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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

by Diligejy 2024. 10. 6.

 

 

p.16

헤겔에 따르면 인정을 위한 투쟁은 인류 역사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그는 인정 욕구에 대한 유일한 합리적 해결책은 모든 인간이 존엄성을 인정받는 '보편적 인정(universal recognition)'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보편적 인정은 민족, 종교, 종파, 인종, 민족성, 성별 등을 근거로 하는 부분적 형태의 인정들, 또는 우월함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개인들에게 도전받아왔다. 정체성 정치의 부상은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직면한 주요 위협들 중 하나다. 만일 인간 존엄성에 대한 보다 보편적인 이해로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면 우리 인류는 끊임없는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p.50~51

현대의 정체성 정치를 이끄는 힘은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소외당해온 집단들의 평등한 인정에 대한 요구다. 그런데 이 같은 평등한 인정에 대한 욕망은 해당 집단의 우월성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로 쉽게 변형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민족주의와 민족적 정체성, 그리고 종교 극단주의자들의 정치에서 쉽게 목격되는 현상이다. 

 

대등 욕망과 관련된 또 다른 문제는 인간의 어떤 활동은 불가피하게 다른 활동보다 더 큰 존경을 받기 마련이라는 점과 관련된다. 이를 부인하는 것은 인간이 발휘하는 탁월한 능력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 예컨대 나는 피아노를 연주할 줄 모르므로 당연히 이 분야에 관한 한 글렌 굴드나 아르투르 루빈스타인과 동등하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사회에서든 위험을 감지하는 즉시 줄행랑치는 겁쟁이나 또는 심한 경우 조국을 적에게 팔아먹는 자보다 공익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군인이나 경찰관에게 더 큰 존경을 표한다. 모두가 동등한 가치를 지녔다고 인정하려다 보면 특정한 의미에서 실제로 더 뛰어나고 우월한 사람들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할 수도 있다. 

 

p.66

루소의 주장은 사회라는 것, 다시 말해 온갖 규칙과 관계, 명령, 관습이 개인의 외부에 존재하고 그것이 인간의 잠재력 및 행복의 실현을 방해하는 주요 장애물이라는 것이며, 이는 이후 시대의 세계 정치에서 기본 토대가 되는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현재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할 만큼 너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범죄를 저지른 후에 "이 사회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라고 항변하는 10대 청소년이나 성차별이 만연한 사회때문에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고 느끼는 여성의 경우를 생각해보라. 보다 큰 차원에서는, 미국 주도의 국제 사회 질서가 러시아를 부당하게 경시하고 있다고 느껴 그런 상황을 뒤집고 싶어하는 푸틴 같은 정치가의 불만에서도 그런 관점이 엿보인다. 과거의 사상가들은 사회 규칙과 관습의 여러 측면을 비판하기는 했어도, 기존 사회 및 규칙을 일제히 없애고 더 나은 무언가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은 없었다. 결국 루소는 1789년 프랑스와 1917년 러시아, 1949년 중국의 혁명 정치에 사상적 토대를 제공하게 된다.

 

p.78-79

헤겔은 현대 정치에 관한 근본적인 진실 한 가지를 지적했다. 바로 프랑스 혁명을 비롯한 여러 사건들에서 목격된 거대한 열정은 결국 기본적으로 인정을 둘러싼 투쟁이라는 사실이다. 내적 자아는 단순히 개인적 자기 성찰이라는 문제에만 머물지 않았다. 내적 자아의 자유가 권리와 법률로 구현돼야 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200년 동안 전개된 민주주의의 급속한 발전을 추동한 힘은 자신의 정치적인 인격성을 인정받기를, 자신의 정치적 힘의 행사에 참여할 능력이 있는 도덕적 행위자임을 인정받기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었다.

 

다시 말해 노예는 주인에게 저항해 반기를 들게 된다. 그리고 소수의 존엄만 인정하는 세상을 모두의 존엄을 똑같이 인정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는 세상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시작된다.

 

p.92

프랑스 혁명 이후 등장한 민주 운동들의 핵심에는 국가가 개인의 기본 존엄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자리잡고 있다. 국가가 평등한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헤겔이 말한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서 주인만 인정을 받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합리적인 길이었다.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 시기에 시민들이 거리로 뛰어나간 것도,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민들이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한 것도,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분신자살을 감행한 것도, 버마 양곤이나 우크라이나 마이단,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장소에서 시위자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한 것도 바로 그런 기본 존엄성의 인정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p.105

민족주의와 이슬람주의(즉 정치화된 이슬람교)는 같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공적 인정을 원하는 숨겨진 또는 억눌린 집단 정체성의 표현물이다. 또한 민족주의와 이슬람주의 둘 다 비슷한 상황에서, 즉 경제 근대화와 급속한 사회 변화가 기존 공동체를 약화시키고 그 자리에 대안적 형태의 연대들로 이뤄진 혼란스러운 다원주의가 들어설 때 부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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