 세력들을 전혀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여기에는 논리적 모순이 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카이로선언에서는 한국의 독립을 승인했습니다. 중국국민당의 압력이 작용하긴 했지만,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을 국제사회가 인정했기 떄문이었죠. 그렇다면 당연히 한국을 승전국으로 인정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미국도 한국의 망명 임시정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패망 직후 미국과 소련이 일본군으로부터 항복을 받고 미군정을 설치한 것도 임시정부를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임시정부 요인들이 한국에 들어올 때도 정부로서 귀국한 것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입국하게 됩니다. 임시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광복군을 조직해서 연합국의 작전을 도왔습니다만, 그 어떤 활동도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거죠.

 

한국이 빠진 데는 다른 원인들도 있습니다. 그중 중요한 것이 재일한국인 문제입니다. 한국이 이 조약에 참여하게 되면 한국이 승전국이 됩니다. 한국이 승전국이 되면 일본에 있는 재일조선인들이나 재인한국인들이 승전국의 국민이 되는 거에요. 당시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도 일본사회에서는 재일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굉장히 심했습니다. 심지어 재일한국인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여길 정도였죠.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재일한국인들을 승전국의 국민으로 만들어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일본의 인식을 포함해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한국이 회담에 초청받지 못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한국과 중국이 회담에서 빠졌을 뿐만 아니라 원래 조약에 들어가 있던 두 나라의 영토인 독도와 센카쿠/댜오위다오도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독도와 센카쿠/댜오위다오가 한국과 중국에 돌려줘야 될 땅인지, 아니면 일본이 계속 영유권/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땅인지가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조약에 독도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고, 우리가 원래 조약에 독도가 포함되었다가 나중에 빠졌으므로 포함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독도가 협정문에 포함되지 않았기 떄문에 일본은 국제재판소로 가서 국제법에 따라 처리하자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일본은 러일전쟁 당시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국제법적으로 등록했습니다. 그러니 국제재판소로 가면 등록은 자기들이 했고 샌프란시스코조약에는 빠져 있으므로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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