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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무신론자의 시대

by Diligejy 2023. 3. 18.

 

 

p.20-21

무신론자 중에서도 현재 가장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난 몇 십 년 동안 축적된 방대한 생물학 연구를 감안하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 부류가 다윈주의자들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주장만 있는 것은 아니다. 17세기와 18세기에 종교적 회의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을 때부터, 특히 1882년에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언한 (한술 더 떠 신을 죽인 것은 바로 우리 인간들이라고 못 박은) 이후로, 의지할 초자연적 존재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난감한 질문을 두고 수많은 사람이 고심해왔다. 

 

p.27~28

실존적 환경의 안정성이 높아지면 종교적 가치의 중요성은 분명히 떨어지지만, 동싱- 여기에 함정이 있다 -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인구 증가율도 떨어진다. 다시 말해 부유한 사회는 더 세속적인 가치관을 갖게 되지만 인구는 줄어든다. 반대로 가난한 국가는 종교적 가치관을 강력하게 유지하지만, 출산율은 훨씬 더 높아서 점점 더 인구가 늘고 그에 따라 계속 가난한 상태가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거의 모든 전통 종교들이 가장 중시하는 목표는 가족의 힘을 유지하는 것,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녀를 갖도록 권하고, 여성은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도록 권장하며, 낙태와 이혼 등 출산율을 저해하는 모든 일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경향이 더해지면서 부유한 나라는 세속화가 심화되지만, 세계 전체로 보면 종교성이 한결 짙어진다. 

 

p.38

솔직해지자. 이런 결과들은 모두 흥미롭고 상당수는 유익하지만 동시에 걱정스럽다. 게다가 모순적이고 역설적이기까지 하다. 미국에서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실존적으로 불안정한, 따라서 행복할 가능성이 극도로 낮은 사람들이 교회를 가장 많이 찾는다. 미국에서 종교는 낮은 범죄율과 연관되지만 세계적으로는 더 높은 범죄율과 연관된다. 미국에서는 교회에 다니는 것이 소득을 늘려주지만, 세계적으로는 소득 증가가 행복을 증진해주지는 못했으며 교회에 가장 많이 다니는 사람들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다. 피터 버거는 우리가 어느 때보다 극렬하게 종교적이라고 말하지만, 페이쓰북(FaithBook) 회원들은 우리가 영적으로 후퇴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한다. 버거는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것이 초월의 부재라고 말하지만, 세계가치조사는 오히려 빵과 물, 적당한 의약품과 일자리를 그렇게 여기며, 바로 그런 것들이 사람들을 종교로 이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p.43~44

니체의 핵심적이면서도 가장 위험한 통찰은, 어떠한 관점도 삶 자체의 외부나 삶 자체보다 더 높은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바깥에는 그 어떤 특권적인 관점도 없고, 추상적 개념이나 힘도 없다. 현실 너머, 삶 자체 너머에는 그 어떤 '상위의 ' 것을 비롯해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거니와 초월이나 형이상학적인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보편적으로 타당하거나 '객관적'인 존재에 대해서는 어떠한 판단도 내릴 수 없다. '삶의 가치는 평가할 수 없는'것이다. 니체의 유명한 주장대로 '사실은 존재하지 않고 해석만이 존재할 뿐이다.'

 

p.48~49

<성스러운 무지: 종교와 문화가 갈라설 때>에서 최근 세속화와 나란히 또 하나의 과정이 병행하여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한 프랑스의 분석가 올리비에 루아의 이론 역시 브라운의 관점과 어느 정도 겹친다. 세계화로 인해 종교들은 저마다의 문화적 조국과 분리되었다. 종교가 '탈영토화'한 것이다. 이제는 유럽과 중동이 기독교를 독점하는 것도 아니고, 인도가 힌두교를, 사막 한 가운데의 땅들이 이슬람교를 독점하는 것도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종교가 이제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다. 

 

그래서 한때 종교적 정체성과 활동에서 필수적인 부분을 차지하던 문화적 속성들이 점점 설자리를 잃고 있다. 예를 들어 아랍인들은 가족과 관련된 사고방식과 관례, 성별 간 분리, 겸양, 식습관 등을 일컬을 때는 '무슬림 문화'라는 말을 쓰는 반면, 예술과 건축, 도시생활의 양식 등을 가리킬 때는 '이슬람 문화'라는 말을 쓴다. 하나의 실체적 종교가 전 지구적 맥락에서 통용되려면 보편적인 것처럼 보여야만 하고, 그 종교의 메시지를 사람들이 온전히 파악하기를 바란다면 전통적인 의미에서 특정 문화와의 연결성을 끊어내야 한다. "그래서 종교는 지식 바깥에서 유포된다. 구원은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탈민족화한' 결과 종교들은 '더 순수해지고' 더 이념적이 되었으며, 그에 따라 여지없이 더 근본주의적으로 변했다. 루아는 지극히 현실적인 의미에서 종교가 앎보다는 무지에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그런 만큼 (찰스 테일러가 세속적 삶에 대해 했던 말에 대한 응답으로서) 더 얄팍해졌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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