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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장기보수시대

by Diligejy 2017. 10. 10.

1. 두번째 페이지인 12페이지에서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단어를 보고 깜짝 놀랐다.


2. '피케티는 1퍼센트의 초세습사회 옆엔 9퍼센트의 초능력주의 사회가 있다고 꼬집는다. 90퍼센트는 정말 초능력이 있어야 초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다.'라는 문장


그렇다면 이 '초월'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초특급'방안은 무엇인가?


3.

21페이지


익명을 요구한 다른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대다수 한국 대기업이 10대 90 인재 채용 법칙을 따르고 있다고 귀띔해준다. "실제로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양질의 인재는 10명입니다. 우선 100명을 뽑습니다. 최소의 임금을 주면서 우선 100명을 일 시킵니다. 100명끼리 경쟁을 시켜서 10명을 가려냅니다. 그 10명은 앞으로 기업에서 정예 요원으로 끌고 갈 인력입니다." 10명을 가려내기 위해 100명을 뽑는단 얘기다. 90명은 의도적으로 도태시킨다.


라는 문장.


9월 채용시즌이었고, 어디선가 취업이 되었다는 소식이 가끔씩 들려온다. 

내 취업이 언제 될지는 의문이지만..

그렇게 축하해주는 이에게, 90명은 들러리니, 이제 진짜 경쟁 시작이라고,

이제야 제대로 된 채용 경쟁이 시작된거라고 말해주어야 하나?


의도적으로 도태되는 사람들에게 기업의 의미와 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우리는 어디를 보고 살고 있나?


지금 도서관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사람들의 책상위엔 SSAT, HMAT, NCS 서적이 가득하다. 과연 그들에게 이 시험은 어떤 가치가 있나?


4.

29페이지에서 신기주는 한국경제의 고용문제 해결방안을 '재생산'이라고 얘기한다.


과연 어떻게 해야 재생산을 이룰 수 있는것인지 잘 모르겠다.

무엇이 재고용을 위한 재생산이 될 수 있는건가?.

블루오션을 찾으라는 얘기같은데, 그 구멍이 어디인가.


하긴 쉽게 찾아졌다면 이미 다 찾고 막았겠지.


5.

35~36페이지


'자본주의 사회는 시장에 참여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 의심의 연쇄망으로 이뤄져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 힘이 작용한다. 불신에 바탕한 신뢰와 합리성에 기초한 이기심이다. 사람은 사람을 신뢰해야만 시장 활동을 할 수 있다. 누군가를 믿지 않으면 시장에서 두부 한 모도 살 수 없다. 상대를 신뢰하려면 먼저 의심부터 해봐야 한다. 상대가 합리적 이기심으로 자신을 이용할지도 모른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다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믿게 될 때 비로소 신뢰가 생긴다.'


라는 문장을 음미해본다.


소화가 곧장 되진 않는다. 


내 식대로 소화해보자면, 


'거래를 해야 하는 상대는 처음 보는 사람이다. 상대도 나도 합리적인 이기심을 가지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할 지 모른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의심이 시작되고 거듭 의심한 끝에 신뢰가 생겨난다. 자본주의는 그 지점에서 작동한다. 물론 의심하는 과정 없이 신뢰한다고 해도 이루어질 수 있다. 상대의 이기심에 먹히지 않길, 상대가 공정한 게임을 하는 사람이길 바랄 뿐이다.'


6. 

37페이지


'자본주의에선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려고 자신이 피해를 뒤집어쓰는 게 오히려 비도덕적이다.'라는 문장.


과연 자본주의만 그럴까?, 


7.

42페이지

'벤처기업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아이디어로 내수 시장에서 단박에 대박을 터트리기를 바란다면 그건 창조경제가 아니라 로또 경제다'라는 문장.


창업하고 싶은 사람은 명심 또 명심.

8.

44페이지


'제조업 하청 경제는 가혹했지만 그나마 기술력 향상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이뤘다면 건설 하청 경제는 오직 착취뿐이었다. 지금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기업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제조업체인 건 우연이 아니다. 건설업체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둘 다 하청 경제 구조를 기반으로 성장했지만 양쪽의 작동 원리가 상반됐기 때문이다.'


... 산업의 라이프사이클 영향이 있다고 반론을 펼칠 수도 있겠지만, 착취가 심하다는 점에 대해선 반론하기 힘들다. 


9.

49페이지


'제조업 하청 경제에선 원청 업체도 종종 기술력 있는 하도급 업체 앞에선 눈치를 보게 된다. 해당 업체가 경쟁사에 납품하게 되면 품질 경쟁에서 뒤처지기 때문이다. 지식 기반 하청 경제에선 품질 기준이 주관적이다. 상부 원청 업체는 품질을 가늠할 수 있는 눈도 부족하다. 그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하청 업체를 바꿔서 긴장시키거나 하청 업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비용을 깎는 데만 익숙하다. 이런 게 반복되면 지식 기반 하청 업체들은 도무지 성장할 수가 없다. 악순환이 일어난다. 원청 업체는 늘 불만이다. 하청 업체는 늘 도토리 키재기다. 고만고만하니까 결국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일을 따내려는 하청 업체들이 생겨난다. 비리가 발생한다. 건설업 하청 경제에서 일어났던 악순환이다.'


그렇다면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건가?


p.55

대형마트의 진짜 문제는 골목 상권 침해가 아니다. 대형마트는 분명 유통 혁신이다. 중간 유통 과정을 줄여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한테 헤택을 줄 수 있다. 모든 혁신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건 아니다. 대형마트의 진짜 문제는 과잉 수요를 당연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소비자는 대형마트에서 대량소비를 한다. 그나마도 부채를 통해 일어나는 수요다. 이런 식의 대량 소비는 산업의 재고를 소비자가 떠안게 만든다.  


p.63

대우의 반격이 단지 억울함과 절통함 때문에 하루 이틀 사이에 벌어진 전투가 아니란 뜻이다. 수년 동안 권부 안에 인맥이 만들어지고 반박 논리와 전략이 설계되고 정치적 조율까지 거친 끝에 개전된 준비된 전쟁이다. 김우중 회장은 유명한 바둑광이다. 수십 수 앞까지 내다보지 않고선 출수하지 않는다.


대우 반격의 목적도 명확하다. 단순한 한풀이가 아니다. 모든 반격 논리의 소실점엔 글로벌 청년 사업가(Global Young Business Manager)프로그램이 있다. 김우중 회장이 베트남에서 운영하고 있는 청년 사업가 육성 프로그램이다. 대우그룹의 신입 사원 교육 프로그램을 그대로 옮겼다. 대우그룹은 사라졌지만 청년 대우인은 계속 배출되고 있는 셈이다.


p.69

원래 국가 경제는 정부와 기업과 가계가 함께 3인 4각 경주를 벌이는 것과 같다. 기업과 정부 사이의 불신이 커지면서 한국 경제는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기우뚱거리는 신세가 됐다. 더 이상 어떤 기업도 사업보국을 기치로 내걸지 않는다. 정권은 틈만 나면 기업을 매질하기 바빠졌다. 서로의 머리에 총부리를 겨눈 사이가 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아무리 투자를 종용해도 기업은 현금만 틀어쥔 채 꼼짝도 안 하는 상황이다. 결국 피해는 가계에 돌아가고 있다. 팽팽한 관계가 돼버린 기업과 정부가 만만한 가계만 쥐어짠다. 일자리는 줄고 세금만 늘었다. 대우 해체의 진짜 후유증은 이것이다.


p.73

2000년대엔 "행복은 당연히 돈으로 살 수 있다"가 정답이었다. 다만 행복의 가격이 자꾸 비싸진다는 게 흠이었다.


p.74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1인당 국민총소득은 2만 5,000달러를 넘었다. 그리고 행복에 관한 정답도 서서히 바뀌었다. "예전엔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돈이 없어서 살 수 없다"였다.


p.75~76

언제나 사람들은 행복해지고 싶다. 디플레이션 시대라고 예외는 아니다. 과거에 돈으로 행복을 샀던 시절의 기억도 아직 남아있다. 결국 빚을 갚고 남은 푼돈으로 잡동사니들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이때 바로 SPA 브랜드들과 이케아나 무지 같은 리빙 브랜드들이 등장한다. 3만 달러 시대와 디플레이션이 이케아 침공을 불러온 셈이다. 지금 행복에 대한 정답은 이렇다. "예전엔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었다. 예전의 값비싼 행복을 다시 살 수 없단 걸 안다. 지금은 가진 돈만으로 살 수 있는 값싼 행복이라도 사겠다."


자본주의는 소비를 통해 행복을 거래한다. 사람들은 소비 품목을 바꾸면서 행복을 거래한다. 1만 달러 시대에 사람들은 차를 바꾼다. 2만 달러 시대에 사람들은 집을 바꾼다. 3만 달러 시대에 사람들은 가구를 바꾼다. 3만 달러 시대가 대차대조표 불황으로 디플레이션과 결합했을 때가 문제다. 이땐 값비싼 이탈리아 대리석 가구 대신 이케아와 무지의 잡동사니 가구를 사들인다. 동시에 향수 문화 상품들이 팔린다. 영화 [국제시장]과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가 전형적이다. 그렇게 H&M 홈 잠옷을 입고, 자라홈 향초를 켜놓고, 자주 베개를 베고, 무지 이불을 덮고, 이케아 침대에 누워서 좋았던 인플레이션 시대를 추억하게 된다. 잡동사니의 역습이다.


물론 한국경제가 이걸 돌파해낼 수도 있다. 4만 달러 시대가 되면 아내나 남편을 바꾼다. 그때는 "사고 또 사들이다 보니 진정한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더라"로 정답이 다시 바뀌기 때문이다.


p.84

익명을 요구한 화이자 관계자는 말한다. "혁신에 대한 보상이 없으면 신약 개발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제약 회사들은 발병률이 높고 치료가 어려운 질병에 대해선 반드시 치료제를 개발하려고 노력합니다. 암과 에이즈가 극복되다시피 한 것도 보상이 커서였죠." 덧붙인다. "화이자는 거대 회사인데도 위험을 감수하려는 문화가 자리 잡은 독특한 기업입니다. 보상에 대한 믿음 때문인 거죠. 그걸 알기 때문에 주식시장도 화이자를 인정해줍니다. 그런 혁신 체계가 복제약 때문에 깨져선 안 됩니다. 결국 어떤 신약도 개발되지 않게 될 수 있어요." 비아그라도 그런 도전이 만든 행운 어린 실패였다. 아직도 도전보단 복제에 집착하는 국내 제약 회사들한텐 찾아오지 않을 행운이다. 이제 한국의 제약 회사들은 화이자의 비아그라 시장을 나눠 가졌다. 동시에 화이자의 신약 개발 숙제까지도 같이 짊어지게 됐다. 정작 발기약 시장에 뛰어든 제약사 중에 신약 개발 비율을 크게 늘린 곳은 거의 없다. 한국 제약 산업의 한계다. 발기를 시켜줬는데도 생산을 거부한다면 거세될 뿐이다. 발기한 자의 숙명이다.


p.92

인사이더는 개인의 양심이 아니라 집단의 양심이 만들어낸다.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집단의 선택이란 얘기다.


그런데 사회적 인식이 성숙해 있지 않으면 설사 개인이 급진적 폭로를 한다고 해도 무시되기 일쑤다. 설마 하며 믿지 않거나 양심선언을 한 인사이더가 사회적으로 유폐된다. 대중은 믿고 싶은 걸 믿기 때문이다. 원래 사람들은 개인의 자유의지를 믿고 싶어 한다. 자신의 선택이 조작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p.92

인사이더가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인사이더에 대한 사회의 반응이 세상을 바꾼다.


p.93

미성숙한 자유주의 국가일수록 정부나 기업은 개인의 자유의지에 대한 환상을 부각한다. 국가는 개인의 복지를 책임져줄 능력이 없다. 개인 탓으로 돌리면 편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란 오직 소비의 자유뿐이다. 기업은 개인이 그 자유를 남용하길 원한다. 미국에서 담배 소송은 이 환상을 깼다. 인사이더가 증명한 건 담배 회사의 악마성뿐만이 아니었다. 자유의 가식성도 드러냈다. 담배 피울 자유 따윈 없다. 애당초 자유 따윈 없었기 때문이다.


p.98

벤처캐피털리스트인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코리아 대표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벤처는 엘리트 비즈니스다." 한 해 동안 한국의 유수 대학교 컴퓨터 공학과에서 배출되는 졸업생은 500명 남짓이다. 이 중 극소수만 벤처 시장으로 흘러든다. IT 스타트업을 하기 위해선 유능한 개발자 확보가 최우선이다. 아무리 좋은 기획이 있어도 유능한 개발자가 없으면 군고구마 장사를 하겠다고 나서면서 정작 고구마를 구울 줄 모르는 꼴이다. 유능한 개발자를 초빙하는 방법은 결국 돈 아니면 인맥이다. 창업 단계에선 돈이 없다. 결국 기획자와 개발자가 서로 인맥을 쌓을 수 있는 곳에서만 성공적인 창업을 시도해볼 수 있단 뜻이다. 그런 곳은 몇몇 대학이나 컨설팅 회사나 연구실뿐이다. 엘리트들만의 요람이다.


p.120

영국의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쿠퍼는 [국가들의 분열](The breaking of Nations)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전 세계적으로 어느 지역에선 근대 국가가 극복돼가고 있고, 어느 지역에선 근대구각가 강화돼가고 있고, 어느 지역에선 근대국가가 건설되고 있고, 어느 지역에선 근대국가가 내파돼가고 있다." 한국은 내파 국가다. 더 이상 근대국가 모델을 국민한테 강요할 수 없는데도 그걸 통해 여전히 국민 동원을 해야 하는 나라의 한계다. 이중국적ㅇ ㅔ대해서도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국적은 신성하지 않다. 국가가 한낱 기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민족국가 개념은 한국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당대의 논리였지 현대의 진리가 아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 따위를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게 아니란 말이다. 애국심보다 중요한 건 한국이란 사회 공동체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다. 한국은 한반도에 존재했던 여러 국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국적은 강요된 의무가 아니라 자발적 선택이어야 한다. 한국인이 되고 싶어야지 한국인인 게 형벌이어선 안 된단 얘기다. 정치경제학자 수잔 스트레인지는 '국가의 퇴각'을 이야기했다. 미래는 국가보다 더 큰 존재인 시장이 정부를 지배하는 시대다. 앞으로도 국적에 집착하다간 안현수도 김종훈도 다 놓친다. 한국은 한국인으로 사는 걸 원하지 않는 한국인만 사는 이중국가로 전락한다.


p.123

연쇄살인범이 무서운 건 무서운 범행을 저질러서가 아니다. 그런 행동을 해놓고도 보통 사람은 불가능한 자기 합리화를 해낸다는 점이다. 자기 욕망을 위해서라면 자기 자신까지 속일 수 있다. 사이코패스의 특징이다.


p.124~125

단 한 번이라도 연쇄살인범의 눈을 들여다본 적이 있는 사람은 결코 살해 동기를 찾지 않는다. 눈 안에 마음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정작 그 눈을 들여다보지 않은 사람들이 문제다. 그들은 논리와 통계로 현상을 설명하려 든다. 연쇄살인범이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 현대사회가 낳은 어떤 현상이라고 해석하고 싶어 한다. 연쇄살인에 의미를 부여한다. 연쇄살인과 사회와의 관계를 유추한다. 심지어 그들도 사회적 희생자라는 논리마저 등장한다.


연쇄살인은 범죄가 아니다. 범인이 죄를 지었다고 여겨야 범죄다. 연쇄살인은 유전적 질병에 가깝다. 사회적 유대가 약해져서라거나 날씨가 더워져서 벌어지는 게 아니다.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리는 자는 따로 있다. 인간 본성의 중간 값에서 벗어난 극단적 악마들이다.


형벌을 강화한다고 해도 소용없다. 정남규는 경찰 프로파일러 못지않게 범죄를 공부했다. 매일 10킬로미터씩 마라톤을 하면서 체력을 단련했다. 심지어 자신을 수사할지도 모르는 경찰들의 신상 정보를 모아서 거꾸로 경찰을 프로파일링했다. 수사력을 보강하고 형량을 아무리 높여도 악마적 욕망을 억제할 수 없다. 더 지능화될 뿐이다.


사실 2010년대 범죄의 골칫거리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소시오패스다. 사이코패스는 인간 유전자 조합의 오류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선천적이다. 소시오패스는 인간 사회 조합의 오류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후천적이다. 소시오패스는 타고난 연쇄살인자는 아니다. 사회적으로 오랫동안 단절된 채 살아서 보편적인 도덕 관념을 상실한 경우다.


p.142

사실 MBC는 좌도 우도 아니었다. 1987년 6공화국이 들어선 이후 언론사들도 치열한 민주화 투쟁을 벌였다. 실패한 언론사가 더 많았다. 드물게 편집권 독립을 쟁취한 언론사가 MBC였다. 1990년대 내내 이어진 수많은 언론사 파업에서도 MBC만큼은 늘 편집권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다른 방송사나 신문사들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경쟁 방송사 관계자는 말한다. "솔직히 KBS와 SBS도 모두 MBC를 최고로 쳤죠."


p.145

언론사에 엘리트적 자긍심은 필수다. 언론사나 검찰처럼 취재나 수사를 하는 조직은 늘 세상과 갈등한다.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신념과 옳은 일을 하고 싶다는 긍지가 없다면 이내 세상과 타협해버린다. 대기업은 시장과 타협할수록 이득을 본다. 언론사는 세상과 타협하는 순간 타락한다. 타협을 하지 않으려면 비타협적인 조직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MBC는 그렇게 비타협적인 조직으로 무한 진화했다. 그 결과가 [시선집중]이나 [PD수첩]같은 프로그램들이었다. 바깥에선 오만으로 비쳤다. 불운을 불러들였다.


p.212

야당에 촛불은 양날의 검이다. 시민사회는 야당의 대체재다. 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은 원래 야당의 몫이다. 촛불은 야당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는 현상이다. 촛불이 득세할수록 야당의 존재 이유는 줄어든다. 촛불이 불타오를 때마다 야당이 늘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하는 이유다. 정치는 어젠다 싸움이다. 야당은 청와대와의 어젠다 싸움에서 이기기 어렵다. 청와대의 정치권력은 행정력이 아니라 의제 설정 능력에서 나온다. 촛불은 야당에 있었던 그나마의 의제 설정 능력도 없애버린다. 시민사회는 야당한텐 언제나 가장 강력한 동지이면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다. 야당 안에서도 촛불을 바라보는 시각이 늘 엇갈리는 이유다. 2008년 촛불과 달리 2013년 촛불엔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원외 정치에 부담을 느꼈다. 직접민주주의에 호소하는 순간 야당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증오 상업주의
제3의 물결
정치 질서의 기원 
전략적 비전
부시는 전쟁중
일본의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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