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5
인간사는 원래부터 늘 혼란스러웠지만 과학 분야에서조차 '자연은 정확한 법칙을 따른다'라는 옛 관념이 더 유연한 견해에 자리를 내주었다. 우리는 근사치에 가까운 법칙과 모델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모두 언제라도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대체될 수 있어 잠정적이다. 혼돈 이론은 엄격한 규칙을 따르는 대상조차 예측이 불가능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양자 이론은 가장 작은 수준에서 우주가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세계란 이렇듯 불확실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불확실성이란 단지 인간의 무지를 드러내는 표지가 아니다.
p.16
우리는 시간에 구속된 동물이기에 미래를 걱정한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강하게 의식하고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며 이 예측에 따라 현재의 행동을 결정한다. 사람들을 마치 있지도 않은 타임머신을 가진 것처럼 행동한다. 즉 미래의 사건은 그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우리가 행동을 취하도록 이끈다. 물론 오늘 행동하는 참된 이유는 내일의 결혼식이나 폭풍우 또는 임대료 청구서 때문이 아니다. 그러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현재의 믿음 때문이다. 진화와 개인의 학습으로 형성된 우리의 뇌는 내일의 삶이 더 편안해지도록 우리의 행동을 선택한다. 뇌는 미래를 예측하는 의사결정도구다.
p.28~29
영국 은행이 물가 상승률 변동에 대한 예측 결과를 발표할 때도 마찬가지로 수학 모델러들이 판단하는 예측 신뢰도의 추정치가 제시된다. 그들은 또한 이러한 추정을 일반 대중에게 제시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예측된 물가 상승률의 시간에 따른 변화를 나타낸 '팬 차트'는 단일한 선이 아니라 음영을 준 띠로 표시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띠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정확도가 감소한다는 의미다. 색상의 밀도는 확률의 수준을 나타낸다. 진한 영역이 흐린 영역보다 가능성이 큰 부분이다. 음영 표시된 영역은 가능한 예측치의 90퍼센트를 포괄한다.
여기에 담긴 메시지는 두 가지다.
첫째, 이해가 증진됨에 따라 더욱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
둘째, 예측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를 산출함으로써 불확실성을 관리할 수 있다.
p.40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인간이라는 종을 다른 모든 동물과 차별화하는 특징인 시간의 구속이 있다. 우리는 미래가 존재할 것이라 인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맥락에서 현재의 행동을 계획한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시절에도 부족의 원로들은 계절이 바뀌리라는 것, 동물들이 이동하리라는 것, 계절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식물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먼 하늘에 보이는 징후는 다가오는 폭풍우를 예고했고 그 징후를 더 빨리 알아차릴수록 폭풍우가 오기 전에 피난처를 마련할 좋은 기회를 얻었다. 때로는 미래를 예측함으로써 최악의 결과를 부분적으로 완화하기도 했다.
p.42
그토록 많은 사람이 여전히 행운, 운명, 징조를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우리는 신비로운 상징, 기다란 목록, 복잡한 말, 정교하고 고풍스러운 의상, 의식, 노래에 그렇게 쉽사리 감동할까?
왜 우리는 광대하고 이해할 수 없는 우주가, 실제로는 훨씬 많겠지만 관측할 수 없는 영역에서만 해도 10의 17승 개에 달하는 별 중에 단지 하나에 불과한, 지극히 평범한 별 주위를 도는 축축한 암석 덩어리 위의 지나치게 발달한 원숭이 무리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허황된 생각을 할까?
왜 우주를 인간의 입장에서 해석할까? 우리가 우주의 관심을 받을만 한 존재이기는 할까?
왜 오늘날에도 명백한 난센스를 그토록 쉽게 믿을까?
p.43~44
우리는 새로운 정보를 접할 때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게 한다면 미친 짓이다. 인간의 뇌는 진화를 통하여 사실과 허구, 진실과 거짓을 구별해야 할 필요성을 크게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미 믿고 있는 정보의 맥락에서 새로운 정보를 판단한다. 누군가가 하늘에서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이상한 빛을 보았다고 주장한다면 어떨까. UFO를 믿는다면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한다는 명백한 증거다. UFO를 믿지 않는다면 잘못된 해석이나 단순히 꾸며 낸 이야기로 받아들일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실제 증거를 고려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판단을 내린다.
우리 중에는 뇌의 이성적인 측면에서 명백한 모순을 인식하고 그 모순을 해결하려 애쓰는 사람도 있다. 몇몇 고통받은 영혼은 믿음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또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종교, 문화, 믿음 체계로 전환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성장하면서 획득한 믿음을 고수한다. 종교의 '역학', 즉 세대에 따라 특정한 종파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이나 지위가 변화하는 방식은 우리가 부모, 형제, 친척, 교사, 자신이 속한 문화권의 권위 있는 사람들에게서 믿음을 배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외부인들의 견해를 하찮게 여기고 자신의 확고한 믿음을 유지한 한 가지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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