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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2)

by Diligejy 2016. 7. 20.

p.58

가장 현명한 형태의 사회 교육조차도 보다 직접적이고 (인간적으로) 친밀한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발전시킨 자애심만큼 관대한 자애심을 개발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은, 윤리적 태도가 사회 전문가들이 일반적으로 가정하는 것보다 더욱 인격적이고 친밀하고 유기적인 접촉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윤리적 태도가 인격적 접촉과 직접적 관계에 의존해 있다는 사실은 한 문명의 도덕적 혼란을 야기시킨 원인이다. 왜냐하면 이 문명- 서구 문명을 말한다- 에서는 삶과 삶이 유기적이지 못하고 기계적인 관계에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상호 간의 책임은 많아졌으나 인격적 접촉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p.60

이성적인 인간은 다른 사람의 요구를 인정하고 또 인간의 전체 충동을 위하여 현실적인 조화를 이룩할 필요성을 수긍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성은 개인의 내면적 질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질서에 대해서도 기여할 수 있다.


이성의 힘이 정의에 기여하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사실 때문이다. 첫째는 이성이 사회적 조화를 위해 개인의 욕망에 내적 제한을 가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성이 전체 공동체의 지성적 전망에서 개인의 요구와 주장을 심판하는 것이다.


p.61~62

이성은 불의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사회 내에서의 자신의 권리를 더욱 뚜렷이 의식하게 하며, 더욱 강력하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 결과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은 합리적 정의보다는 정치적 정의에 기여한다. 그러나 덜 친밀한 인간 관계에서의 모든 정의는 합리적인 동시에 정치적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갈등하는 권리들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 및 조정에 의해서, 그리고 동시에 힘에 대한 힘의 주장에 의해서 확립된다.


p.63

'자유방임주의(laissez faire)'가 산업 시대에 유지되는 까닭은 사람들이 전체의 복지는 경제 활동에 가능한 한 최소의 정치적 제약을 가해야만 더욱 개선될 수 있다는 무지한 신념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백 년 간의 역사는 바로 이 이론이 반박되는 역사이다. 하지만 특히 미국처럼 정치적으로 무능한 나라들에서는 이런 이론과 신념이 계속 유지되고 있거나 사멸해가고 있다. 이런 가식적인 이론이 계속 지탱되는 이유는, 그 이론을 현대 산업 생활에 적용함으로써 생겨나는 불의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무지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비참한 생활이 사회적 무정부 상태 및 이 이론이 옹호하는 정치적 무책임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의 무지는 현대의 무정부적 산업 체제의 수익자들이 기울어져가는 자유방임주의의 명성을 파렴치하게 이용하도록 해준다.


p.64

경제적 권력이 독립하기를 원할 경우, 자유방임주의 사회철학을 이용하여 경제적 자유에 대한 정치적 제약을 패퇴시킨다. 경제적 권력이 노예 계층의 반란과 불만을 무마하기 위하여 국가의 경찰력을 사용해야 할 경우, 평화가 자유보다 더 귀중하고, 자신의 유일한 희망은 사회 평화라고 주장하며 정치적 강제력의 사용과 그에 따른 자유의 억압을 정당화한다.


p.66~67

스펜서나 웨스터마크와 같은 사회학적 자연주의자들(sociological naturalists)의 이론에 따르면, 보다 포괄적인 이성의 목적들을 지지하는 양심의 소리는 사실상 집단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며, 도덕적 의무감은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외적 압력의 표현일 뿐이다.


p.67

대부분의 도덕적 판단이 갖는 사회적 성격과 개인에 대한 사회의 압력은 둘 다 충분하게 숙고되어야 할 사실들이다. 하지만 둘 중 그 어느 것도 흔히 양심이라고 불리는 도덕 생활의 독특한 현상을 제대로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p.68

도덕 의식은 개인이 어떠한 선악의 판단을 내리든지 간에 그 판단에 따라 행위할 것을 요구하는 행위의 원리(principle of action)이다. 그것은 생의 총체적이고 생동적인 성격과 동일시될 수 없으며, 또한 개인이 그 집단의 거부나 처벌을 두려워하는 것과도 구별된다.


p.70~71

양심은 인간 생활의 도덕적 자원이다. 하지만 그것은 의무감의 개발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려는 도덕가들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강하지 않다. 양심은 그 자체를 개인 욕망의 전체적인 힘과 대립할 때보다는 한 충동이 다른 충동에 맞설 때에 더욱더 큰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양심은 자연의 여러 힘들에 의해 규정된 목표를 넘어서서 충동을 이끌 때보다는, 예를 들어 가정 생활과 관련된 충동들같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충동들을 공고히 하고 안정시킬 때 더욱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p.72~73

도덕에 있어서 이성의 한계를 분석할 때에는 이기적인 충동의 힘이 가장 신랄한 심리분석가들과 가장 엄밀한 심리학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이기적 충동이 더욱 저급한 혹은 더욱 명백한 수준에서 꺾이게 되면, 스스로를 보다 은밀하고 정교한 형태로 표현할 것이다. 이기적 충동이 사회적 충동에 의해 꺾이게 되면, 그것은 사회적 충동 속으로 흡수되어 한 인간이 자신의 공동체에 바치는 헌신성은 이타주의의 표현임과 동시에 변형된 이기주의의 표현이 된다. 이성은 이기심을 사회적 충동 전체와 조화시키기 위하여 그것을 억제할지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 같은 이성의 힘은 동시에 개인의 이기주의를 생동적인 능력들의 전체속에 있는 한 정당한 요소로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왜냐하면 사회는 그같이 생생한 능력들을 서로 조화시키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p.73

19세기의 공리주의 운동은 이기적 충동을 가장 포괄적인 사회적 목적들로 전환시킴으로써 이기적 충동과 사회적 충동 간의 훌륭한 조화를 이루어내도록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칭찬할 만한 이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신흥 중산층에게 그들의 이해 관계를 추구할 수 있는 훌륭한 도덕적 정당화를 제공했을 뿐이라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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