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76
주식 투자와 같이 노동하지 않고 돈을 버는 경우에는, 일부 대주주를 제외하고 양도소득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는다. 또한 주로 부유층의 재테크 수단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즉시연금보험 같은 장기 저축성 보험에 가입한 경우에는 이자 소득이 아무리 높아도 세금 한푼 내지 않는다. 주로 자신의 노동력에 의지해 돈을 벌고 있는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은 투자로 돈을 버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만큼, 한국이 자본 이득에 대한 소득세를 제대로 매기지 않고 있는 것 또한 결국 부유층에 특혜를 주고 있는 셈이다.
이런 한국의 조세체계와 달리, 30개 OECD 회원국의 80%인 24개 나라가 전면적으로 주식 투자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매기고 있다. 자본소득세를 전혀 물리지 않는 나라는 멕시코와 그리스, 그리고 스위스 정도밖에 없다.
p.208~209
혁신과 창조적 파괴를 강조한 경제학자 슘페터Schumpeter는 일찍이 "경기 변동과 불황기가 역전의 시기"임을 강조했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근 교수도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나 경기 사이클의 발생이 후발 기업에 새로운 진입과 역전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호황기에는 기존의 승자가 더 팽창하는 시기여서 좀처럼 그 기술 격차를 줄일 수 없기에 후발 주자가 선발 주자를 따라잡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불황이나 경제위기는 후발 주자에게 놀라운 추격의 기회를 제공한다. 불황기에는 투입요소 가격이 내려가 신규 진입과 투자의 비용이 낮아지기 때문에 후발주자에게 추격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역전의 기회가 거저 오는 것은 아니다. 그 역전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더욱 치밀한 산업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
p.234~235
한국에서는 1990년대까지 가족과 기업이 사회보장제도의 역할을 대신했다. 기업에 취직하면 평생직장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직장을 잃는 경우도 드물었지만, 혹 직장을 잃더라도 한국 사회의 전통적 사회안전망인 대가족제가 있었기에 당장 극빈층으로 전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보장제도의 역할을 하던 가족과 기업의 역할이 사라져, 직장을 잃는 한순간에 극빈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의 실업 관련 사회보장이라고는 근로자 스스로 낸 돈을 돌려받는 실업급여가 거의 유일하다. 그나마도 실직자들의 구직활동을 지원하기에는 형편없는 수준이다. 실업급여로 받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이 직전 임금의 50%를 받는 것인데, 그나마 상한선을 하루 4만원으로 정해놓아 4인 가족이 먹고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게다가 실업급여를 받는 기간도 다른 OECD 국가보다 훨씬 짧고, 그 요건 또한 너무 까다롭다.
실업급여란 근로자와 사용자가 낸 고용보험료를 모아 두었다가 직장을 잃은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제도다. 따라서 실업급여의 주인은 고용보험료를 낸 일반 근로자와 사용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고용보험기금 운영에서 정작 기금을 낸 근로자들이 실질적으로 배제돼 있다. 고용보험기금 지출을 결정하는 고용보험위원회 위원들 가운데 근로자들의 비중은 고작 25%밖에 안 된다. 나머지 위원들은 사용자가 25%, 그리고 정부와 정부가 추천한 공익위원 50%로 구성돼있다. 결국 위원의 50%를 장악한 정부의 마음대로 고용보험기금을 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고용보험기금을 마치 자신의 쌈짓돈처럼 엉뚱한 곳에 쓰는 경우도 많았다. 정부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호화로운 직업 체험관을 짓는다며 고용보험기금에서 2,000억 원을 꺼내썼다. 또 전국에 고용지원센터를 만든다며 5,500억 원을 동원했다.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그들이 땀 흘려 일한 돈으로 모은 고용보험기금을 정부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꺼내쓴 것이다. 더구나 복지 예산으로 충당해야 할 육아휴직 수당까지 고용보험기금 실업급여 계정에서 가져다 썼다.
이렇게 정부가 실업급여 계정에서 전용한 돈이 2002년 이후 총 1조 7,000억 원이 넘었다. 근로자들이 직장을 잃을 때를 대비해야 할 실업급여기금으로 정부가 생색을 낸 것이다. 이 같은 정부의 예산 전용과 글로벌 경제위기로 2006년 5조 원이 넘었던 실업급여 적립금이 2012년 1조 원대로 줄어들어 이제 고갈 위기에 놓여 있다. 정부가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서 국가 예산을 써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근로자들이 적립한 돈을 빼낸 것이다. 이는 정부가 얼마나 사회안전망 구축에 무관심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p.238~239
카드와 크루거는 자신들의 결론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 뒤 이들의 결론을 보강하는 새로운 연구들이 속속 등장했다. 특히 론 베이먼Ron Baiman 등이 주도한 일리노이 대학교University of Illinois와 시카고 대학교The University of Chicago의 공동 연구는 최저 임금이 오르면 미숙련 노동자가 쫓겨나고 숙련 노동자만 고용될 것이라는 경제학 이론도 사실과 다름을 밝혔다. 또한 최저임금을 올린 미국의 11개 주와 워싱턴 DC의 기업 경쟁력을 조사한 결과, 최저임금이 높은 주의 기업들이 최저임금이 낮은 주의 기업보다 경쟁력 측면에서 밀리지 않음을 확인했다. 주로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패스트푸드 업계나 마트 등의 소매업계는 다른 주와 경쟁을 하지 않았다. 이에 반해 다른 주나 국외 업체와 경쟁해야 하는 제조업 종사자들의 임금은 이미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에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그 뒤에도 쉐퍼와 니슨Shaefer and Nissen, 울프슨Wolfson 등 많은 경제학자의 연구를 통해, 최저임금이 고용을 줄이거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기존 경제학의 이론은 신화에 불과했음이 실증적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프리드먼의 신봉자인 벤 버냉키 FRB의장조차 플로리다 주의 한 하원의원에게 보낸 문서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줄인다는 주장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언급할 정도로 최저임금에 대한 그릇된 신화는 이미 깨진 상태다.
p.244~245
미국의 교육운동가인 루비 K. 페인Ruby K.Payne 교수는 자신의 저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A Framework for Understanding Poverty]에서 빈곤층과 부유층을 구분하는 것은 단지 돈뿐만이 아니라 말과 생각이라고 했다. 특정 계층 안에서만 적용되는 암묵적인 신호와 불문율이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식사를 잘 마친 다음 상대방에게 묻는 말이 사회 계층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빈곤층은 '배부르게' 먹었는지를 묻는 반면에 중산층은 '맛있게' 먹었는지를 묻고, 부유층은 음식이 '멋있게' 차려졌는지 또는 분위기가 좋았는지를 물어본다고 한다. 계층에 따라 옷을 고르는 기준도 달라서, 빈곤층은 '나를 표현하는 개인의 스타일'이 중요하지만, 중산층은 '품질과 브랜드'를 따지고 부유층은 '예술성'을 중시해 디자이너를 먼저 살핀다고 한다. 이렇게 빈곤층과 중산층, 그리고 부유층의 생각과 말이 은연중에 서로 달라질 만큼 미국에서는 계층의 차이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아메리칸 대학교American University의 톰 헤르츠Tom Hertz 교수는 미국 내 계층 간 이동성의 변화를 연구하기 위해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 조사했다. 헤르츠 교수는 1968년 미국에서 태어난 어린이 4,000명의 부모 수입을 파악해 둔 다음, 이 어린이들이 성인이 된 1995년부터 4년마다 한 번씩 소득을 비교분석했다.
그 결과, 하위 20%의 빈곤층 가정에서 태어난 어린이가 커서 상위 5% 부유층에 진입할 수 있는 확률은 1.1%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어린이들이 상류층에 들어갈 확률은 1.8%로 빈곤층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상위 20% 안에 드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어린이는 부유층이 될 확률이 22%나 됐다. 하위 20%의 빈곤층에서 태어난 어린이의 절반에 가까운 42%는 성인이 됐을 때 부모처럼 다시 빈곤층이 됐다. 부모와 부와 가난이 자녀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다. 기회의 나라로 생각했던 미국에서도 이제 더는 성공에 대한 희망을 품기 어렵게 됐다.
p.249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강신욱 연구위원이 1990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인의 소득 이동성을 조사하기 위해, 2인 이상 도시근로자 가구를 시장 소득 기준으로 10분위로 나눈 다음, 다음 해 소득이 얼마나 변했는가를 살펴봤다. 그 결과 소득이 2단계 이상 변한 가구가 1991년 30.6%를 기록한 이후 계속 줄어들어, 2007년에는 처음으로 20% 아래로 떨어졌고 2008년에는 17.8%를 기록했다. 특히 빈곤층이 더 잘 사는 길은 점점 더 봉쇄된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부터 1997년까지 빈곤층이 더 잘 사는 계층으로 올라간 경우는 43.6%나 되었지만,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빈곤에서 탈출한 사람은 고작 31.1%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동안 상위층이었던 사람이 중위나 하위 계층으로 하락한 경우의 비율도 26%에서 21.9%로 줄어들었다.
p.266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 나라들은 예외 없이 심각한 금융위기를 겪었다는 점이다. 스페인은 2005년 생산가능인구의 비중이 68.7%로 최고점에 이른 이후 2008년 부동산 거품이 붕괴했고, 미국도 2005년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69.7%로 최고점을 기록한 이후 2008년 주택시장 거품이 붕괴했다. 아일랜드 또한 2005년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68.4%로 최고점을 기록한 이후 2009년 금융위기를 맞았다. 선진국 중에서 가장 먼저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줄어든 일본도 1990년 69.7%를 기록한 것과 동시에, 주택시장 거품이 붕괴하면서 장기 침체를 겪고 있다.
이처럼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들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자산 가격이 계속 하락하는 현상을 보였다. 한때 38,915포인트까지 올랐던 일본 닛케이 지수는 1990년 이후 추세적인 하락세를 보이면서, 2012년 상반기에 8,000포인트 대까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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