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2~53
가장 큰 문제는 국가 재정이 위기 상황임에도 부유층에 만연한 탈세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 의사 중 약 3분의 2가 1년 소득을 1,700만 원 미만으로 신고하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소득이 1,700만 원이 안 되면 비과세대상이기 때문에, 결국 의사의 3분의 2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힘 있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정부에 압력을 행사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도 문제다. 그리스의 왜곡된 복지정책이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의 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은 21%로, 프랑스의 28%나 스웨덴의 27%, 덴마크의 26%에 비해 훨씬 낮은 편이다. 그런데 그나마 있는 복지정책의 혜택 대부분은 정치권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소수 이익집단에 편중되어 있다. 가장 강력한 압력단체는 바로 그리스 공무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복지와 표를 맞바꾸는 방식으로 세계에서 유례없는 황당한 연금혜택을 받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35년 근무한 공무원이 58세에 퇴직할 경우, 생애 월급의 96%를 매달 연금으로 받는다. 그리스에서 이런 수준의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행정직 공무원과 법조인, 교직원 등 정권과의 '표 거래'가 가능한 힘 있는 집단뿐이다.
이처럼 복지혜택이 특정 계층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스에서는 젊은 층이나 실업자에 대한 복지혜택이 매우 취약하다. 2008년 그리스 노동연구소INE-GSEE는 그리스 노동자 중 22%가 기초적인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복지정책에서 소외된 그리스의 젊은이들을 '700유로 세대'라고 부른다. 한국의 '88만 원 세대'처럼 한 달에 700유로를 받는 저임금.비정규직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부가 젊은 세대를 위한 복지와 일자리 창출정책에 실패하면서, 그리스 젊은이들은 미래를 향한 꿈과 희망도 잃어버렸다. 그 결과, 그리스의 출산율은 OECD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1.53명으로 떨어졌고, 젊은 층이 줄어들면서 그들이 부양해야 하는 노년층 비율이 많이 늘어났다. 이는 내수시장을 침체시키고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일으켜 그리스 경제를 크게 후퇴시켰다.
p.57~60
스페인의 경제 규모는 유로 지역의 12%에 이르는 만큼, 스페인이 위기에 빠진다면 유럽을 넘어 세계 경제 전체에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스페인 경제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부동산 거품이었다.
스페인 정부는 내 집 마련을 장려한다며 각종 세제혜택을 제공해왔다. 특히 장기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이자를 내면 그만큼 소득에서 세금을 공제해주었기 때문에, 빚을 내서 집을 사면 세금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스페인 정부가 집을 산 사람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한 셈이어서, 이 같은 정책이 주택에 대한 초과수요를 일으켰다.
여기에 1999년 유로화의 탄생은 스페인 집값을 더욱 극적으로 끌어올렸다. 스페인이 자국 통화인 페세타Peseta화를 사용할 때는, 국외자본이 스페인에 투자할 때의 환율 변동을 고려해야만 했다. 페세타화로 투자해 5%의 수익을 냈다고 해도 만일 페세타의 가치가 10% 떨어진다면 그만큼 손해를 보기 때문이었다. 비록 스페인의 경제 규모가 큰 편이라고 해도 그동안 잦은 경기 변동을 겪어왔던 만큼 스페인에 투자하는 것은 환율 변동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유로화를 채택한 이후 환율 변동에 대한 위험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 덕분에 스페인에는 엄청난 규모의 국외자금이 유입되었고, 투자가 늘어나 스페인의 경제성장률이 독일을 넘어서기 시작하자, 글로벌 투자자들은 더욱 스페인 투자에 몰두했다.
이처럼 국외자본이 쏟아져 들어오자 스페인의 은행 금리가 연 14%에서 4% 수준까지 극적으로 낮아졌고, 돈값이 싸지자 너도나도 돈을 빌려 집을 사들이면서 집값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유로화가 채택되기 전인 1998년, 1제곱미터에 1,000유로였던 스페인의 평균 집값이 금융위기아 오기 직전인 2007년에는 3,000유로 수준으로 급등했다. 평균 주택 가격이 9년 만에 세 배나 오르는, 세계적으로 가장 급격한 집값 상승이었다.
이렇게 집값이 오르자 너도나도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해마다 50만 채가 넘는 주택이 지어졌다.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국경을 넘어 퍼지면서, 영국과 독일 투자자들도 스페인 주택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같은 주택건설 광풍으로 1,600여만 가구에 불과했던 스페인에 2008년에는 2,200만 채가 넘는 주택이 들어섰다. 스페인의 주택 가운데 30%인 600여만 채는 유로화가 채택된 2000년 이후에 지어진 것이었다. 이처럼 건설경기가 호황을 보이면서 2007년 스페인의 GDP에서 건설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16%를 넘어섰고, 스페인의 근로자 10명 가운데 1명은 건설부문에서 일할 정도로 건설부문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다.
2008년까지만 해도 주택 건설 붐은 스페인 사람들을 모두 부자로 만들어줄 것처럼 보였다. 자산이 크게 늘자 스페인 사람들이 소비 지출을 늘리면서 내수시장이 큰 활황을 보였고, 그 결과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유럽 선진국으로서는 상당히 높은 편인 3%대의 성장률을 유지했다.
그러나 끝없이 계속될 것처럼 보였던 스페인의 부동산 축제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순간 바로 끝나버렸다. 2008년 12월을 기준으로 스페인의 미분양 주택이 61만 채를 넘었다. 도중에 짓다만 주택도 62만 채가 넘어 모두 120만 채가 넘는 주택이 주인을 찾지 못해쓴데, 이는 경제 규모와 인구가 스페인의 여섯 배가 넘는 미국 전체의 미분양 주택보다 더 많은 것이었다. 미분양 주택 중에는 스페인의 아름다운 해안선에 자리한 고급 주택들이 많았다. 대부분 영국과 독일의 부유한 투자자들에게 별장으로 팔려던 집이었다. 하지만 경기가 얼어붙고 집값이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국외 투자자들이 모두 떠나버리자, 해안선에 자리한 호화 주택들은 그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불편한 집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미분양 주택이 많이 늘어나자, 건설회사들이 차례로 무너졌다. 그 결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스페인에는 실업자가 200만 명 이상 늘어나, 2010년 실업률이 20%를 넘어섰다.
스페인의 위기는 금융부문까지 옮겨갔다. 스페인 사람들은 30년이 넘는 장기 대출을 통해 내 집 마련을 해왔다. 그런데 주택 가격이 추락하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돈을 못 갚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지방 저축은행의 부실 상황이 심각해졌다. 이에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되었지만 금융위기 확산을 차단하는 데는 실패했다.
스페인의 경제위기가 이제 대붕괴의 시작을 알리는 최후의 게임Endgame 단계를 앞두고 공공부채도 급증하고 있다. 스페인은 공공부채가 심각한 국가가 아니었다. 위기 직전인 2007년에 스페인의 공공부채는 GDP의 36%에 불과해, 65%인 독일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부실해진 금융기관에 공적자금 투입이 급증하고, 극심한 불황으로 세수마저 줄어들면서 2010년 공공부채가 63%로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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