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2-33
금융 시스템이 점점 AI에 의해 통제되고 돈의 의미 자체가 불가해한 알고리즘에 의해 정의된다면, 인간 정치인들이 어떻게 재무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대상이 또 다른 인간인지 아니면 인간인 척 가장하는 챗봇인지 더 이상 알 수 없다면, 민주주의 사회는 어떻게 금융이나 젠더 같은 특정 주제에 대한 공개 대화를 계속해나갈 수 있을까?
p.47
모든 재현에는 무시되거나 왜곡되는 측면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진실은 현실을 1 대 1 비율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실은 현실의 특정 측면을 알리고 다른 측면은 어쩔 수 없이 무시하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어떤 기술도 100퍼센트 정확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술은 다른 것들보다 진실에 가깝다.
p.49-50
점성술의 예는 오류, 거짓말, 환상, 허구도 정보라는 것을 보여준다. 순진한 정보관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정보는 진실과 딱히 관련이 없으며, 정보가 역사에서 하는 역할은 실존하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보가 하는 일은 별개의 것들을 하나로 묶어서 연인이든 제국이든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정보의 결정적인 특징은 재현이 아니라 연결이며, 따라서 정보란 서로 다른 지점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무언가다. 정보가 꼭 어떤 것들에 대해 무언가를 알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정보는 서로 다른 것들을 무언가로 묶는 역할을 한다. 별자리 운세는 연인을 별점으로 묶고, 군가는 병사들을 군사 대형으로 묶는다.
p.56
정보는 현실을 재현하기도 하고 재현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정보는 항상 연결한다. 이것이 정보의 근본적인 특징이다. 따라서 역사에서 정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조사할 때 우리는 '현실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가? 진실인가 거짓인가?'를 물어야 할 때도 있지만, 대개 더 중요한 질문은 '사람들을 얼마나 잘 연결하는가? 어떤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가?'이다.
p.60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개인 우상화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연결했던 이오시프 스탈린은 이야기의 힘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문제아였던 그의 아들 바실리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외경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아버지의 이름을 이용하자 스탈린은 아들을 꾸짖었다. 아들이 "저도 스탈린이에요"라고 항의했다. 그때 스탈린은 "아냐, 너는 아니야"'라고 대답했다. "너는 스탈린이 아니고, 나도 스탈린이 아니야. 스탈린은 소련 권력이야. 스탈린은 신문과 초상화에 등장하는 사람이지 네가 아니야. 나도 아니고!"
p.67
내가 당신에게 아프다고 말한다고 해서 없던 통증이 생기지는 않는다. 또 내가 통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있던 통증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당신에게 소행성을 봤다고 말한다고 해서 소행성이 생기지는 않는다. 소행성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든 말든 존재한다. 하지만 법이나 신, 화폐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생기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즉 상호주관적 현실은 정보를 교환할 때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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