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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히틀러는 왜 세계 정복에 실패했는가

by Diligejy 2023. 9. 17.

p.11

상대의 약점이 무엇인지 간파하고 난 후에 그 약점을 이용하는 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던 히틀러는, 자신의 비상한 소질을 이용하여 독일 총통으로 취임한 1933년부터 1940년 여름의 프랑스 점령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연속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프랑스에 대한 승리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에리히 만슈타인과 하인즈 구데리안이라는 두 장군의 뛰어난 능력과 비전에 의해 가능했음을 전혀 알지 못했다. 

 

p.12~13

그는 독일군의 군사력이 열세에 몰리고 있는데도 유일한 문제 해결방법으로 오로지 공격만을 고집했다. 이를테면 공격만이 최고의 방책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퇴만 하면 독일 군대를 구할 수 있었을 때, 그는 그때까지 점령한 영토를 한 뼘이라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절대로 후퇴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오판 아래 스탈린그라드와 튀니지, 커스크 등 무리한 공격을 감행한 그는 막대한 재앙을 초래했고, 결국 후퇴하지 말라는 그릇된 명령을 통해서 독일 군대의 상당 부분을 사지에 몰아넣고 말았다.

 

만약 그가 소련에 정면 공격을 가하지 않고 북아프리카를 거쳐 우회적으로 접근하는 공격 방법을 택했다면 2차대전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장담하건데, 히틀러는 당연히 크나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경로가 승리를 가져다 주리라는 점은 너무도 명백해서, 심지어 적군인 영국의 지도자들까지도 모조리 파악하고 있었다. 또 독일군 작전참모장인 알프레드 요들 장군, 해군 사령관 에리히 레더 제독, 북아프리카에서 '사막의 여우'로 널리 유명해진 에르빈 롬멜을 비롯한 수많은 독일군 지휘관들까지 이 사실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참고로, 1940년에 프랑스 군대가 섬멸된 후에 이집트와 수에즈운하를 보호할 수 있는 병력은 영국군 1개 사단밖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독일군은 그때까지 한 번도 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군대가 12개 사단이나 있었다.

 

그런 만큼 독일 이탈리아 추축국 동맹군이 이 병력을 이용해 수에즈운하를 점령했다면 영국 해군은 지중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그곳은 추축국의 놀이터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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