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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0년

by Diligejy 2024. 3. 10.

 

 

 

파울 클레, 새로운 천사

 

p.23

[새로운 천사 Angelus Novus]라는 이름이 붙여진 파울 클레의 그림이 한 폭 있다. 천사는 마치 그가 응시하고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금방이라도 멀어지려는 듯 그려져 있다. 그 천사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있고, 그의 입은 열려 있으며, 그의 날개는 펼쳐져 있다. 이것이 '역사의 천사'가 지닌 모습이리라. 그의 얼굴은 과거를 향하고 있다. 우리가 지각하고 있는 잇따른 사건들이 형체를 드러낸 곳에서, 그는 잔해가 잔해를 쉴새없이 덮으며 그의 발 앞에 내팽겨쳐지는 하나의 파국을 바라보고 있다. 천사는 머무르고 싶고, 죽은 자들을 깨우고, 또한 산산이 부서진 파편들을 모아 다시 짜 맞추고 싶다. 하지만 폭풍이 천사가 날개를 더 이상 접을 수 없을 정도로 세차게 불어와 그 천사는 날개를 옴짝달짝할 수도 없다. 천사 앞에 놓인 파편 더미가 하늘로 치솟는 동안, 이 폭풍은 천사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 쪽을 향하여 막무가내로 그를 떠밀고 있다. 이 폭풍이 바로 우리가 진보라고 일컫는 것이다.

 

- 발터 벤야민, [역사철학 테제 9]

 

p.35

전시에 일터로 나갔던 영국과 미국 여성들은 경제적 예속을 가정에서의 굴종과 맞바꾸는 데 더는 만족하지 않았다. 물론 일부 피식민지 국가들이 완전한 독립을 얻는 데는 시간이 걸렸듯, 일부 여성도 여전히 종속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정상'으로 돌아가려는 보수적인 욕망은, 바닥에서부터 다시시작해서 더는 파괴적 전쟁이 재발하지 않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변화를 향한 희망과 항상 경쟁해야 했다. 진정한 이상주의가 이런 희망을 드높였다.

 

p.37

최소한 과거의 실수가 미래에 비슷한 실수를 방지한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역사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 나는 회의적이다. 역사는 모두 해석의 문제다. 종종 벌어지는 과거에 대한 잘못된 해석은 무지보다 더 위험하다. 과거의 상처와 증오의 기억들은 새롭게 불타오른다. 그럼에도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며, 그러려고 노력하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 시대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내 아버지가 겪은 게 무엇인지 알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과거의 길고 어두운 그림자에 여전히 속해 있는 내 자신, 더 나아가 우리 모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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