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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중동은 왜 싸우는가

by Diligejy 2023. 9. 8.

 

 

 

 

p.6

어떠한 이유로든 세상은 변하고 기존의 질서는 새로운 질서로 대체되게 마련입니다. 이렇듯 혼란의 시기가 도래하면 인간들은 미래가 불확실해졌다고 느끼고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새삼스레 자신의 소속감을 확인하려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그러면서 묻습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 속해 있는가?'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을 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집단적으로 던질 경우 질문은 다음과 같이 바뀝니다.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가 아닌 이들은 누구인가?' 집단적으로 던지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누구를 우리 집단에 포함할 것이고 누구를 배제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정치적 행위입니다.

 

p.20

아랍어로 '꾸란'은 '읽어야 한다'라는 뜻이며 이슬람을 따르는 무슬림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경전'이다. 다른 언어들로 번역된 꾸란도 있지만 무함마드가 아랍어로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아랍어로 된 꾸란만 그 권위를 인정받는다.

 

p.22~23

무함마드는 사람들에게 천사로부터 계시받은 신의 메시지를 전했다.

 

"알라는 모세와 예수를 예언자로 보내 자신을 알리셨지만, 여전히 알라를 잘 모르는 불행한 인류를 위하여 마지막 예언자로 나 무함마드를 보내셨다!"

"모세의 가르침을 따르는 유대교나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기독교 모두 알라의 가르침을 부분적으로만 알고 따르는 것이니, 온전히 알라의 가르침을 믿고 따라야 한다!"

 

처음에는 무함마드의 외침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박대하고 무시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무함마드를 따르는 제자들이 생겨났다. 메카의 가난한 계층 출신들이 추종자의 주를 이루었지만 무리 중에는 급진적인 사회 변화를 갈망하는 부유한 가문의 젊은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함마드는 자신이 전하는 종교를 '복종'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슬람(Islam)'으로 칭했고 자신을 따르는 공동체를 '움마(Ummah)'라고 불렀다. 당시 아라비아 중개 무역의 중심지였던 메카에는 빈부격차가 심했는데, 일부 권력자들이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광경이 흔한 모습이었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이에 맞서 무슬림들 간의 평등을 강조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부르짖었다. 무함마드의 가르침은 수평적인 부족 문화와 맞물려 메카 사회 전반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나아가 무함마드는 메카에 만연하던 다신교 전통을 강력히 비판했다.

 

"오직 유일신이신 알라에게만 예배하라!"

 

p.22

이슬람이라는 말에는 '유일신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한다(알-이슬람, al-Islam)'는 의미가,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 즉 무슬림이라는 말에는 '절대적으로 복종한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p.23~24

결국 622년 무함마드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메카의 북쪽에 위치한 오아시스 도시 야스리브(Yathrib)로 근거지를 옮겼다. 이슬람에서는 무함마드가 추종자들과 함께 메카에서 야스리브로 이주한 사건을 '헤지라(Hegira)'라고 부르며 거룩하게 기념했다. 야스리브는 나중에 '도시'라는 뜻을 가진 메디나(Medina)로 이름이 바뀐다. 훗날 이슬람 제국은 무함마드와 그 일행이 메디나에 도착한 날인 622년 7월 16일을 기원으로 삼아 이슬람력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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