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속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이유도 없어]-스포주의
영화 미스트를 본 뒤엔 잠시 입을 다물어야 한다.
문학과 영화를 잘 모르고, 일반 비문학서적에 익숙한 나는 교훈을 찾으려 하는 경향이 있는데, 요근래 생각이 드는 건 교훈을 찾기보다 질문을 찾는게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질문 하나를 찾기만 하더라도 감상한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겠구나 라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 생각에 이 영화의 질문은 간단했다.
어떤 이유도 없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불행이 당신을 찾아올 때, 당신이 그 불행에 맞서 최선을 다했다고 해보자.
그럼에도 운명이 당신을 배신할 때, 당신은 당신의 투쟁을 어떻게 생각할건가?
영화는 평화로웠던 집안과 마을에 갑작스럽게 강력한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시작된다.비바람 뒤에는 알 수 없는 안개가 끼고 있었다. 화가로 일하는 데이빗은 손사왼 집을 수리하기 위해 어린아들 빌리와 그닥 사이가 좋지 않은 옆집 변호사 노튼과 함께 근처 마트로 향한다.
마트에서 물건을 구매하려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노인이 인중쪽에 피를 줄줄 흘리면서 자신이 다친건 안개 때문이라며 허겁지겁 달려온다. 그리고 자신의 지인도 그 안개에 희생되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이고 그 사이 밖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그리고 전혀 존재를 파악하기도 이해하기도 힘든 괴물의 공격을 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감금된다.
이 마트 속엔 자신의 어린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며 나가야 한다는 아줌마, 상식과 논리만을 믿는 변호사, 이 사태가 난건 신의 노여움 때문이라며 반쯤 풀린 눈을 하고 있는 선동가, 그리고 어떻게든 최선(이라고 자신은 생각하는)의 방법으로 해결해나가려는 데이빗 같은 사람들 등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상식과 논리만을 믿는 변호사는 데이빗이 SF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고 비난하며, 문 밖을 나서지만, 얼마안돼 죽고만다.
처음부터 모든 게 신의 뜻이라며, 선동하였던 카모디 부인을 사람들은 처음엔 신뢰하지 않았지만, 밖에 나갔던 사람들이 죽고, 그에 따라 공포심이 커지며, 내분이 일어나자, 그녀의 선동에 휩쓸리고 만다.
데이빗은 자기 나름대로 최선의 안을 짜내 노력하고 또 노력하지만, 자신 또한 그 불행을 빗나가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가까스로 빠져나간 5명이 탄 차 안에서 자신의 아들을 포함한 4명을 먼저 살해하고, 자신은 괴물에게 잡혀먹히려 한다.
그런데, 그 다음 몇 분의 시간도 되지 않아, 군대가 괴물을 사살하고, 처음에 자신의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나가야겠다던 아줌마가 피난 군용 트럭에 탑승해 지나가는 걸 보게된다.
여기서 작가는 질문을 한다.
1. 당신이 정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주변사람 모두들 인정한다. 이 이상 노력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운명이 당신을 배신해서, 당신의 노력이 헛되다는걸 보여준다. 오히려 최선의 노력을 한 사람보다 그냥 도망친 사람이 더 좋은 결과를 받았다. 그럼 당신은 당신의 투쟁을 어떻게 봐야할까?
2. 삶이라는 거 전혀 앞이 보이지도 않고, 이유도 알 수 없는데, 운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데, 그럼 우린 어떻게 살건가?
삶이란 게 우린 이유도 모르고 태어난다. 물론 생물학적으로는 부모님의 성교에 의해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서 태어난다고 하지만, 우리는 전혀 앞이 보이지도 않고 이유도 알 수 없이 태어난다. 외부적으로 주어지는 이유는 있으되, 자발적이고 내부적인 이유는 없다.
맞을지 모르겠지만, 여기저기 주워들은 말로 유식한 척 하며, 포장하자면 하이데거의 '내던져진 존재'란 얘기다.
태어날 때, 부잣집 도련님으로 내던져질 지, 아니면 고아원에 내던져질지 아무것도 모르고 이유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간다.
고아원에서 엄청 열심히 노력한다. 그렇지만, 나아지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열심히 노력한게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않고 여자만 만나고 다니던 부잣집 도련님이 옆을 지나가며 저런 거지새끼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 우리는 삶의 의미가 없는걸까?
우리는 왜 살며, 왜 산다는 건 어디서 찾을 수 있는걸까?
우리가 하는 노력, 즉 인간적 투쟁에서 찾을 수 없다면, 카모디 부인처럼 신에게서 모든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만, 카모디 부인도 성경이라는 문헌에 의존할 뿐 신에게서 의미를 찾는다고 보기 힘들다.
알 수 없는 게임에 초대됐다.
아마 한동안은 이 게임의 해답을 찾기 힘들거 같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에 빠진 것처럼 (0) | 2017.09.09 |
---|---|
영화 머니볼 (0) | 2017.08.13 |
어 퓨 굿맨 (0) | 2017.05.06 |
장기왕 - 가락시장은 어떻게? (0) | 2017.02.20 |
더 킹 - 내부자들 (0) | 2017.02.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