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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015년 빚더미가 몰려온다(1)

by Diligejy 2015. 11. 27.

p.22~23

더욱 중요한 것은 빚이 붕괴하는 동안 국가 간 또는 기업 간 대역전 현상이 일어나기 쉽다는 점이다. 호황일 때보다 극심한 불황이나 패러다임의 변화가 올 때, 후발주자가 추격하기에는 더욱 유리하기 때문이다. 개인 또는 급격한 경제환경의 변화 속에서 포트폴리오와 투자전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이제 빚을 급속도로 축적해가던 시대가 끝나가고 그 빚의 붕괴 시기가 도래한 만큼, 과거의 경험들만 믿고 똑같이 대응한다면 국가든 개인이든 새로운 환경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p.30

어헌이 온두라스에서 아일랜드의 경제기적을 자랑하던 바로 그 순간, 아일랜드 경제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정부는 부도 위기의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3억 유로를 들여 은행을 사들였다. 은행 민영화와 규제 철폐가 아일랜드 호황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했던 어헌의 강연과는 반대로 아일랜드 정부가 은행들을 차례로 국유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조치로도 아일랜드 경제의 몰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아일랜드는 스스로 금융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2010년 국제통화기금IMF와 유럽연합EU에서 850억 유로라는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을 받았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우리나라가 IMF에서 받은 구제금융 195억 달러의 다섯 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아일랜드 인구가 고작 400만 명을 조금 넘는 정도인 만큼 1인당 구제금융 정도는 한국의 50배가 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아일랜드는 국민 한 사람당 54만 달러, 우리 돈으로 6억원이 넘는 대외 부채를 지게 됐다. 금융 산업과 함께 실물 경제도 무너져 내렸다. 아일랜드의 2009년 경제성장률은 -7.6%로 추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로존Eurozone국가 가운데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규제철폐와 민영화, 감세로 번영을 이뤄냈다는 아일랜드 경제는 왜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진 것일까? 아일랜드의 기적은 모두 허상이었을까?

 

p.39~40

아일랜드는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한데도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법인세율을 고집하고 있다. 아일랜드에 대규모 구제금융을 해준 EU가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법인세부터 높여야 한다고 거듭 권고했지만, 아일랜드는 이 같은 충고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몇몇 조세피난처를 제외하고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법인세율을 유지하고 있다.

 

더구나 부유층의 세금은 한 푼도 올리지 않는 대신 각종 공공 서비스를 대폭 축소하고 있다. 1990년대 아일랜드의 고속성장을 이끌었던 대학 교육에 대한 지원도 대폭 줄였다. 그 결과 250달러도 안 됐던 아일랜드 대학 등록금이 2010년에는 1,500달러로 올랐다. 또 이듬해인 2011년에는 재정적자를 해결하겠다며 아일랜드 정부가 대학 등록금을 3,000달러로 인상했다. 정부와 재계의 탐욕으로 경제위기가 닥치자, 아직 사회생활도 시작하지 않은 대학생에게 그 책임을 고스란히 떠넘긴 셈이다.

 

p.42~43

수영과 일광욕을 유달리 좋아하는 그리스인에게 집 앞마당에 있는 수영장은 동경의 대상이다. 그리스인이 돈을 모으면 가장 먼저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수영장이다. 그런데 그리스에서 자신의 집에 개인 수영장을 갖고 있으면 한 해 500유로, 우리 돈으로 70만원이 넘는 세금을 내야 한다. 2008년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Athens 북쪽의 부유한 지역인 에칼리Ekali 교외에서 자신의 집에 수영장이 있다고 신고한 사람은 모두 324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리스가 재정적자에 시달리기 시작하자, 한 공무원이 세수확충을 위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바로 구글 어스Google Earth의 위성사진을 이용해 수영장으로 보이는 파란색 사각형을 세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놀랍게도 그리스 세무당국은 모두 1만 6,974개의 수영장을 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 에칼리 인근에 집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 부유층의 98%가 탈세를 해왔던 것이다.

 

그리스 세무당국이 구글 어스로 수영장을 찾아내 세금을 물리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그리스 부자들이 자신들의 수영장을 꼭꼭 숨기기 시작했다. 잔디 색깔이나 콘크리트 색깔의 방수막으로 수영장을 가려 위성 사진으로 수영장을 찾아내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썼다. 국가가 부도위기에 처했는데도 그리스 부자들은 여전히 탈세에만 열을 올렸다.

 

그리스에서는 세금을 제대로 내면 바보로 여길 만큼 탈세가 만연해 있다. 아테네 인근에 있는 콜로나키Kolonaki 시에서는 환자들에게 영수증을 떼주는 의사가 단 한명도 없다고 한다. 심지어 그들 중 일부는 한 해 소득이 3,000유로, 우리 돈으로 440만 원에 불과하다고 신고했다. 이에 거센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그리스 정부는 조세포탈을 해온 68명의 의사를 고발했다. 그러자 그리스 언론들은 이 같은 조치가 성난 국민들을 달래려는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고 비난하며, 진정으로 탈세를 막으려 한다면 진정한 조세 행정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는 그리스에서 세금 징수가 안 되는 지하경제가 그리스 GDP의 40%를 차지해 2009년 한 해 동안 조세포탈로 새나간 돈이 300억 유로, 우리 돈으로 44조 원이 넘는다고 발표했다. 더구나 뇌물이 일상화된 그리스에서는 2009년 한 해 동안 9억 유로가 뇌물로 쓰였다고 한다. 그리스 사람 한 명이 한 해 평균 1,500유로, 우리 돈으로 220만 원을 뇌물로 쓴 셈이다. 국제투명성기구는 그리스 부유층의 탈세와 부정부패가 그리스를 위기로 몰아넣은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전 세계적으로 빚의 축적이 진행되었던 지난 60여 년은 그리스의 탈세가 한국과 무관했다. 하지만 빚더미의 누적에 따른 불균형이 임계상태에 다다른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대붕괴의 시대가 본격화되면 그리스 부유층 사이에 만연한 탈세가 그리스의 재정을 악화시켜 유럽 경제는 물론 한국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p.48~49

로고프와 라인하트가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덴마크 금융공황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66개 나라의 위기 사례를 연구한 결과, 자본의 국제 이동이 자유로웠던 시대에 반복적으로 금융위기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금융위기와 금융자유화의 연관성을 연구한 결과, 총 24건의 금융위기 중 18건이 바로 지금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는 금융자유화 조치 직후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보였다. 이에 앞서 세계은행의 데미르국-쿤트 Asli Demirguc-Kunt와 IMF의 데트라지아체Enrica Detragiache도 1980년부터 1995년까지 53개 국가의 데이터를 이용해 은행부문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은 바로 금융자유화였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이 같은 여러 연구를 종합해 라인하트는 역사적으로 자금의 대량유입이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그리스 경제가 붕괴 위기를 맞게 된 것은 유로화 채택이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유로화 채택 이후 국외 자금이 대규모 유입되면서 거품 경제를 조성했지만, 그에 걸맞는 생산성 향상이 뒤따르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외자본의 조달 통로가 막히자, 그리스 경제에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위기가 오기 전에는 그렇게 잘 팔리던 그리스 채권의 인기가 뚝 떨어지면서, 정부가 보증한 채권조차 팔리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진 그리스는 결국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해 2012년까지 2,400억 유로, 우리 돈으로 340조 원을 수혈받았다. 여기에 민간 채권단이 탕감해주기로 한 빚까지 더하면 그리스가 받은 구제금융 혜택은 3,500억 유로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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