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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협상

사례들을 보면서 - 대화의 절반은 협상이다

by Diligejy 2024. 1. 13.

 

 

이 책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사례들이다.

 

다른 학문들과 달리 협상은 이론적 아름다움보다도 현실에서 얼마나 적용될 수 있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치 운동과 비슷하다. 운동에 대한 이론들이 발달하더라도 중요한 건 경기에서 적용할 수 있느냐인데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이론보다는 사례 중심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협상 이론을 잘 모르더라도 쉽게 읽을 수 있다. 

 

특히 변호사들은 협상에서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지, 국제협상에서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읽다보면 새로운 관점과 사실들을 아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

 

결국 삶에 많은 부분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닌 다른 사람과 같이 하는 일이기에 협상에 대한 훈련은 평생동안 꾸준히 반복해야 한다는 점을 이 책은 알려주고 있다.

 

 

 

 

p.24

그때 깨달은 바가 있다. 국제통상협상에서 각국 협상팀의 역할은 자국 사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메신저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만담꾼 하선처럼 미리 정해준 세 가지 말만 반복할 뿐인 셈이다. 이런 암울한 현실은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기구에 제소를 하는 경우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사기업 간의 의견조율이 어렵거나, 대외적으로 갈등관계의 표출을 원치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p.68

협상이 자존심 대결로 치닫는 것은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 양측 모두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타결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상대방을 설득하고자 할 때는 그가 논리적으로 양보할 수 있는 퇴로를 확보해줘야 한다. 쥐도 코너에 물리면 고양이를 문다. 협상의 프로는 상대방의 자존심도 존중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p.90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이 서로간의 유대를 강화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똑같은 것을 먹고 안 먹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차이점을 서로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이다. 딜메이커와 딜브레이커의 차이점도 여기서 생긴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더러 극단적인 방법을 쓰기도 하지만, 효과는 그리 좋지 않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속담처럼 상대편도 극단적인 대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 대 강 대립구도에서는 협상 자체의 성립도 어려워진다. 승자는 상처뿐인 영광을 얻고, 패자는 모든 것을 다 잃을 수 있는 위험한 대립구도는 피하는 것이 좋다. 이럴 때는 판을 먼저 깨고 나가는 사람이 유리하다. 박수칠 때 떠나라. 어차피 깨어질 판이라면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 상책이다.

 

p.95

"Are you okay?"

 

헐레벌떡 차에서 뛰어나가 상대 차량 운전자에게 물었다. 미국인들이 교통사고 후에 주로 하는 말이다. 참고로, 미국 교통사고 현장에서는 "I'm sorry"라는 표현을 절대로 쓰지 않는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도 자신에게 불리한 이야기는 절대 먼저 꺼내지 않는다. 

 

p.101

영화에서뿐 아니라 우리의 현실 세계도 공정하지 않은 재판이 존재한다. 재판장 밖의 협상장에서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된다. 협상에는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50:50으로 힘의 균형이 잡혀 있을 때는 어떨까? 아이러니컬하게도 협상 자체가 잘 성립되지 않는다. 최소한 51:49의 불균형이 존재해야 협상이 성립하는 경우가 많다. 현실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협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과는 협상할 것이 별로 없다. 50:50 평등한 협상만을 추구한다면, 아마도 협상을 타결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것이다.

 

p.108

조직 내부의 적은 협상가 입장에서는 매우 큰 심적 부담이 된다. 반면 상대 측에서 보면 그보다 든든한 지원군도 없다.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싶다면 상대방 내부에 있는 딜브레이커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곳에 협상 결과 자체를 뒤집을 열쇠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p.110-111

헤드헌팅사를 통해서 인터뷰를 여러 번 해봤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인터뷰에 떨어진 적은 있었지만, 헤드헌팅 회사 소개비가 부담이 돼서 떨어지다니! 더욱 놀라운 사실은 소개비의 액수였다. 확인 결과, 연봉의 20~30퍼센트라는데 억대 연봉이라면 적어도 수 천만 원이기 때문이다. 반면 내부추천의 경우는 무척 저렴하다. 후보를 추천한 경우, 내부적으로 상여금 형태로 100만 원 정도가 나간다. 수천만 원과 100만 원은 매우 큰 차이다. 물론 수천만 원의 소개비가 아깝지 않은 훌륭한 인재라면 모를까, 한정된 변호사 인재풀에서 도토리 키 재기를 하는 상황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런 소개비도 큰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필자가 만약 헤드헌팅사가 아니라 그 회사의 인맥을 통해 인터뷰를 했다면 아마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협상팀을 구성하는 데 안일했더니 결정적인 순간에 탈이 나고 만 것이다. 헤드헌터로서도 자신의 소개비를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애초부터 협상팀을 잘못 꾸린 셈이었다.

 

성공적인 협상을 위해서는 협상팀 구성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팀원이 많아질 경우, 내부 구성원끼리의 이해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비책을 미리 준비해두어야 한다. 협상의 세계에서는 영원한 적이 없듯이 영원한 동지도 없다. 변화무쌍한 협상 테이블에서는 내부적인 팀워크 관리가 중요하다. 이런 관리를 소홀히 할 경우, 예상치 못한 내부 문제로 협상 진행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

 

p.115-116

"로스쿨을 졸업한 후, 미국에서 일할 계획인가요?"

 

당신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대부분의 신청자는 비자 거절을 우려해서 공손하게 답할지도 모른다.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어떤 답변을 해도 꼬투리를 잡을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취업을 안 할 거라고 하면 그러려면 왜 비싼 미국 로스쿨에 진학하려느냐고 트집을 잡을 수도 있고 반대로 취업을 하겠다고 하면 유학비자로는 취업을 할 수 없다는 등의 잔소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 신청자를 골탕 먹이기 좋은 질문일 뿐이고, 실질적인 의미는 거의 없다.

 

"제가 답변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군요."

"(당황하면서) 왜죠?"
"로펌 취업은 인사담당자 소관이죠. 전 그들의 결정을 따를 뿐입니다."

 

대사관 직원은 잠시 멍하게 날 쳐다봤다. 그를 설득한 것이 아니고, 단념을 시킨 셈이다. 시간낭비 하지 말라는 확고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보다 포기시키는 쪽이 더 쉬울 수도 있다. 때로는 '을'의 위치에서도 강경한 태도가 필요하다. 상황에 따른 강약조절이 협상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 항상 부드럽고 친절하게 다가간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특히나 협상 상대와 갑을관계에 놓여 있을 때엔 더욱.

 

p.131-132

협상 초기에 파트너의 성향을 신속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것이 협상의 성패를 좌우한다. 만약 상대방에게 딜브레이커 성향이 강하다면 일정 부분 손해를 보더라도 딜을 빨리 정리하는 편이 낫다. 어떻게 상대방이 딜브레이커인지를 파악할 수 있을까? 상대방에게 핑계거리를 제공하는 방법이 있다. 협상을 파기할 수 있는 대의명분을 제시하는 것이다. 물고기가 떡밥을 물 듯 덥석 문다면 딜브레이커라고 보면 된다. 물론 당신 역시 딜브레이커라면 갈 때까지 가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다. 상대방의 약점 또는 실수를 기다렸다가 핑계를 대고 협상장을 뛰쳐나오면 된다. 

 

p.133-138

"오늘 협상은 일본 측의 요청으로 순차통역을 하기로 했습니다."

 

순간 너무 당황했다. 일본 대표가 영어를 잘 못해서 순차통역을 쓴다나? 국제협상에서 순차통역을 쓴 적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순차통역을 안 쓰는 이유는 뭘까? 우선 경제, 산업, 법률 등 모든 분야를 두루 섭렵한 통역사를 찾기 어렵다. 또한 메시지 전달속도가 상당히 처진다. 이야기가 길어질 경우에는 대답할 내용을 몽땅 까먹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한다. 고육지책으로 다음에 할 말을 미리 종이에 적어놓고 준비했다.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상대방이 예상답변과 다른 말을 할 경우에는 부랴부랴 질문 내용을 수정해야 한다. 한마디로 집중력이 떨어지는 협상방식이다.

 

설상가상으로 나까무라 과장은 일본 전자상거래법 영문본을 가지고 오지도 않았다. 스즈키라는 여직원 이름까지 말해도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으로 일관했다. 준비가 전혀 안 된 일본 정부 참석자들은 계속 딴소리만 하고 자료를 보내주면 검토하겠다는 둥 성의 없는 행동을 계속했다.

 

다음 날 아침, 동경 시내의 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대학 선배를 만났다. 경제학을 전공한 선배는 다른 부처의 자문으로 일본을 방문한 참이었다. 답답한 마음으로 선배에게 한일 FTA 타결전망에 대해서 물었다. 답변은 의외였다.

 

"처음부터 안 되는 거였어!"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일본은 지리적으로 너무 가까워서 파급효과가 크지."

"그렇군요."

"첫 번째 파트너가 누군지 알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칠레죠!"

"맞아! FTA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지."

"그래서 일본과의 FTA가 힘든 거군요."

"게다가 일본은 우리와 산업구조가 너무 비슷해."

"최악의 조합이군요."

"그렇지. 한일 FTA가 힘들다는 사실은 양국 정부 모두 정확히 알고 있어."

"그런데, 우리는 왜 협상하러 온 건가요?"

"그냥 하는 척하는 거야!"

두 달 후 8월, 경주 보문단지에서 열린 5차 협상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일본 협상대표단이 전격 교체됐다는 후문이 들려왔다. 그 무렵 미국 워싱턴 D.C에서 친하게 지냈던 일본 친구 노무라에게서 이메일이 도착했다. 경주 협상부터 자신이 일본 총무성 대표로 참석한다는 것이었다. 대화가 통하는 협상 파트너를 만난다는 것은 상당한 호재이다. 최소한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발생할 확률은 낮아지기 때문이다.

 

'사요나라, 나까무라!'

 

협상장에서 본 일본 수석대표의 영어실력은 단연 압권이었다. 미국도 영국도 아닌 유럽식 고급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모습이 놀라웠따. 지난번 수석대표의 어색한 일본식 영어발음인 재플리시(Japlish)와는 확실히 달랐다. 수소문을 해본 결과, 일본 총리실에서 지시사항이 하달됐다고 한다. 한국 정부와의 FTA에 박차를 가하라고. 그래서 제네바에 상주하는 WTO 협상팀으로 전격 교체가 된 것이었다. 총무성 대표로 왔던 친구도 WTO 전담팀 업무를 맡다가 긴급발령을 받았다고 했따. 협상 테이블에 참석한 모든 일본 대표는 눈을 크게 부릅뜨고 열심히 경청했다. 결전을 코앞에 둔 사무라이의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준, 우리 같이 앉을까요?"

"물론이죠."

"제 직장 후배들을 소개할께요. 왼쪽은 켄지, 오른쪽은 세이지입니다."

 

일본 총무성 대표로 참석한 노무라 일행과 점심식사를 같이했다. 몇 년 동안 잘 알던 사이라서 테이블 분위기는 무르익어갔다. 오래된 친구를 만나서 회포를 푸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 톤으로 노무라가 물었다.

 

"놀라운 사실 하나 알려드릴까요?"
"(순간 긴장하며) 뭐, 뭔데요?"

"지금 호텔 식당에 총 몇 명쯤 있는 줄 아시나요?"

"음........, 우리 측이 약 100여 명이고, 일본 측도 비슷하니깐 200명 정도 아닐까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한 테이블에 4명씩 앉는다면 약 50테이블쯤 되겠지요. 그런데 우리 테이블이 유일한 거 아시나요?"
"뭐가요?"
"양국 대표가 한 테이블에서 같이 식사를 하는 거요."

 

노무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말로 모든 테이블은 국가별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같은 부서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노무라의 관찰력은 놀라울 정도로 날카로웠다. 이런 현상이 협상타결에는 어떤 영햐야을 줄지 궁금해졌다. 한일 양국 대표들은 협상 중에 업무적인 관계만을 유지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순수한 업무관계이다. 비즈니스가 끝나면 관계 역시 바로 사라진다. 어쩌면 식당 내의 풍경은 한일협상 결말의 예측도였는지도 모른다. 양국 모두 이 협상의 결말을 부지불식간에 예측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2004년 11월 6차 협상 후, 일본 정부의 입장이 다시 바뀌었다. 다시 협상타결에 관심이 없어진 것이다. 2005년 타결을 목표로 했던 FTA 협상은 결국 중단됐다. 대학 선배의 말이 옳았다. 한일 양국 모두 그냥 하는 시늉만 한 셈이다. 양측은 서로 입이라도 맞춘 듯 동시에 상대방에게 실패의 책임을 전가했다. 양자협상이란 양측이 모두 합의해야 성사가 된다. 대학 선배가 알려준 대로 한일 FTA는 처음부터 성사되기 힘들었다. 서로 비슷한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라는 계산이 저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결렬을 위한 협상의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협상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득과 실을 저울질했고, 결국에는 협상을 타결해봐야 그리 큰 이득은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딜브레이커 쪽으로 방향을 정한 것이다. 

 

딜메이커의 개념은 상대적이다. 수차례 공식입장을 번복한 일본 정부의 협상단처럼, 딜브레이커와의 경계가 모호할 때도 많다. 딜메이커가 될 것인지, 아니면 딜브레이커가 될 것인지, 둘 중에 어떤 것이 유리한지 전략적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누구나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 손해를 보는 것보다야 딜브레이커가 되는 것이 낫다. 딜메이커와 딜브레이커는 이렇게 동전의 양면과 같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양면성을 적절히 활용해서 어떻게 가장 성공저거인 협상전략을 구사할 것인가'이다.

 

p.150-151

"고객님, 크게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정말요! 왜죠?"

"3년 이내 겹치는 부분에 한해서만 할증이 적용되기 때문이죠. 만약 2년 8개월 전이라면, 앞으로 4개월만 할증이 적용됩니다."

 

아하! 20년 넘게 자동차보험에 가입했건만, 그제야 정확한 할증 적용규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숱한 보험설계사들 중에서 이 점을 정확히 짚어준 사람은 단 1명도 없었다. 모든 보험설계사들은 할증에 대해 엄포만 놓을 뿐이었다. 왜 그랬을까? 정작 중요한 사실은 왜 알려주지 않은 것일까? 잠시 생각해보니,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뭔가 얻으려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미리 정해놓고 그쪽으로 서서히 몰아가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불리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와는 다른 전략이다. 불리하나 이야기를 감추는 것은 상대방에게 얻을 것이 없거나 미비할 경우 방어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반면 특정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이유는 그쪽에서 분명 얻을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할증기간이 겹치는 기간으로 제한된다고 알려줄 경우, 아마 보험처리 접수가 훨씬 많아질 것이다. 보험사는 이 점을 우려했을 것이다.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비용을 줄여서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가입하도록 설득하되, 보험처리는 최소한으로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매출은 늘리고 지출은 줄이는 경제학의 기본원칙을 따른 셈이다. 보험회사의 이윤극대화와 보험 가입자의 이해관계가 서로 상충하는 부분이다.

 

이렇듯 이해관계가 엇갈릴 때는 더 정보를 많이 가진 쪽에서 일방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의견을 몰아갈 수 있다. 이럴 때는 그 모든 디테일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혹시나 놓친 것이 없는지 하나하나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

 

p.154-156

"바로 밑에 있는 법 제13조의2에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위탁한다고 쓰여 있는데요."

"아닙니다."

"지금 모니터로 보고 있는데요."

"맨 마지막 부분을 다시 읽어보세요."

"'할 수 있다'라고 쓰여 있죠?"

"네. 그렇습니다."

"'할 수 있다'와 '해야 한다'는 법적으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예방교육은 필수, 위탁교육은 선택이라는 말이죠."

"아하! 그럼 자체교육도 가능하다는 말씀인가요?"
"네!"

 

제13조의2(성희롱 예방교육의 위탁)

1) 사업주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정하는 기관(이하 "성희롱 예방 교육기관"이라 한다)에 위탁하여 실시할 수 있다

2) 성희롱 예방 교육기관은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기관 중에서 지정하되,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강사를 한 명 이상 두어야 한다

3) 성희롱 예방 교육기관은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교육을 실시하고 교육이수증이나 이수자 명단 등 교육 실시 관련 자료를 보관하며 사업주나 피교육자에게 그 자료를 내주어야 한다.

 

순간 미국법 조항에서 조동사 shall과 may 사용의 차이점이 떠올랐다. 강제조항의 경우는 shall을, 재량사항인 경우는 may를 사용한다. 조동사로 강제여부를 결정하는 영어와 달리 한국어에서는 동사의 어미로 구분한다. 영어와 달리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 팩스는 일종의 사기 아닌가요?"
"그렇게 보긴 쉽지 않습니다."

"왜죠?"
"팩스에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정했다는 말이 없기 때문이죠."
"법조항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요?"
"왜죠?"
"법조항 문구가 명확하지 않아서 일반 시민들이 혼돈할 수 있고, 그런 점을 악용한 상술을 범람하는데 주무부처가 이를 방치해도 되는 건가요?"

일사천리로 답변하던 고용노동부 직원의 말문이 갑자기 막혔다. 잠시 둘 사이에 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혹시 다른 질문이 있으신가요?"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협상에 있어서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마치 법정에 선 변호사가 변론을 하면서 사실관계에 집중하는 것과 유사하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리걸 마인드와 협상 마인드의 공통점이 있다. 중요한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p.157-158

리걸 마인드의 특징 중 하나는 상대방에게 특정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 것이다. 잘못된 방향을 제시할 경우 부작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책임회피로 비쳐질 수도 있다.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장단점을 비교한 후, 최종선택은 클라이언트에게 떠맡기는 것이다. 잘못된 방향을 제시하면 상대방과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 상대방이 고의적으로 시비를 걸어온다고 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p.163

사람은 생각과 감정으로 움직인다. 떄로는 치열한 논리싸움이 필요하지만, 때로는 감정을 따뜻하게 어루만질 줄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은 꼭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자신이 애초에 주장했던 것을 무를 수 없으니, 버티는 경우도 많다. 자존심 때문이다. 이럴 때는 상대방의 자존심을 지켜주면서도 결정적인 손해는 피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아주 작은 사은품 같은 것 말이다.

 

p.167-168

리걸 마인드의 특징 중 하나는 우선순위를 제시하지 않는 것이다. 고객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장단점을 상세히 설명한다. 결정을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이 둘은 결과적으로 큰 차이를 낳는다. 책임소재가 달라지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 실패에 대한 책임까지 돌아온다. 정확한 방향을 제시하면 공을 세우게 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역적이 되고 만다.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비교 분석만 한 경우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된다. 성공하는 협상가는 이 같은 리걸 마인드의 특징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다.

 

p.174-176

대형마트 유니폼을 입은 한 중년남자가 나타났다. 국수집 주인과 안면이 있는 듯,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말했다. 

 

"설날에 골뱅이 비빔국수 4,500원 가능하죠?"

 

안경을 다시 끼고 벽에 걸린 메뉴판을 응시했다. 국수집에는 총 네 가지 메뉴가 있었다. 가장 비싼 국수가 문제의 '골뱅이 비빔국수'로 5,500원이었다. 골뱅이가 빠진 일반 '비빔국수'는 천 원 싼 4,500원이었다. 골뱅이 값 천 원을 가게주인이 고스란히 손해를 보란 소리였다. 골뱅이 값 천 원을 가게주인이 고스란히 손해를 보란 소리였다. 가게주인은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대꾸했다.

 

"골뱅이 값도 안 나오는데요."

"(큰 소리로) 4,500원으로 해주세요."

 

마트 직원은 똑같은 대답만을 반복했다. 마치 녹음기의 재생버튼을 누른 듯이, 이건 협상을 하러 온 태도가 아니라 최종통보를 하러 온 태도였다. 국수집 주인에게는 별다른 협상 레버리지가 없는 듯했다. 갑을관계에서 종종 발생하는 이해관계의 충돌상황이다. 잠시 동안 국수집 주인과 마트 직원의 대치상태가 벌어졌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협상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자못 궁금했다. 그런데 이 상황은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문자 나갑니다!"

 

짧은 말과 함께 마트 직원은 옆 점포는 유유히 사라졌다. 설날 기념 이벤트 중 하나로 '골배이 비빔국수'를 천 원 싸게 해준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다는 이야기였다. 옆에서 듣고 있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도 천연덕스러운 갑의 횡포였기 때문이다. 을의 입장에 있는 국수집 주인은 별다른 하소연을 할 곳도 없다. 500원 싸게 김치말이 국수를 얻어먹는 내 입장에서는 약간 눈치가 보였다. 마트 안에서 영업을 하는 동안은 어찌되었든 마트 관리 직원의 눈치를 보는 시집살이를 감내해야 한다. 

 

당신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단계에 접어든 대형마트 입점 주인은 힘없는 을일 뿐이다. 그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설날 특집 골뱅이 국수 광고 문자는 발송될 것이다. 이렇게 된 바에야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현실적인 절충안을 만들어보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법은 국수에 들어갈 골뱅이의 개수를 줄이는 것이다.

 

"골뱅이 비빔국수에 왜 양파밖에 안 보이죠?"

"뼈다귀 해장국에는 뼈다귀가 많나요? 순 감자천지지!"

"네에?"

"원래는 5,500원짜리인데 천 원 싸게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그리 바람직한 답변은 아니다. 왠지 속았다는 느낌을 받은 손님은 다시 찾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가격하락을 골뱅이 수가 줄면 모든 불평은 국수집 주인에게 돌아온다. 손님들은 대형마트의 횡포를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절충안의 기술이 필요하다. 

 

"설날 특집 동해에서 직접 공수한 백골뱅이를 준비했습니다."

"백골뱅이가 뭔가요?"
"(골뱅이를 번쩍 집어 들고) 동해안에서만 나오는 소라 모양의 아주 맛있는 골뱅이죠."

"우와! 모양이 신기하네요."
"저희는 손님들에게 드릴 맛과 볼거리까지 준비했죠."

"멋진걸요."

"최상품으로 ㅁ시다 보니 골뱅이 숫자가 부득이 줄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나오면 대놓고 불평할 손님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골뱅이 숫자를 줄이는 대신 질을 높이는 것이다. 무언가 주고받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는 숫자와 질의 가격균형을 어떻게 잡는가이다. 어차피 설날 특집으로 하루만 진행되는 이벤트이니 후하게 해주는 것도 홍보 효과로 좋을 것이다.

 

p.190-191

국제통상 협상전략을 수립할 때는 상대국 법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법률분석을 마친 후에는 실제 관행(practice)을 확인해보는 별도의 절차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법률 제정과 집행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법이라도 집행에 문제가 있거나 집행 자체를 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외국의 공공 정책을 연구할 때는 법률조항에만 맹목적으로 집착하지 말고 관련 사실과 비교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는 넓은 시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p.210

상대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협상전략에는 큰 원칙이 하나 있다. 공수 위치에 따라 적용범위를 조절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논리를 공격할 때는 최대한 좁게, 내 논리를 방어할 때는 최대한 넓게 하면 딘다. 공격할 때는 상대방의 약점을 집중ㅈ거으로 공략하고, 방어할 때는 상대방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물 타기 전술' 등이 필요하다. 내가 방어할 때는 상대방이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보다 넓은 범위로 이슈를 확대하고 화제를 전환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전략에도 문제점은 있다. 계속 회피하다 보면 협상진행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적절한 완급조절이 성패를 좌우한다. 조절은 필요하지만 일단 기본원칙을 꼭 기억하자! 공격할 때는 좁히고, 방어할 때는 넓힌다.

 

p.218-219

EU는 WTO에서 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경제블록을 성공적으로 만들었다. 1995년 WTO의 창설과 더불어 창립멤버가 된 EU는 총 28개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WTO 회원국은 한 국가당 하나의 의결권만 가진 반면에 EU는 예외적으로 독립적인 회원으로 인정됐다. 2014년 현재 160개국으로 구성된 WTO에서 유럽 28개국은 전체 회원국 중 17.5퍼센트를 차지하고, EU를 포함해서 총 29개의 의결권을 가진 셈이다. 28개국이 기술적으로 29개의 의결권만을 가진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편가르기' 성과로 볼 수 있다. 통상협상 사안별로 유불리를 따진 후에 EU 개별국가 또는 EU로 다른 국가를 제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슈퍼파워 미국을 일대일로 상대하기는 힘든 작은 유럽국가들의 통합은 현실적인 대안임에 틀림없다. 자신들의 통상이익을 위한 모임을 결성해서 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 사례이다.

 

다자 통상협상 테이블뿐 아니라 다자간 비즈니스 협상 테이블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진다.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는 여러 명의 힘을 합쳐서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것은 전통적인 협상전술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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