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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좋은 이별

by Diligejy 2016. 6. 6.

p.49

열정을 쏟았던 대상은 사라졌지만 열정은 여전히 떠난 사람을 향하고 있다. 돌던 팽이가 단숨에 멈출 수 없는 것처럼 리비도 투자도 관성의 법칙을 따른다. 마음 속에 여전히 잃은 대상을 간직한 채 그의 집 앞을 서성이거나, 그가 언젠가 돌아올거라 믿거나, 뒤늦게 혼자 분노한다. 리비도 회수가 이루어지지 않은 단계이다.


p.59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그의 죽음에서 자신의 죽음을 미리 맛볼 뿐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그와 함께 죽는다.


-베레나 카스트


p.88

안전이란 십중팔구는 미신이다. 삶이란 '위험을 무릎 쓴 모험'일 뿐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p.96~97

중년이 된 후 이따금 친구들에게서 '힘들다'는 말을 드는 때가 있다. 처음에 그들이 힘들다고 호소할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은 단 한가지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다. 돈 때문에 힘들면, 은행에 가서 해결하고, 회사 일로 힘들면 상사나 동료와 의논하여 해결책을 찾으면 될 것이다. 해결책이 없는 힘듦. 

그리하여 오직 '힘들다'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은 사랑의 감정과 관련된 것뿐이었다.


이제야 알게 된 또 한 가지 사실은 중년의 친구들이 사랑에 빠질 때 그것은 노년의 어머니나 아버지를 잃은 후라는 점이다. 부모를 잃는 순간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무의식이 그렇듯 치밀하면서도 절박하게 오이디푸스적 갈등이 내포된 관계속으로 돌진한다. 이 나이에 이런 사랑을 만나다니, 내면에서 올라오는 열정을 스스로 축복하기도 한다.


중년기에 부적절한 삼각관계에 빠니느 것 역시 애도 작업의 일환이다. 생애 초기의 삼각관계를 현재에 구현하여 그 때 잃어버린 대상을 되찾고자 한다. 클린턴과 르윈스키처, 그 관계의 무의식적 진짜 목적은 잃은 대상을 되찾은 다음 다시 한 번 잘 떠나보내고자 하는 것이다. 오이디푸스적 내적 대상을 떠나 보내는 일은 우리가 상상계로 들어서며 진정한 성인이 되는 지표이기도 하다.


p.111~112

아름다움이 언제나 유한성을 전제로 하듯이, 상실한 것은 늘 더 미화되고 이상화된다. 잃은 대상에 분노가 투사되면 상대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과 반대로 잃은 대상에게 나르시시즘이 투사되면 대상을 미화하거나 이상화하게 된다. 슬퍼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 상실감을 보상받고자 하는 의도이다.


p.114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


이별의 미는 아침의 바탕없는 황금과 밤의 올 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 없는 영원의 생명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님이여, 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오오 이별이여

미는 이별의 창조입니다.


<이별은 미의 창조> 한용운


p.132

소중한 대상을 잃었을 때, 그로부터 거두어온 열정은 일시적으로 다른 대상(대체 대상뿐 아니라 중간 대상, 연결 대상이라는 용어도 사용 된다)에게 투자된다. 가장 흔한 경우는 문득 일어나 학업에 몰두하는 것이다. 갑자기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열심히 살거나, 외국어 학원 새벽반에 등록한다. 남성들은 회사일에 몰두하고 여성들은 바느질이나 뜨개질 같은 새로운 취미 생활을 갖는다. 종교, 음주, 도박, 쇼핑이나 낚시, 골프, 게임 등도 대표적인 대체 대상이 된다.


p.143

멀리 떠날 때, 간혹 우리는 죽은 자처럼 되기를 소망하면서 그렇게 행동하기도 한다. 죽은 자와 함께, 죽은 자처럼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기를 꿈꾼다. 자기 내면에 있는 죽음 충동이 사랑하는 사람을 파괴할까봐 두려워 뒷걸음질 치기도 한다. 분노와 공격성이 사랑하는 사람을 파괴할까봐, 주변 사람들에게 죽음을 널리 퍼뜨리는 사람이 될까봐 두려워 멀리 떠나기도 한다. 


하지만 아주 멀리 떠나는 경우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여전히 잃은 대상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다.


자기 마음에서 도망칠 곳은 없다.


p.168

사랑을 잃고 자기 파괴적으로 행동하는 일은 아주 쉽다. 에로스의 뒷면이 타나토스이기 때문에, 상대에게 주었던 에로스를 되돌려 받을 때, 그것은 모양을 바꾸어 자기 파괴적인 욕망으로 변화한다. 리비도를 가만히 두면 자기 파괴적인 길로 접어드는 일은 당연한 수순 같기도 하다.


하지만 자기 파괴적으로 행동할 때조차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잃은 것을 되찾는 일, 떠난 사람이 되돌아오는 일이다. 그 일은 어렵고 자기 파괴적 행동은 쉽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쉬운 해결책에 매달린다. 상대를 용서하는 일보다, 힘들게 애도 작업을 진행하는 것보다, 강물에 뛰어드는 일은 쉽기에 유혹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순간, 죽음을 향해 가던 길을 멈추고 온 힘을 다해 삶쪽으로 헤엄쳐 나와야 한다.


p.174~175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거두어온 리비도는 내면에 간직한 상태에서 스스로 증식하는 힘이 있다. 그리하여 그것은 과장되고 과잉되게 흘러넘치는 상태가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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