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외교

예정된 전쟁

by Diligejy 2024. 10. 7.

 

p.11

다른 현직 역사가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역사가 주는 교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과거를 살피는 동안 내가 배운 유일한 교훈은 역사에는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는 사실이다.

 

- 라마찬드라 구하

 

p.77-78

아르키다모스가 예견한 대로 전쟁은 참혹했다. 30여 년에 걸친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유혈참극으로 그리스 문화의 황금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페르시아전쟁 이후에 합의된 규칙에 의해 만들어지고 힘의 균형으로 공고화되어온 질서는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극작가조차도 미처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의 폭력 속으로 내몰았다. 예컨대 멜로스 섬을 점령한 아테네 군인들은 성인 남자는 모조리 학살하고 여자와 아이는 노예로 보냈다. 이것은 수백 년간 그리스가 지켜온 전투 규칙을 어긴 행동이었다. 이 사건은 투키디데스의 멜리아 대화록 속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 이 대화록에서 아테네 대사는 현실 정치의 본질을 포착하고 있다. 

 

"그럴 듯한 구실을 내세워서 당신네들을 괴롭히지는 않겠소. 우리가 메디아를 무너뜨렸으니 우리 제국에 무슨 권한이 있다든지, 아니면 여러분이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우리가 공격하는 것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여 설명했다.

 

"사실, 옳고 그른 것은 오직 양측의 힘이 동등한 관계에서만 의미가 있는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도 우리만큼이나 잘 알고 있을 것이오. 현실 세계에서는 그저 강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약자는 어쩔 수 없이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법이오."

 

p.90

신흥 세력과 지배 세력 간의 세력 다툼으로 희소한 자원에 대한 경쟁이 더 격화되는 경우가 많다. 신흥 세력이 팽창하는 경제 때문에 필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더 멀리까지 갈 수밖에 없어, 지배 세력의 지배나 보호 아래에 있는 자원에까지 손을 뻗게 될 때 경쟁은 자원 쟁탈전으로 비화될 수 있다. 이때 한 국가가 스스로 자국의 생존이 걸린 품목이라고 판단하는 수입품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도는 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

 

p.100

우리는 보통,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실제 모습보다 더 온순하다고 생각하고 잠재적인 적에 대해서는 악의적인 동기가 있다고 재빠르게 단정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국가들 간에는 서로의 의도를 절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대신 역량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로버트 저비스의  '안보의 딜레마'가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듯이, 한 세력이 방어적으로 취한 조처가 상대 세력에게는 위협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신흥 세력은 스스로는 선의를 갖고 행동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지배국의 두려움과 불안을 지나쳐버릴 수 있다. 다른 한편, 지배 세력은 신흥 세력의 긍정적인 계획조차도 지나친 요구라고 혹은 심지어 위협적이기까지 하다고 오해한다. 예컨대 기원전 464년에 대지진이 났을 때, 아테네가 스파르타의 희생자들을 돕겠다고 하자 스파르타가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일도 이런 경향이 반영된 예다.

 

p.103

처칠은 "전쟁 준비는 부, 천연자원 그리고 영토의 보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라고 쓴 뒤, 충분한 준비를 위해서는 반드시 다음 세 가지 '발생 가능한 위험', 위협에 맞설 '최선의 보편적인 방법'을 찾기 위한 역사적 교훈 그리고 당대의 '전쟁 도구'를 가장 효과적으로 응용하는 방법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1911년에 '발생 가능한 위험'은 이미 임박해 있었으므로 절대 놓칠 수가 없었다. 바로 독일의 군사력 증강이었다. 특히 함대 규모는 지난 10년 사이에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나 있었다. 이 위험에 대처할 '최선의 보편적인 방법' 역시 분명했다. 바로 영국 해군 전력의 우월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1889년 발표한 2국 표준주의 정책에 따라, 영국 함대는 해군 전력이 2위와 3위인 나라가 각각 배치한 전함을 합한 것과 같은 수의 전함을 유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처칠은 기술 발전에 개방적이고 그 기술을 적용하려는 의지도 강했으므로 '당대의 전쟁 도구'의 '가장 효과적인 응용'도 확실히 이루어졌다. 전함을 더 많이 만들었을 뿐 아니라 첨단 기술을 이용해서 그 전함들의 위력을 더 강화했다. 예컨대 새로 만든 15인치짜리 포로 무장 수준을 높이고, 석탄 대신에 석유를 동력으로 삼아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게 만들었으며, 새로운 전쟁 도구인 전투기를 배치했다.

 

p.106

나중에 처칠은, 영국 지도자들은 전쟁을 필연적이라고는 여기지 않아서 전쟁을 막으려고 노력헀지만 피를 흘리게 될 가능성은 "끈질기게 그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고 썼다. 1914년 이전의 10년 동안 "나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 자신의 임무인 사람들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생각의 세계에 동시에 살았다"고 처칠은 회상한다. 그들은 "평화로운 활동과 범세계주의적인 목표로 움직이는, 실제로 보이는 세계에" 살았지만, 동시에 "가설의 세계, '임계점 아래의 세계'...... 한순간 극도로 환상적이었다가 다음 순간에는 현실로 훌쩍 넘어가버릴 것처럼 보이는 세계, 즉 깊이를 알 수 없는 파국적인 풍경을 통해서 발작적인 결과를 향해 들어가는 가공할 어둠의 세계"에도 살았다. 

 

'정치외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  (1) 2024.10.06
헨리 키신저의 외교  (0) 2023.09.16
워싱턴 퍼즐  (0) 2023.03.03
소명으로서의 정치  (0) 2023.03.03
알파독  (0) 2023.02.2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