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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일본소설

은하영웅전설 7

by Diligejy 2022. 7. 31.

 

p.86

"이렇게 하면 이런 결과를 초래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최악의 결과라 하더라도, 결과가 없는 것보다는 낫지."

동맹 정부의 고관들 중에는 오히려 중책에서 해방된 표정으로 그렇게 혼잣말한 사람도 있었다. 그 발언자는 거대하고도 압도적인 타인이 만들어준 설계도 속에서 견실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던 것이다. 순백의 캔버스를 받아 들고 기뻐하며 붓을 놀리는 자가 오히려 적은 법이다.

 

남에게 명령을 받고 남에게 종속하며 살아가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 그런 생각이야말로 전제정치를, 전체주의를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정신적인 토양이다. 500년 전에 은하연방의 시민들은 다수의 자유의사로 루돌프 폰 골덴바움의 지배를 선택하지 않았던가.

 

p.135~136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신에게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대의명분을 떠넘기는 것보다는, 작고 보잘것없는 인간이 각자 치졸하고 우둔한 대의명분을 내걸고 서로를 상처 입히는 편이 훨씬 낫다. 모든 색깔을 한데 모으면 검은색으로 변할 뿐이며, 무질서한 다채로움은 하나의 순수한 무채색보다 우월하다. 인류사회가 단일 정치체제로 통합될 필연성은 어디에도 없다.

 

p.245

다음 날, 황제의 포고가 내려졌다.

"설령 제국군의 적으로서 싸운 자라 해도 동맹군 전사자 유족 및 부상병은 후히 우대하겠다. 이제는 증오로 역사를 움직일 때가 아니다. 대우에 불만이 있는 자, 현재 생활에 곤궁한 자는 어려워 말고 알리라"

 

그 포고를 받았을 때 동맹 정부 관료들이 받은 충격은 작지 않았다. 자신들이 군사력에 패한 것이 아니라, 민주공화정 체제가 일개 개인의 기량에 패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심각한 공포가 그들을 동요시킨 것이다. 무자비한 보복이 이루어진다면 전제군주에 대한 반발도 나타날 수 있을 텐데, 그와는 완전히 반대인 관대함이 얼음을 녹이는 햇살과도 같이 반항의 의사를 꺾어놓았다.

 

p.309

주지의 사실이지만 랑은 로이엔탈처럼 헤아릴 수도 없는 무훈을 거듭한 불패의 명장이 아니었다. 오베르슈타인처럼 무략과 군정능력으로 국가와 주군의 공적을 없앤 유력한 참모도 아니었다. 그는 단순한 모사꾼이었으며, 불명예스러운 비밀 경찰의 우두머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역사는 무수한 사례로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능력도 식견도 없는 단순한 모사꾼이 이따금 자신보다도 훨씬 유능한, 혹은 위대한 인물을 바닥없는 늪에 빠뜨려 그 인물만이 아니라 시대 자체의 가능성을 가라앉혀버리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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