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

2015년 빚더미가 몰려온다(3)

by Diligejy 2015. 11. 29.

p.61

헝가리의 경우, 경기가 한창 좋았던 2000년대에 집값이 오르기 시작하자 헝가리인들은 빚을 내서 집을 사기 시작했다. 그런데 헝가리 국내 이자율은 장기 대출을 받기에는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자가 훨씬 싼 스위스 프랑이나 유로화로 돈을 빌렸다. 외국 은행들이 헝가리 포린트Forint화로 돈을 빌려주려면 우선 자국 통화를 포린트화로 바꾸어야 하는데, 이때 포린트화 가치가 떨어지면 이자를 받아도 오히려 손해를 볼 수가 있다. 이 같은 환율변동 위험 때문에 외국 은행들이 포린트화로 대출해 줄 때는 더 높은 금리를 받으려 했고, 그래도 헝가리인들은 더 싼 이자만 좇아 전체 대출의 3분의 2를 외국 통화로 빌렸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가 오자 하루아침에 포린트화 가치가 반 토막 났다. 결국 포린트화를 외화로 환전해 갚아야 하는 헝가리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전체 빚과 이자 부담이 한순간에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결국 많은 사람이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둘 파산하면서, 헝가리 내수시장이 무너지고 GDP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이처럼 불경기가 심화되자 세수가 매우 줄어들어 국가 부채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p.62

헝가리가 돈을 갚지 못하면 가장 큰 충격을 받는 곳은 바로 오스트리아다. 2000년대 호황 당시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던 오스트리아는 GDP의 140%에 이르는 엄청난 자금을 동유럽에 대출해줬다. 이 때문에 동유럽이 무너지면 오스트리아도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고, 그러면 오스트리아와 밀접한 경제 관계를 맺고 있는 독일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 IMF 등 국제기구의 구제금융을 받은 루마니아도 국가 신용 위험도가 계속 악화하고 있는 데다가, 2007년 뒤늦게 유로화를 도입한 슬로베니아도 2012년 재정적자가 GDP의 6.4%에 이를 정도로 위험수위에 도달해 있다. 만일 동유럽 위기가 가속화되면, 유럽 은행들은 더욱 신규대출을 줄이고 자금회수에 나설 것이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도 일본의 무차별적인 자금회수가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포에 빠진 글로벌 은행들의 자금회수는 유럽의 위기를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촉매제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p.64~65

일본 경제의 비극은 1985년 플라자 합의Plaza Accord에서 시작됐다. 당시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규모 감세정책으로 무역적자가 급증하는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429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대일對日 무역적자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이에 레이건 행정부는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독일, 일본, 영국, 프랑스 등과 함께 재무장관 회의를 열고, 미국의 달러화 가치를 하락시키기 위한 국제공조를 이끌어냈다. 그 뒤 2년 동안 달러화 가치는 30%나 떨어져 미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일본은 순식간에 엔화가 급등하자 극심한 불황에 시달렸다.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기 시작한 일본 수출기업들이 점점 시장을 잃어가자, 일본 정부는 뒤늦게 금리를 낮추어 엔고현상을 막아보려 했다. 금리가 낮아지면 국내 자금이 높은 이자를 좇아 국외로 빠져나가면서 엔화 가치가 낮아질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기대는 빗나가고 말았다. 플라자 합의 도출 당시 1달러에 240엔이었던 환율은 5년 뒤에는 140엔으로, 또 10년 뒤에는 83엔이 될 정도로 엔화가치가 급격하게 오른 것이다.

 

이렇게 엔고현상이 계속된 데는 일본인들의 소비형태가 큰 영향을 미쳤다. 보통 자국 통화 가치가 오르면 수입품의 가격이 낮아져, 일반적으로는 국내 제품보다 수입품의 수요가 늘어나므로 통화 가치가 낮아진다. 그러나 일본은 폐쇄적인 시장의 특성과 자국산 물건을 선호하는 일본인의 습성 때문에, 엔화 가치가 아무리 높아져도 좀처럼 수입이 늘지 않아 엔고현상이 계속됐다. 결국 일본의 정책금리 인하는 엔고현상 해소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엉뚱한 효과만 가져왔다. 저금리로 갈 곳을 잃은 막대한 자금이 주식과 부동산으로 몰려들면서 자산 가격이 치솟은 것이다. 일본 닛케이Nikkei 지수는  1만 2,000대에서 단 5년 만에 4만까지 뛰어올랐고, 일본 6대 도시 땅값은 1985년 이후 세 배 이상 급등했다.

 

뒤늦게 정책실패를 깨달은 일본 정부는 1989년 5월, 갑자기 급격한 금리 인상을 단행해 1989년 5월 2.5%였던 정책금리를 8월까지 6%로 끌어올렸다. 그 결과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대폭락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일본 정부는 다시 부양책으로 돌아서 자산 가격 지키기에 나섰지만, 일단 폭락하기 시작한 자산 가격은 어떤 정책으로도 되돌아오지 않았다.

 

p.66~67

재정지출이 과도하게 늘어나면 지출을 줄이든지 아니면 세수를 늘려야 하지만, 일본 정부는 채권을 발행해 빚으로 충당하는 편한 길을 택했다. 그 결과, 2011년 국가 총예산 92조 엔 가운데 세수로 충당한 금액은 41조 엔(우리 돈으로 590조 원)에 불과한 반면, 국채를 팔아서 빚으로 조달한 금액은 44조 엔(우리 돈으로 634조 원)으로 세수보다 빚으로 조달한 금액이 더 컸다. 이에 따라 2011년 말 기준으로 일본의 국가부채는 960조 엔, 우리 돈으로 1경 3,800조 원에 이르렀다. 일본인 한 사람이 752만 엔, 우리 돈으로 1억 700만 원에 이르는 돈을 국가 부채로 짊어지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이미 GDP의 200%를 넘어선 일본의 국가 부채는 2020년에는 300%가 넘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규모로 커질 것이다.

 

일본의 재정적자가 이렇게 오랫동안 계속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일본인들의 투자성향 때문이다. 1989년 이후 자산가격 붕괴로 많은 재산을 잃고 큰 고통을 받았던 일본인들은 위험한 투자를 꺼리는 성향이 더 강해졌다. 그래서 일본 국채의 이자율이 연1%밖에 안 되는데도, 일본인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국채 투자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불균형이 계쏙되기에는 일본인들의 저축률이 매우 떨어진 상태다. 일본 전체의 저축률은 3%대에 불과한데, 그 세대별 저축률을 살펴보면 매우 기형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일본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가구의 저축률은 2009년 기준 23%로, 197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여전히 높다. 20여 년 동안 장기 불황을 겪어온 터라 일할 수 있는 세대는 최대한 저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퇴한 노령층이 저축했던 돈을 꺼내 쓰면서 실소득의 1.5배를 지출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 저축률을 크게 낮추고 있다. 제아무리 국채 투자에만 매달리는 일본인이라도 이렇게 저축률이 낮은 상황에서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40조 엔대의 천문학적인 국채를 계속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 같은 불균형이 계속되면, 앞으로 일본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자국민이 다 소화하지 못하는 날이 올 수 밖에 없다.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년 빚더미가 몰려온다(5)  (0) 2015.11.30
2015년 빚더미가 몰려온다(4)  (0) 2015.11.30
2015년 빚더미가 몰려온다(2)  (0) 2015.11.27
2015년 빚더미가 몰려온다(1)  (0) 2015.11.27
기계와의 경쟁(4)  (0) 2015.10.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