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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한국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

by Diligejy 2020. 7. 14.
달 너머로 달리는 말
국내도서
저자 : 김훈
출판 : 파람북 20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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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 많이 죽였고, 많은 죽음을 보아왔다. 죽은 자들의 범접할 수 없는 침묵 속에는 산 자를 압도하는 위엄의 후광이 빛나는 것을 황은 일찍부터 알았다. 적의 첩자들과 적과 밀통한 배반자들을 죽여서, 그 죽은 몸을 찢고 으깨며 분풀이를 해도 죽은 자의 위엄은 훼손되지 않았다. 죽은 자는 죽었기 때문에 산 자들이 지분덕거릴 수 없는 자리에서 우월성을 누리는 것처럼 보였다. 산 자는 죽은 자를 이길 수 없었다. 죽은 자는 이미 죽었기에 죽일 수가 없었고, 죽어 널브러지고 문드러진 자세로 산 자를 조롱했다. 죽은 자는 산 자의 영광에 침을 뱉고 있었다. 적병과 아군의 시체가 뒤엉켰지만, 죽은 자에게는 산 자의 칼이 닿지 않았다.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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