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0~31
경영진의 입장에서 보면 노사협상은 뭘 얻고자 하는 것보다는 덜 잃기 위한 절차이다. 경영진은 반드시 지켜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분명한 목표를 설정해야 하며 그에 필요한 논리와 방어선도 수립해야 한다. 과도한 비용 상승을 억제하고자 하는지, 파업으로 인한 생산손실을 최소화하고자 하는지, 아니면 양보와 타협을 통한 조기 교섭 타결을 목표로 하는지 등 분명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
p.48
춘투는 일본에서 공공기관 회계연도가 매년 4월부터 시작되고 기업들도 3월 말 결산 이후에 새로운 예산을 편성하기에, 노동조합이 사전에 공동 임금투쟁으로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봄철에 실시하였다고 해서 유래되었다. 반면, 우리 산업게는 봄철에 준비한 교섭을 여름에 개시하는 경우가 많아 하투가 많이 보이고, 정부기관 등 공공기관의 경우에는 연말 예산안 수립 이전에 노동조합이 교섭을 통하여 임금예산을 확보하고자 가을철 교섭에 들어간다. 정부의 노동정책 및 노동개혁의 방향을 둘러싼 상급단체의 정책 투쟁행위는 물론, 사업장마다 교섭 시기가 달라서 이제는 때를 가리지 않는 노동조합의 쟁의행위가 들린다.
p.56
기본 원칙을 적어보자.
- 노조 집행부를 비난하지 마라. 조합원들의 반감만 일으킬 뿐이다.
- 노조와 조합원의 성가신 질문에 침묵하지 마라. 경영진에 대한 구체적 비난에 침묵하면 사실로 여겨진다.
- 회사의 제시안을 자화자찬하지 마라.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말도 부적절할 수 있다.
- 파업이 발생하면 조합원들이 피해를 본다는 말도 노동조합의 연대감만 불필요하게 자극할 뿐이다. 파업에는 진정한 승자가 없다고 하라.
- 현장에 대한 소통은 질보다는 양과 빈도수가 중요하다. 성실하게 빨리 답변하라.
- 회사에 대한 질문은 노동조합보다 앞서서 답변을 하라.
- 최대한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반복적으로 강조하라. 뇌에서 자리를 잡는 데 시간이 걸린다.
p.66-67
노동조합이 많은 요구안 중에 구체적인 사항을 특정해서 요구할 때는 기회이다. 국면 전환기에 올 수 있는 것이고 이때는 절대 No하면 안 된다. 진지하게 요구사항을 검토하고 고민하고 답을 내겠다고 해야 하고 그래도 결국 받아들일 수 없다면 뭔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p.67
회사가 사정상 반드시 임금상승을 극히 제한해야 할 형편이라면 달리 어떻게 할 것인가? 전년도 소비자 물가지수만큼만 임금인상을 양보하고 임금인상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어떤가? 화폐의 인플레이션율만큼 임금을 조정해준 것이라면 실질임금의 동결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는 회사의 경우는 호봉승급도 임금상승의 일부분이다. 호봉승급분을 넘어서는 임금인상은 동결한다는 합의는 받아들일만한가? 우리의 작업 현장이 다양한 임금구조를 가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임금동결은 이렇게 다중적 의미를 가진다.
p.79-80
크고 무거운 사안에 대해서는 성질이 다른 큰 이슈로 그늘을 드리워라. 충분히 관심을 끌 수 있는 이슈를 제기하여 논쟁으로 끌고가면 그 영향으로 노조 요구안에 그늘이 지게 될 것이다.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주요 요구안이 있으면 설득하고 여의치 않으면 별도의 논쟁의 장을 만들어 성실한 이슈 파이팅 절차를 통하여 납득할 수 있는 과정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도 변화가 없으면 들고 있던 다른 돌을 몇 개 내려놓아라. 작은 몇 가지를 버리고도 가장 뜨거운 쟁점 속에 있는 목표 하나를 이룰 수만 있다면 성공적인 노사협상이다.
p.82
노사협상 과정에서 노사는 각자가 우선하는 가치를 추구하면서 교섭 성과를 확보하기 위하여 다양한 개념의 틀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노조는 투쟁이라고 말하고 경영진은 이견이라고 표하며, 노조는 사고나 문제라고 말하고 경영진은 도전과제라고 응답한다. 정년연장에 대한 요구가 있으면 청년실업으로 응대하고 노동강도 상승을 제기하면 제조 경쟁력이라고 하는 식이다.
p.85-86
양보는 모가지에 걸린 가시를 빼는 과정이다. 그래서 양보는 기본적으로 핀셋 처방이다. 양보는 시기와 내용이 중요하다. 양보는 받는 쪽의 상황에서 그 시기와 가치를 측정한다. 적기에 양보하지 못할 경우, 양보의 가치를 제대로 극대화하지 못할 경우, 심각한 교착상태에 빠지는 것이 노사협상이다. 묘수를 찾아서 해결하고자 하지 말라. 금전적인 문제라면 '겸손한' 반반의 양보법칙이 일반적으로 답이다. 상대방도 교착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것이 확인되면 그 법칙이 즉각적인 해결책으로 역할을 할 것이다.
p.87
교착상태에 빠지면, 회사가 설정한 당초의 협상 목표로 다시 돌아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양보했는지, 교착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후퇴를 할 경우 무엇을 잃고 무엇을 지킬 수 있는지를 냉정히 계산해본다. 양보에 대한 거부감은 떨쳐버리고 지극히 현실적 관점에서 대응책을 찾아보는 동시에 노동조합의 행태에 대해 감정적인 대응은 자제해야 한다.
p.89-90
"저는 상대방이 협상장에서 압박해올 때, 그 상대편을 똑바로 쳐다봅니다. 하지만 눈을 보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전 눈 위의 이마에 있는 한 지점을 똑바로 쳐다보죠. 그리고 상대가 이야기하는 동안 그곳을 뚫어지게 쳐다봅니다. 그러면 제가 무섭게 쳐다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디를 보는지 몰라 불안해하거나 당황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보를 합니다."
"저는 협상을 할 때 어려운 일을 맞으면 주위가 산만해지는 것을 느끼죠. 그때 조용히 자리를 일어나 벽을 등진 자세에서 테이블에서 좀 떨어집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시선을 받게 되죠. 그러면 의사소통의 지배력이 회복되는 것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쟁점을 전환하거나 분위기를 리드하는 효과를 보지요."
노사교섭장은 무대이다. 참여자는 연기자이기도 하고 관객이기도 하다. 모두 대사와 몸짓으로 의사를 주고받는다. 그 속에 말하는 사람의 의지, 듣는 사람의 평가가 있고, 그 둘레의 미묘한 분위기는 무대를 형성하는 조명이다.
교섭장에 노조를 대표하는 다수의 교섭 대표들이 참여한다. 자신들에게 가장 이해관계가 밀접한 노동조합의 특정 요구 항목이나 이슈에 대하여 회사의 입장을 요구한다. 이때 그 교섭 대표의 이름을 부르고 대답해보라. 특히 회사가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요구안을 가지고 압박할 때, 교섭장에서 즉답을 할 수도 있지만 가능하면 질문이나 이슈를 저너부 모아서 다음 교섭 테이블에서 정리된 답변을 하라. 그때, 해당 질문과 이슈를 제기한 교섭 대표를 호명하면서 답변을 한다면 해당 교섭 대표는 자신이 제기한 문제를 회사가 성의있게 검토한 것으로 이해할 것이고, 본인도 그런 질문을 한 것이 한 번 더 기록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p.102
협상가의 발은 현실을 딛고 있다. 현실을 정의하는 것으로 노사협상을 시작한다. 동시에 자신의 렌즈를 통하여 그 현실을 재해석하는 것으로 협상을 발전시킬 것이다. 회사의 형편이 어려워도, 노동조합의 비현실적인 요구안을 앞에 놓고 있어도, 리더는 자기만의 기준을 세워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노동조합과 소통하겠다는 자세로 노사협상에 임해야 한다. 회사 형편이 좋지 않아 객관적 현황을 언급할 때도 투명하게 공유하라. 노동조합이 회사의 우는 소리를 들으러 교섭장에 온 것은 아니다. 진정 어려운 회사 사정으로 노동조합의 희생을 요구할 경우에도 우는 소리가 아닌 긍정적이며 희망의 메시지를 함께 담아야 한다. 미래의 희망 없이 현재를 희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저항만 초래할 뿐이다.
p.106
노련한 정치가는 피아를 구별하지 않고 모호함 속에서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기술이 있다. 피아를 구별한다는 것은 자신도 어느 한쪽에 속해 있는 반쪽이라는 것을 의미하면서 스스로의 영역을 제한하게 된다. 피아의 구별이 모호해질 때 자신이 중심이 되는 세력구도하에서 재편되는 정치 지형을 만들 수 있다는 전략적이고 노련한 판단이 아닌가 한다. 노사관계도 피아는 없다. 노사관계의 복잡성은 피아의 구별에 혼란함과 모호함을 준다. 교섭장을 두고 마주한 노사의 모습이 피아를 구별해주지 않는다. 그 속에서는 협상의 훼방꾼, 경쟁상대, 기피세력과 우호세력이 함께 있다. 그들의 모습도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때그때 적절히 이해하고 판단하여 분리하고 선별하고자 하면 그 간격과 구별은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피아의 모호함 속에서 회사라는 교섭 주체를 축으로 해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p.108-109
"불이 났는데도 적군이 조용하면 공격하지 말고 기다려라." <손자병법 화공>편에 나오는 말이다. 상대방은 다른 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 수를 알기 전에 움직이지 마라. "상류에 폭우가 내려 강물에 물거품이 떠내려오면 그것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손자병법>. 위에서 뭐가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한 후 움직이지 않으면 수몰될 수도 있다. 사전에 완전히 조율되는 협상은 없다.
p.114
협박을 받는 입장에 있다면 대꾸하지 마라. "그런데요?" 한 마디면 충분하다. 상대방에게 깊은 자제심을 보여주면 협박한 당사자가 스스로 부끄러워 할 것이다. 상대방은 당신의 자제력과 내공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p.116-117
의미 있는 비언어행동은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인식과 의사소통의 효과는 달라진다. 교섭장에서 말하는 어조, 억양, 말하는 속도, 태도, 시선은 말과 함께 중요한 비언어행동이고 상대방은 그 속에서 진정성을 찾고자 할 것이다.
p.170
로버트 치알디니는 <설득의 심리학 2>에서 '모방이 최고의 아첨'이라는 실험을 하면서 보여준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참가자들 절반에게는 협상하는 동안 상대방의 행동을 미묘하게 따라하라고 지시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아무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상대방을 따라하라는 지시를 내린 경우, 쌍방이 타협점을 찾는 데 성공할 확률이 67%였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12.5%만이 타협점에 도달했다. 이를 보면 상대방의 행동을 따라 하면 서로 친밀도가 높아지면서 신뢰가 커지게 되고, 신뢰가 증가하면 협상가가 편안한 상태에서 허심탄회하게 협의할 수 있어 합의점에 도달하기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
p.173
단 한마디 말로 TV를 보고 있는 모든 시청자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준 유명한 일화가 있다. 레이건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했던 1984년에 그의 나이가 73세였고 그 경쟁자인 민주당의 월터 먼데일 후보는 56세였다. 대통령 TV토론에 나가 나이가 많아서 국정을 이끌어가기에 문제가 된다는 상대편 후보의 공격에 레이건은 "저는 선거운동의 쟁점을 나이로 몰고 가지 않을 것이고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경쟁자의 젊음과 미숙함을 이용하지 않을 것입니다."고 응수한다. 선거 결과는 큰 격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p.181
마감시한의 가치를 극대화하면서 상대방의 인내심을 시험하라. 시한이 지나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한정판이라는 생각에 쉽게 거부할 수 없다. 변호사들이 화해 제안을 상대방에게 할 때 반드시 유효기간을 기재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제안을 한 사람의 선택으로 기한이 지나면 철회될 수 있다는 불안을 심어주면서 결단을 촉구하는 것이다.
시한을 정하는 권한을 상대방에게 넘겨주지 말라. 인간은 이익과 관련한 의사결정 과정보다는 손실과 관련한 의사결정 과정을 중단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고 한다. 시한이 지나면 기회가 상실되어 손실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을 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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