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82~84
당시 미국에서는 소수의 부자뿐만 아니라 모든 미국인이 함께 번영을 누렸다. 미국 가계의 실질 소득이 해마다 평균 2.8%나 늘었다. 특히 소득 순위가 하위 50%인 미국인들은 이 기간에 소득이 두 배 가까이나 빠르게 늘어났다. 2007년 가치로 환산했을 때 1947년부터 1975년까지 미국의 가게 수입은 평균 2만 5,000달러에서 5만 5,000달러로 늘어났다.
번영의 시대에 미국은 지금과 달리 강력한 사회안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실업에 대한 재교육과 재취업제도는 당시 사회주의를 추구하던 유럽보다도 앞서 있었다. 1950년대 중반에는 전체 근로자의 3분의 1이 노동조합에 가입해, 미국 역사상 가장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러나 노조에 대한 시장경제학자들의 우려와는 달리, 미국의 시간당 생산성은 1947년부터 1975년까지 두 배로 늘었고 미국 경제 역사상 최대의 호황이 계속됐다.
당시에는 미국 정부가 수도나 전기요금에 보조금을 지급해 누구나 값싼 공공요금의 혜택을 받았다. 또 교육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공립대학을 대대적으로 확대해 1970년에는 전체 4년제 대학생의 70%가 공립대학 학생이었다. 당시 공립대 학비는 평균 가계 소득의 4%로, 가게 소득의 20%를 차지하는 사립대학 학비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이처럼 복지정책으로 정부의 씀씀이가 큰 편이었는데도 미국의 재정적자는 오히려 크게 줄었다. 당시 미국 정부가 고소득층에 높은 소득세율을 부과해 충분한 세수를 확보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1951년부터 1963년까지 40만 달러가 넘는 소득에 대한 최고 소득세율을 90%대로 유지했고, 덕분에 2차 세계대전 당시 전비戰費 마련을 위해 발행했던 국채도 계속해서 갚아나갔다. 그 결과 1970년까지 미국의 총부채는 GDP의 150% 선에서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p.84~85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20년간의 미국 대번영은 1973년 시작된 1차 석유파동으로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제4차 중동전쟁에서 서방세계가 이스라엘을 지원하자 이에 격분한 중동 산유국들은 직접 실력행사에 나서 원유 생산량을 일제히 줄였다. 그 결과 두바이유 가격은 1배럴에 2달러대에서 석 달 만에 11달러대로 급등하면서 1차 석유파동이 일어났다.
1978년에는 혁명에 성공한 이란이 석유 수출을 중단하자, 1979년에 2차 석유파동이 일어났다. 그 결과 1배럴에 13달러였던 유가는 이란.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39달러로 치솟았다. 전 세게가 높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을 겪었고 경제 불황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그 결과 1950년에 시작해 1970년 초반까지 게속되었던 호황기의 슈퍼사이클 1단계가 막을 내렸다.
당시 미국 경제는 선택의 갈림길에 있었다. 미국은 헨리 포드의 지혜를 되살려 일시적으로 성장이 더디더라도 중산층을 지켜 든든한 소비기반을 확충하고, 실물 경제를 되살려 미국 경제를 재건하는 방법을 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자본가들은 경제 전체를 되살리기보다 자신들의 이윤을 챙기는 데 급급했다. 유가 급등으로 이윤이 줄어들자, 미국의 기업들은 대량 해고와 임금 삭감을 통해 늘어난 비용을 근로자에게 전가하기 시작하면서 빈부 격차가 확대되는 슈퍼사이클 2단계로 진입했다.
p.86~87
1972년 미국인들의 시간당 임금은 8달러 99센트였다. 그런데 33년이 지난 2005년에는 시간당 임금이 오히려 8달러 17센트로 떨어졌다. 미국의 근로자들은 33년 동안 더 가난해진 것이다. 이처럼 임금이 낮아지면서 미국의 상위 1%를 제외한 나머지 99%의 1인당 평균 소득은 1973년 3만 8,206달러에서 2004년에는 3만 7,295달러로 떨어졌다. 1인당 평균 소득이 30여 년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특히 하위게층의 타격은 더욱 컸다. 당시 미국에서 소득 순위 하위 30%의 임금은 2.7%가 줄었고 하위 10%의 임금은 7.5%나 감소했다. 반면 미국 상위 0.1% 부자들의 몫은 1970년 1.94%에서 2005년에는 6.95%로 세 배가 넘게 늘었다. 부자의 범위를 좁히면 그 증가 폭은 더 커진다. 미국 상위 0.01% 부자들의 소득이 미국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70년 0.53%에서 2005년 2.87%로 다섯 배가 넘게 늘었다.
이처럼 부가 상위게층에만 집중되면서 미국의 중산층은 급속도로 붕괴했다. 가난해진 중산층은 근로시간을 늘려서 이에 대응했다. 1979년 미국의 근로자들은 한 해 평균 1,700시간을 일하면서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2007년 미국의 근로자들은 한 해 평균 500시간이나 더 늘어난 2,200시간을 일했다. 그러나 빈부 격차가 점점 더 커지면서 미국의 중산층은 아무리 더 많이 일을 해도 자신이 번 돈만으로는 소비 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p.105~106
최고의 호황을 누리는 듯했던 2007년에 아이슬란드는 GDP의 250%가 넘는 외채를 빌려다 쓰고 있었다.
아이슬란드의 GDP 대비 총부채비율은 2000년에 289%로 높은 편이긴 했지만 그럭저럭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금융 허브전략을 쓰기 시작하면서 2008년에 총부채비율이 무려 1,189%까지 치솟아 올랐다. 이는 미국의 주택 버블이 터지기 직전 총부채비율 350%의 세 배에 이르는 수치였다.
이즈음, 얼마든지 쉽게 빌릴 수 있을 것처럼 보였던 국외 자금이 갑자기 말라붙기 시작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자, 신용경색을 우려한 국외 은행들이 돈을 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의 돈으로 잔치를 벌이던 아이슬란드 경제는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2002년 민영화됐던 아이슬란드 3대 은행이 모두 파산했다. 이 은행들이 진 빚이 1,000억 달러가 넘었다. 아이슬란드 사람이라면 갓난아이까지 한 명당 33만 달러의 빚을 지게 된 셈이었다.
결국 은행을 민영화한 것부터 일이 잘못되기 시작했다고 시인한 아이슬란드 정부는 다시 3대 은행을 국유화하고 은행에 대한 건전성 규제를 강화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아이슬란드의 경제 추락을 막지는 못했다. 이듬해 1월 아이슬란드의 물가 상승률은 19%로 치솟았고, GDP는 -7%를 기록했다. 많은 아이슬란드 국민이 직장을 잃었다.
p.108~109
미국의 높은 금융 산업 생산성은 결코 부러워하기만 할 대상이 아니다. 그 높은 금융 생산성 뒤에는 국가 경제 시스템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임계상태에 빠뜨리는 심각한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첨단 금융 상품인 '크레딧 디폴트 스왑Credit Default Swap, CDS'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미국 금융회사들에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것 중의 하나다. 이 혁신적인 금융 상품을 처음 개발하게 된 계기는 역사상 최악의 환경재앙으로 불리는 알래스카 환경오염 사태였다.
1994년, 미국의 투자은행인 JP모건은 자신의 최대 고객인 석유 재벌 엑손Exxon 때문에 큰 고민에 빠졌다. 1989년 엑손의 초대형 유조선 엑손 발데즈Exxon Valdez 호가 알래스카 앞바다에서 침몰한 이후, 엑손은 사고 해역의 환경을 복구하기 위해 최소 35억 달러를 투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고 이후에도 환경 피해에 대한 소송이 계속되면서 엑손은 얼마나 돈이 더 들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불안해진 엑손은 주거래은행이었던 JP모건에서 50억 달러의 돈을 언제든 인출할 수 있는 추가 신용을 확보하고자 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JP모건이라도 50억 달러의 추가 신용을 제공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50억 달러를 제공할 여력은 있었지만, 이를 모두 엑손에 제공하면 다른 사업에서 손을 모두 떼야 했다. 그렇다고 엑손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최고의 고객을 놓칠 우려가 있었다.
이때 JP모건이 개발한 상품이 바로 CDS였다. JP모건은 우선 엑손이 요구하는 대로 50억 달러의 신용을 제공했다. 그리고 엑손이 돈을 못 갚을 때를 대비해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이 대신 돈을 갚아주는 일종의 보험을 들었다. 그 보험 증서에 해당하는 상품이 바로 CDS였다.
EBRD는 세계 60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국제기구로 최고의 신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 EBRD가 빚보증을 한 셈이어서 JP모건이 엑손에 제공한 50억 달러는 떼일 위험이 전혀 없는 대출로 취급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JP모건은 엑손에 50억 달러의 신용을 제공한 뒤에도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다. 즉, JP모건은 오랜 고객을 잃지도 않고 새로운 사업도 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p.112
'첨단 금융기법이' 아무리 복잡한 수식을 사용해도 그 기본은 같다. 확률상 일어나기 어려운 일을 찾아내 그 일이 일어나지 않는 동안 돈을 버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확률상 드문 일이 실제로 발생해 파산 직전에 이르면, 국민의 세금으로 공적자금을 받고 보너스를 챙겨 떠나면 그만이다.
첨단 금융기법의 성격은 기본적으로는 도박과 같다. 만일 일이 터져서 문제가 생기면 그 손해는 그동안 번 돈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 다만, 도박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투자에 실패해 만약 손해를 보더라도 도박과는 달리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심지어 다 같이 손해를 보았을 때 국가가 세금으로 대신 갚아준다.
AIG의 경우 자신들이 자랑하는 '첨단 금융기법'으로 금융회사는 고작 수십억 달러를 벌었지만 미국 국민은 세금으로 AIG 대신 모두 1,8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200조 원을 갚아줘야 했다. 하지만 AIG 경영진 중에 피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국민이 대신 갚아준 돈으로 천문학적인 보너스를 챙겨갔다.
이 '첨단 금융기법'으로 돈을 버는 동안에는 금융회사의 생산성이 매우 높게 나타난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큰 위험을 떠안은 대가로 수수료를 챙기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이 때문에 공정하게 금융 생산성을 비교하려면 미국 금융회사에 투입된 공적자금을 빼고 계산해야 한다. 미국이 금융 산업에 투입한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빼면, 미국의 금융 생산성은 한국보다 훨씬 낮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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