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게 요약한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영화는 휠체어에 앉아 크레인에 목을 매달고 죽는 남자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강도라는 이름의 남자는 다른 사람을 불구로 만들어서까지 채권을 추심하는 사람이다. 그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잔인한 행동을 하며,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 그에게 갑자기 미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엄마가 찾아온다. 처음에 그는 그녀를 의심하지만, 차츰 그녀를 믿게되고 그녀에게 모성애를 느끼게 된다. 그 결과 자신의 주업이었던 사채추심을 그만두게 되고, 그녀는 복수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정체는 마지막부분에 나오지만, 강도의 엄마가 아닌 맨 처음 장면에 나온 목 매달아 죽은 남자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같이 보기로 했던 친구는 이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았다. 잔인해서가 아니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대부분 그렇듯이, 이 영화도 묵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분 정도 같이 본 친구는 “이 영화의 주제는 ‘사채 쓰지 말아야 한다’네”라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 나온 인물들은 사채 때문에 고통받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사채를 쓰지 말아야 한다’라는 교훈을 얻고 끝나기엔 영화도 삶도 너무 무겁다.
영화의 첫 부분에 나온 사채추심을 당해 불구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아내와 성관계를 갖겠다고 하는 남자의 모습, 돈을 갚지 않고, 어차피 죽을 것이기 때문에 돈을 빌렸다는 사람의 모습, 자신의 아이에게 무엇인가 해주기 위해 자발적으로 불구가 되겠다는 사람의 모습, 그리고 자신의 엄마라는 사람 때문에 자신의 주업이었던 사채추심업마저 버리는 강도의 모습, 엄마인 미선을 묻기 위해 땅을 파다 자신이 추심했던 남자를 발견하는 강도의 모습 등 여러 장면을 보며, 나는 혼란스러웠다.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 부분은 강도의 폭력으로 팔이 잘린 훈철의 부인과 강도의 대화였다.
훈철 부인 : 개 쓰레기 새끼, 천벌받을 거야.
강도 : 남의 돈 빌려 써놓고 설마 어떻게 하겠어? 하는 니들이 쓰레기지.
여기서 나는 고민했다.
과연 강도와 같은 잔인한 사채추심업자 때문에 이런 사람들이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이런 사람들 때문에 강도와 같은 사람들이 생겨난 것인지, 그것의 선후관계, 인과관계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생각해낼 수 있는 건 이 두 주체 간에 관련성이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교과서나 신문에서 ‘금리가 오른다 혹은 금융관련 법이 바뀌었다’라고 할 때 그 텍스트는 단순한 텍스트로 다가온다. 우리의 삶에 다가오기엔 너무나 멀다.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을 보며 살지 그런 정책이나 법을 보며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정책이나 법은 어느 순간 다양한 모습을 한 사람의 얼굴로 우리에게 찾아온다. 우리가 느끼지 못 했을 뿐이다.
신문에 FOMC가 금리를 올릴 거라는 등, 대우조선이 어떨 것이라는 등, 국감이 어쨌다는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올라온다. 그것을 읽는 나는 텍스트는 읽고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삶에 어떻게 다가올지 알지 못한다. 어떤 사람의 모습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다.
‘돈이 뭐에요?’라는 영화의 질문에 답해보는 과정만이 예측은 못하더라도, 성찰은 가능하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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