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30~131
1998년, 롱텀캐피털 매니지먼트의 파산은 효율적 시장 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이 회사는 효율적 시장 가설에 기반을 둔 블랙숄스 모델Black & Scholes option pricing model로 노벨상을 받은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 마이런 숄스Myron Scholes 교수와 또 다른 노벨상 수사아인 하버드 대학교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 교수가 참여한 것으로 유명했다. 롱텀캐피털은 세계 여러 금융기관에서 돈을 모아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것으로 분석된 채권을 사고 반대로 고평가된 것으로 분석된 채권을 공매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이 같은 방식의 거래로 롱텀캐피털은 연 평균 40%가 넘는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들은 효율적 시장 가설에 따라 가격은 언제나 실제 가치를 반영하고 확률적으로 결정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확률적으로 움직이는 가격의 변동성은 안정적이어서, 정교한 수학 모델을 이용해 내재가치보다 고평가된 증권을 팔고 저평가된 증권을 매입하면 위험이 없는 차익거래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같은 믿음은 러시아의 단기채무 불이행 선언으로 한순간에 무너졌다.
효율적 시장 이론에 기반을 둔 롱텀캐피털의 수학적 분석으로는 러시아의 채무 불이행을 할 확률이 100만 년에 세 번 정도 일어날 매우 드문 일이어야 했다. 그러나 경제 이론과 달리 실제 경제에서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결국 믿었던 효율적 시장 이론에 배신을 당한 롱텀캐피털은 14조 달러, 우리 돈으로 1,600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손실을 보고 무너졌다.
p.136
시장원리가 작동하려면 주가가 오를 때 주식공급이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실제 주식시장에서는 주가가 오른다고 기업이 신주를 발행해 주식 공급을 늘리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섣불리 증자를 시도했다가 주가가 내려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신주공급이 제한된 상태에서 주가가 오르기 시작하면 주식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늘어난다. 결국 주가를 끌어올리는 강력한 소용돌이가 발생하는 내재적 주가 급등현상인 '자기강화적 자산부채 사이클Self-reinforcing asset-debt cycles'이 일어나는 것이다. 민스키는 이처럼 자산시장 내부에서 거품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는 데 성공했다.
자기강화적 자산부채 사이클에다 불안정한 신용창출 시스템이 가세하면 자산 가격 거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금융회사들은 고객들이 맡긴 돈을 운용해 수익을 내므로, 이 수익률이 높을수록 고객들이 맡기는 금액이 커져서 다른 금융회사와의 경쟁에서 이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더 위험한 대출에 더 오랜 기간 빌려줄수록 수익률은 올라가기 때문에, 경제가 좋으면 고위험 고수익 투자를 하는 금융회사들이 높은 성과를 내지만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위기에 가장 취약하다.
p.146~147
멕시코는 한국과 비슷한 국가주도 발전전략을 택해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이를 통해 1940년부터 1980년까지 40년 동안 평균 6.2%라는 놀라운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으며, 1975년 멕시코의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47위까지 치솟았다.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76위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한강의 기적에 못지않은 멕시코의 기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1976년 멕시코가 대규모 유전 개발에 성공하면서, 멕시코 경제의 놀라운 성장신화는 막을 내린다. 석유 수출로 외화가 넘쳐나자 멕시코는 흥청망청 돈을 쓰기 시작했고, 유전에서 나오는 원유만 믿고 엄청난 규모의 외채를 빌려 썼다. 더구나 멕시코 경제에 기적을 가져왔던 성장전략과 산업정책은 모두 사라졌다. 멕시코에서 제조업은 사라지고, 경제체제는 석유를 중심으로 한 1차 산업 위주로 재편됐다. 그 결과 1981년 멕시코 수출의 4분의 3이 석유가 될 정도로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다.
그런데 1980년대 초부터 국제 유가가 폭락하면서 석유에만 의존해왔던 멕시코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1981년 국제수지 적자폭이 GDP의 6.5%로 불어났다. 게다가 1980년대 들어 국제금리가 큰 폭으로 오르면서 멕시코가 외채를 갚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자, 달러에 대한 멕시코 페소 환율은 단 2년 만에 다섯 배가 올랐다. 당황한 멕시코 정부가 달러화를 풀어 페소화 환율 방어에 나섰지만 외환보유고만 축냈을 뿐이었다. 결국 외환보유고가 고갈된 멕시코는 1982년 채무지불 유예, 즉 모라토리엄Moratorium을 선언하고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IMF는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가로 멕시코에 긴축재정과 통화량 축소, 외국자본에 대한 규제 철폐를 주문했다. 한국의 외환위기 때와 똑같은 요구였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은 멕시코 경제를 회복시키기는 커녕, 가뜩이나 어려운 멕시코 경제를 더욱더 깊은 침체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p.153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는 자유주의 시장경제 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추진했던 중상주의 정책과 닮았다. 중상주의 시대, 유럽 국가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당시 화폐 역할을 했던 금과 은을 더 많이 축적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당시 유럽 국가들은 최대한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많이 하는 등 더 많은 금화를 벌어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p.153~154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당시 중상주의에 따른 이러한 정경유착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중상주의하에서는 부자와 권력자만 헤택을 볼 뿐이라며, 대상공인에 대한 배타적 특권을 철폐하고 중소상공인들이 대상공인들과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즉, 강자를 보호하고 약자를 탄압하는 당시 중상주의 정책 기조에 반발해 정부가 강자만 보호하려면 차라리 시장에 맡기라고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후대의 경제학자들은 애덤 스미스가 강조한 대상공인 보호정책에 대한 비판을 빼고, 시장에 맡기라는 내용만 강조해 애덤 스미스의 진의를 왜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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