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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이브스 아웃 - 지옥 속에 핀 연꽃 하나

by Diligejy 2019. 12. 13.

 

나를 거쳐 고통의 도시로 들어가고, 
나를 거쳐 영원한 고통으로 들어가고,
나를 거쳐 길 잃은 무리 속에 들어가노라.
정의는 내 높으신 창조주를 움직여,
성스러운 힘과 최고의 지혜, 최초의 사랑이 나를 만드셨노라.
내 앞에 창조된 것들은 영원한 것들뿐,
나는 영원히 지속되니,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 단테 [신곡] 지옥 3곡 1행 - 6행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곳 가져서도 안되는 곳. 우리는 그 곳을 지옥이라 부른다.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을 신이 만든 곳으로 표현하지만 이 세계에 이미 지옥이 존재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많은 지옥이 있을 수 있지만 돈귀신이 만들어낸 지옥은 가장 흔하고 일반적인 지옥이다.

돈귀신에 홀린 사람들이 만든 지옥은 문제가 하나 있다. 홀리지 않은 사람의 발목을 잡아 무고한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온다는 점이다. 삶을 살면서 아무리 이타적으로 살고 싶고, 순수히 살고 싶더라도 쉽지 않은 이유다. 

이 영화는 추리영화라는 형식을 통해 그 지옥의 풍경을 그려낸다. 사실 추리영화라는 형식은 매우 보잘 것 없는 수단에 불과한지 모른다. 물론 이 영화의 결말을 전혀 예측하지도 못한 주제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주제넘은 소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 이 영화를 기획하고 만든 사람은 내 말에 동의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돈귀신에 홀려 부모, 형제, 친구도 없는 끝이 없는 배신의 복마전을 유머러스한 모습으로 그려낸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보며 사람들은 웃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지점에서 끝을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이건 영화에서 보여주는 요소 때문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인 경험이 더 큰 원인을 제공했다. 사실 영화 기획자가 노렸을 수도 있다. 영화에서는 정말 아픈 부분을 건들었다. 유산을 둘러싼 분쟁이었다. 살아오면서 겪지 않았다면 정말 최상의 시나리오겠지만, 운이 따르지 않아 지켜봐야 했고, 겪어야 했다. 그것도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엮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만약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내가 '끝을 알 수 없는 슬픔'이라고 표현한 것에 동의할 거라고 믿는다. 

사실 영화 초반부에 이 시대 마지막 사립 명탐정이라며 등장하는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이 허당짓을 하는 걸 보며 기획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라는 의문을 해소할 수 없었다. 명탐정이라 하는데 그리고 나름 까칠한 모습을 보이며 뭔가 똑똑한 사람인 것처럼 비쳐지는 데 왜 저렇게 허당일까. 의도가 무엇일까 가늠할 수 없었다. 

분명 뭔가 있는데... 라며 집중하고 찾아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영화를 기획한 사람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쉬지 않고 관객을 자신의 퍼즐 안으로 빠지도록 몰아붙인다. 김영하가 떠올랐다. 김영하와 비슷했다. 물론 영화의 특성상 김영하보다 더 강하게 밀어붙인다. 그리고 김영하는 구조 자체에 집중한다면, 이 영화는 구조도 구조이지만 그 속에서 조금씩 엮어가며 미리 자신의 의도대로 작업을 해놓는다. 물론 복선을 노출하기에 관객에게 힌트가 될 수는 있지만, 거기서 또 다시 비튼다. 교묘히 자신의 의도대로 걸려들기를 기다린다. 

덫에 걸린 것처럼 구조에만 집중한다. 조금씩 구조를 맞췄다고 자만할 때즈음 잽을 날리고 잠시 움츠러들게 만들었다가 다시 자만하게 만들고 어퍼컷을 날린다. 그 때 자만했다는 걸 깨닫는다.

영화는 계속해서 돈을 둘러싼 이해관계를 보여준다. 영화 속 내용이 아니더라도 삶을 살면서 돈의 소중함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없다고 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일거다. 산속에 사는 자연인이거나 지독히 돈 밝히는 사기꾼이거나.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더 부족하던 과거엔 돈에 별로 관심없다는 사람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애정, 가족, 의리 등을 강조하며 돈보다는 그런게 중요하냐고 하던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잇속을 챙기고 싶기에 그런 걸 강조하고 강요할 뿐 자신들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손해가 가거나 아니 다른 사람들의 정당한 이익을 빼앗는 것에도 예민하고 민첩했다. 

영화를 기획한 기획자는 이 점을 놓치지 않는다. 겉으로 화목한 척, 이민자 가정의 가정부라도 가족처럼 챙기는 척 하지만, 속으론 가족은 커녕 인간으로서의 대우도 하지 않는 그런 위선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 부분에서 [완벽한 타인]과 오버랩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마음속에 질문 하나가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뽑아도 뽑히질 않았다. "당신은 이민자, 다른 유색인종, 다른 문화의 사람들에게 관대할 수 있습니까?" 우리나라도 점점 더 글로벌화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미국처럼 다양한 인종과 이민자가 있는 건 아니다. 멀리 갈 거 없다. 나부터 그렇다. 회사에 외국인 한 분이 있긴 하지만, 업무가 겹치지 않고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라서 얘기할 일이 딱히 없다.

그렇기에 내가 당당하게 "나는 불법이민자 가정이라도, 어떤 인종/문화의 사람이라도 포용할 수 있는 인간입니다."라고 말하기는 솔직히 힘들거 같다. 근거로 삼을 레퍼런스가 없기 때문이다. 

불편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면 그렇다. 

이건 내 마음대로 통제가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내 마음대로 옆에 외국인분을 둘 수도 없고, 이웃으로 맞을 수도 없다. 외생변수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돈을 둘러싼 위선이다. 어렸을 적 돈에 별로 관심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던 거 같다. 그 때는 욕심이 많아서라기보다, 돈에 진짜 '관심이 없다'기보다 사회 물정을 전혀 몰라서 그랬다. 여기저기서 보호받고 있고, 구직도 해보지 않았으니까... 그저 학업에만 집중하면 되니까 돈에 대해서 몰랐다. 

이 영화에서 마르타 카브레라(아나 데 아르마스) 캐릭터가 불편한 이유가 이거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착하기만 한 캐릭터다. 그렇게 잘 나가다 영화는 갑자기 동화로 전환되며 마무리 된다. 기획자는 지옥속에 핀 연꽃을 그리고 싶어했던거 같은데, 지옥에서 피는 연꽃은 마르타처럼 피어나질 않는다. 마르타 같은 캐릭터는 뿌리조차 내릴 수 없다. 괜히 지옥이 아닌데 지옥을 너무 쉽게 본 거 같다.

착하게 사는 게 죄냐? 뭐가 어때서 그래? 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단순히 선과 악 이분법적으로 나눠진 캐릭터가 맘에 들지 않았다는 거다. 분명 마르타라는 캐릭터로 인해 영화의 유머, 전개는 수월하게 진행된다. 분명히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무 변동없이 계속 직선으로 그어진 캐릭터는 영화를 보고난 뒤 뭔가 뒷맛이 찜찜한 느낌을 남긴다. 영화는 분명 픽션이다. 그렇지만 현실을 모사하기에 영화가 재미있다. 현실은 단순히 선과 악 이런 이분법으로 구분되기 힘든 일들이 너무 많다. 어렵다. 

그렇기에 영화는 이런 현실을 모사해 관객을 혼란케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영화는 교훈에 집착한 나머지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실수를 했다. 마르타의 독특한 특징을 캐릭터로 잡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걸 다 가질 수 있는 선택은 없으니까. 그래도 마르타의 단순한 캐릭터가 아쉬움이 남는 건 계속 마음에 걸린다.

회사 동료분과 영화를 보고 온 뒤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어떤 점이 좋았고, 좋은 영화란 무엇인지, 삶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분쟁과 관련된 경험 등 다양한 얘기를 나눴다. 사실 영화 자체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재밌고 의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영화를 분석하고 토론하며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게 더 재밌고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훌륭했다. 충분히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고, 냉정하게 아픈 곳을 찌르는 영화였다. 예방주사라 생각하고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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