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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흐름이해

비트코이너와 대화 - 사토시 테라피

by Diligejy 2025.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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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이 우상향하는 자산일까? 아니면 그저 버블에 불과한걸까? 

버핏, 게이츠, 머스크, 트럼프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주장하고 논쟁하는 주제다.

 

사실 잘 모르겠다. 이런 뛰어난 분들조차 갈리는 정도니 내가 어떻게 답을 알 수 있을까. 

 

다만 대화는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소위 '비트코이너'이든 아니면 비트코이너가 아니든, 알트코인을 트레이딩하든 아니면 트레이딩하지 않든 '대화'는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서다.

 

대화라는 건 꼭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한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열심히 들으면 된다. 논쟁을 하고 싶다면 해도 좋지만 우선 상대의 말을 듣는 건 필수적이다. 

 

비트코이너의 성서처럼 여겨지는 사이페딘 아모스의 [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 - 원제 Bitcoin Standard]를 읽었을 때는 경제학 교수님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논리적 비약과 반증불가능한 만능통치약식의 비트코인 찬양과 법정화폐에 대한 비난(그는 역사, 전쟁, 예술 등 모든 게 화폐 - Fiat라고 부르는 법정화폐 때문이라고 주장했다)이 과도해서 그런지 대화를 나눈다는 느낌은 받기 어려웠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금본위제에 대한 향수가 매우 짙고, 무조건 금본위제를 했었으면 모든 나쁜 게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주장을 접하게 되는데 그 정도의 주장을 하는 분과 대화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사이페딘 아모스처럼 법정화폐를 Fiat 경제라고 비판하고 비트코인의 만능치료제에 가까운 효능을 주장하면서도 어느 정도 공간은 열어두었다. 다만 책 후반부에 탈중앙화 국가를 세울 수도 있다는 주장 등은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책 전반적으로는 비교적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주장과 논조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블록사이즈 전쟁이라고 하는 비트코인 공동체의 가장 큰 역사적 이벤트와 FTX 사태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주기 때문에 비트코인을 투자하든 투자하지 않든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 혹은 경제 시스템을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읽다보면 조금 더 새로울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책 자체도 누군가와 대화하는 형식을 띄고 있고 번역서가 아니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다.

 

언젠가 비트코이너 한 분이 거래소에서 거래를 하기 전에 공부를 하라고 말씀해주셨던 적이 있는데, 공부라는 단어보다 대화가 더 좋을거 같고 이 책이 그런 역할을 잘 해줄 것 같다. 거래하기 전(혹은 거래하지 않더라도)에 비트코이너의 생각 정도는 들어보고 의사결정을 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밑줄긋기

p.31

돈은 에너지야. 돈은 가치를 보존하며 시공간을 이동하는 경제적 에너지라고.

 

p.33~34

장부는 '확장성'이 강해. 무슨 말이냐 하면, 장부는 정보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전달 전파하기 쉽다는 거야. 반대로 사회에서 합의 신뢰하고 서로 주고받는 금화는 '확장성'이 떨어져. 왜? 물리적 매개는 일단 움직이기가 힘들어. 공간이동이 정보처럼 빠르지 못하니까. 그래서 두 요소 사이에는 부조화가 있을 수밖에 없어.

 

p.36

이자라는 게 채무자 입장에서는 돈을 빌리는 데 지불하는 비용이지만, 채권자 입장에서는 시간과 함께 발생하는 위험 변수에 대한 보상이라고 볼 수 있겠지? 시간적 리스크를 감안한 비율이 금리라면, 공간적 리스크를 감안한 비율은 환율이고, 이 두 가지 리스크에 대한 차등화는 신용 또는 신뢰에 기반했지. 신용이 좋은 사람, 그리고 좀 더 안정적인 화폐를 우대하는 방식으로. 

 

p.50

영국 경제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2017년 여름에 특이한 '정정 보도'를 냈어. 신문은 103년 전인 1914년, 당시 영국 정부의 전쟁 채권이 애국심에 불타는 국민들의 뜨거운 성원에 불티나게 팔려서 완판됐다는 국뽕 기사를 대서특필했어. 그런데 100년이 지나 발굴된 당시 문서들을 살펴보니, 1914년 기사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는 거야. 영국 정부는 그 당시 3억 5천만 파운드 어치 채권을 발행했는데, 실제로 판매된 액수는 목표 액수의 1/3도 안 됐어. 알고보니, 영국 정부는 돈도 돈이지만, 체면을 차리기 위해서 꼼수를 썼어. 중앙은행 관리직 두 명 개인 명의로 나머지 2억 3천여만 파운드 어치 채권을 비밀리에 인수하게 했어. 물론 그 돈은 중앙은행 돈을 썼지.

 

p.63

1차 대전 때 전쟁 자금 마련을 위해 금본위제를 버렸던 영국은 1925년부터 다시 금본위제를 시행했어. 그러다 대공황이 터지고, 독일은 물론이고 유럽 전체 은행권이 빠르게 망가지는 걸 보고, 영국은 1931년에 또다시 금본위제를 포기했지.

 

p.68~69

1944년 여름, 미국 북동부 뉴햄프셔주에 있는 브레턴우즈라는 시골 마을에서 연합국 경제 관료들이 모였어. 바로 한 달 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으로 2차 대전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그들은 전후 세계 경제 체제를 구상하기 시작했지.

 

어디요? 뉴햄프셔? 아니 왜 그런 시골에서...

 

여름이었고, 워싱턴과 뉴욕은 너무 더웠어. 그래서 미국 대통령 FDR이 선선한 뉴햄프셔에서 개최하라고 했어. 고릴라 마음이야.

 

아, 네.

 

그들이 모인 목적은 전후 재건과 세계 경제 발전을 위한 국제 통화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였지. 과거 대공황 시절의 교훈으로 무역 전쟁과 국가 간 환율 경쟁은 어느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영국은 각국이 출자한 자산으로 중립적인 청산 연합(Clearing Union), 즉 세계 중앙은행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미국은 금본위제에 미국 달러를 고정시키고 다른 국가들의 화폐들을 각기 달러에 고정시키는 체제를 제안했지. 결국 미국안이 채택됐고, 이게 브레튼우즈 협정이야. 

 

브레턴우즈. 잠깐, 근데 환율을 달러에 고정시키면, 다른 나라들이 통화 정책을 자유롭게 못 하잖아요?

 

달러와 고정환율 변동치는 플러스 마이너스 1% 여유를 뒀지만,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을 보완하기 위해 IMF라는 기관을 설립했지. 그리고 전후 재건을 위해 IBRD, 이제는 이름이 세계은행으로 바뀐 기관, 역시 그 때 만들어졌고.

 

p.84

1974년 7월 미국은 사우디와 극비에 협약을 맺어. 사우디가 세계 시장에 파는 모든 석유는 달러로 결제하고, 사우디는 그 수익금으로 미국 국채를 매입한다는 조건이었지. 이게 '페드로달러 리사이클링'(Petrodollar Recycling)이야.

 

p.86~87

이란은 북쪽으로 그 시절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어. 냉전시대 미국 입장에서는 천연자원이 풍부한 이란이 공산권 영향에 들어가는 건 말 그대로 최악의 시나리오였어. 그래서 미국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이란에게 첨단 무기를 제한 없이 팔았어. 그런데...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났고 이란의 친미 왕정 체제가 순식간에 무너졌지. 이때가 제2차 석유파동이야. 미국 입장에서는 석유파동을 넘어, 중동 메이저 산유국이 이슬람 근본주의 반미 국가로 하루아침에 바뀌어버린 게 더 큰 재앙이었지. 사실 이란 혁명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이 오늘날 전쟁을 안 하고 있을 수 있어.

 

p.88

2015년 예멘 내전은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때 사우디는 미국산 전투기와 화력으로 민간인 폭격을 서슴지 않았어. 민간인이 만 명 이상 사망했고, UN에서는 전쟁 범죄라고 규정했지. 하지만 예멘 민간인 폭격 문제는 흐지부지됐어. 왜? 사우디의 공습은 물론, 사우디의 예멘 참전 막후에는 미국이 있었으니까. 2015년 오바마 정권 때 미국은 사우디에 기록적으로 무기를 많이 팔았어.

 

p.115

수요와 부채. 이 두 바퀴가 지금 우리가 사는 체제의 원동력이지. 많은 경우, 특정 국가 경제를 파악할 때 총생산보다는 총수요를 더 중시해. 수요는 부채와 직결돼 있어. 그래서 우리는 부채기반 경제 체제에 살고 있지.

 

p.118~119

요즘처럼 신용카드와 스마트폰 결제가 보편화된 사회에서는 현금 사용도가 점점 줄고 있어. 이건 뭘 의미할까?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결국 돈은 장부라는 이야기지. 지폐 동전 같은 물리적 매개가 아니라. 누가 얼마를 빌릴 수 있고, 얼마를 빌렸고, 또 얼마를 언제까지 갚아야 하고 같은 정보들이 기록된 장부가 돈의 본질이지. 그러면... 화폐가 없는 아주 먼 옛날 부족사회를 잠깐 상상해 보자고. 우리는 그런 부족사회가 물물 교환만 했다고 생각하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아니, 그럼 물물 교환을 하지 않았어요?

 

물론 물물 교환도 했지. 하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의 '장부'를 갖고 있었어. 예를 들어, 일손이 부족한 A는 B의 도움을 받아. B는 C의 도구를 빌려. 이런 공동체 구성원 간 주고받은 호의와 친절을 잊지 않고 서로 보답을 했어. 그런 호혜성이 반드시 지켜질 거라는 '신뢰'와 '믿음'이 있으니까 공동체가 상부상조할 수 있었고, 여기서 우리는 돈이라는 개념의 근원적 용도를 볼 수 있어.

 

p.141

엘살바도르 화폐의 사용은 2001년에 중단됐다. 이제는 미국 달러와 비트코인이 엘살바도르의 법정 화폐로 통용된다.

 

p.148~149

최근에는 많은 테크 기업들이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텍사스주 오스틴 같은 곳으로 옮겨갔어. 그런데 말이야, 상업 부동산이 1/5가격에 매각되면 세금은 덜 들어오겠지? 재산세가 확 줄어들고. 일하는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서 소득세도 줄지. 가게들 줄줄이 문 닫으면서 판매세도 줄고. 그러면 지역과 주정부 세수 역시 더 줄어들고, 치안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져. 더 큰 문제는, 이런 상업용 부동산 가격 폭락은 건물주들만 손해 보는 걸로 끝나지 않고, 은행권 부실로 번질 수도 있어. 미국 오피스 빌딩은 통상 5년 고정금리로 대출이 돼. 2019년 코로나 이전에 금리가 정말 낮을 때 막차를 탄 건물주들은 2024년 만기가 돌아왔는데... 건물의 1/3 이상이 텅텅 비어 있으면 그 부동산을 재평가했을 때, 대출 연장을 해줄 은행은 많지 않아. 그 때까지 안 팔린 건물은 경매로 넘어가고 더 헐값에 팔리겠지. 이러면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로 인한 부실의 불씨가 얼마 후 은행권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야.

 

p.152~153

1980년과 오늘날의 미국경제, 아니 세계 경제는 많은 면에서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너무나도 달라. 가장 큰 차이점은 부채야. 미국의 국가 부채. 1980년 미국 정부 부채는 9140억 달러였어. 오늘날 미국 정부 부채는 36조 달러야. 그리고 이 액수는 나날이 불어나고 있어.

 

36조 달러... 한화 원화로 계산하면 5경 600조 원! 아니 도대체 0이 몇 개야! 오 마이 갓. 이건 도무지 실감이 안 되는 숫자입니다.

 

물론 경제 규모가 확장되는 한, 국가 총부채는 늘어날 수밖에 없어.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그러나 36조 달러는 부담이 되지. 이거 이자만 갚는 데도 미국 정부 예산 16% 이상을 사용하니까. 부채 이자 비용이 미국 국방비보다 많아.

 

p.187

비트코인은 2009년 1월 3일에 탄생했어. 그 날 채굴된 제네시스 블록에는 그 날짜 신문 기사 제목이 하나 새겨져 있어. '더타임스 2009년 1월 3일. 재무장관의 두 번째 은행권 긴급 구제금융 임박'

 

p.211

PoW를 제일 처음 고안한 사람은 아담 백(Adam Back)이야. 백은 1997년에 해시캐시(Hashcash)라는 프로글햄에서 스팸메일과 DDoS공격을 방어하는 개념으로 PoW라는 기발한 개념을 발명했지. 사토시도 이 사실을 비트코인 백서에 명시했어. 사토시는 PoW와 블록체인을 융합한 후, 거기에 '난이도 조정 알고리즘'을 만들어 추가하며 비트코인을 완성해냈지.

 

p.214

PoW는 전기와 연산력 같은 물리적인 자원을 활용해서 블록이라는 '결정체'를 생성해. 비트코인은 생성된 블록을 이어가며 순차적인 체인으로 지속돼. 블록체인 특성상, 비트코인의 과거는 조작이 불가능하고. 미래에 어떤 거래들이 이뤄질지, 또는 누가 BTC를 보상받게 될지 알 수 없어. 이렇게 현실 세계에서 이뤄지는 PoW는 디지털 세계에 있는 비트코인에게 '시간의 방향'을 만들어 줘.

 

오호~!

 

블록생성 기준으로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비트코인의 시간은 탈중앙화된 시간이야. 탈중앙화된 시간에는 탈중앙화된 시계가 필요해. 현실 세계에서 분 초 단위의 정확한 측정을 목적으로 하는 시계와는 성격과 용도가 달라. 그래서 블록타임은 대략 10분인 거야.

 

p.262-263

'행복 추구'라는 표현은 1776년 미국 독립선언문을 통해 널리 알려졌는데, 원래는 '행복 추구'가 아니라, '재산'(property)이었어. 생명, 자유 그리고 재산. 이 세 가지가 17세기 계몽주의 사상이 제시한 기본권이었으니까.

 

재산. 명확하고 좋네요. 알아듣기 쉽고. 사유재산은 오해 소지가 없잖아요? 근데, 왜 미국 독립선언문은 '재산'을 '행복 추구'로 바꿨죠?

 

가장 큰 이유는 노예제도였지.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토마스 제퍼슨은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인물이었어. 왜? 그가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동거했던 여성이 장인한테 물려받은 흑인 노예였어. 장인의 또 다른 딸이기도 했으니까, 처제라고 할 수 있지. 

 

오우~! 이거 재밌네요! 미국 건국 아버지의 막장 드라마!

 

제퍼슨은 노예제도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분위기상 대놓고 노예 주인들의 반발을 사는 언행을 할 수는 없었어. 그런데 '재산'이라는 표현을 독립선언문에 새겨 넣으면 노예가 재산이라고 당연하게 믿는 노예 주인들에게 훗날 정치적 명분을 실어줄 수 있다고 판단했지. 그리고 인권 특히 개인주의에 대한 고찰이 깊었던 제퍼슨은 개인마다 '행복' 또는 만족적인 삶이 주관적일 수 있다고 믿었어. 그래서 단순히 물질적인 재산을 넘어 각자가 원하는 삶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철학적인 표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 '행복'이라는 표현은 확장될 수 있는 개념이기도 하고.

 

p.289-290

2013년 3월에 사이프러스의 한 시민이 불도저를 몰고 은행 건물을 향해 돌진하려 했어. 그를 포함한 폭력적인 시위대의 요구사항은 지극히 정당했어. 자신들의 예치금을 돌려달라는 거였지.

 

뱅크런?

 

아니. 며칠 전 사이프러스 정부는 긴급 발표를 통해 10만 유로 이상의 예치금에서 47.5%를 '특별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동결시키고 압수해 버렸어. 눈 깜짝할 사이에 기습적으로 벌어진 일이었지.

 

네?!?! 아니 그게 무슨...

 

그때까지 2008년 금융 위기 여파에서 완전히 못 벗어나고 있던 사이프러스 정부는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었어. 75억 유로를 급히 마련 못하면, 사이프러스 은행권 전체가 붕괴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 그래서 정부는 '특별 세금' 징수를 통해 필요한 자금을 마련한 거야.

 

이게 실화입니까?!

 

이게 무슨 제3세계 개발도상국 독재 정권 하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야. 사이프러스는 EU 회원국이야. 은행 고객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해? 자고 일어났더니 자기 예금 절반이 사라졌고, 그 대신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거래 은행의 주식이 자기 계좌에 들어와 있으니까. 휴양지 사이프러스에 거주하던 많은 서유럽 부유층들에게 타격이 컸어. 사이프러스 국민도 아닌데 날벼락을 맞았지. 그래서 일부에서는 외국인들 자산을 겨냥한 꼼수였다는 음모론도 있었어.

 

노염치. 노양심. 완전 날강도네. 하룻밤 사이에 정부가 도둑질을 했네요.

 

우리가 금융 위기 때 종종 경험한 구제금융 제도 '배일 아웃' (Bail-Out)에는 꽤 익숙하지만, 채권자 손실 부담 제도 '배일 인'(Bail-In)이라는 개념은 약간 낯설 수 있지. 은행이 부도 위기에 처한 경우, 주주, 채권자 그리고 예금자들까지도 손실을 부담하며 은행을 구제하는 제도가 '배일 인'이야. 2008년 금융위기 수습 이후 미국에서도 관련 법이 만들어지면서 이런 '배일 인'이 유사시에 언제든지 실행될 수 있어. 아직까지 실제로 집행된 적은 없지만.

 

p.296-297

매주 수요일 블룸버그 통신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동일한 카페에서 커피 가격을 확인했어. 이걸 '베네수엘라 카페 콘 레체 지표'라고 해. 조사를 시작하고 첫 4년간 커피 한 잔 가격은 450볼리바르에서 350억 볼리바르로 올라갔어.

 

네?!?! 350억?!?! 가격이 몇 배로 뛴거야?!

 

이게 하이퍼 인플레이션이야.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니까, 베네수엘라 정부는 2021년 10월에 화폐 개혁을 단행했어. 3년 사이에 3년 사이에 두 번째로 시행한 화폐 단위 조정이었지. 단위에서 0을 여섯 개 지워버렸어. 하지만 그런다고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멈추진 않지. 아직도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어.

 

p.298-299

2021년 미얀마에서 쿠데타로 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섰어. 윈 코코 아웅(Win Koko Aung)이라는 반정부 인사는 모든 재산이 동결되고 지명 수배 명단에 올랐지. 하루 아침에 빈털터리 도망자가 된 그가 살 수 있는 길은 국경을 넘어 탈출하는 거였어. 국제 인권단체들은 그를 돕기 위해 BTC를 활용했지. 그가 구사일생으로 미국에 안전하게 망명할 수 있었던 건 BTC 덕분이었어. 금, 은 같은 보석이나 달러 뭉치를 들고 정글을 탈출할 수 있었을까? 군인들이나 괴한들로부터 안전했을까? 국경 없는 디지털 자본, 머릿속에 지닌 재산, 빼앗길 수 없는 탈중앙화 암호화폐 BTC는 이렇게 정치적 핍박을 받는 이들의 생명을 구하고 있어. 푸틴을 반대하는 러시아 반정부 인사들. 캐나다에서 시위를 하다 후원 계좌가 동결된 트럭 노조원들. 이들은 모두 BTC를 통해 연명할 수 있었어. 아, 줄리안 어산지 누군지 알지?

 

위키리크스.

 

어산지는 2011년부터 비트코인 예찬론자야. 어산지라는 인물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그가 위키리크스로 세상을 더 투명하게 만들며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잖아? 미국과 강대국의 금융 계좌 차단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던 위키리크스 역시 BTC 후원금으로 연명하던 시절이 있었어.

 

와... 사토시 나카모토가 진짜 여러 사람 살려냈네요.

 

아, 정작 사토시는 어산지와 위키리크스로 비트코인이 유명세를 타는 걸 부담스러워하며 반기지 않았어. 그 당시 비트코인은 걸음마도 제대로 떼지 못한 초창기였고, 아직 대중은 비트코인에 대해 전혀 모르던 시절이었어. 그런데 어산지와 연관되면 비트코인 이미지 하락도 문제지만, 각국 정부들에게 비트코인을 공격할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사토시는 걱정했지.

 

p.300-301

아프리카 최대 난민 수용 국가 우간다에는 160만 명 이상의 난민이 있어. 콩고 민주 공화국, 수단과 남수단에서 온 사람들이지. 그런데, 난민 대다수는 신분증이 없어. 이는 우간다 정부의 행정적 무능함에도 기인하지만, 난민들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해. 신분증이 없으면 은행 계좌도 갖지 못하고, 공공 지원을 받지 못하고, 무엇보다 정상적인 경제 생활이 불가능해. 그러니 열악한 난민들의 삶은 더 빈곤하고 처참해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지. UN 단체들은 난민들이 법적 신분 증명서를 갖지 못한느 건 인권 유린이라며 우간다 정부를 압박했지만, 진전은 별로 없었어. 그런데 최근 몇몇 비트코인 운동가들 덕분에 난민들에게 BTC가 알려지기 시작했어. 이제 난민들은 지원받은 보급형 스마트폰에 라이트닝 네트워크 앱을 깔고 경제 활동을 할 수 있게 됐어. BTC가 난민들에게 경제적 주권과 경제적 자립을 가능하게 해줬어. 이런 시도는 탈중앙화 체제와 분산컴퓨팅이 개인에게 어떤 힘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야.

 

p.317

흥미로운 점은 21세기 들어와서 금값은 S&P500보다 훨씬 수익률이 좋았어. 주식은 금이 주지 못하는 배당금도 있지만, 금을 이기지 못했어. 금 우습게 보면 안 돼.

 

헉! 말도 안 돼!

 

검색해 보니 사실이었다. 금값은 2000년부터 2024년까지 약 8.8배 올랐다. 그러나 S&P500은 배당금 등을 포함하더라도 5배 정도 됐다.

 

p.344-346

2009년 비트코인이 창시됐을 때, 블록 사이즈는 디폴트값 32MB였어. 하지만, 이게 초기 네트워크 수정 보완이 이뤄지던 시기인 2010년에 바뀌게 돼. 창시자 사토시가 블록 사이즈를 1MB로 줄여버렸어.

 

사토시 나카모토는 왜 그런 수정을 했죠?

사토시가 왜 블록 사이즈를 대폭 줄였는지는 그 당시 명시하지 않아서 추측이 난무하지만, 비트코인의 확산을 위해 이런 수정을 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지.

 

아, 블록 사이즈가 작아야 일반인들이 가진 컴퓨터로도 노드나 채굴자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 말 되네요. 근데, 블록 사이즈가 1MB면 좀 작긴 하다. 대량 거래 처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네.

 

비트코인 결제 속도는 7 TPS 정도라고 보면 돼. 참고로 신용카드 비자는 TPS가 1700 이상 나와.

 

탈중앙화 비트코인이 중앙화 네트워크인 비자만큼 나올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너무 느리면 그 또한 비트코인의 확장성에 장애가 되지 않나요?

 

맞아. 비트코인 창세기 시절에는 블록 사이즈 1MB 제한 조치에 대해 아무도 큰 관심을 갖지 않았어. 그런데 2014년 중반부터 이야기가 달라졌지. 전 세계적으로 늘어난 BTC 사용자들로 인해 1MB 블록 사이즈는 문제를 야기했지. BTC 거래는 나날이 늘어나는데, 거래 대기 시간은 점점 더 길어지고, 거래 수수료도 오르며 사용자들 비용 부담은 전체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어. 특히 특정 시간에 거래가 몰리면 더 심했고.

 

p.346-348

2015년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블록 사이즈 논쟁은 더 뜨거워졌고, 크게 두 진영으로 나뉘게 됐어. 블록 사이즈를 키워야 한다는 '큰 블록'파와 블록 사이즈를 유지하는 '작은 블록'파로. 각 진영이 내부적으로 동일한 의견을 갖고 있거나 단일대오를 형성하는 패거리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대략 둘로 나뉜 양쪽 진영에는 영향력이 막강한 저명인사들까지 힘을 보태기 시작했어.

 

힘을 보탰다고 하시면?

 

저명인사들의 의견과 돈.

 

그럼 어느 쪽이 더 강했나요?

아무래도 채굴업자들과 초기 투자자들이 연합한 '큰 블록'측이 훨씬 더 조직적이고 자금도 압도적으로 많았지. 그런 면에서, 초반부터 이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이 명확했어.

 

잠깐, 2015년이면 사토시 나카모토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죠?

맞아. 하지만, 사토시는 공동체를 떠나기 전에 비트코인 초창기 개발자 중 한 명인 개빈 앤드레슨(Gavin Andresen)을 '후계자'라고 암묵적으로 지명했어. 

 

대박! 무협지가 따로 없네. 그래서 후계자 앤드레슨은 어떤 입장이었나요? 블록 사이즈를 원래 그대로 보존하자?

 

아니. 하드 포크를 통해 비트코인 블록 사이즈를 늘리자고 2014년 말에 공론화하고 대안을 제시한 사람이 앤드레슨이었어. 왜? 2008년 공표한 비트코인 백서에 '개인 간 거래 현금체제'라고 명시 돼있으니까.

 

헉! 사토시 나카모토는 이 뜨거운 논쟁에서 그 어떤 입장 표명도 없었나요?

 

침묵을 지켰지.

 

p.352

결국 '큰 블록'파는 비트코인 브랜드를 지키면서 기존 네트워크 프로토콜을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달았지. 그래서 2017년에 비트코인에서 하드 포크로 만들어진 게 BCH야.

 

BCH? 아, 비트코인 캐시.

 

비트코인 캐시는 블록 사이즈도 32MB로 키웠고,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현금처럼 교환 수단에 중점을 둔 암호화폐였어. 시장은 BCH의 탄생을 환영했어.

 

진짜요? 의외네요.

 

불확실성이 없어졌으니까. 비슷한 시기에 비트코인에도 변화가 있었지. 세그윗(Segwit)이라는 소프트 포크를 통해 기존 1MB 사이즈를 2MB 이상으로 늘릴 수 있는 수정이 비트코인 공동체에 의해 채택됐지. 세그윗은 얼마 후 소액결제 솔루션 라이트닝 네트워크가 비트코인에 탑재되는 기반이 되기도 했어. BCH와 세그윗으로 2년 넘게 이어진 '블록 사이즈 전쟁'은 2017년에 끝날 수 있었어.

 

p.362-364

'Sam Bankman-Fried'를 검색했다. 1992년생 MIT출신. 몸매는 초기 비만 단계. 초롱초롱 빛나는 검은 두 눈. 무중력 상태로 폭발하듯이 퍼져나가는 머리카락. 구겨진 티셔츠에 목수 반바지. 옷을 매일 갈아입는지, 샤워는 제때 하는지 의심스러운 몰골의 SBF는 만화에 나올 법한 전형적인 슈퍼 너드 캐릭터였다.

 

천재 수학 소년처럼 생겼네요. 금수저?

 

음... 완전 금수저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고. SBF는 부모가 둘 다 스탠포드 법대 교수고, 명성 있는 교육자들이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지. 고등학교 때부터 수학 천재로 인정받아 제인 스트리트 캐피털(Jane Street Capital)이라는 최정상급 고유계정거래(proprietary trading) 회사에 들어가서 ETF 트레이딩을 했지.

 

제인 스트리트 캐피털?

 

엘리트 회사지. 거기는 아이비리그 나온 친구들도 면접보기 힘들어. 부모 찬스, 삼촌 찬스로 들어갈 수 있는 회사가 아니야. 그 회사는 그냥 연봉 엄청 많이 주고 수학 천재들만 뽑아. 그리고 아주 창의적인 투자 모델로 위험한 투자 또는 투기로 큰 수익을 내는 회사지. SBF는 제인 스트리트를 거치며 전통적인 자본시장을 익힐 수 있었고, 동시에 당국의 엄격한 규제 감독을 받지 않는 고유계정방식 자금 운용의 매력을 알게 됐지.

 

헉! SBF는 첫 직장을 통해 사기의 기본을 다졌군요!

 

아, 오해하지 마. 정부의 눈을 피해 사기를 치는 방법을 배웠다는 뜻이 아니야. SBF는 위험을 감수하며 단기적이고 투기적인 거래로 거액의 수익을 내는 방법에 매료됐다는 뜻이지. 얼마 지나지 않아, SBF의 수학적 재능을 알아본 에스토니아 억만장자이자 스카이프(Skype) 공동 창업자 얀 탈린(Jaan Tallinn)의 투자로 2017년에 알라메다 리서치(Alameda Research)라는 자산 운용사가 설립되지. SBF는 알라메다를 통해 암호화폐 거래, 특히 당시 만연하던 미국과 일본의 BTC 가격 차이를 아비트라지해서 막대한 수익을 챙겨. 그런 면에서 알라메다는 헤지펀드에 가까웠지. 이 성공을 기반으로 SBF는 2019년에 FTX를 창업해. FTX는 설립 2년 만에 거래량 기준으로 세계 3대 암호화폐 거래소가 됐고, 사용자가 100만 명을 훌쩍 넘었어. SBF의 나이 27세였지.

 

p.367-368

FTX라는 회사가 실력 없는 맹탕은 아니었어. SBF는 약 20명 정도의 인원으로 18개월도 안 되는 기간에, 참신한 기능과 안전성이 보장된 완성도 높은 플랫폼 FTX를 만들어 냈어. 이런 업적은 비극적인 FTX의 말로와 별개로 아직도 업계의 전설로 회자되지.

 

헉, 개발자 20명으로?

 

알라메다 시절에 전 직원이 20명 정도였어. 이 인력으로 SBF는 FTX를 만들었어. 참고로 그 당시 유럽의 대형 거래소 크라켄(Kraken)은 보안 인력만 100명을 넘었어. 

 

오~! SBF 패거리는 레벨이 다른 선수들이었군요. 알라메다는 투자사를 운영하면서 단기간 내에 FTX도 만들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네요.

 

물론 그게 문제가 됐지. 이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알라메다 투자자들은 SBF와 싸우고 지분을 털고 나가기도 했어.

 

주주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빡치겠네. 알라메다 인력으로 다른 회사를 준비했으면.

 

그것도 주주들 모르게. 사실 이 문제는 사소하게 넘어갈 사안은 아니었어. 그런데 알라메다는 SBF가 지분 90% 이상을 소유한 비상장 회사였고, 항의한 소액 투자자들도 손실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은근슬쩍 넘어갈 수 있었어. 그러나 이런 SBF의 의사결정 방식은 나중에 FTX의 몰락을 초래하게 되지. 

 

p.370-375

2022년 1월이 되면서 암호화폐 열기는 식고 있었어. BTC 가격이 하향선을 타며 시장도 지지부진했고. 심지어 문을 닫는 플랫폼과 거래소들도 꽤 많았어. 그런데 FTX는 오히려 사업을 더 확장했지. 거액을 들여 미국의 가장 큰 생방송 이벤트인 슈퍼볼에 FTX 광고를 내기도 했어. 그리고 무엇보다, 실제로 FTX는 돈을 계속 벌고 있었어.

 

오~! 우리가 익숙한 전형적인 IT기업 사기꾼들이랑 다르네요.

 

2022년 5월 테라 루나 사태로 많은 투자사들과 회사들의 연쇄 부도가 일어났어.

 

아... 테라 루나. 권도형. 완전 개잡놈. 그건 인성도 대놓고 쓰레기였죠. 코리안 졸부 사기꾼. 근데 또 지금 보면, SBF에 비하면 잡범도 못되는 피라미네.

 

여튼, SBF는 사재를 털어 테라 루나 사태로 위기에 처한 암호화폐 대출 플랫폼 보이저 디지털(Voyager Digital)이랑 블록파이(BlockFi)를 배일 아웃 해줬어.

 

네?! 개인이 금융 기관들을 '배일 아웃'했다고요?! 아니 계열사나 관계사도 아닌데?

 

보이저에 5억 달러. 블록파이에 2억 5천만 달러.

 

헉... SBF는 자기가 연준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죠?

 

내가 그랬잖아? SBF는 특이하고 매력 있는 인물이라고.

 

그럼...  FTX는 어떻게 망가진거죠?

 

2022년 11월 2일 알라메다 내부에서 나온 문건으로 코인데스크 기사가 하나 떠. 알라메다 재무제표에 기재된 146억 달러의 자산 중 대부분은 FTX의 고유 토큰 FTT로 채워졌다는 내용이지. 알라메다는 즉시 입장을 표명했지. 유출된 대차대조표는 완성본이 아니라고. 그 기사가 나왔을 때만 해도 FTX 고객들이나 시장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 왜? 알라메다와 FTX는 SBF가 소유한 회사들이지만, 둘은 서로 무관하고 각기 독립된 기업이라고 생각했으니까. 11월 6일,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는 보유 중이던 대략의 FTT를 전부 매도한다고 공지해. 바이낸스는 FTX에 초기 투자를 하고 지분을 갖고 있던 기업이었어. 그러자 시장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눈치챘지. 11월 6일에만 고객은 FTX에서 40억 달러를 인출했어. 그리고 11월 7일에는 60억 달러를. 11월 8일부터 FTX 고객 자금 인출이 지연되다가, 결국 인출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까지 갔어.

 

아니 FTX는 부분지급준비제를 하는 은행도 아닌데 어떻게 뱅크런이 생기죠?

 

그러니까 더 황당했지. FTX가 뱅크런을 견디지 못하고 휘청거린다는 소문이 빠르게 돌았고, 이날 오후에 바이낸스는 유동성 위기에 처한 FTX를 인수할 의향이 있다고 밝혀. 그러나 바로 다음날인 11월 9일, 바이낸스는 FTX 인수를 포기한다고 발표해. 그때부터 시장은 물론 산업 전체가 패닉에 빠졌어. 바이낸스가 하루만에 인수를 포기할 정도면, FTX 재정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조차 안 갔고, 그 와중에 SEC와 미국 법무부가 FTX를 조사 중이라는 속보까지 나왔으니까. FTX에는 재정 문제가 없고 시중에 도는 근거 없는 소문은 라이벌 거래소의 공세라고 SBF는 투자자에게 설명했지. SBF는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를 빨리 수습하기 위해서는 FTX의 기초 자산과 담보를 매각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지 않다고 밝혔어. 왜? FTX 고유 토크 FTT는 사태 초기 72시간 만에 가격이 80%이상 폭락했고, 그 당시에는 암호화폐 시장 자체가 좋지 않아서 BTC와 ETH 가격 역시 저조했으니까. 시장은 SBF의 해명을 믿지 않았어. 며칠 후, 정확하게는 11월 11일 월스트리트 저널은 알라메다가 FTX 고객이 위탁한 자금을 동원해 위험 부담이 높은 파생상품 거래에 활용했다는 기사를 써. 같은 날, SBF는 FTX와 알라메다의 CEO에서 사임했고, 두 회사는 파산 신청을 했지. 그러자 미국 제도권 언론은 일제히 FTX에 대한 보도를 실시간으로 중계했어. 무분별한 억측 루머까지 섞어가며 SBF를 사악한 빌런으로 만들어내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지. 더 기가 막힌 건, 21세기 신화 FTX가 무너지는 데는 고작 9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거야.

 

FTX의 삼년 천하!

 

당국 조사로 FTX와 알라메다에 대한 치부는 적나라하게 드러났지. FTX 장부에서 고객 자금 80억 달러가 비어 있었어. 진짜 웃기는 건, SBF도 FTX사태가 터질 때까지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거야. 그리고 그 후에도 그 액수가 왜 비어 있는지 몰랐어. FTX 청산인으로 들어온 구조조정 전문가 존 레이는 '전례가 없는 파국적인 사례'라고 했지. 2001년 엔론 사태 처산을 책임졌던 레이가 이런 말을 할 정도면 말 다한 거야. FTX가 얼마나 웃긴 회사였냐 하며, FTX에는 중요한 의사결정 기록만 없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직원 명단도 없었어. 동네 구멍가게처럼 운영된 FTX는 엉망진창이었지.

 

헉! 그럼 회계 부정으로 날아간 엔론보다 FTX가 훨씬 더 복잡했겠네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복잡하지는 않아. FTX는 거래소 고객 돈을 마음대로 관계사 알라메다에게 빌려주고, 알라메다는 이 자금을 담보로 더 많은 자금을 빌려서 위험한 투자 투기를 일삼은 거야. FTX는 초기부터 파생상품 거래를 일반 사용자들이 쉽게 쓸 수 있는 UI로 각광받았다고 했지? 시작부터 FTX는 파생상품에 주력한 플랫폼이었어. 그런데 파생상품 거래라는 건 제로섬 게임이야.

 

그렇죠. 선물, 옵션, 스왑 같은 게 파생상품들이니까. 승자와 패자만 있지, 파이를 키우는 게임이 아니죠. 바카라처럼 완전 제로섬이죠.

 

경쟁에는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생산적인 교환적 경쟁이고, 또 하나는 소모적인 생물학적 경쟁이지. 제로섬 게임은 후자야. 생물학적 경쟁은 여러모로 파괴적일 수 있어. 상대를 꺾거나 제거해야 최종 승자가 되니까. 좋지 않아.

 

잠깐! 그럼, 알라메다는 FTX 고객 돈을 가져다 그걸 담보로 돈을 더 빌리고, FTX 고객들과 반대 거래를 했군요!

 

바로 그거야! 이보다 더 큰 이해충돌은 역사적으로 보기 어렵지.

 

p.378-379

SBF가 구속 체포된 후, FTX 청산작업이 한창 진행될 때, 피해자들의 청구권에 대한 시장이 조성됐어.

 

청구권에 대한 시장이 조성됐다고 하시면? 청구권을 사고팔 수 있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지. 정크본드 시장처럼. 심지어 한때는 95% 이상 디스카운트 가격에 사겠다는 세력도 있었지. 그리고 실제로 그런 거래 몇몇이 이뤄지기도 했어. 

 

헉! 사람들이 100달러어치 청구권을 5달러에 팔았단 말인가요?

 

그때는 FTX사태에서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것 같은 분위기였어. 아니, 그런 분위기를 청산인 측과 당시 언론이 조장한 면이 크지. 그런데 약 1년 후 밝혀진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았어. FTX는 자금 운영을 잘못해서 유동성 위기로 몰락했지만, 자산이 없는 회사가 아니었으니까. FTX에 돈이 넘쳐날 때, FTX는 여기저기 유망 스타트업들에 초기 투자를 많이 했어. 그리고 그 중 대박이 몇 개 나왔지.

 

오...! 또 이런 반전이.

 

2024년 3분기에 마무리된 청산 작업에서 FTX는 160억 달러를 확보해서, 피해 고객 자금을 모두 이자까지 쳐서 돌려줄 수 있다고 발표했지. 물론 여기에는 단서가 붙었어. 2022년 11월 초 BTC 가격 1만 6천 8백 71달러로 계산해서. 

 

와! 보상이 이뤄졌군요. 근데 그 가격으로 보상하는 게 공정한지는 잘 모르겠네요.

 

FTX 사태는 암호화폐 산업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와 사회에도 큰 충격과 여파를 남겼어. 유수 암호화폐, 분산장부기술 관련 기업들의 연쇄 부도가 이어졌고, 심지어 FTX와 연관도 없던 다른 대형 거래소들도 큰 타격을 입었어. 2023년 3월에는 FTX와 거래하던 실버게이트 은행도 부도가 나며 넘어졌지.

 

p.437

"우주는 네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걸 알겠지. 그러면 이제는 네 믿음 체계를 재배열해야 돼. 네가 우주를 재배열할 수는 없으니까."

 

- 아이작 아시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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