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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015년 빚더미가 몰려온다(5)

by Diligejy 2015. 11. 30.

p.114~115

19세기 영국은 강력한 제조업 기반이 있었다. 1860년,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20%를 유럽 서쪽의 작은 섬나라인 영국이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제조업 생산 역량은 영국을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1870년, 영국은 세계 제조업 무역량의 절반에 가까운 46%를 차지할 정도에 이르렀다.

 

그런데 무역 거래는 계약이 이뤄지고 물건을 인도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데다, 이동 거리도 멀어서 그에 따른 위험성도 매우 크다. 이 같은 무역 거래의 특성을 보완하기 위해 영국에서는 일찍부터 금융 산업이 발달했다.

 

우선 무역을 하는 데는 거래 상대의 신뢰도가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신용을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이 발달했다. 또 무역 게약에서 인도까지 오랜 시간이 거릴는 만큼 신용 거래를 돕는 금융 산업이 크게 성장햇고, 운송 과정에서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보험 산업도 발전했다. 이처럼 19세기 영국이 금융 산업에서 세계 최고의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튼튼한 제조업 기반과 세계 무역 중심지의 지위 덕분이었다. 영국은 금융 산업을 의도적으로 육성한 것이 아니라, 무역의 발달이 영국을 자연스럽게 금융 강국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이 같은 영국의 지위는 크게 위협받았다. 세계 경제의 중심이 미국으로 넘어간 데다 미 달러화가 세계 무역의 기축통화가 됐기 때문이다. 결국 영국의 금융 산업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미국과 소련이 본격적인 냉전에 들어가면서 영국 금융 산업은 다시 한 번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게 됐다.

 

1940년대 말, 소련은 상당한 규모의 달러 표시 자산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냉전이 본격화되자 소련은 달러 표시 자산을 미국 은행에 맡겨두는 것이 몹시 불안했다. 미.소 관계가 악화될 경우 예금이 동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 소련이 미국 대신 찾아낸 대안이 바로 런던의 은행이었다. 소련은 미국 대신 런던에 있는 은행에 자신들이 보유한 달러를 맡기기 시작했다. 당시 소련이 맡긴 돈은 40억 달러 정도에 불과했지만, 이 돈이 씨앗이 돼 런던에 유로 달러 시장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금융시장이 탄생했다.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중동에 달러가 넘쳐나자 중동 산유국들은 런던에 있는 금융회사에 달러를 맡기기 시작했다. 이들 역시 미국에 달러를 예치하면 예금이 동결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미국 은행 대신 런던을 택한 것이다. 이렇게 유로 달러 시장이 성장하면서 런던은 다시 금융 중심지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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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증시는 외국 증권사에 완전히 개방됐고 은행과 증권, 보험의 영업 장벽이 무너졌다. 이에 따라 다양한 업종의 금융 자회사를 거느린 거대 금융그룹이 등장해 무한 경쟁을 시작했다. 그 결과, 빅뱅 이후 영국의 10대 증권사 가운데 8개가 파산하거나 미국 또는 다른 유럽게 금융자본에 흡수 합병됐다. 런던에서 영국 국적의 금융회사가 사라진 대신, 외국계 금융회사가 자본시장을 지배하는 이른바 '윔블던Wimbledon현상'이 나타났다. 윔블던현상이란 윔블던 대회를 준비하는 것은 영국이지만 영국 선수가 아닌 외국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처럼, 런던의 금융회사가 대부분 외국인에게 넘어간 상태를 말한다.

 

금융 산업에 온갖 특혜가 주어졌던 1980년대 영국의 성장률은 1970년대보다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 성장은 금융 산업에만 국한된 것이었다. 금융을 제외한 다른 산업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영국 경제를 지탱해오던 제조업의 성적은 최악이었다.

영국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70년대 30%에서 현재 10% 수준으로 추락했다. 1970년에는 전체 고용인구의 35%가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었지만, 이제 영국에서 제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10%정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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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보수당이 급격한 금융화를 추구했던 1979년부터 1992년까지 영국 상위 10% 부자들의 소득은 61% 늘었지만, 하위 10%의 소득은 오히려 18% 줄었다.

 

더구나 금융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영국의 경제구조는 금융위기에 더욱 취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1년까지, 영국 중앙은행은 부실 은행들을 살리기 위해 2,750억 파운드를 쏟아부었다. 한국 정부 한 해 예산의 1.5배에 이르는 돈이었다. 또 영국 정부는 RBS Royal Bank of Scotland와 로이즈 은행Lloyds TSB등 부실 은행을 살리기 위해 370억 파운드의 혈세를 투입했다. 금융 강국이 오히려 금융위기에 더욱 취약했던 것이다.

 

혈세가 투입된 부실 은행들은 살아났지만, 그 대신 금융위기의 피해가 고스란히 영국 국민에게 전가됐다. 영국 은행을 살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본 영국 정부가 다른 지출을 일제히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의 대학 등록금이 하루아침에 세 배로 폭등했다. 육아 보육에 대한 재정지원은 대폭 삭감되었고, 예산 감축을 이유로 공무원 5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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