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63
고대의 지배자들은 자랑스러운 조상의 이름을 후손이 물려받는 전통이 있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는 수백년씩 산 인물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아담은 930세 셋은 912세 에노스는 905세 게난은 910세 마하랄렐은 895세 야렛은 962세 에녹은 365세 므두셀라는 성서의 최고기록인 969세까지 살았다.
p.65
중국의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삼황오제)은 신이라기보다는 조상이다. 그에 비해 오리엔트 문명의 신화적 존재들은 인간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세상과는 확실히 구분된다. 중국의 조상신들은 인간적 속성을 지니고 인간에게 도움을 준 반면, 오리엔트의 신들은 인간 위에 군림하면서 인간에게 제물을 요구하고 자신을 섬기라고 강요했다. 언제든지 근거지를 옮길 수 있는 유목 문명과 달리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농토를 바탕으로 하는 농경 문명에서는 조상신이 훨씬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서양의 신화와 동양의 신화도 다르지만, 동양의 신화 내에서도 차이가 있다. 예컨대 한반도 문명은 중국과 같은 농경 문명이지만, 한반도의 초기 신화는 중국과 크게 다른 점이 있다. 실은 중국만이 아니라 전세계 어느 지역의 신화와도 다른 특징이다. 그것은 바로 천지창조가 없다는 점이다.
p.67
원래는 청지창조 신화가 있었을 것이다. 더 작은 문명권에도 있었던게 한반도 문명에만 없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원래 신화 속에 포함되어 있다가 사라졌다고 볼 수 있는데, 언제 어떤 이유에서 그랬을까?
삼국시대에 한반도 고대 삼국은 모두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이 시기까지는 천지창조 신화가 전승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648년 신라의 김춘추가 당 태종 앞에 무릎을 꿇고 사대를 맹세한 이후(이해에 신라는 중국의 연호를 쓰기 시작했고 중국의 복식을 들여왔으니, 말하자면 '사대주의 원년'인 셈이다) 천지창조는 신화에서 빠져나갔을 것이다. 얼마 뒤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하고 유일한 한반도 정권이 된 신라는 스스로 중국의 '속국'으로 행세했다. 8세기에 혜공왕은 왕이 지내는 제사를 5묘(김씨 시조인 미추왕, 무열왕, 문무왕, 그리고 당대 왕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까지로 확정하는데, 이것은 중국의 <예기>에 나오는 제후의 예에 따른 것이다. <예기>에는 "천자는 7묘, 제후는 5묘를 제사한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얼마 뒤 경덕왕은 신라의 지명을 대부분 중국식으로 고쳤다. 경주, 충주, 상주, 전주 등 현재 '주州'자가 들어 있는 도시 이름은 그 시기에 개명된 결과다.
(예를들어, 현재 충청남도 웅진은 곰나루라고 읽고 한자로 표기할 때만 熊津이었는데, 경덕왕 때 이것을 웅주로 바꾸면서 곰나루라는 이름은 쓰이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나라 자체가 중국의 속국이 되었다면 신화에서도 천지창조 대목은 당연히 '검열'에 걸려 삭제되었을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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