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부제를 넣는다면, 고 이건희 씨가 쓴 에세이 제목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건희 씨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에세이를 낸 바 있고 그 제목은 이 책의 부제로 딱이다.
그 이유는 기존의 통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이고 실제로 저자는 해당 방식이 장기적으로 선수를 살리고 성과도 낼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존의 야구시스템은 그저 죽기 살기로만 연습을 시키면 나아진다고 맹종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를 비판한다. 그리고 그런 사고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도록 돕는 일이 트레이너의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트레이너 자신의 전문성이 너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선 단순히 현재 하고 있는 수준에서 만족해선 안된다고 말한다.
특히 단순히 배팅 연습만 시킬 것이 아니라 몸을 전체적으로 키워야 하는지, 키워야 한다면 어느 부분을 키워야 하는지 등을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고민하고 그 다음에 한계치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연습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의 비판과 주장을 읽으며 요즘 인기 있는 예능프로그램인 최강야구가 떠올랐다. 이미 누구때문인지 알겠지만, 김성근 감독 때문이다. 저자의 가치관이나 철학과는 정 반대(야구를 잘 모르기에 이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에 있는 대표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은 지금은 예능 프로그램 덕에 인기가 있고 당신 말씀으로는 처음으로 욕을 먹지 않는 해가 되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과거 프로야구 감독 시절에는 엄청난 찬사와 동시에 비난을 받은 인물이다. 그의 펑고는 야구를 전혀 모르는 인물도 알 만큼 유명하고, 지금도 야구 관련 유튜브에서 김성근 감독과 함께했던 야구선수들은 그와의 펑고에 대한 회고를 컨텐츠로 삼곤 한다.
저자와 김성근 감독의 철학 중 누가 옳은지를 판단할 만큼 나는 야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야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는지 생각을 하면서 해야 한다는 것은 공통점이라는 것이다. 그저 열심히가 아닌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걸 선택할지 과학적으로 철저히 분석해보는 것, 이 점에 있어서 두 사람의 철학은 다르지만 같지 않을까.
그리고 저자의 편을 약간만 더 들어주자면, 쉬는 건 단순히 노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쉬는 거라는 것.
쉬는 것과 노는 것은 다른 것이며, 적절히 쉬어줄 때만이 과도함을 막고 롱런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배웠다.
야구를 전혀 모른다 해도 이 책은 재미있을 책이다.
p.7
트러블을 두려워하면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없다. 트레이너 업무의 범위는 개인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트레이너들 중 자신의 처우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다. 구단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 전에 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 자기 일을 열심히 했다고 항변할 수 있지만 자기 일은 누구나 열심히 한다. 내가 남들보다 나은 대우를 받으려면 남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다른 코치들과 트러블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고 선수와 트러블 있는 걸 두려워하는 트레이너들은 좋은 대우를 받기 힘든 시대가 아닌가 한다. 말 잘 듣고, 그동안 해왔던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그 사람을 꼭 써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나의 업무 범위를 넓혀서 조직에 어떤 도움을 줄지 고민하는 것이 나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길이다.
p.16~17
8888577로 유명했던 2000년대 최약체 중의 하나였던, 롯데자이언츠가 2008년 페넌트레이스 3위를 했던 걸 기억하는가? 당시 기사를 찾아보면 알겠지만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훈련량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 나는 제리 로이스터 감독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서 당시 롯데에서 일하고 있던 코치를 따로 만나 질문을 퍼부었던 기억도 있다.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루는 로이스터 감독이 수비 코치를 불러 펑고(야수가 수비 연습을 할 때 코치가 쳐주는 타구)를 왜 그렇게 좌우로 많이 움직이게 치냐고 물었다고 한다. 해당 코치가 안타성 타구를 잡는 연습과 체력을 기르기 위한 훈련이라고 설명을 하자, 로이스터 감독이 뒤이어 바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내야수 실책의 80%는 어디서 나오나?"
순간 그 코치는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로이스터 감독은 선수들 힘들게 좌우 펑고 치지 말고 정면 타구에 대한 수비 연습을 잘 시키라고 했다고 한다. 당시까지도 우리나라 야구계는 수비 연습 시 유니폼이 더러워지지 않으면 연습을 안 한 거나 마찬가지이고, 땀을 흘리지 않거나 숨을 헐떡이지 않으면 훈련을 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p.23~24
야구선수들 중 중고등학교 시절 야구의 신으로 불리다가 프로에 와서 존재감 없이 은퇴하거나 대학교 진학 후 프로팀에 지명받지 못하는 선수들이 의외로 많다. 그 선수들의 동기들이나 동시대에 야구를 했던 선수들에게 '그 친구는 중고등학교 떄 뭐가 좋았어?'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힘이 남다르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 선수들이 진학을 하거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실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어릴 때 경쟁력이었던 힘이, 성장할수록 떨어졌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큰 편에 속했던 키가, 대학이나 프로에서는 평범한 키가 되거나, 어릴 때 엄청나게 큰 힘이 이후에는 평범한 힘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야수들에게는 더 크게 적용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 야구팀 대부분은 타격 훈련량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훈련을 비효율적으로 많이 하면 선수들은 지치게 되고 힘은 떨어지게 된다. 힘이 떨어지면 타구 스피드는 떨어지게 되고 안타는 덜 생산된다. 안타가 덜 생산되면 연습량을 늘리고, 다시 힘은 떨어지고... 이 악순환을 끊어내는 게 중요하다.
게임 중 한밤중에 특타를 한다고 그 다음 날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이유가 이것이다.
p.27~28
나는 개인적으로 죽기 살기로 하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 이유는 죽기 살기로 하면 '죽는 것'과 '사는 것', 이 두 가지 결과만 있기 때문이다.
야구선수로 실패한 선수들에게 대부분의 부모나 지도자는 '열심히 안 해서 그렇다', '헝그리 정신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말한다. 평소 죽기 살기로 하라는 조언을 자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 마음으로 하지 않는데 어떻게 성공하느냐는 것이다. 특히 올림픽에서 야구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연봉이 많아서 절실함이 없다느니, 열심히 하지 않았다느니 하는 말도 야구 원로들 사이에서 나온다.
신인 선수 드래프트를 하면 보통 한 팀당 10명의 선수를 선발해 매년 100명 정도의 선수만이 프로팀 유니폼을 입게 된다. 육성 선수로 입단하는 선수도 있기는 하지만 육성 선수를 포함하더라도 그렇게 많지 않은 선수만이 프로팀에 입단한다. 나머지 선수들은 대학에 진학하거나 대학 졸업 후에도 입단하지 못하면 야구를 그만두기도 한다. 프로에 입단하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가장 쉽게 하는 말이 '열심히 하지 않았다'일 것이다.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이 중고등학교 때부터 죽기 살기로 했을 것이라고 난 확신한다.
p.35
직장인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죽어라 열심히 일하면 결국 얻게 되는 것은 번아웃이고 그로 인해 무기력해지고 일의 능률도 떨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삶 속에 일이 있는 것이지 일 속에 삶이 있는 건 아니다.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실제로 내가 대학 다닐 때 선배들이 자주 해주던 말이다. 일이 끝나고 여가 활동도 즐기면서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면 회사 일에 능률도 오를 것이다. 그러니 죽기 살기식보다는 즐거운 삶의 일부분으로 자신의 직업을 마주하는 자세를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p.38~40
선수들은 대기타석이나 더그아웃에서 상대할 투수를 어떻게 공략할지 나름 계획을 세우고 타석에 들어선다. 게임 전 전달받은 정보와 그동안 본인이 상대했던 경험을 토대로 계획을 수립한다. 하지만 그렇게 대기타석이나 더그아웃에서 집중하고 있는 선수에게 지도자들은 또다시 정보를 주입한다. 이럴 때 선수들은 아주 혼란스럽다고 한다.
예를 들면 A라는 투수가 던지는 구종이 직구,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인데, 타자는 예전에 경험해보니 직구 타이밍에 직구와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모두 상대할 수 있다는 호가신이 있어 커브는 머릿속에서 지우고 상대하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타격코치가 대기타석으로 와 '직구,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던지니까 알고 있어'라든지, '커브는 원바운드(땅바닥에 닿고 나서 포수가 잡는 공)이 많으니 조심해' 라는 얘기를 한다. 이러면 원래 선수가 세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확률적으로 타석에서 좋은 결과를 내기 힘들어진다. 타격코치들도 선수 시절 이렇게 얘기하는 타격코치들을 보통 싫어했는데 자신들이 코치가 되어서는 왜 그러는 걸까.
예전 한 외국인 선수에게 '우리나라 코치들은 게임 중에 말을 너무 많이 하거나 많은 정보를 계속 얘기하는데 왜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면 코치들은 아무 말도 안 하는 거냐'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대답은 '줘야 하는 정보를 게임 전에 주고받았다고 코치와 선수가 서로 믿는다'는 것이다.
그때 난 깨달았다. 왜 우리나라 코치들은 정보를 계속 얘기할까? 얘기를 안 하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선수는 불안해하지 않는데, 코치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타자가 아까 얘기했던 정보를 알고 있을까?' 이 걱정이 많은 말을 하게 만든다. 또한 게임 중 얘기할 정보가 많다는 건 그만큼 게임 전에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지도자의 불안함으로 티샷을 하기 위해 서 있는 골퍼에게 '야지' 넣듯이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선수들의 퍼포먼스를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코치들의 마음도 이해한다. 단순히 코치들의 불안 때문에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게임 중 선수들에게 얘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구단 프론트에서 난리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타자가 이렇게 못 치는데 타격코치는 하는 거 없이 왜 맨날 가만히 있냐고."
좋은 코치는 선수들이 물어볼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코치라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정보는 굳이 전달할 필요가 없다. 만약 처음 가는 골프장에서 캐디가 얘기해준 정보가 생각나지 않으면 티샷하기 전에 다시 묻듯, 선수들도 타석에 들어가기 전 타격코치에게 투수에 대한 정보를 다시 물을 것이기 때문이다.
p.42~43
UFC에서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그렉잭슨 트레이너가 한 선수의 경기에 참여했다. 그 선수는 상대에게 엄청 많은 타격을 허용하고 있었다. 일반인인 내가 봐도 테이크다운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3라운드쯤 끝났을 때 그 트레이너가 50초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계속 숨을 깊게 쉬라는 얘기만 하고 선수가 회복하는 데 시간을 쓰고 있었다. 아무런 지시를 하지 않는 게 너무나 이상했다. 보통 그런 상황에서 이런저런 지시들을 많이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다음 라운드 공이 울리기 직전 딱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테이크다운 해." 순간 왜 이 사람이 세계적인 지도자인지 깨달았다.
하고 싶은 여러 말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가장 적절한 때, 가장 임팩트 있게 전달하는 것, 그것이 결국 가장 높은 효율을 동반한다는 것을 많은 지도자들이 깨닫게 되길 바란다.
p.44
야구감독은 마치 비둘기를 손에 쥐고 있는 것과 같다. 너무 세게 잡으면 비둘기가 죽고, 너무 느슨하게 잡으면 달아나버린다.
- 토미 라소다
p.65
유격수가 실책을 했다면 나에게 책임이 있다. 타자가 공을 치게 만든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다.
- 페드로 마르티네즈
p.80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잊어라
- 월터 앨스턴
p.95
내가 생각하는 1주일에 안타 0.75개씩 치는 방법은 잘 먹고 잘 쉬는 것이다. 몸 컨디션을 좋게 하여 게임에서 집중력을 향상시켜서 1주일에 안타 0.75개 치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부상의 위험도 없으며 확률이 더 높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p.152-153
많은 지적에도 아직 수정되지 않았다면 그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내게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특별한 방법이 있지 않는 이상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팀에서 일할 때, 한 번은 감독이 나를 불러 C선수가 술을 좋아하니 잘 관리하라고 했다. 알겠다고 대답을 하면서 속으로는 '내가 그걸 어떻게 컨트롤하지?' 생각했다. 24시간 선수와 붙어있을 수도 없고, 게임 종료 후 집에서 마시는 술까지 어떻게 관리할 수 있겠는가.
고민 끝에 나는 그 선수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네가 블론세이브(경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올라간 투수가 동점이나 역전을 허용했을 때 기록됨)를 기록했는데 술도 안 마시고 자면 문제 있는 거 아니냐'고. C선수는 처음 들어보는 얘기인지 무슨 말이냐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덧붙였다.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는데 좋아하는 술도 안 마시고 잠을 자는 건 팀 승패에 대한 애정이 없어 보일 것 같다. 그러니 그런 날은 술을 마셔라'라고 말이다. 대신에 다음 날 지장이 없을 정도만 마시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랬더니 소주를 좋아하던 C선수가 내게 와인을 마시는 건 어떠냐고 물어왔다. 난 그게 더 나을 것 같다고 답했다. 시즌이 끝날 때쯤 C선수는 음주량을 전년 대비 1/3로 줄였다고 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일 테다. 하지마 변화가 어려웠던 이유가 무엇인지, 그동안 어떤 조언을 들어왔는지를 먼저 파악한 후 그 어려움에 공감하면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봤는가. 이런 노력을 한다면 조금은 변하게 할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이전에 들어봤음직한 얘기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게 좋다. 아무리 좋은 말이어도 상대에게는 잔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누가 하든 달라질 가능성도 거의 없다.
p.174
지난 2021년 2월 설연휴에 5일을 쉰 고교 야구선수들이 내게 이렇게 말한 적 있다. "5일 간 쉬어서 불안합니다." 그래서 난 이렇게 되받아쳤다. "5일을 쉬고 난 다음에 연습을 하는데 야구를 못하면 그건 무엇을 뜻하는지 아니? 5일을 쉬었는데 야구를 못하는 건, 원래 야구를 못해서 그런 거지 5일을 쉬어서 야구를 못하는 게 아니다!"
p.179
내일 중요한 일이 있다면, 지금 무엇을 하는 게 진짜 내게 도움이 될지 잘 생각해보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일 하는 일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불안해서 하는 것인지 잘 생각해보라는 얘기다. 대부분은 불안해서 하는 일일 것이다.
준비가 덜 되어 있을 때 불안은 더 크게 찾아온다. 그렇다고 부족한 준비를 메우기 위해 무리를 하다가 성대결절이 와서 오디션을 망치는 참가자가 되거나, 시험시간에 졸려서 답안지를 밀려 쓰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자. 여러 번 얘기하지만 감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휴식을 통한 컨디션 회복과 유지는 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p.180
두 가지만 기억하라. 열심히 뛰고 즐겁게 하라. - 토니 그윈
p.212
허문회 감독은 코치일 때 안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지만 선수들이 좋아하고 의지하던 타격코치였다.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선수들이 찾아올 때까지 준비하고 기다려줬다.
스프링 캠프에서 2년 연속 같은 방을 썼는데 당시 허문회 코치는 지도할 때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선수 출신이 아닌 내게도 많은 질문을 할 정도였고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느라, 잠을 못 자는 날도 많았다.
눈에 보이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문제를 선수가 받아들이게 하는 게 중요하지 그냥 지적만 한다고 좋은 코치가 되는 건 아니다. 물론 선수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꽤나 어려운 일인 건 맞다.
p.223
내가 그동안 만나온 선수, 코치, 감독 중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머리로 이해를 했으면 일단 해보는 것이다. 본인이 정체된 느낌이 있거나 성공을 하고 싶다면 크고 작은 변화가 필요하다. 그 중 합리적이고 타당한 근거들을 확인했다면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아마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만약 그 변화를 가장 빨리 받아들이면 자기 분야의 선구자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변화는 용기만 있으면 실천할 수 있다.
p.231
여러 번 강조하지만 야구에서 타자가 성공한다고 평가받는 기준이 되는 타율이 0.300이다. 10번의 기회에서 3번의 성공을 하는 것이다. 10번 중 7번은 실패를 해야 성공하는 것이다. 야구를 하면서 실패는 당연히 겪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실패를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을 살면서 어떻게 단 한 번의 실패도 겪지 않을 수 있나. 실패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 실패를 통해 어떤 걸 얻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게 더욱 생산적이다. 그렇게 해야 다음에 실패를 하지 않고 성공할 수가 있는 것이다.
p.239
야구는 후회를 관리하는 게임이다.
- R. A 디키
p.254-255
프로 야구단에 17년 정도 있으면서 내 나름의 경험 데이터가 있다. 대화를 해보거나 평소 행동을 보면 이 선수가 야구 선수로 어느 정도 성공할 것인지 느낌이 온다. 물론 다 맞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확률이 꽤 높은 편이다.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선수의 눈빛, 태도, 뿜어내는 아우라를 보면 짐작이 된다.
요즘 고등학교 야구선수를 만날 때 내가 자주하는 말이 있다. "야구 실력이 톱클래스가 아니라면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라! 매력이 있으면 남들보다 더 많은 기회를 받을 것이고, 너희는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그 매력이 바로 눈빛, 태도, 인성 등 설명할 수 없는 느낌들이다. 그런 매력적인 선수들이 성공할 확률이 높은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본인의 능력을 알아봐주기까지 안정적인 기회를 얻고 싶다면 본인의 매력을 보여줘라. 세상에 인사성 밝고, 사교성 좋은 이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
p.269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지도자들이 먼저 선수들을 프로 선수처럼 대하면 선수는 프로 선수가 될 것이고, 아마추어 선수처럼 대하면 아마추어 선수가 된다'고. 지도자들이 선수들을 아마추어 마인드로 대하는데 선수들이 프로 선수의 마인드를 가질 수는 없다. 만약 선수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지도자부터 먼저 변화해야 한다.
p.294
친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기는 30대 중후반부터 주변에서 만나자고 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다 만난다고 한다. 누군가가 만나자고 했는데 귀찮아서 약속을 미뤘더니 그 사이에 상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그 나이 때에 느낄 수 있는 행복은 나이를 들어서 느끼는 행복과는 다를 것이다. 예를 들면 같은 곳을 20대에 여행하는 것과 50대에 여행하는 것은 여행지에서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 행복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느껴야 하는 행복은 나중에 다시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며 산다. 또한 자신의 행복을 위한 건지 타인의 행복을 위한 건지 깨닫지 못하며 산다. 부모님이 바라본 나의 모습, 주변 지인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을 엄청나게 신경 쓰며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닌 나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으면 좋겠다. 나는 야구단 일을 쉬는 동안 이것을 깨달았다.
p.299-300
야구선수들에게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잘 버티고 있어라. 감독이나 코치는 언젠가는 바뀔 것이고 선수의 진가를 알아봐주는 지도자를 언젠가는 만날 수 있고, 트레이드라는 제도를 통해서 새로운 기회가 올 수도 있다'고 말이다. 야구단에서 트레이드 발표가 나면 잘됐다고 축하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야구선수들은 회사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없지만, 직장인들은 다르지 않은가. 지금의 직장이 자신을 알아봐주지 못하면 과감히 회사를 옮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한다. 한 곳에서 성실하게 무작정 노력만 한다고 인정받는 시대는 아니기 때문이다.
지인 중에 대학가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동생이 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 장사가 잘 안 되어 힘들었다고 한다. 코로나가 터지고는 망연자실했다고 한다. 그런데 세상 일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코로나가 터지고 배달주문이 엄청 늘어서 지금은 코로나 이전보다 매출이 몇 배는 뛰었다고 한다. 일이 너무 많아져서 힘들다고 앓는 소리를 할 정도로 돈을 많이 벌고 있다.
이렇듯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 시대, 환경이 올 때까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 시작이라는 말처럼, 야구도 인생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그러니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지 말고 잘 버티는 방법을 고민해보자. 그러다 보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좋은 시절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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