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5
우리가 '잘했음'이나 '잘못했음'을 결정하는 데에는 아주 간단한 기준이 있다. 그 작문이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것들, 우리가 본 것들, 우리가 들은 것들, 우리가 한 일들만을 적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할머니는 마녀와 비슷하다'라고 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할머니를 마녀라고 부른다'라고 써야 한다.
'이 소도시는 아름답다'라는 표현도 금지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소도시는 우리에게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추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당번병은 친절하다'라고 쓴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당번병이 우리가 모르는 심술궂은 면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만 써야 한다. '당번병은 우리에게 모포를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또한 '호두를 많이 먹는다'라고 쓰지, '호두를 좋아한다'라고 쓰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좋아한다'는 단어는 뜻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정확성과 객관성이 부족하다. '호두를 좋아한다'와 '엄마를 좋아한다'는 같은 의미일 수가 없다. 첫 번째 문장은 입 안에서의 쾌감을 말하지만, 두 번째 문장은 감정을 나타낸다.
감정을 나타내는 말들은 매우 모호하다. 그러므로 그런 단어의 사용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사물,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한 묘사, 즉 사실에 충실한 묘사로 만족해야 한다.
p.106
"나도 살아 돌아왔어. 아랫도리가 마비되긴 했지만. 다리는 물론 그 나머지 것도 말을 듣지 않아. 차라리 한방에 아주 가는 편이 나을 뻔했어."
다른 여자가 말했다.
"당신들은 만족할 줄 모르는군요. 나는 병원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모두들 그러더군요. '내 몸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난 살고 싶어,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 아내도 보고 어머니도 보고 싶어. 조금만 더 살았으면......"
한 남자가 말했다.
"당신, 입 닥쳐. 여자들은 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그 여자가 말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바보 같은 소리! 온갖 궃은 일, 온갖 걱정에 빠져 지내는 게 여자야. 아이들 먹여 살려야지, 부상병들 돌봐야지. 당신들은 일단 전쟁만 끝나면, 모두 다 영웅이 되잖아. 죽었으면 죽어서 영웅, 살아남았으면 살아서 영웅, 부상당했으면 부상당해서 영웅. 전쟁을 발명한 것도 당신들 남자들이고, 이번 전쟁도 당신들의 전쟁이야. 당신들이 원해서 그렇게 한 거야, 개똥같은 영웅들아!"
모두들 왁자지껄 떠들고, 고함치기 시작했다. 우리 옆에 있던 노인이 말했다.
"아무도 이런 전쟁을 원하지 않았어. 아무도, 아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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