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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금방 읽히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배운 점이 많은 책이다.
우선 가치투자가 무엇이냐 라는 정의를 이 정도로 명쾌하게 내린 책이 있을까 싶다. 물론 대가들이 수없이 말씀하셨을 수도 있지만, 그 동안 대가들이 적절히 말씀하신걸 무 자르듯이 딱 내리쳐서 가치투자는 '시장의 실수를 찾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시원하기 그지 없다. 물론 이렇게 단순한 말이 어렵다는 건 별개의 이야기다.
투자 서적을 읽다보면 흔히 패배주의와 자만심에 빠지기 쉬운데, 이 책은 그런 극단의 영역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는지 가르쳐주고 계속해서 극단의 영역을 가더라도 다른 극단을 생각해보고 중심을 잡아볼 것을 제안한다. 그래야만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사고를 다듬으며 이를 바탕으로 가치를 측정하고 시장의 실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실수를 발견한다는 건 굉장히 추상적인 개념인데, 결국 주식 주문창에서 나오는 차트 그 속에 있는 상대방이 시장이다. 내가 매수를 한다는 건 상대방이 매도하는 실수를 범한다는 뜻이고, 내가 매도를 한다는 건 상대방은 매수하는 실수를 범한다는 뜻이다. 지난번에 읽었던 '주식 투자의 지혜'에서도 상대방이 있다는 개념을 강조했는데, 이 책에서도 이 개념을 강조하기에 뭔가 느낌이 새로웠다. 어쩌면 당연한 건데, 마치 그레이엄이 주창한 주식을 산다는 건 종목을 사는게 아니라 기업의 소유권을 구매하는 것이라는 개념이 당연하면서도 새롭듯, 이 개념 또한 당연하면서도 새로웠다.
다만, 이 개념을 자신의 투자 아이디어의 논리를 점검하고 적절한 포지션을 잡는데 사용해야지, 마치 상대방과 온라인 게임한다고 생각하듯 하면 온갖 마찰비용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결국 증권사만 덕을 본다는 얘기도 빼먹어선 안될 것이다.
책 속에서 이런 시장 속에서 실수를 찾는 방법에 대한 소개를 여러가지 해주고 있는데, 정말 중요한 건 자신이 시장의 실수를 발견하는 방법을 어떤 걸 사용하는지가 아니다.
'왜' 그걸 사용하는지 알고 자신이 '무엇을' 사용하는지 알고 '확률'을 대략적으로 추정해보는 것이다. DCF를 사용하든 PER을 사용하든 퀀트를 사용하든 HFT를 사용하든 무엇이든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내가 축구선수라면 축구장에 가야 유리한 게임을 할 수 있다. 축구선수가 야구장에 가면 물론 운동을 했기에 일반인보다는 유리하겠지만, 프로 선수들 게임에는 낄 수 없다. 반대로 야구선수는 축구 프로게임에 낄 수 없다.
'위험'을 정의할 때 변동성으로 정의할 수도 있지만, 가치투자 진영에서 정의하듯 '영구적 자산 손실 발생 가능성'으로 정의할 수도 있을텐데, 영구적 자산 손실 가능성을 높이는 행위가 어느 필드에서 뛰는지 정확히 모르고 그저 막 달려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통해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기법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느 방향으로 뛰고 있는지 정확히 확인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밑줄긋기
p.5
금융은 불확실성을 토대로 성장한 산업이다. 멀리 무역을 하러 떠나는 배가 어떤 모양으로 돌아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지분을 잘게 쪼개어 리스크를 분산한 것이 주식이다. 돈을 빌려주고 못 돌려받을 가능성을 수치화한 것이 금리다. 주식, 채권, 보험 등 금융상품은 모두 미래의 불확실성을 전제로 존재하는 상품이다.
해방 이래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걸어온 길을 밟아오며 빠르게 성장했다. 소위 '정답지'가 있는 길을 걸어왔다. 누가 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이 악물고 한 걸음이라도 더 디디느냐의 싸움을 해왔고, 승리했다. 승리의 과실은 달콤하지만, 달콤함은 자만을 낳는다. 우리는 정답을 원하는 사고,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하다. 열심히 할 각오가 되어 있고 열정이 넘치는 사람일수록 이 함정에 빠지기 쉽다.
누군가 좋은 성과를 냈다고 하면 우르르 쫓아가서 그걸 따라 하고, 본인들의 그런 행위 때문에 가격이 상승한 것인데도 '철학' 혹은 '기법'의 승리인 줄 착각하고는 '열심히' '더 노력'한다. 그들 앞에서 '자기실현적 예언'같은 이야기는 상아탑의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릴 뿐이다.
p.6-7
행동경제학에는 '기저율 무시 편향'이라는 게 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평균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 어떤 성과를 낼 것인지를 먼저 파악하고 그걸 기준으로 자신의 성과를 가늠해야 하는데, 보통은 그 과정을 생략하고 그저 무작정 좋은 성과를 기대하고 일에 뛰어든다.
투자를 시작할 때는 반드시 기저율을 체크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난이도'를 알고 뛰어들어야 한다. 기저율이 낮은 게임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하고 잘하더라도 부질없는 성과를 낼 수 있다. 한국에는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라"라는 훌륭한 속담이 있다. '누울 자리'만 잘 골라도 평온한 잠자리를 가질 수 있는데 그 과정을 생략하고 굳이 가시밭길에 잠자리를 펴는 투자자가 부지기수다.
p.21-22
월가의 날고 기는 트레이더나 투자자도 단일 매매에서의 승률이 60%에 미치지 못한다. 주식 투자는 절대적인 수익률을 기준으로 보면 포지티브섬 게임이지만 시장 평균 수익률을 기준으로 보면 명백한 제로섬 게임이다. 시장 평균 수익률이 10%인데 내가 12%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 2%에 해당하는 수익률을 시장 평균보다 낮게 내야 한다. 그것이 평균의 정의다. 여기에 증권사 수수료를 추가하면 시장 평균 기준 네거티브섬 게임이 된다.
따라서 투자자는 자신의 모든 행동에 대해 정확히 반대로 행동하는 개인이나 기관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 중에 누가 옳고 그른지는 누가 더 많은 정보, 더 깊은 분석, 더 탄탄한 논리를 가지고 있느냐에 달렸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주식시장은 이렇듯 치열한 전쟁터다. 그런데도 지인이나 유튜버가 추천한 종목, 마음에 드는 CEO가 있는 종목, 차트가 특정 모양을 보이는 종목이라는 이유 정도로 매매에 임한다면 과연 초과수익을 낼 수 있을까? 다른 누군가는 일주일 간 회사의 재무제표를 살피면서 현금흐름할인모형(DCF)을 짜고, 공시 자료를 뒤지며, 임상 결과 논문과 특허를 찾아 분석할 것이다. 초과수익은 그들의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p.42
비효율성의 첫 번째 특징은 누구나가 그것을 일정 수준 이용하면 사라진다는 것이다. 비효율성을 해결해서 효율적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부가 창출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특징은 실력이 있어야 비효율성을 찾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물론 실력이 좋다 할지라도 평생 비효율성을 찾지 못할 수도 있고, 실력이 없는데도 운 좋게 비효율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실력을 갈고닦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p.42-43
재테크 관련 부자되는 방법이라며 광고하는 미디어를 접한다면 잘 판단해야 한다. 강사나 저자나 실력을 높이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인지, 아니면 본인이 이용할 만큼 이용해 단물이 빠지고 있는 비효율성을 가르치는 것인지 말이다. 애초에 비효율성이란 다른 사람이 다 알게되면 경쟁이 심화되면서 사라지고, 비효율적 시장은 효율적으로 변화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력을 키우는 방법론이 아닌 비효율성을 강의나 출판물 등의 형식으로 판매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 할 수 있다. 곧 사라질 비효율성을 배우는 데 돈과 시간을 쓰는 것은 전적으로 낭비다.
p.57
전업 투자에 필요한 시드머니는, 그것으로 벌 수 있는 자본 소득이 어림잡아 최소한 노동소득의 3배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만약 연봉 실수령액이 4,000만 원이고 꾸준히 낼 수 있는 투자 수익률이 8%라면 전업 투자에 필요한 시드머니는 5억 원이 아닌 15억 원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조금은 마음 편히 전업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p.76-77
매일 매매하는 단기 트레이딩이 아닌, 몇 년에 걸쳐 매매하는 중장기 투자를 여러 번 시행하려면 지나치게 긴 세월이 걸리지는 않을까? 옳은 이야기다. 그렇기에 중장기 투자에서 반복을 통해 확률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예측의 오차를 감안해 안전마진을 두어야 한다. 당연히 안전마진이 높을수록 많은 확률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지만, 그런 기회는 다른 시장 참여자에게도 쉽게 눈에 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시간 축으로 '여러 번의 횟수'를 통해 반복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간대에 '여러 개의 종목'을 담아 분산 투자를 함으로써 확률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라는 투자 격언이 있다. 분산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많은 거장이 분산 투자를 강조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결과적 승률을 이론적 승률에 수렴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무조건적으로 오르는 주식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오를 확률이 높은 주식'만 존재한다. 아무리 잘나가는 회사도 경제 위기나 생각지 못한 암초를 만나면 좌초될 수 있다. 따라서 현명한 중장기 투자자라면 자신이 가진 기업 분석에서의 확률적 우위가 확실하게 실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안전마진이 확보되는 종목을 여러 개 찾아 분산 투자를 할 것이다. 이처럼 자신이 어떤 투자, 어떤 트레이딩을 하든 확률적 우위의 개념은 반드시 가슴에 새기고 집착에 가깝게 간직해야 한다. 금융시장이라는 전장은 언제나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p.82-83
금융시장에서 예쁘게 직선으로 우상향하는 손익 그래프를 가진 상품은 예금뿐이다. 예금을 제외한 상품, 채권이나 주식을 비롯한 대부분의 금융상품에는 변동성이 존재한다. 변동성이 있는 상품에 투자하려면 확률적 우위뿐만 아니라 자기가 보유한 자금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매매 1회에 어느 정도의 자금을 투입해야 할까?
수학적인 방법을 찾는다면 다음과 같은 켈리 베팅 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
f* = p/a - q/b
f* : 베팅 금액의 비중
p: 이익이 날 확률
q: 손실이 날 확률
a: 손실 폭
b: 이익 폭
이익이 날 확률이 60%이고 손실 폭과 이익 폭이 동일한 매매라면 (0.6 / 1) - (0.4 / 1) = 0.2, 즉 매매 1회에 총자금의 20%를 투입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실전에서 이 방식을 적용하면 절대 안 된다. 켈리 베팅은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공식이지, 파산 확률을 최소화하기 위한 공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는 주식시장에서는 아무리 과거 데이터로 백테스팅을 하더라도 미래의 이익 손실 확률은 정확한 추정이 불가능하기에 p, q 같은 변수도 확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이 방식보다 훨씬 보수적인 기준으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일일이 계산하기 힘들다면, 그냥 어림 잡아서 1회 매매 혹은 한 개 종목 투자에 운용 자금의 5~10% 이상은 넣지 않는 것이 좋다.
p.85-88
투자에서 이 독립이라는 개념은 왜 중요할까? 1회 매매나 한 개 종목 투자에 5~10% 이상의 자금을 투입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는데, 이 원칙대로 1회 매매 때 전체 자금의 5%를 투입한다고 해보자. 이렇게 하면 누적으로 20회의 손실을 보지 않는 이상 파산할 일은 없다. 승률이 50%보다 높다면 벼락 맞을 만큼 운이 나쁘지 않고서는 파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서로 다른 매매에 자금을 분산했다 해도 진입 시점과 청산 시점만 조금 다를 뿐 동일한 매매 논리를 적용하거나 거의 동일한 시장 환경에서 이루어진 분산 투자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어느 중장기 투자자가 20개 항목에 분산 투자를 했는데, 20개 종목이 전부 반도체 관련 업종이라면 안심해도 좋을까? 또 페이스북과 스냅챗의 주가는 굉장히 비슷하게 움직인다. 금과 은의 가격도 마찬가지다. 서로 독립적이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분산을 했어도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는 상품군 내에서 분산했다면, 한 상품 가격이 하락할 경우 나머지 상품 가격도 모두 하락할 수 있다. 독립 시행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분산 투자의 효과를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앞에서 마팅게일 베팅 방식으로 카지노를 파산시키는 방법을 다룬 바 있다. 그렇다면 마팅게일 베팅이 좋은 방식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방식을 잘못 사용하면 독립 시행의 원칙을 부수는 오류로 이어진다. 앞에서 예시를 든 것은 단순히 자금력의 우위를 설명하기 위한 것일 뿐이며, 이기는 투자를 하기 위한 확률적 우위는 본질적으로 가져다주지 못한다. 즉, 음의 기댓값을 양으로 바꿀 수는 없다.
마팅게일 베팅 방식은 승률을 인위적으로 올리는 대신 이길 때의 이익 폭을 줄이고 질 때의 손실 폭을 늘릴 뿐이다. 예시에서 보았듯, 이길 때의 액수는 1로 한정되지만 질 때는 1,023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잃게 된다. 따라서 마팅게일 베팅 방식은 본질적인 기대 수익을 변화시키기보다는 수익 폭과 손실 폭의 비율을 조절할 뿐이다.
주식시장에서 수많은 사람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채 마팅게일 베팅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바로 '물타기'가 그것이다. 최초로 매수할 때나 물타기를 할 때나 논리 및 베팅 방향에 전혀 차이가 없다면 독립 시행이 전혀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10회 물타기를 했다고 해보자. 전혀 다른 10개의 종목에 각각 독립된 의사 결정을 통해 투자를 했다면 10회를 틀려야 파산하지만, 단일 종목에 동일한 논리를 가지고 10회 물타기를 했다면 그 논리가 한 번만 틀려도 파산할 수 있다.
손실을 내고 있는 종목을 추가 매수해 평단가를 내리면 당장은 안도감이 들고, 조금만 올라도 본전을 회복해서 이익으로 끝날 수 있다. 그래서 물타기가 좋은 방법인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를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물타기를 해도 계속해서 손실을 보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어 회생불가능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용이나 레버리지를 썼거나 선물을 통해 물타기를 했다면 금방 마진콜로 끝나버린다.
물론 물타기도 전략적으로 사용하면 충분히 합리적인 전략이다. 매수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에서 절제를 지키며 추가매수한다면, 손익비가 개선되는 효과와 함께 승률도 올라갈 수 있따. 또 트레이딩을 할 때 본인의 전략의 승률이 낮고 손실 폭보다 이익 폭이 많이 높은 편이라면 물타기를 전략의 일부로 반영해 조금 더 안정적인 자금 관리에 유용한 툴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물타기가 아닌,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물타기는 파산 확률을 비약적으로 높인다.
p.93-95
주식시장에서 하는 처신이 수신, 제가, 치업보다 훨씬 어려운 다른 이유가 있다. 실패나 패배를 그림자처럼 곁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실패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실패하면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떤 사람은 복이 많아서인지 개인, 가정, 직장에서 아무런 실패 없이 팔자 좋게 잘 살아가기도 한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저 사소한 일일 경우가 많다. 그런데 주식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패라는 필연적인 그림자와 공존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세상 그 어느 투자자도 100%의 승률을 가지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영역에서는 성공과 실패가 이분법적으로 나눠지지만, 시장에서는 성공 속에 언제나 실패가 혼재해 있다.
전설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도 3년 연속 손실을 본 적이 있다. 확률적 우위를 결과적 수익으로 가져가는 과정에서 트레이더나 투자자는 수없이 많은 손실을 경험한다. 주식시장은 식당 운영처럼 매출과 이익이 조금씩 쌓여가는 곳이 아니다. 이익과 손실의 무수한 변동 속에서 심리적 절제를 통해 수익을 쌓는 곳이다. 따라서 주식투자를 잘 하기 위해서는 실패나 패배를 잘 받아들여야 한다. 잃을 때 잘 잃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에서는 누구나 잃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실패나 패배를 잘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내 의지가 닿지 않는 세상을 인정하는 것, 때로는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무작위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장기적 관점을 갖는 것이다.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요인은 크게 추세와 무작위성으로 나눌 수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추세가 더 잘 보이고, 단기적으로 보면 무작위성이 더 잘 보인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시험 당일 컨디션에 따라서 결과가 엉망일 수 있다. 하지만 매사에 열심인 사람은 단기적으로 실패해도 장기적으로는 성공하게 된다.
주식시장에서 본질적인 가치가 좋은 종목에 투자하더라도 단기적 하락이 있을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이벤트가 터져 가치가 변하는 바람에 손실로 마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합리적인 투자를 반복하면 포트폴리오 수익은 누적으로 쌓여갈 수 있다. 단타 매매에서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된다.
이런 사실을 인지한 채, 부정적인 이벤트나 손실이 연이어 발생했을 때도 흔들림 없는 멘탈을 유지하고 확률적 우위가 있는 행동을 고수해나간다면 절제의 우위를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하루하루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나'라는 동전의 승률을 올리기 위해 매일 수신하며 자신을 갈고닦는다면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성공하기 마련이라 생각한다.
p.105-106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당신이 주식을 저평가된 상태로 사려면 다른 누군가가 그 주식을 저평가된 상태로 파는 실수를 해야 한다. 주식을 살 때 항상 자신에게 물어보자. 내가 사려는 주식을 상대는 왜 팔려는 것일까? 상대는 내가 가지지 못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초과수익, 초과손실을 내는 쪽은 누구일까? 나는 평균적인 투자자, 주식을 거래하는 평균 참여자 중에서 똑똑한 편일까?
p.106-108
한 번은 내가 어느 풋옵션을 매수하고 있었는데 골드만삭스 브로커가 내게 전화를 걸어 대량으로 매도하려 했던 적이 있다. '뭐지? 나는 옵션이 오를 것 같아서 사려고 했는데 이 녀석은 왜 팔려고 하지?'하는 생각으로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하다가 내 매매 논리의 허점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렇게 명백한 사실을 자각했다 해도 컴퓨터 앞에 앉으면 쉽게 잊고 마는 존재가 인간이다. 차트의 캔들스틱과 호가창에서 움직이는 숫자를 보면서 내 수익률과 자금을 가늠하노라면 마치 나 혼자 시장을 상대로 컴퓨터 게임을 하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내가 주식시장에서 하는 모든 행동과 정확히 반대로 하는 상대가 어딘가에는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으면 안 된다.
나와 상대 중 누가 옳은 선택을 하는지는 누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 누가 더 깊이 분석해 탄탄한 논리를 가지고 있느냐에 달렸다는 사실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 바보 같은 논리와 부족한 리서치로도 한두 판은 수익을 낼 수 있지만 그런 매매가 세 번, 네 번, 열 번, 스무 번 반복되면 어느새 증발하고 있는 본인의 계좌를 보게 될 것이다.
한편 이 책의 전반에 걸쳐서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그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양극단의 생각을 경계하길 바란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서 본인이 기관 투자가들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지레 겁을 먹고 투자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여러분이 시장에 나가 매매를 하면, 어떤 때는 뛰어난 헤지펀드매니저가 골드만삭스 브로커를 통해 낸 주문의 반대편에서 매매를 하게 될 수도 있지만, 또 어떤 때는 어젯밤 술자리에서 들은 루머로 매수 버튼을 누르는 이웃집 철수의 반대편에서 매매를 하게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매매를 반복하면서 맞닥뜨리는 상대는 '시장의 평균적인 참여자 수준'이다. 그리고 장담하건데 시장에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상위 0.01% 금융 엘리트들도 존재하지만, 평균적인 수준은 생각보다 훨씬 더 낮다.
p.121-122
주가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투자자가 추구하는 수익은 본질적으로 이 리스크 프리미엄이다. 중요한 점은, 주식시장 전체의 평균적인 위험에서 오는 합리적인 보상을 넘어서 더 높은 수익을 원하는 순간부터 그것은 더 이상 패시브 투자가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지수 추종 전략의 이점은 놓치면서 액티브 전략의 리스크까지 떠안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지수 추종 전략의 저변에 있는 투자철학은 무엇일까? 투자철학이란 '시장 참여자의 실수를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지수 추종 전략의 투자철학은 '시장 참여자의 실수를 찾아 초과수익을 내지 않고 리스크 프리미엄으로 만족하겠다'는 것이다. 실수를 찾지 않는 이유는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것이 가성비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자신보다 다른 시장 참여자의 실력이 좋다고 생각하거나 등등 다양할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초과수익을 노리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전략이 액티브 전략이 아닌 패시브 전략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p.127-129
패시브 ETF 시장이 커지면서 다양한 테마형 ETF가 부지기수로 상장되고 있다. 섹터나 테마형 ETF를 매수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지수 추종 전략과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으면서 테마나 섹터에 대한 본인의 관점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패시브 전략인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바라건데, 부디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우선 특정 섹터나 테마를 좇는다는 것 자체가 본인의 관점을 액티브하게 포트폴리오에 반영하는 것이다. 더 이상 리스크 프리미엄을 좇는 패시브 투자가 아니라 초과수익을 노리는 액티브 투자의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만약 이런 ETF를 매수하면서 본인은 패시브 투자를 하고 있다고 착각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위험하다. 그런데 만일 어떤 테마나 섹터에 대한 명확한 의견이 있고 액티브 투자를 하고 있다는 자각이 있다면 테마형 ETF에 투자하는 것은 합리적일까?
전혀 아니다. 어떤 테마나 섹터에 대한 명확한 의견이 있을 정도로 공부를 했다면, 차라리 개별 종목을 매수하기 바란다. 개별 종목은 적어도 재무제표를 들여다보고 분석할 수 있고 기대 수익률을 비롯한 각종 지표와 분석치를 계산해볼 수 있다. 그러나 테마형 ETF는 그 구성 종목들을 전부 개별 종목처럼 분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패시브 투자를 하려면 아예 시장 전체를 매수하고, 액티브 투자를 하려면 시간을 들여 개별 종목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지, 그 중간에서 모호한 행동을 하다가는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
그것을 떠나 테마형 ETF가 상장된다는 것은 애초에 무슨 의미일까? ETF 운용사는 어떤 테마에 대해 ETF를 출시할까? 당연히 현재 시장 참여자들이 관심 있어 하는 섹터나 테마에 대해서다. 따라서 출시 시점에는 이미 고평가되어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아니나 다를까, 자본시장연구원에서 2022녀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에서 상장된 테마형 ETF들의 출시 후 약 1년간의 성과를 추적해보니 벤치마크 주가지수를 약 5.7% 하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25%는 벤치마크를 고작 0.4%밖에 이기지 못했으나, 하위 25%는 벤치마크 대비 -18.3%로 성과가 매우 저조했다.
p.131
인덱스펀드의 성과는 상당히 우수하다. 실제로 여러 펀드와 장기 수익률을 비교한 자료들을 보면 인덱스펀드는 대부분의 통계에서 상위 20%에 든다. 그러나 거기서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 지수를 이기는 펀드는 몇 안 된다는 주장을 하거나, 개인 투자자는 액티브 투자로 초과수익을 노려볼 수 없다는 패배주의에 빠지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명심하라. 시장에서는 언제나 양극단의 주장을 경계해야 한다.
p.140-141
지수 추종 전략을 골자로 하되 이보다 조금 더 수익을 낼 방법은 없을까? 주 골자는 패시브하게 가져가되 살짝만 액티브한 요소를 가미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은 없을까? 테마형 ETF처럼 엉성한 방식 말고 합리적인 접근 방법 말이다.
이를 지수 대비 초과수익 추구(enhanced indexing)라 하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주가지수 ETF 대신 주가지수 선물 계약을 매수하는 것이다. 선물 계약의 경우 증거금만 예치하면 되므로 ETF와 똑같은 사이즈 대비 들어가는 현금이 훨씬 적다. 따라서 남은 현금을 안전한 채권에 투자해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는데, 이 때 선물 계약을 롤오버(만기 시 현금 지급 대신 채권을 발행해 만기를 늦추는 일)하는 비용이 채권 수익률보다 낮아야 한다.
p.145-146
나는 레버리지 ETF를 절대로 추천하지 않는다. 우선 레버리지를 쓰는 것은 공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개인 투자자가 3배 레버리지 ETF의 수수료를 'expense ratio'라고 적혀 있는 0.95%의 운용 수수료뿐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1배수의 돈으로 3배수 돈을 운용하는 효과를 내는데 이것이 공짜일 리가 없다. 레버리지 ETF도 엄연한 대출이다.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또 다른 3배 레버리지 ETF인 FNGU의 경우, 명목 운용 수수료 0.95%외에 미 연준 금리에 1%를 가산한 수준의 대출 이자가 붙는다. 1배수 돈을 넣고 3배수를 운용하려면 결국 2배수를 빌려야 하니 0.95% + (연준금리 + 1%) * 2가 된다. 대출 이자가 제로 금리 시기에는 미미했을지 모르나 2023년 1월 현재 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를 보면 이미 4%대에 와 있는데, 이를 앞의 식에 대입해보면 대출 이자는 무려 0.95 + (4 + 1) * 2 = 10.95%가 된다.
이런 식으로 투자할 바에는 차라리 그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아서 3배 자금으로 투자를 하는 것이 훨씬 낫다.
p.150-152
시장의 효율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강형, 준강형, 약형 등의 형태를 이야기하고, 시장이 효율적인가 효율적이지 않은가에 관해 갑론을박도 많지만 실전 투자에서 큰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시장은 그저 본질적으로 효율과 비효율 사이를 순환하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어느 바이오회사의 적정 가치가 100달러이고 주가도 같은 100달러라고 해보자. 즉 효율적으로 가격이 책정된 상태다. 만약 이 회사가 신약 개발에 성공해 적정 가치가 180달러로 뛴다면 효율적 시장에서는 주가도 바로 180달러에 수렴해야 한다. 그런데 그 수렴이 이루어지려면 누군가가 이 회사의 신약 개발 성공 사실을 알고 매수해주어야 한다. 가격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시장 참여자의 매매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 회사의 신약 개발 성공 사실을 먼저 알게 될까? 이 회사에 대해 리서치하고 뉴스를 찾아보는 사람일까, 아니면 시장이 효율적이라 믿고 지수 추종을 하는 사람일까? 역설적이게도 시장의 효율성을 믿지 않는 사람, 시장이 비효율적이기에 자신이 노력하면 초과수익을 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만이 정보를 적극적으로 얻고 분석을 해본 뒤 매수에 나선다.
아주 극단적인 가정인데, 주식시장의 모든 투자자가 시장이 완벽하게 효율적이라고 믿는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그 누구도 기업을 분석하거나 적정 가치를 계산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주가가 언제나 적정 가치에 수렴한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초과수익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 종목의 펀더멘털에 중요한 변화가 생겨 적정 가치가 상승하더라도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그 변화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리서치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 가격은 비효율적으로 저평가된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역설적이지 않은가!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을수록 시장에서 초과수익을 낼 여지를 주는 비효율성이 늘어나고, 시장이 비효율적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을수록 시장의 비효율성은 사라져 효율적이 된다. 즉 시장은 '효율성'과 '비효율성'으로 이분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둘 사이를 순환한다. 이를 한 문장으로 "시장의 효율성은 비효율성에 대한 믿음으로 완성된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패시브 투자를 선호하는 세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는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즉 이전보다 많은 비효율성이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p.166
가치투자를 하는 본질적인 목적은 시장의 실수를 찾는 것이다. 이를 세 번 되풀이하도록 하겠다. 가치투자의 본질은 시장의 실수를 찾는 것이다. 가치투자의 본질은 시장의 실수를 찾는 것이다. 가치투자의 본질은 시장의 실수를 찾는 것이다.
이토록 강조하는 것은 여러분이 이 책을 접고 시장으로 나가 투자할 때 꼭 기억해야 할 문구여서다. 가치투자의 본질은 시장의 실수를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장의 실수를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p.170
아이러니하게도 절대가치평가를 등한시하는 이들은 상대가치평가에 대한 이해도도 낮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주가매출액배수(Price-to-Sales Ratio, PSR)를 오남용하는 사례를 리포트에서 종종 보곤 한다. 상대가치평가에서 사용하는 배수는 투자자가 지불해야 할 가격을 기업의 재무 제표로 표준화한 값이다. PER의 경우 분자에 주식 가격이, 분모에 주당순이익(EPS)이 오는데, 분자든 분모든 주주 관점에서의 가격과 현금흐름에 관련된 지표이기에 일관성이 있는 배수다. 하지만 PSR의 경우 분자에는 주주가 지불하는 가격이 오고, 분모에는 주주뿐만 아니라 채권자에게도 가는 현금흐름이라 할 수 있는 매출액이 온다.
p.171-172
PSR은 주주에게 돌아가는 현금흐름과 관련된 주가를, 채권자 주주 모두를 포함한 기업 전체에 돌아가는 현금흐름과 관련된 매출액으로 나눈 배수다. 만약 매출액을 사용하겠다면 주가인 P보다는 기업 가치와 관련되는 '이자 및 법인세 비용 차감전 이익'인 EBIT를 사용해서 매출액 대비 EBIT 비율을 보아야 조금 더 일관성이 있다.
일관성이 부족한 배수인 PSR을 사용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매출액과 주가가 완전히 동일한 주식 A와 B가 있는데, 주식 A는 엄청난 고금리의 부채를 사용하고 있는 반면 주식 B는 부채가 없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사실상 주식 A의 주주에게는 돌아오는 순이익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PSR은 두 주식이 완전히 동일하게 나타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채 비율과 자본 구조가 크게 다른 기업 간에 PSR을 사용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물론 PSR을 아예 사용하지 말라는 극단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순이익이 마이너스인 적자 기업이나 초창기 기업의 경우, PSR이 얼마든지 유의미한 힌트를 가져다줄 수 있다. 그러나 배수의 일관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알고 사용하는 것과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 차이는 고스란히 투자 성과에 드러나게 된다.
p.173-174
미래의 주가를 예측하려면 적정 가치를 계산하기 위한 모든 입력값을 자신이 직접 가정해야 한다.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영역에서는 당연히 무리한 가정을 하게 된다. 이 제품은 매출액이 몇 퍼센트로 성장할 것이고, 그로 인해 시장 점유율은 몇 퍼센트가 될 것이고, 수익 마진은 지금 얼마지만 3년 후에는 얼마가 될 것이고... 미래의 주가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세세한 입력값에 전부 관여해 모든 것을 가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입력값에는 당연히 오차가 존재한다. 오차가 있는 가정에 오차가 있는 또다른 가정을 더해갈수록 그 오차 범위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반면 현재 주가에 포함된 실수를 찾기 위해 가치평가를 하는 경우는 어떨까? 이 경우는 우선 현재 주가가 왜 이 수준에서 형성되어 있는지부터 탐구한다. 주가를 구성하는 요소를 현금흐름할인모형을 통해 쭉 펼쳐서 살펴보면서 현재 주가가 내포하고 있는 여러 가정을 이해한다. 주가를 예측할 때는 미래 매출을 가정해야 하지만, 여기서는 현재 주가가 내포하고 있는 매출 성장률이 얼마인지를 가늠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현재 적혀 있는 답, 즉 시장 가격에 내재된 풀이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내 생각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게 확실한 확률적 우위가 있는 부분에 집중해서 실수를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요컨대 미래의 주가 예측이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풀이 과정을 쓰면서 답을 도출하는 것이라면, 시장의 실수 찾기는 남이 도출한 답의 풀이 과정을 보면서 틀린 것을 찾는 것이다.
p.176-178
가치평가에 이런 방식을 적용하면 어떨까? 우변에 시장 가격을 두고 좌변에 입력값을 구하려 하면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블랙-숄즈 모델에서는 변동성을 제외한 모든 입력값이 시장에서 직접 관측 가능한 변수다. 그러나 가치평가 모델에서는 관측 불가능한 변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다. 즉 x에 시장 가격을 넣고 관측 가능한 변수 a, b, c 값을 넣는다고 해도 d, e, f, g가 전부 가정을 통해 입력해야 하는 값이라면 이 식을 만족하는 d, e, f, g의 조합은 무한히 많을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시장 참여자가 생각하는 입력값의 조합일까?
이와 관련한 내용은 투자 입문서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기에 간략하게 소개할 텐데, 이해가 되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없는 사족이니 대충 훑어도 좋다. 우선 이 문제는 파라미터의 자유도(degrees of freedom)를 줄인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쉽게 말하자면 d, e, f, g 중에 넣을 수 있는 것을 넣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뜻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시장의 컨센서스를 유추하는 변수를 구하는 것이다. 시장의 컨센서스를 유추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애널리스트 추정치의 평균이나 중앙값을 사용하는 것이다.
미국 주식시장에는 IBES(Institutional Brokers' Estimate System)라는 데이터가 있다. 이는 여러 애널리스트의 전망을 정리해 둔 데이터베이스로 1976년부터 시장의 다양한 애널리스트, 브로커, 로컬 전문가의 주가 전망치를 수록하고 있다. 이 전망치에는 목표 주가뿐 아니라 매출, EPS, 순부채, 기업 가치, 순이익 등 다양한 세부 가정치도 포함되기 때문에 시장이 생각하는 컨센서스를 유추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다른 방법으로는 투자은행에서 기업 상장(IPO), 인수합병(M&A)을 다루는 뱅커나 펀더멘털 헤지펀드의 애널리스트가 가치평가를 할 때 사용하는 방법론을 참고하는 것이 있다. 항목의 성질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각 입력값의 추정 방식이 2~3개로 압축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어떤 재무제표 항목의 경우, '지난 5년 평균치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지난 5년 추세가 그대로 이어진다고 가정'하거나 둘 중 하나를 사용하는 것이 업계 관행이라고 해보자. 주로 적정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항목을 이렇게 추정하는데, 업계 관행이 곧 시장이 생각하는 컨센서스에 가깝다는 가정하에 입력값의 후보를 두 개로 압축해 파라미터의 자유도를 줄이면 된다.
p.178-179
또 한 가지 방법은 몬테카를로라는 시뮬레이션 방법론을 조금 변형해 역산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방식은 DCF 모델의 입력값들을 각각 확률 분포로 정의한 후 시뮬레이션을 통해 결괏값의 분포를 도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조금 변형해, 결괏값을 시장 가격으로 고정한 후 각 입력값을 순차적으로 추정해나갈 수 있다. 물론 이 방식은 전통적 방식의 시뮬레이션에 비해 입력값 간의 상관관계를 정의할 때의 난도가 훨씬 높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시장 가격에 내포된 가정값을 추정한다기보다는 시장 가격에 자신의 가정을 더한 채로 각 가정값을 추정한다는 한계가 있다. 또 가정값 파라미터의 자유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손실 함수를 별도로 정의하고 최적화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더해진다. 그렇기에 이 방법도 다른 방법들과 마찬가지로 완벽하지는 않다.
이쯤되면 독자는 왜 굳이 이런 복잡한 방법을 사용해서 시장에 내포한 가정값을 찾으려 노력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결국 절대가치평가에서 각 가정값을 추정해 적정 가격을 도출하는 전통적인 방식과, 가격을 시장 가격에 고정한 채 시장에 내포한 가정값을 찾으려 애쓰는 방식은 똑같은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전자의 경우에 비해서 후자의 방식을 사용하면 본인이 추정하는 값들과 관련한 레퍼런스 포인트를 더 잘 찾을 수 있다. 어떤 수학 문제가 주어졌을 때, 백지에서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가며 스스로 이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과, 반 친구들이 대체로 많이 적은 답이 무엇인지 아는 상황에서 왜 그런 답을 도출했는지 짚어보는 것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결국 투자의 세계에서 모든 방법론은 우열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일장과 일단이 있다. 어떤 도구든 간에 불확실한 정보를 토대로 결론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어떤 종목을 두고 다양한 방법론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면, 조금이라도 추정오차를 줄일 수 있게 된다.
p.180
절대가치평가를 여러 방식으로 행해보아야 하는 이유는 그 결과에 대한 추정 오차를 줄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가치평가를 하는 과정에서 내가 투자하려는 종목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터 린치는 사람들이 부동산 투자에서는 돈을 벌고 주식에서 돈을 잃는 이유는 간단하다고 말한다. 집을 고르는 데는 몇 개월을 들이지만 주식을 고르는 데는 몇 분만 들이기 때문이다. 앞에 언급한 방식들을 행하는 데는 최소한 몇 주, 길면 몇 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가치평가를 열심히 하고 시간을 쏟더라도 아마 여러분이 본인의 집을 구매할 때 들이는 시간에 비해서는 적으리라 생각한다.
p.182
가치평가도 결국 모델링이다. 따라서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된다. 설명하려는 현상이 단순한 경우, 예를 들어 역사가 고이장히 오래되고 꾸준히 일정한 배당을 하는 기업의 경우에는 추정해야 하는 재무적인 상태가 단순하다. 따라서 단순한 모델인 배당할인모델(Dividend Discount Model, DDM)이 적정 가치를 아주 정확하게 평가해준다. 그게 아닌 대다수의 일반적인 기업의 경우, 재무적인 복잡도가 DDM으로 모델링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높기 때문에 그보다 더 자유도가 높고 복잡한 모델을 사용해야 한다. 이때 어느 정도로 자유로운 모델이 적합한지는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와 데이터의 질과 양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미래 현금흐름에 대해 합리적인 추정을 할 수 있는 정보와 데이터가 충분히 주어지고 비즈니스 환경이 안정적이라면 당연히 현금흐름할인모형(DCF)이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인다. 하지만 그런 정보가 국한된 상황에서는 그보다 사용자가 입력해야 할 가정이 적은 상대가치평가 같은 모델이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다.
p.184-186
그러니 '상대가치평가가 더 나은 방법론이다, DCF는 이런저런 이유로 별로다'같은 논의들은 다 무의미한 이야기이며 주어진 정보와 데이터에 따라 적합한 모델이 다 다르다는 게 정답이다. 그런데 독자가 진지하게 가치투자를 하고 싶다면, 그 어떤 모델을 선호하든 DCF를 한 번은 꼭 공부할 것을 권장한다. DCF에 비해 자유도가 낮은 잔여이익모델(Residual Income Model, RIM)이나 상대가치평가, 또는 배당할인모델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모델이 자체적으로 하는 가정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오남용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상대가치평가의 경우, 시장이 평균적으로는 옳다는 가정이 깔려 있기 때문에 시장이 전반적으로 고평가되어 있거나 전반적으로 저평가되어 있으면, 상대가치평가로 내린 결론이 틀릴 수 있다. 그 외 모든 모델도 마찬가지로 각각의 모델에 내재한 가정들이 있고, 그 가정에 맞지 않는 시장 환경이나 기업에 대해서는 매우 크게 틀린 결론으로 이어진다.
RIM의 경우, 장부가치를 기준으로 삼아 미래 초과이익의 현재가치를 더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시장가치가 장부가치 수준으로 많이 디스카운트되어 있는 한국에서는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도, 주주환원이 잘 이루어져 시장가치 대비 장부가치가 크게 낮은 편인 미국 시장에서는 사용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2023년 2월 기준 삼성전자의 PBR은 1.1배지만 애플의 PBR은 43배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 모델에 내재한 가정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면 자유도가 높은 모형 중 하나인 DCF를 이해하면 좋다. 단순한 모델만 공부한 사람은 DCF를 이해할 수 없지만 DCF를 공부한 사람은 단순한 모델들의 이론적 부분뿐만 아니라, 거기에 내재한 결함과 어떤 상황에서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지까지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투자에 진지하게 임하고자 하는 사람은 DCF를 매번 실전 투자에서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꼭 시간을 내서 한 번 정도 이해해볼 것을 권장한다.
p.214-215
성배 같은 차트 시그널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수년간 지속된 패턴도 어느 순간부터 수익을 주지 못할 수 있고, 과거에 수익이 미미했던 전략이 다시 수익을 크게 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어느 연구자가 특정 기술적 지표를 특정 기간의 데이터를 이용해 검증한 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초과수익을 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해도 그 시그널은 이미 사라진 상태일 수 있다. 반대로 통계적으로 유의미성이 관측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낸 특정 패턴이 후일 유의미해질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도출할 수 있다. 어느 차트 트레이더가 좋은 패턴을 발견했다면 그것을 남에게 말해주고 싶을까? 남에게 말해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연히 그 패턴의 생애 주기가 2단계에서 3단계로 이행하면서 그 패턴에서 오는 초과수익 기회는 점점 사라져버린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기술적 지표나 차트 패턴으로 만든 시그널을 판매하거나 전수하겠다고 하면, 그는 차트 매매의 본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일 확률이 매우 높다. 수익 기회가 영원히 계속되는 불변의 시그널은 없으며, 어느 시그널이든 널리 알려지고 과하게 사용되면 수익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p.221-222
참 이상한 일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왜 많은 사람이 유독 투자에서는 옛 방식이 지금도 그대로 통용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만약에 병원에서 여전히 1980년대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면 누구든 기겁할 것이다. 모든 학문, 모든 산업, 모든 분야에서 기술과 지식은 끊임없이 발전해왔고, 특히 지난 10~20년간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그 발전 속도가 기하급수적이었다. 그런데도 왜 주식시장에 대한 개인 투자자의 인식은 변하지 않을까? 차트를 눈으로 바라보며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만으로 매매를 하겠다는 사람은 총알이 넘나드는 전쟁터에 활과 화살을 들고 나가는 것과도 같다. 기습을 잘하면 이길 가능성이 완전히 0%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매우 높은 확률로 패배할 것이다.
p.233-235
월마트 매출을 알려면 전통적으로는 매 분기 실적 발표를 참조했지만, 지금은 인공위성으로 월마트 주차장을 촬영한 데이터를 통해 차량방문 대수를 추적해 미리 매출을 추정하고 이에 따라 포지션에 진입하는 방식을 채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공위성 촬영 데이터를 이용해 원유를 저장하는 오일 탱크가 수면에 잠긴 깊이(그림자 길이)를 가늠해 오일 트레이딩의 시그널로 활용할 수도 있다. 심지어 위키피디아 조회 수를 이용하는 트레이딩 시그널도 존재한다. 이들 데이터를 대안 데이터라고 하는데 최근 들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대안 데이터를 팩터화해 중장기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값비싼 팩터 데이터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팩터 데이터도 MSCI 바라(MSCI Barra) 같은 소스에서 많은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한다. 또한 팩터의 알파 시그널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수의 종목을 담아야 한다. 본인이 추구하는 알파 팩터를 제외한 부분을 잘 상쇄해서 헤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대안 데이터를 이용한 중장기 투자는 많은 자금과 비용이 필요한 분야이기에 개인이 혼자 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뉴스 데이터 분석을 통해 특정 회사에 관한 기사 내용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를 계산하는 센티먼트 모델을 알고리즘에 학습시켰다고 해보자. 이 모델을 통해 페이스북과 구글에 대한 신문 기사를 분석했더니 긍정적인 점수가 많이 나왔고 마침 주가도 상승했다.
반면 포드와 현대자동차에 관한 신문 기사를 분석했더니 부정적인 점수가 많이 나왔고 마침 주가도 하락했다. 그렇다면 이제 이 센티먼트 모델이 보여주는 긍정, 부정 모델에 따라서만 매매하면 되는 것일까?
성급하게 일반화할 문제가 아니다. 페이스북과 구글은 기술주인 반면 포드와 현대차는 자동차 산업 종목이다. 따라서 이들 주가의 변화는 뉴스 센티먼트와 관계없이 산업과 관련한 이벤트나 시각 변화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다.
따라서 동일한 산업 내 종목 간에도 기사의 센티먼트 점수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해서, 산업이라는 팩터에서 오는 영향을 제하고 뉴스 센티먼트 팩터에서 오는 영향을 검증해야 한다.
p.236
백테스팅은 특정 전략 아이디어에 대해 충분한 리서치를 하고, 다른 여러 가지 계량적 툴과 통계적 방법론들을 이용해 그 가설을 최대한 검증한 후, 마지막에 돌려보는 것이다. 백테스팅은 적게 할수록 좋다. 백테스팅은 이미 로직을 탄탄하게 쌓은 전략을 마지막에 검증하기 위한 용도이지, 좋은 전략을 찾아내기 위해 마구 돌려보는 방법이 아니다.
p.241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단순 수익률이 아닌 리스크 대비 수익률을 표시해주는 대표적인 성과 지표가 샤프지수다. 샤프지수는 무위험 이자율을 초과하는 수익률을 수익률의 변동성으로 나눈 값으로, 이 지수만 사용해도 단순 수익률 비교에서 오는 병폐를 어느 정도는 교정할 수 있다. 2020년 ARKK라는 ETF를 운용하는 아크인베스트의 캐시 우드는 테슬라의 주가 상승을 예측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많은 자금이 해당 ETF로 몰렸다.
그런데 내가 ARKK의 과거 성과를 샤프지수로 계산한 결과 같은 기간 나스닥의 ETF인 QQQ보다 오히려 조금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단지 변동성이 세 배 정도 높아서 수익률이 더 높았던 것이다. 단순히 3배 레버리지를 썼다면 나스닥 ETF로 ARKK보다 나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2022년 들어 나스닥이 25% 정도 폭락하는 사이 ARKK는 70% 이상 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p.256
퀀트 리서치를 통해 '검증'된 전략은 '성과가 좋을 것이라고 증명된 전략'이 아니라 '성과가 나쁠 것이라고 증명하지 못한 전략'에 불과하다. 매 순간 본인의 전ㄹ갸을 여러 각도에서 의심해야 하는 이유다. 지나치게 좋아 보이는 결과가 나온다면 특히 더 의심해야 한다.
매매 비용에서 수수료나 슬리피지를 너무 느슨하게 설정한 것은 아닌지, 실전에서 생길 수 있는 유동성 문제를 고려하지 못한 건 아닌지, 전략의 파라미터를 조금 바꾸어도 해당 수익률이 유지되는지 등을 체크해야 한다. 매매 타이밍이 월말 리밸런싱이라면 그 전날인 29일로 바꾸어도 수익률이 유지되는지를 체크해보는 식으로, 전략의 파라미터를 조금씩 조정해보는 것을 잊지 말자. 하루나 이틀의 변화로 수익률이 급변한다면 아마도 과거 데이터에 과최적화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이에 더해 다양한 외생적 쇼크나 이벤트에 대한 가정도 추가해보고 통계적인 노이즈도 추가해보자.
p.264-265
심지어 퀀트 전략을 리서치할 사람에게도 재무제표, 회계, 가치평가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다. 의미가 없는 백테스팅을 마구 돌리는 게 아니라 진지한 전략 리서치를 해보겠다면 그런 펀더멘털 지식에서 출발해 전략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검증을 행해야 한다.
내 커리어 중반, 트레이더에서 데이터과학 분야로 전환을 시도했을 때 내가 했던 치명적인 실수가 있다. 그것은 바로 미적분과 선형대수를 비롯한 수학적 기초를 탄탄히 다지지 않은 채 얼른 머신러닝, 딥러닝, 강화학습 같은 멋져 보이는 기법들을 금융시장에 응용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 도대체 왜 서포트 벡터 머신 알고리즘의 커널 함수를 일일이 수학적으로 도출하며 공부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교과서에 다 나오는' 이런 고리타분한 기초 말고 딥러닝으로 뉴스 센티먼트 모델을 만든다든지, 강화학습을 옵션 데이터에 적용해본다든지 하는 화려한 것들에 뛰어들고 싶어 했다.
그러고서 라자드 투자은행, 켄쇼테크놀로지, S&P 글로벌에서 데이터과학자로 일하면서 많은 후회를 했다. 실전에서 머신러닝과 딥러닝을 적용하는 것에는 이미 만들어진 파이썬 라이브러리를 그저 로딩해서 돌리는 것을 넘어 너무나도 많은, 작지만 중요한 뉘앙스들이 필요했다. 내 모델의 정확도가 88%에서 멈춰서 어떻게 더 개선해야 할지 모를 때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 것은 화려한 딥러닝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내가 사용하는 모델에 대한 깊은 수학적 이해, 기초적이고 지루하기 짝이 없던 기초 통계학, 선형대수, 미적분, 회귀분석에 대한 이해였다.
켄쇼와 S&P글로벌에 있던 시절, 내 팀 동료들은 대부분 이공계 박사 출신이었는데, 그들과 나의 차이는 학위나 머신러닝 '기법'에 대한 지식 차이가 아니라, 그 저변에 수년간 훈련된 수학과 통계 기초에 대한 체력 차이였다. 그래서 나는 이미 데이터과학 석사 학위를 가지고 켄쇼에 입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직 기간 동안 파트타임으로 야간에 스탠퍼드대학원의 수업 24학점을 추가로 들으며 파김치가 되어야 했다. 한 번은 밤을 세워 중간고사를 친 후 회사 회의 중에 응급실에 가기도 했다. 전부 기초 체력을 등한시하고 화려한 것을 좇다 벌어진 일들이었다.
p.266
남들이 모르는 것을 찾기 위해서 우선은 남들이 알고 있는 수준의 정보, 남들이 쓰는 데이터, 남들이 쓰는 전략은 제대로 마스터해야만 한다.
많은 개인이 사용하는 상대가치평가를 예로 들어보자. "나는 PER 같은 거 다 아는데?"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PER을 움직이는 핵심 요소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단순히 주가와 주당순이익이라는 표면적인 대답을 넘어 재무제표의 요소들과 PER을 잘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애널리스트의 리포트의 PSR 배수를 보면, 어떤 산업과 어떤 재무 구조에서 PSR이 큰 판단 오류를 일으킬 수 있는지 알아야만 한다. PER을 다중회귀분석 모델로 예측한 리포트를 볼 때는 어떤 문제를 주의해야 하는지, 그 모델의 한계가 무엇인지 인지해야 한다. 이는 비단 가치투자를 하는 투자자 외에 퀀트 투자를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런 부분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면서 백테스팅에 PSR이나 EBITDA, ROE와 관련된 팩터들을 넣고 아무 생각 없이 돌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p.275-276
결국 현시점에서 개인이 알고리즘에 비해 우위가 있는 영역은 연역적 추론과 정성적 분석의 분야다. 거시경제를 바라보고 가치투자에서 개별 기업을 분석하고 정성적 리서치를 하는 영역에서는 사람의 직관과 사고력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그 영역에서는 개인이 쏟는 노동에 비례해 성과가 나온다. 자동화된 알고리즘 매매에서는 1,000명의 개미 투자자가 1명의 정상급 퀀트를 이길 수 없지만, 기업분석에서는 정말 실력 좋은 정상급 애널리스트라도 혼자서 개미 투자자 1,000명의 먹거리를 뺏을 수 없다.
표준화된 가격 데이터, 거래량 데이터, 재무 데이터를 두고 경쟁하는 퀀트 영역과 달리, 기업 분석의 영역에서는 1만 개의 주식 종목이 있으면 1만 개의 각기 다른, 획일화되지 않은 콘텍스트가 존재한다. 이를 일률적으로 가치평가하거나 분석하는 방법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 분석은 완전 자동화가 불가능한 영역이어서 규모의 경제 효과도 미미하고 승자독식의 현상도 발생하지 않는다. 아직 월가에서도 기업 분석과 가치평가는 뱅커들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한 기업 한 기업 엑셀을 이용해서 진행한다. 이렇듯 금융 분야에서 기업 분석과 가치평가는 데이터과학과 알고리즘이 가장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분야다. 따라서 개인 커피숍 같은 영역을 찾아 초과수익을 추구해봄 직하다.
따라서 본인의 투자철학과 투자 전략을 정립해나가는 데 언제나 이런 점을 참고했으면 한다. 특히나 본인의 소질과 적성이 이공계적인 소양보다는 논리와 사고력, 직관에 더 우위가 있다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트레이딩이나 퀀트 영역보다는 기업 분석과 정성적 리서칭의 방향을 권유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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