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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관계에서 밀리지 않는 힘 삼국지 권력술

by Diligejy 2023. 1. 16.

p.18

제환공이 여색을 좋아하자 수조는 스스로 거세해 내시가 되었고,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자 역아는 장남을 삶아 바쳐 측근이 됩니다. 권력은 이런 자들에게 비로소 그 문을 엽니다.

 

조비가 그러한 모략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형제들을 그렇게 정리하지 않았다면 그는 왕이 될 수도 없었을 터이고, 새로운 왕조를 열고 관리선발제도를 정비하고, 환관과 외척의 발호를 막는 정책을 시행하고, 사사로운 형벌과 보복을 금지해 사회질서를 바로잡은 그의 정치는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 거서입니다. 무섭고 강한 권력의지가 없다면 결국 어떤 좋은 일도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p.19-20

굴욕을 참은 대가로 손권은 유비의 침략을 막을 수 있었고 나라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서성은 울었지만 손권은 울지 않았습니닫. 서성은 싸움을 하는 장수였지만 손권은 한 나라를 책임진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고옹이나 장소, 서성과 같은 자들이 손권의 자리에 있었다면 권력과 나라를 잃고 말았을 것입니다.

 

권력을 얻고 지켜내기 위해서는 감정을 억누르고 기꺼이 무릎을 꿇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억지웃음을 지을 수 있어야 하고 하기 싫은 말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에 두고 오히려 적을 가까이에 둘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더러운 싸움도 마다하지 않아야 합니다.

 

p.41

"천하의 주인이 궐 안에만 머문다면 어디 이로운 점이 있겠는가?"라는 말은 권력을 쥔 자들이 언제나 명심하고 있어야 할 말입니다. 그리고 송태조처럼 권력의 대기실을 뛰어넘으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p.46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철학자들이, 현실을 무시하고 현실에서 벗어난 사유에서 어떤 원리를 획득하여 그것을 현실에 부과하려는 태도인 '철인왕 콤플렉스'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실에 충실하게 살 때, 현실 속의 사람들과 공동체 감각 또는 상식을 공유하게 되는데 철학자들은 그러한 감각과 상식을 결여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공동체 감각을 상실한 채 현실 정치의 원리를 제시하고 참여를 독려하는 오류에 빠져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p.58

권력은 타자와 다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자는 무시할 대상이 아니라 존중할 대상입니다. 권력투쟁의 장에서 '타자의 악마화'는 불가피할 수도 있지만 타자를 존중해야 그를 알 수 있고 제대로 된 싸움을 할 수 있습니다. 관우는 안량을 '깃발을 세우고 달려오고 있으나, 나에게는 돼지머리를 파는 백정놈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라고 무시했고, 육손이 동오의 대도독이 되었을 때에는 '손중모(손권)가 견식이 짧아 이런 부족한 자를 장수로 삼았구나!"라며 손권과 육손을 함께 무시합니다. 심지어는 "범 같은 내 딸을 어찌 개 같은 놈의 자식에게 시집보내겠소!"라며 동오의 지도자 손권마저 짓밟습니다. 관우는 결국 "머리에 피도 마지 않은 푸른 눈의 어린 놈"이라 욕했던 손권에게 붙잡혀 목이 날아가고 맙니다. '타자에 대한 존중'이 없어 죽임을 당하고 나라를 기울게 한 관우의 일에서 깊은 교훈을 얻을 일입니다. 

 

p.65

칸트는 밤하늘의 빛나는 별과 같이 분명하게 반짝이는 확고한 마음 속의 도덕률을 따라야 한다고 했지만 복잡한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암흑 속을 헤매는 것과 같고 도덕을 따라야 할지 아니면 당장 많은 사람들을 구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실천가들은 과정의 정당성과 좋은 결과 사이에서 깊이 고뇌합니다. 하지만 고뇌와 갈등 속에서 양자가 모두 만족되는 좋은 도덕적인 판단을 하려 주저하는 사이에 조조와 같이 검고 두꺼운 얼굴과 털이 난 심장을 가진 야수들은 그러한 고민을 하지 않고 재빨리 권력을 차지해버린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p.191

한비자는 군주의 근심이 "사람을 믿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군주의 근심은 사람을 믿는 데서 비롯됩니다. 사람을 잘못 믿으면 그 사람에 의해 제어당하게 됩니다. 군신은 혈육으로 맺은 관계가 아니며 단지 신하는 군주의 권세에 눌려 할 수 없이 섬기고 있을 뿐입니다. 때문에 신하는 쉴 새 없이 군주의 마음을 엿보며 노리게 되니 잠시라도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p.205

제갈량의 다음의 말은 부드러움과 강함의 조화를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훌륭한 장군은 지극히 굳으면서도 부러지지 않고, 지극히 부드러우면서도 구부러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약함으로써 강함을 제압하고 부드러움으로써 굳음을 제압한다. 오직 부드럽고 약하기만 하다면 그 세는 반드시 꺾일 것이요, 부드럽고 굳고 강하기만 하다면 그 세는 반드시 망할 것이다. 부드럽지도 굳지도 않음이 도에 합치되는 것이다. 

p.233

외면을 무시하고 타인의 내면에 도달할 방법은 결코 존재하지 않고 권력의 세계에서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결국 우리는 내면과 외면이 일치하는가 하는 적합성이 아니라, 외면이 일관성을 가지는가 하는 정합성만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조조는 황개의 편지를 열 번이나 읽었고 스탈린은 끊임없이 감시했던 것입니다.

 

p.242

사실 우리 모두는 인내심이 부족한 동물입니다.

반격의 원리는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진실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적인 모든 환경과 모든 갈등 상황에 무한히 적용될 수 있다. 우리는 본래 인내심이 부족한 동물이다. 우리는 기다리는 것을 참지 못하며 우리의 욕구가 최대한 빨리 충족되기를 바란다. 이는 엄청난 약점이 된다.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급하게 돌진하다보면 선택권은 좁아지고 곤경에 빠지게 된다. 한편 인내심은 전쟁에서는 특히 무한한 이득을 가져다준다. 인내를 통해 우리는 기회를 감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반격을 가해 적의 허를 찌를 시간도 벌게 된다. 한발 뒤로 물러서서 적절한 시기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본성에 굴복해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보다 언제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 

p.325

예형과 양수의 뛰어난 재주는 단지 머리에서 나온 것이고 그들은 오히려 일에 방해가 되는 자들이었습니다. 모자란 자는 가르치고 보충하면 되지만 방해가 되는 자는 용납하기 힘듭니다. 그들은 주군을 보좌하려 하지 않고 대체하려 했습니다. 

 

p.341-342

선비나 군자는 권력을 다루는 정치가 학문이나 철학과 중첩되지만 또 다른 영역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선비들은 이론으로 무장해 군주의 권위를 침범하고, 이는 파멸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지도자들은 군주이지 군자나 선비가 아닙니다. 군주를 철학자로 바꾸던 플라톤과 달리 제갈량이나 육손은 군주를 군자로 바꾸려 하지 않았습니다. 정치 현장을 끝까지 지킨 이들은 사실 군자들보다 소인배들이 더 많습니다. 

 

p.344~345

퇴계의 모친은, 그의 뜻이 높고 깨끗해서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보고, "너의 벼슬은 고을 원이 마땅하니 높은 벼슬을 하지 말라. 세상이 너를 용납하지 않을까 두렵다"고 경계했던 적이 있습니다.

 

퇴계 선생이 모친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제자들이 와서 묻는 일이 있으면 샅샅이 파고 캐어 환하게 풀어주었던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스승 퇴계를 우리는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퇴계 선생의 위대한 점은 세상과 어울리지 않고, 세상이 용납하지 못할 것이라는 모친의 충고를 잘 받아들여 깊은 산속에서 세상과 거리를 둔 채 좋은 처신을 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p.381~382

철학이 근본적으로 사유와 연관된 활동이라면 권력투쟁과 연관된 정치는 행위에 관련된 활동입니다. 좋은 생각을 현실에서 실현하려 할 때 권력이 필요하고 정치적인 것들이 시작됩니다. 사유는 단순하고 정직하지만 행위는 복잡하고 모호합니다.

행위하기 시작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시작한 행위의 결과를 결코 예견할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행위) 실행이 이미 모든 것을 변화시켰고 심지어 그 결과를 훨씬 더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칸트가 정치사의 기록에서 매우 뚜렷한 "우울하게 만드는 우연성"을 말할 때 내심 가지고 있던 생각이다. "행위, 우리는 그것의 기원도 모르고 결과도 알 수 없다. 그런데도 행위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행위에 관한 관조의 우위를 천명했던) 옛날의 철학자들이 옳지 않았는가. 그들이 인간사의 영역으로부터 어떤 의미의 발생을 기대했던 것은 정신 나간 짓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한나 아렌트, 과거와 미래 사이

 

p.411

천하란 군주 한 사람만의 천하가 아니다. 천하란 모든 사람의 천하이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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