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통 크리스마스 전날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해서 기념한다.
그럼 크리스마스 다음날은 뭐라고 할까?
모르겠다. 그냥 26일이겠지.
3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두렵다. 트라우마라는 게 쉽게 없어지지 않는 존재인가보다.
그래도 죽지 않고 버텼다. 아직도 완전히 자리잡지는 못하고 개판이긴 하지만 취업해서 경제적 여건도 예전보단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하루하루 힘들었다. 물론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끌고오는데 상처를 많이 입었고 볼 꼴 못 볼꼴을 너무 많이 봐버렸다.
지금 일에 몰두하는 건 그랬던 과거의 반작용이 아닐까? 재미있어서 하고 있다고 말하곤 있지만, 중독되지 않으면 안되니까 중독되는게 아닐까?
내 마음을 아직도 잘 모르겠다.
2.
27일에 사랑니를 빼기로 했다. 양치질을 하다보니 계속 아파서 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복사랑니가 위로 튀어나와서 위험한 상태인 듯 하다. 사실 일찍 뺐어야는데 취준한다는 핑계로 게을러서 빼지 못했다. 그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저번에 사랑니를 아프지 않게 잘 빼주셨던 서전치과로 가기로 했다. 이번에도 아프지 않게 될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무섭다. 매복사랑니에 신경에 걸쳐있다고 하니 동의서를 써야 수술을 해주는데, 그 긴장감은... 말로 설명하기 힘드니까. 부디 별 탈 없이 잘 뽑을 수 있음 좋겠다.
3.
병우(가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어려웠다. 그래도 말을 열었다. 잘 지내냐는 안부인사와 함께.
병우는 잘 지낸다며 침잠한 목소리로 말했다.
병우에게 위로를 건넸다.
"아버님이 너 고생 안시키려고, 너 고생 많이 했으니까, 병원에 오래 계시지 않으시려고 한거일꺼야."
이게 위로가 맞을지 아직도 의문이지만 이걸 위로라고 건넸다. 꼰대같이 내 경험에 기반해서 위로라고 생각했다. 집안에서 갈등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경우는 상속 분쟁보다도 간병, 병원비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차가운 얘기지만, 너무 오래 병원에 있으면 급작스러운 별세보다 가족들이 더 고통받는다. 아니 거의 찢어진다.
말을 해놓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표현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병우 아버님은 회사에서 돌아가셨기에 산재로 처리되냐 되지 않냐 문제를 놓고 씨름해야하고 보험금 처리문제도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병우도 회사원이고 병우의 누나와 매형도 다들 일하고 있다보니 처리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도 여기저기 알아보며 노무사와 손해사정사를 알아본 듯 했다. 그런데 알아본 곳에서는 10-30%를 불렀다고 해서 내가 빡돌것 같았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게 업무상재해로 인정되냐 되지 않냐를 놓고 다퉈야 하기에 높을 수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돈이면 변호사 선임해서 소송하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병우가 어리다고 호구잡는 것 같아 내가 더 화를 냈다.
보통 사망한 경우, 부상당한 경우보다 할 일이 줄어들기 때문에 수임료가 줄어들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30%?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어떤 걸 주의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었다.
그 동안 눈여겨 보던 산재만 처리하는 노무법인이 있기에 알려주고, 멘토님의 번호를 알려줬다.
병우의 삶도 어서 궤도를 다시 찾길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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