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6
오스트리아학파가 자유방임 경제관을 설파하기 시작한 것은 1차 세계 대전 때부터였는데, 전쟁 후 부상하던 마르크스 학파와 대립하면서부터 학설이 분명해졌다. 오스트리아학파는 가격을 각별히 중시했고, 특히 상품의 '기회비용'을 주목했다. 기회비용은 소비자가 여러 상품 중 하나를 고를 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대안들의 가치다. 누군가 맥주를 산다면, 그 행위는 와인을 사지 않는 결정이다. 또 누군가 화폐를 자산(현금)으로 보유한다면, 이는 이자를 포기하는 결정이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보유하던 투자 수단을 매도한다면, 이 행위 역시 나중에 그 투자 수단을 통해 벌 수 있는 수익을 포기하는 결정이다. 그들이 보기에 자본이란 사람들이 곧바로 소비할 수 있는 소비재의 생산에 들어가는 중간 생산 과정의 모든 투입물을 말한다. 즉 지금 당장 소비할 어떤 재화의 생산을 포기하는 대신, 나중에 더 값나가는 재화를 생산하기 위해 형성되는 여러 층의 '생산 단계'를 분석하는 것이 그들의 자본 이론이다.
p.64~65
케인스는 금 본위제로 돌아가더라도 금이라는 본위 화폐의 가치는 중앙은행들이 조절할 수밖에 없다는 점과, 그 금 가치를 조절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행동에 불필요하게 큰 비용이 든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1920년대 미국을 예로 들었다. 당시 미국은 자국 내로 유입되는 금의 양이 크게 늘어나자 금에 고정된 달러화 가치가 폭락(따라서 물가는 폭등)하는 것을 막아야 헀다. 그래서 늘어나는 금을 시중 은행에 풀지 않고 계속 정부 금고에 쟁여 뒀다. 이를 두고 케인스는 "남아프리카 광부들이 피땀 흘리며 캐낸 금을 워싱턴의 금고 속에 다시 파묻는 일"이라며, "미 연방준비제도가 달러화 가치를 금의 국내외 유출입과 전혀 상관없는 수준에서 유지하고자 한다면,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원하지도 않는 금을 큰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조폐국 금고에 계속 재둬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케인스는 이러한 조치가 잠정적으로야 통화가치 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영구적인 통화 관리 메커니즘이라고 치면 지나치게 값비싸고 어리석은 비용의 지출이라고 봤다. 또 결론적으로, 통화가치를 금에 고정하는 금 본위제를 택하더라도 중앙은행들이 금의 가치를 정해야 하기 때문에 금 본위제라는 것은 말 그대로 자유시장 장치가 아니라고 봤다. "지폐와 은행 신용이 주를 이루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바라든 바라지 않든 '관리' 통화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통화의 금 태환성을 보장한다고 금의 가치 자체가 중앙은행 정책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견해는 나중에 하이에크도 수용하게 된다.
p.90
오늘날 당시 영국의 금 본위제 복귀 결정이 재앙을 불렀다고 보지 않는 경제사학자는 거의 없다. 금본위제 복귀를 시초로 자본주의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사태가 줄줄이 터졌다. 이듬해인 1926년에는 영국 최초의 총파업이 발생했고, 1929년 6월 총선에서는 보수당이 패배하고 노동당이 하원 최대 의석을 차지하며 정권을 되찾았다. 그해 10월 미국 주식 시장의 붕괴와 더불어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가 발생하고 뒤이어 대공황의 폭풍이 몰아치자, 1931년 8월 영국에서는 비상 연립 정부인 거국 내각이 들어섰다. 그 다음 달, 금 본위제 복귀 후 혹독한 시련을 겪은 지 딱 6년 만에 파운드화는 더 견디지 못하고 금 본위제에서 이탈했다.
p.94
하이에크를 위시한 오스트리아학파는 자금 시장을 비롯한 모든 시장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생산자가 만드는 상품의 공급과 수요가 결국 일치하게 되는 균형 상태에 도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이에크는 가격 메커니즘은 이 균형을 향해 움직이는 경향이 있으며 가격을 인위적으로 변경하려는 모든 시도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봤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가격에 간섭하는 것은 균형을 향해 움직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개별 증상을 붙잡고 땜질하는 정도의 쓸모없는 조치에 불과했다. 돈을 빌리는 가격인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면 물가 상승을 초래할 뿐이며, 반대로 금리를 인위적으로 높이면 경제 활동의 수축(경기 침체)을 부채질한다는 것이 하이에크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생각의 밑바탕에는 '자연 금리(개인 저축과 투자가 일치하는 금리)'와 '시장 금리(은행이 정하는 금리)'가 다르다는 빅셀의 근본적 가정이 자리잡고 있었다. 오스트리아학파는 자연 금리와 시장 금리의 차이가 경기 순환을 일으킨다고 봤다. 중앙은행 책임자들은 자연 금리가 어느 수준인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시장 금리를 부적절하게 설정할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해 오르락내리락하는 경기 순환이 촉발된다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시장 금리를 자연 금리대로 계속 유지하면 화폐가 경제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중립적'일 수 있다고 봤고, 화폐가 중립적이면 신상품의 발명이나 새로운 발견과 같은 다른 요인의 변화에 의해 경기 순환이 유발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p.174
사실, 하이에크의 불만을 자극한 것은 케인스의 저술 자체의 내용이 아니라 따로 있었다. 케인스가 오스트리아학파 사상의 일부 요소를 변형시키고 잘못 적용하기도 하는 과정에서 도출한 교훈을 가지고 현실 세계에 대한 개입주의적 정책, 즉 고용 창출을 위한 정부의 공공사업 추진을 촉구한다는 점이 불만스러웠다. 하이에크는 "이런 책이 이론적인 면에서 고무적인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라고 언급한 뒤 다음과 같이 자신의 불만을 노출했다. "하지만 현재 출간된 내용대로라면 화폐 이론의 발전에 이 책이 직접적으로 미칠 영향에 대해 일말의 우려를 감추기 어렵다. 케인스는 책에서 자신의 실용적 제안을 정당화할 만큼 충분한 이론적 추론을 선보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본인도 인정하듯이 현 저작을 미완의 상태로 출간하게 된 이유는 그 실용적 제안이 그만큼 시급한 것이기 때문임이 틀림없다.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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