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9~40
성(城)에서 하룻밤을 묵고픈 욕구가 우리를 사로잡았다.
나는 자동차를 몰고 있고, 백미러를 통해 내 뒤의 자동차를 관찰한다.
왼쪽의 작은 등이 깜빡거리며 자동차 전체가 조바심의 전파를 보내고 있다. 저 운전자는 나를 추월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맹금이 참새를 노리듯이 그 순간을 노리고 있다. 아내가 내게 말했다.
"저들은 거리에서 어떤 할머니가 털리는 걸 보면 지극히 몸을 사리는 바로 그들이에요. 한데 어째서 운전석에 앉으면 두려움을 모르게 되는거지?" 뭐라 대답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렇게 오토바이 위에 몸을 구부리고 있는 사람은 오직 제 현재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과거나 미래로부터 단절된 한 조각 시간에 매달린다. 나는 백미러를 바라본다. 맞은 편에서 오는 차들 때문에 나를 추월하지 못하는 그 자동차
운전자 옆에 한 여인이 앉아있다. 어째서 저 사내는 그녀에게 뭔가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지 않는 걸까? 그러기는커녕 그는 차를 빨리 몰지 않는 앞차의 운전자를 저주하고 있다.
쿤데라 [느림] 재인용
p.46
같은 대상이라도 해석하는 데 따라 달라집니다. 유치하게 해석하면 그 대상은 유치하게 존재할 뿐이죠. 한쪽에 치우쳐 대상을 왜곡하는 편견은
또한 삶 자체까지 왜곡하기 십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상을 판단하고
이해하는 능력, 즉 '해석능력'은 살아가는데 중요합니다.
해석능력이 삶의 질을 결정하니까요. 한 개인에게도 그렇고 특정 사회에서도 그렇습니다. 또한 바로 이것이 '안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만일 해석하는 능력이 전혀 없어서 다른 이들이나 어떤 시스템 또는
규범이 해석해준 대로 세상을 받아들인다면 그는 세상을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만 피동적으로 살아지는 것일 뿐입니다.
p.48
철저하게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안타까울 때도 없다.
말하자면 이런 경우들이다. 용모는 뛰어나되 표정은 풍부하지 못하다.
그럴듯한 교육을 받았는데도 그것을 써먹을 줄 모른다.
지성은 있되 본인의 사상은 없다. 가슴은 있되 관용은 없다. ....
세상에 이와 같은 사람들은 부지기수로 널려 있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을 수도 있다.
사람들을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틀에 박힌 사람들이고
도 하나는 그보다 훨씬 더 똑똑한 사람들이다. 전자가 후자보다 행복하다.
틀에 박힌 평범한 사람은 아무런 심적 동요 없이 흡족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에게 들은 사상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어떤 책 한 쪽을 다짜고짜 잠깐 들여다보고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독창적인 사상이며 자신의 머릿속에서 생겨난 사상이라고 즉시 믿어버린다. 순진함에서 나온 뻔뻔함이라할까
[백치] 재인용
p.73~74
우리 삶에서 어느 것이든 쓸모가 없어지면 소멸합니다. 한 때는 널리 쓰였던 타자기가 지금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박물관에 간 이유가 그렇죠. 물건만 그런게 아닙니다. 정신적인 가치나 정치적인 이념도 그렇습니다. 한 때는 모든것을 좌우하며 그것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할 듯했던 것도 실용성이 떨어지면 사라집니다. 실용적이어야 생명력을 갖고 생명력이 있어야 실용적인 것입니다. 예술은 어떠한가요. 인류의 역사에서 예술이 단 한번이라도 소멸한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이는 예술이 매우 생명력 강하고 실용적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p.87
'봄'을 한자 春이나 영어 spring으로 바꿔보면 어떨까요 태양(日)위로 새싹이 땅거죽을 뚫고 올라오는 이미지(春-日), 아니면 스프링, 즉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다 spring은 어떤가요. 봄의 느낌이 더 구체적이고 생명력있게 다가오지 않습니까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외국어는 낯설어서 도리어 그 의미가 생생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봄은 단순히 특정 계절을 지칭하는 단어이기 이전에 그 계절의 생동하는 느낌을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계절에 우리는 간혹 아무 꾸밈말없이 "아, 봄이다!"하면서 감동하기도 합니다.
우리말 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또한 실제 사물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오래된 문자인 한자에서 몇 가지 예를 더 들어봅시다. 어떤 '사이'나 '틈새'를 간(間)이라고 씁니다. 문틈(門)으로 햇살(日)이 살며시 비칩니다. 이렇게 보니 추상명사인 '사이'의 뜻이 구체성을 띠고 확연하게 전달되죠. 사람이 걸터앉는 데 쓰는 기구인 의자(椅子)는 또 어떤 느낌일까요
나무(木)로 만든 것에 앉아 크게(大) 하(可)하고 숨을 내쉽니다(椅)
지친 몸을 이끌고 버스에 탔는데 마침 빈자리가 있다면 어떨지 생각해보면 잘 느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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