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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해충돌을 어떻게 할 것인가 -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가 온다

by Diligejy 2025.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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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전 책(법은 어떻게 부자의 무기가 되는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책 또한 거버넌스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전작이 2020년에 출간되었고 그 사이에 카카오페이 이슈라든지, LG화학 이슈라든지, SM 이슈같은 여러 거버넌스 이슈가 발생했기에 저자는 그런 사건들을 차분히 정리하며 핵심 쟁점과 생각해 봐야 할 점을 제시한다.

 

단순히 모랄 헤저드다 이렇게 단순화해서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관계를 생각해보며 정리해주는 엄격함은 전작에서도 이번 책에서도 높은 만족도를 주었다. 

 

상법과 공정거래법, 자본시장법, 회계, 재무 등 다양한 지식들과 사례들이 펼쳐지지만 결국 핵심은 하나다.

'이해충돌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것이고 어쩌면 거버넌스의 핵심이 이게 아닌가 싶다.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 완벽한 해결책은 없다. 저자는 일본과 미국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지만, 아마 그들에게도 다양한 고충이 있을 거고 수많은 속임수들이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 현재 한국 시장의 상황을 봤을 때 OECD가 제시한 권고안과 일본을 모델로 삼아 따라한다면 높은 확률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다만 미국, 일본과 다르게 한국은 주주의 지분율이 분산되어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반영한다면 더욱 좋은 성과가 나올 거라고 한다.

 

저자의 말대로 될지 되지 않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흐름을 볼 때 계속해서 거버넌스 이슈는 제기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왜냐하면 유튜브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이전과 다르게 정보가 많이 전달되고 있고, 거버넌스 이슈를 제기하는 측에서도 그런 환경변화를 이용해서 어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거버넌스 측면에서 소수주주에 해당하는 측이든 지배주주에 해당하는 측이든 아니면 관전하고 있는 측이든 이 책을 보면 아마 경기 해설집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싶다. 

 

 

 

밑줄긋기

p.27

2024년 2월 2일 코스피 시가총액 10위 종목의 각종 지표

 

N 종목명 현재가 시가총액 주당순이익 PER ROE
1 삼성전자 74,600 4,453,458 4,704 15.86 17.07
2 SK하이닉스 134,300 977,707 -15,773 -8.51 3.56
3 LG에너지솔루션 391,000 914,940 6,502 60.14 5.75
4 삼성바이오로직스 832,000 592,168 13,164 63.20 11.42
5 삼성전자우 60,100 494,555 4,704 12.78 N/A
6 현대차 221,500 468,542 41,584 5.33 9.36
7 기아 114,200 459,134 22,757 5.02 14.57
8 셀트리온 182,600 398,033 4,126 44.26 13.35
9 POSCO 홀딩스 447,500 378,456 14,644 30.56 6.11
10 NAVER 213,500 346,742 5,165 41.34 3.29

 

p.29

PER, PBR로 드러나는 회사의 주가, 이것은 매년 회계장부에 기록되는 회사의 매출과 이익이나 증권사의 리포트보다 더 정확하고 현실적인 회사 경영에 대한 평가가 아닐까? 올해의 성적과 미래의  전망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돈을 넣고 평가한 결과이니 말이다. 사람들은 이런저런 주제에 대해서 논쟁을 하다가도 '그럼 누가 맞는지 내기해 볼까?' 라고 하고 단돈 천 원을 걸어도 말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침을 튀기며 어떤 제품이 좋다고 홍보하던 사람이 '그럼 당신은 그 가격에 살 겁니까?'라고 물으면 슬쩍 꼬리를 내리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자기 돈을 넣어야, 자신의 이익이 연결되어야 비로소 진짜 판단을 하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영 평가자이자 감시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일반주주는 기업가치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p.34

상장회사의 지배주주들은 돈이 필요해도 보통 지분을 팔지 않고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개인 대주주들은 평균적으로 지분가치의 30% 가량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있다. 생각보다 많지 않은가? 이자를 내더라도 지분율을 낮추기 싫은 대주주들의 생각이 반영된 현실이다.

 

p.41

2023년 8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대기업의 지배주주들은 평균 약 37.1%의 지분을 담보로 약 7조 6천억 원 가량을 대출받고 있다고 하며, 중견기업의 지배주주들도 약 1조 5천억 원 가량을 대출받고 있다고 한다.

 

p.45

지난 2021년 쿠팡이 뉴욕 증권 거래소에 상장하면서 국내 차등 의결권 주식 도입 논의에 불이 붙은 적이 있었다. 쿠팡은 상장 전 1주당 29개의 의결권을 가진 차등 의결권 주식 Class B Stock을 발행하여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에게 부여했는데, 이 소식이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물론 대기업의 지배주주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들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대표적인 기업 거버넌스에 관한 주제였다. 주주들 사이에 합의하면 1주당 여러 개의 의결권을 주는 주식을 발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옳을까? 그렇다면 그런 주식을 발행한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를 똑같이 취급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 회사의 상장은 허용해야 할까? 다양한 질문이 가능하고, 기업 거버넌스의 영역에서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토론이 가능한 주제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치적인 논란만 커지다가, 결국 비상장 벤처기업에 대해서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는 법이 2023년 4월에 국회를 통과하여 11월에 시행되었다. 비록 비상장 벤처기업에 국한된 법이었지만, 주주평등이라는 중요한 원칙에 예외를 두는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왜'에 대한 논의가 너무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p.59-60

회사를 분할하는 것은 회사 안에 있던 사업부로 새로운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회사를 만들려면 새로운 주식을 발행해야 한다. 이렇게 새로 발행한 주식을 누구에게 줄 지에 따라 분할의 방식이 결정된다. 원래의 주주 전체에게 지분율 대로 나눠주는 인적분할, 원래의 회사에게 모두 몰아주는 것이 물적분할이다. 물적분할은 혹 달기처럼 100% 자회사가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바로 새로 만든 회사의 주식을 모두 원래의 회사에게 주기 때문에 100% 자회사가 되는 것이다.

 

한편, 우리 회사법은 두 회사를 서로 붙일 때 (합병할 때)에는 반대하는 주주에게는 주식매수청구권이라는 권리를 준다. 회사가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의 주식을 현금으로 사 주도록 하는 제도다. 하지만 분할에는 이런 제도가 없다. 주주 구성이 같도록 회사를 나누는 인적분할은 물론 100% 자회사로 떼어 내는 물적분할에서도 주식매수청구권이 없다. 회사를 나눌 때는 반대하는 주주의 주식을 회사가 사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즉, 회사법은 합병과 달리 회사 분할에서는 반대하는 주주에게 다수의 의견을 따르던지 알아서 주식을 팔고 나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p.63-64

여기에서 꼭 알아야 하는 이상한 현상이 있다.

화학 회사와 배터리 회사를 더한 모회사의 기업 가치가 30 + 100 = 130조 원이 아닐 수 있다는 거다.

 

모회사의 가치는 그것보다 훨씬 낮아질 수도 있다. 무슨 말일까? 왜 그럴까? 1 + 1 = 2가 아니라 1.5가 될 수 있다는 건데, 처음부터 이걸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여기가 핵심이니 찬찬히 들어 보자. 시장에서 화학 회사 주식을 사야만 자회사인 배터리 회사 주식도 같이 살 수 있었던 때 (분할 전이거나 물적분할 후라도 배터리 회사 상장 전)에는 화학 회사 주식의 값에 자회사의 가치까지 포함되어 거래된다. 하지만 화학 회사 주식과 배터리 회사 주식을 따로 살 수 있게 되면 시장에서 주식에 대한 수요가 분산된다. 사람들이 배터리 회사 주식에만 몰려서 화학 회사 주식은 외면당하고 값이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예전에 허니버터칩 열풍이 불 때를 기억해 보자. 허니버터칩이 너무 인기가 좋으니 인기 없는 1,000원 짜리 과자에 1,500원 짜리 허니버터칩을 묶어서 파는 가게가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2,500원을 내고 과자 두 봉지를 샀다. 하지만 그런 묶음 판매가 금지되어서 허니버터칩만 살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굳이 인기 없는 1,000원짜리 과자를 사지 않았다. 인기 없는 과자들은 심지어 나중에 재고 떨이로 500원에 내어 놔도 잘 팔리지 않았다. 반대로 허니버터칩은 오히려 웃돈이 붙어서 3~4,000원에 팔리기까지 했다.

 

이것을 모자회사 이중상장에 따른 '모회사 디스카운트' 또는 '지주회사 디스카운트'라고 한다. 2020년 이전에도 모자회사 상장이 흔한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있던 현상인데, LG화학 물적분할 이후 아주 유명해진 말이다. 모회사와 자회사가 모두 상장되어 있는 경우, 다시 말해 모회사 주식과 자회사 주식을 모두 누구나 살 수 있는 경우라면, 모회사 주가에 자회사 가치가 합쳐지지 않는 현상이다 1 + 1 = 2가 아니라 1.5가 되는 기이한 상태인데, 특히 모회사가 별다른 사업이 없는 순수 지주회사라면 그 정도는 더욱 심해진다. 지주회사가 갖고 있는 자회사 주식의 가치를 모두 합친 것의 5~60% 정도만 지주회사의 가치에 반영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유독 한국의 주식시장에서만 분명히 발생하고 있다.

 

p.65-66

지배주주는 다른 점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물적분할된 자회사에 대한 의사결정에 관한 영향력을 변함없이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이다. 모회사 디스카운트란, 모회사 주주들의 지분율이 '그대로'인데 그 '금전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의미라는 점을 잊지 말자. 만약 금전적 가치가 별 상관 없다면 디스카운트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문제가 된다. 상장회사 치킨코리아의 지배주주 재원은 지분율이, 영미와 일반주주는 주가가 중요했던 점을 기억해 보자. 지배주주는 디스카운트에 민감하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의사결정에 대한 영향력과 함께 금전적 가치도 가져갈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이게 두 번째 다른 점이다. 모회사 지배주주가 개인이 아닌 회사라면, 모회사와 물적분할된 자회사의 자산과 부채는 물론 매출과 손익 모두 지배주주(회사)에 합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분할 후 배터리 자회사가 상장하더라도 화학 모회사의 지분율이 50%를 초과하면 화학 모회사의 연결재무제표에는 종속회사인 배터리 자회사의 자산과 부채 및 손익 전부가 반영된다. 물적분할을 하고 투자를 받아도 모회사의 지배주주 (보통 지주회사)의 재무제표에는 화학 회사와 배터리 회사의 재무 실적이 모두 분할 전과 똑같이 반영되게 되는 것이다.

 

p.68-69

이제 다시 아까 그 일반주주의 말을 되돌아보자.

 

"미래성이 있는 배터리 분야를 물적분할하면, 저희 같은 개인 투자자는 저희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저희 투자금까지 모든 것을 손해보게 됩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한 일반주주의 이 한 마디를 이해하기 위해 이렇게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차근차근 풀어 쓰면 이 말의 뜻은 다음과 같이 쉬운데 말이다.

 

'LG화학이 장래 성장이 기대되는 배터리 분야를 자회사로 물적분할한 후 다시 상장하면, 그 성장성을 보고 미리 싼 가격에 주식을 샀던 LG화학의 일반주주는 분할되는 배터리 자회사에 대해서는 원래 지분만큼 주식을 갖지 못하거나 새로 돈을 내서 공모주에 참여하더라도 아주 조금만 그것도 비싼 가격으로 살 수밖에 없어서 원래 열심히 공부해서 투자했던 배터리 사업 성장에 따른 이익을 거의 누리지 못하는 손새를 입게 됩니다.'

 

결국 또다시 '총주주' 얘기다. 일반주주들은 그 때 물적분할 결정이 전체 주주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주장을 한 거다. 다시 말하면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 침해되었다는 것이고, 조금 쉽게 바꾸면 회사가 어떤 결정을 했는데 그 결과 다른 어떤 주주는 좋았을 지 몰라도 나는 나빠졌다, 나의 지분 가치는 낮아졌다는 뜻이 된다. LG화학의 지배주주인 (주)LG는 LG화학과 물적분할 후 재상장한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의 사업상 실적을 고스란히 모두 자신의 재무제표에 반영하면서 지배력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주주는 모회사 디스카운트로 기대이익의 많은 부분을 잃게 되었고, 이를 되찾기 위해 공모주 청약에 참여해도 아주 적은 일부를 회복할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p.70-72

LG화학 분할의 건은 주주총회 3일 전인 10월 27일 지분 약 10.3%를 갖고 있었던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지기로 결정하면서 더욱 큰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결국 10월 30일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무난히 통과했다. 출석률 77.5%에 찬성률 82.3%이니 반대표를 던진 주주는 전체의 약 13.7%였다. 국민연금 외에 3.4% 남짓한 주주만 반대한 거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9월 17일 물적분할 공시 이후 손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주주들은 대부분 주식을 팔았을 테니 말이다. 이후 분할된 배터리 회사(LG에너지솔루션)는 2022년 1월 예상대로 KOSPI에 상장했고 2024년 2월 초순 현재 시가총액 약 92조 원으로 코스피 3위에 올라 있다 (배터리 빠진 LG화학은 시가총액 약 32조 원으로 코스피 11위다).

 

사실, 이 사건은 법의 눈으로 보면 더 쉽다. 그 때 LG화학이 인적분할 방식으로 배터리 사업부를 분사하지 못한 이유는 훨씬 간단했다. 공정거래법 때문이다. LG화학은 지주회사인 (주)LG의 자회사인데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가 자회사 지분율을 30%이상 유지하도록 정하고 있고 LG는 딱 이 기준을 맞추고 있었다. 만약 인적분할을 하면 (주)LG는 화학 회사와 배터리 회사 모두에 30% 지분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 중 배터리 회사에 새로 큰 투자를 받게 되면 (유상증자를 하게 되면) 그만큼 (주)LG의 배터리 회사 지분이 낮아진다 (희석된다). 배터리 회사 지분 10%를 새로 발행하면 약 27%, 20%를 새로 발행하면 25%로 낮아진다. 그런데 공정거래법의 30% 기준을 지키려면 (주)LG도 그만큼 돈을 내서 지분율을 지켜야 한다. 배터리 회사 기업가치가 80조 원일 때 내려간 3%를 다시 회복시키려면 2.4조 원, 내려간 지분이 5%라면 4조 원이 필요하다. 이래서는 LG화학과 분할된 배터리 회사의 모회사이자 최대주주인 (주)LG의 관점에서 배터리 사업을 위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의미가 많이 퇴색된다. 8조 원을 투자 받는데 자기 돈 2.4조 원을 넣는다면 5.6조 원만 투자 받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물적분할을 하면 다르다. (주)LG는 자기 자금 없이 외부에서 8조 원을 투자받을 수 있다. 공정거래법의 지주회사 기준도 지키고, 또 배터리 회사에 대한 지배력도 탄탄히 지킨 채로 말이다. 이렇게 지배주주에게는 처음부터 물적분할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p.74-75

KOSPI 지수가 3300을 돌파하고 네이버 주가가 46만 원을 넘나들던 2021년의 뜨거운 여름, 이 계절이 지나고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그 해 11월 3일, 핀테크 대장주의 깃발을 높이 들고 카카오페이가 주식 시장에 이름을 올렸다. 무려 1조 5,300억 원을 일반공모로 조달했고, 공모에 참여한 일반주주는 181만 8411명이나 되었다. 상장 후 카카오페이의 주가는 공모가 9만 원을 훌쩍 넘어 로켓처럼 솟아올랐다. 특히 11월 25일 우량주의 상징인 KOSPI 200 지수 편입 결정이 상승에 기름을 끼얹었다. 주가는 상장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장중 최고 248,500원 (11월 29일)까지 오르며 시가총액 30조 원을 넘어섰다. 이제 그 다음 주 금요일, 12월 10일은 드디어 이 주식이 KOSPI 200 지수에 편입되는 날이었다.

 

그런데 이 날, 금융감독원의 기업공시 사이트 DART에는 같은 제목의 공시가 동시에 8개 올라왔다. 대표이사를 포함한 회사의 임원 8명이 44만 주가 넘는 회사 주식을 한꺼번에 팔았다는 내용이었다. 12주 당 약 20만 원에 팔았으니 모두 880억 원이 넘는 돈을 손에 쥐게 된 것이다. 

 

p.77

카카오페이 경영진에게는 왜 이런 의무보유가 적용되지 않았을까? 상장 전에 그 주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얘길까? 이들이 12월 10일에 판 주식은 상장 후인 11월 24일에 스톡옵션을 행사해서 받은 주식이었기 때문이다. 즉, 상장할 때는 이 주식이 없었다. 따라서 거래소와 여기에 의무보유를 적용할 지의 문제를 얘기할 수도 없었다. 상장일로부터 5년 동안 언제든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으니 생각보다 빨리 행사했다고 해서 뭘 위반했다고 할 수도 없었다. 물론 이런 제도의 구멍은 나중에 메워졌지만 당연히 이미 판 주식에 적용할 수는 없었다.

 

p.83-85

급하게 제도를 바꾸었지만 의문은 또다시 생길 수 있다. 다른 특이한 경우가 또 생기면 어떻게 할 건가? 예를 들어, 스톡옵션이 아니라 다른 방법, 콜옵션 같은 것을 행사해서 상장 후에 취득한 주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건가? 콜옵션이란 제3자에게 무엇을 판 후에 언제든 정한 가격으로 되사올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만약 의무보유 대상자가 상장 전에 다른 사람에게 자기 주식을 팔았지만 콜옵션 계약을 했다가 상장 직후에 콜옵션을 행사해서 주식을 되돌려 받았다면 그 주식은 6개월 동안 팔지 말아야 하나? 또는 회사의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가 갖고 있던 회사 주식을 담보로 잡았는데 결국 돈을 갚지 못해서 공교롭게도 상장 직후에 대신 그 주식을 받아왔다면? 아니면, 아버지가 회사 주식을 갖고 있었는데 상장 직후에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주식을 상속받게 되었다면? 당시 바뀐 제도는 상장 후에 경영진이 주식을 갖게 될 수 있는 이렇게 수많은 경우의 수 중 '스톡옵션 행사'로 갖게 되는 한 가지에 대해서만 콕 집어서 규정했다. 당장 문제가 된 것을 고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조치였다.

 

이렇게 당장 발생한 구체적인 문제 하나만 해결하기 위해 제도를 만들면 보통 허점이 많다. 2층 창문을 가리는 나뭇가지가 보기 싫다고 그 나뭇가지만 자르면 금세 옆에서 아래에서 다른 가지가 자라서 창문을 가리기 마련인 것과 같다. 또한 이런 세부적인 규정은 '왜?'를 생각하게 하지 않기 떄문에 더 문제인 경우가 많다. 회사의 투자자나 사장(이사)이 상장 후 6개월이나 1년 동안 주식을 팔지 못하는 이유가 뭔가? 일반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거다. 그렇다면 만약 '상장 후 스톡옵션 행사로 받은 주식도 6개월 동안 팔지 못한다'는 제도가 생기기 전에 '상장회사의 사장(이사)은 일반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 또는 '상장회사의 사장(이사)은 일반주주에 대해 충실의무를 진다'는 바탕색 같은 큰 그림의 법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아무리 상장 후 스톡옵션을 행사해서 받은 주식에 대해서 몇 달 동안 의무보유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었다고 해도 쉽게 주식을 팔지 못했을 거다. 뒤에서 다시 살펴볼 것이지만, A가 B에 대해 충실의무(duty of loyalty)를 진다는 말은 A가 B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보다 앞에 둬야 한다는 뜻이니 말이다.

 

사장이나 경영진에게 의무보유를 강제하는 제도 안에는 상장 초기에 주식을 엄청 많이 시장에서 팔면 주가가 과도하게 떨어져서 일반주주들이 손해를 본다는 문제의식이 녹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그 주식이 원래 갖고 있었던 것이든, 스톡옵션을 행사해서 상장 후에 받은 것이든 팔지 말아야 하는 것은 같다. 일반 대중으로부터 돈을 받은 상장회사의 누군가가 일반주주에 대해 아무런 보호의무나 충실의무도 부담하지 않는다면 제도의 구멍 때문에 생긴 이런 해프닝은 언제든 새로운 형태로 일어날 수 있다.  

 

p.85-86

이 사건이 있은지 7개월 가량 후, 카카오페이의 일반주주들이 한 번 더 큰 충격을 받는 일이 있었다. 30% 이상의 지분을 들고 있는 2대 주주였던 알리페이가 블록딜(시간외대량매매)로 상당한 지분을 팔면서 주가가 15% 넘게 떨어진 것이다. 그 때까지는 사전에 블록딜 정보를 알지 못한 일반주주는 속수무책으로 주가 폭락을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장 등 경영진이나 대주주도 주식을 판 후 5일 뒤까지만 공시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2022년 6월 8일 그 날도 그랬다. 아침부터 알리페이의 블록딜  소문이 퍼지면서 10만 원을 회복했던 주각 9만 원대로 떨어지며 장이 열렸고, 결국 8만원 대로 주저 앉았다. 그리고 한 달동안 주가는 계속 떨어져 결국 7월 들어서는 6만 원선도 깨지고 말았다 (2022년 7월 1일 종가 59,600원). 한 달 만에 -40%라는 참담한 손실을 본 일반주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고, 이는 내부자 거래 사전 공시 제도 신설로 이어졌다. 대주주나 경영진과 같이 회사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주주가 자신의 주식을 많이 팔려면 최소 30일 전에 미리 공시해야 한다는 법이다. 이 제도는 2023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서 2024년 7월 시행될 예정이다.

 

p.88-90

SM은 2018년, 전년의 3,653억 원보다 거의 두 배 가까운 6,122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주었지만, 2019년 상반기 주가는 오히려 계속 떨어지면서 시가총액이 1조 원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당시 SM이 실적에 비해 많이 저평가되었다는 생각으로 많은 기관투자자들이 주주로 들어와 있었는데, 그 중 약 7.59%로 가장 지분율이 높았던 KB자산운용이 회사 측에 공개서한을 보내면서 시장에 파장이 일어났다. 

 

그 해 6월 5일 KB자산운용이 SM에 보낸 주주서한은 ① 이수만 창업자의 개인사업자인 라이크기획과의 합병 (자문료 거래 중단), ② 본업과 무관한 적자 식음료 회사들 사업 중단, ③ 주주에 대한 배당 증대를 요구했다. 첫 번째 요구사항은 2012년부터 계속 제기되던 문제였다. SM은 이수만 창업자에게 자문료, 로열티 등의 명목으로 전체 매출의 6%를 지급하기로 계약하고 있었고, 그 금액이 2017년에는 영업이익 109억 원에 육박하는 108억 원, 2018년에는 145억 원으로 대폭 늘어나는 등 10년 동안 약 816억 원이 SM에서 이수만 창업자로 흘러가고 있었다. 내부거래, 일감몰아주기, 통행세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것들, [법무기]를 읽었다면 이미 이런 거래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주주들 사이의 '이해충돌' 거래였다. 라이크기획으로 돈을 지급하는 것이 필요한지 필요 없는지, 돈이 많은지 적은지, 조건이 상당히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따지는 '부당거래'로 보면 초점을 잃고 미궁으로 빠져들어가게 되는 그것 말이다.

 

p.91

최대주주인 이수만 창업자가 이런 다른 주주들에 비해 100배 이상의 돈을 회사로부터 가져가는 이런 상황이 어떻게 10년 넘게 계속될 수 있었을까? 당연히 모두 이사회가 승인한 거래였기 때문이다. SM과 라이크기획의 거래는 이사회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없는 우리나라의 기업 현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하지만 거의 두 달만에 나온 SM의 답변은 단호했다.

 

KB자산운용
요구항목
SM 답변 상세 내용
라이크기획
합병관련
거부 "합병은 법인이 아니라 불가능하며 계약 끊기면 경쟁력 상실"
"라이크기획과의 프로듀싱 계약은 외부 전문기관들의 객관적 자문과 철저한 검토를 거쳐 체결된 것"
본업과 무관
비주력 사업 정리
거부 "단기 재무성과로 판단할 일이 아니라 장기적 접근해야"
"라이프스타일 계열사 통합 재편하고 전략적투자자(SI) 유치하겠다"
배당 등
주주환원 실시
검토 "미래 투자에 역점을 둬 배당정책 시행 안했고 그런 필요성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주주요구가 있으니 미래성장과 배당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조화 방안 검토"

 

2대 주주의 요구를 사실상 모두 거절한 것이다. SM의 답변이 나오자 시장은 격하게 반응했다. 다음 날 개장 후 주가가 무려 10% 넘게 빠졌다. 이후 기고나투자자들은 SM에 대해 더 이상 가시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지분율을 축소했다. 하지만 이러한 2019년의 주주서한은 결국 2022년부터 발생하는 다른 사건의 씨앗이 되었다.

 

p.92-94

2021년 9월 설립된 얼라인파트너스는 기업 거버넌스 개선을 통한 저평가 해소의 첫 번째 목표로 SM을 지목했다. 2년 전 KB자산운용의 주주서한으로 적어도 금융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는 이슈였다. 대중에 친숙한 회사여서 일반주주들의 관심을 끌기도 쉬웠고 이해하기에도 좋았다. 합병이나 분할과 같이 회사법을 잘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니라 개인이 직접 돈을 받아가는 단순한 구조였기 때문이다. 지분 약 1.1%를 확보한 얼라인파트너스는 2022년 3월 주주총회에서 SM의 감사를 추천한 후 표대결을 통해 선임되도록 함으로써 자본시장과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커다란 충격파를 남겼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관이 모두 얼라인파트너스 추천 감사 안건에 찬성을 권고하고 국내외 기관투자가가 여기에 동조했다. 결국 주주총회에서 경영을 실질적으로 감독할 수 있는 독립적인 감사가 선임되었다. SM의 주가는 주주총회를 전후해서 9만 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감사 선임 후 지속적으로 이수만 창업자 개인 업체인 라이크기획과의 계약 종료를 요구했다. 2022년 8월에는 공개 서한을 보내고 같은 해 10월에는 공개적으로 회계장부 열람을 요구했다. SM은 결국 그 해 연말까지 계약을 종료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상한 조건이 있음이 나중에 드러났다. 계약을 종료해도 이수만 창업자가 사실상 아무런 용역에 대한 의무 없이 기존 발매된 음반 음원 수익에 대해 2092년까지 로열티 6%를 가져가고, 매니지먼트 수익에 대해서는 로열티 3%를 2025년까지 가져가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얼라인파트너스는 정기주주총회를 앞둔 2023년 1월, SM의 이사들에 대해 이러한 사후정산 약정을 이행하지 말 것을 요구하며 소송을 하는 등 긴장이 높아지고 있었는데, 2년 전부터 SM의 인수를 타진하던 고래들이 다시 수면 위로 등장하면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2023년 2월 3일, SM은 이수만 창업자 없는 경영을 하겠다는 취지의 SM 3.0을 발표했다. 이어서 같은 달 7일 카카오가 신주와 전환사채를 통해 SM 지분 9.05%를 확보하고 SM과 사업 협력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하자, 바로 다음 날인 8일 이수만 창업자는 카카오의 신주 및 전환사채 인수 (즉, SM의 발행)을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즉시 법원에 제기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10일, 더욱 놀라운 뉴스가 전해졌다. 하이브가 이수만 창업자의 지분 18.45% 중 14.5%를 매수하고 시장에서 최대 25%를 12만 원에 공개매수한다고 공시한 것이다. 전날 98,500원이었던 SM 주가보다 2만 원 이상 높은 가격이었다.

 

2023. 2. 3. SM, 이수만 창업자 없는 SM 3.0 발표

2023. 2. 7. 카카오, SM 지분 9.05% 확보하는 계약 공시

2023. 2. 8. 이수만, 카카오의 지분 확보 금지 가처분 제기

2023. 2. 10. 하이브, 이수만 지분 14.8% 및 최대 25% 추가 공개매수 선언

 

단 1주일 만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우리나라의 모든 언론과 자본시장의 시선을 끌었음은 물론 대중적인 핫 이슈가 되었다. 뉴진스와 아이유가 에스파를 두고, 아니 하이브와 카카오가 SM을 두고 싸우다니 이렇게 재미 있는 일이 어디 또 있을까!

 

p.96-97

SM은 공개매수 기간이던 2월 23일 자사주 약 39억 원 어치를 매입하고 공시했다. 물론 공개매수 기간에만 매입한 것은 아니었다. 2022년 8월 자사주 매입 신탁계약을 체결한 후 2023년 1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서 약 1%를 매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공개매수 기간에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어서 하이브가 이에 강하게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 뒤에 있을 훨씬 더 민감한 논란에 비해서는 작은 이슈였다.

 

하이브는 공개매수를 마친 후 카카오가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시세를 조종했다'고 주장하며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요청했다. SM 주가가 131,900원까지 오른 2월 16일, 판교의 한 증권사 지점에서 SM에 대한 대량 매수 주문이 발생했고, 카카오 측이 공개매수 마지막 날이던 2월 28일에 SM 주식 약 105만 주 (SM 전체 주식의 약 4.4%)를 산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유죄로 결론난다면 카카오가 금융기관인 카카오뱅크의 대주주 지위를 잃을 수도 있는 큰 재판의 단초가 이 날 시작된 것이다.

 

p.98-99

먼저, 그 해 3월 6일에 선고된 카카오의 9.05% 지분 취득 금지 가처분 결정에서 법원이 언급한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란 말이다. 이 말은 주주로서 갖는 1주의 가치라는 뜻이다. 법원은 SM이 2천억 원이 넘는 돈이 특별히 급하게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카카오 측에 9.05%의 새로운 주식 등을 발행하려고 해서 자신의 지분율이 부당하게 희석되었다는 이수만 창업자의 주장을 인정하면서, '경영권 분쟁에서 지게 되었다'는 이유를 든 것이 아니라 '주주로서의 비례적 이익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게 뭐가 다른 걸까? 경영권이 좌우되는 것으로 설명했다면 어느 정도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는 대주주 사이의 문제라는 것이 된다. 하지만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 침해된다고 설명한 것은 이수만 창업자 뿐만 아니라 다른 일반주주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모든 주주의 문제라는 설명이 된다.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되는 것이다. 카카오에게 주식 약 9%를 추가로 발행하면 이수만 창업자의 지분도 약 18.45%에서 약 16.92%로 줄어들지만 다른 일반 주주들도 모두 똑같이 자신의 지분율이 조금씩 줄어드는 불이익을 입게 되는데, 법원은 바로 이런 주주로서의 불이익이 카카오에 대한 신주 발행을 금지해야 하는 이유라고 명시한 것이다.

 

또한 3월 12일 하이브가 지분 경쟁을 그만두고 SM 지분을 모두 카카오에게 넘기겠다고 선언하면서 '하이브의 주주가치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중요한 이유로 들었다는 사실도 기억해 두자.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너무 비싸게 사면 좋지 않은 것처럼 회사도 그렇다. 카카오가 공개매수로 제시한 주당 15만 원보다 더 높은 가격을 부르는 것은 주주들의 관점에서 부정적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동종 업계여서 시너지도 있었겠지만, 비싸게 M&A를 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하이브도 충분히 우려했을 것이다.

 

이렇게, 2023년 SM 주주총회를 둘러싼 드라마 같은 경영권 분쟁은 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주주의 이익'이라는 단어를 강하게 새기며 끝났다. 

 

p.109-110

1996년까지는 주식회사를 만들려면 최소 7명이 모여서 5천만 원을 내야 했다. 혹시나 5천만 원이 적은 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서 간단한 비교를 준비했다. 1996년의 짜장면 평균 가격은 2,321원이고 최저임금은 시간당 1,275원이었다. 2023년은? 짜장면은 7,069원, 최저임금은 9,620원이다. 두 지표의 평균으로만 보아도, 당시 5천만 원은 최소 지금의 2억 원 정도 느낌이다.

 

회사를 만들어 창업을 하려는 사람은 고민이 시작되었다. 7명의 동업자를 모아서 2억 원을 내려고 하니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주)를 붙이지 않으면 사람들이 회사로 취급하지도 않고 직원을 뽑기도 너무 어렵다. 이럴 때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람들은 (주)를 얻기 위해 나머지 6명의 이름을 빌렸다. 주주명부에 빌린 이름을 올리고 지분도 표시했다. 하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때는 이름을 빌려준 사람이 아니라 빌린 사람이 대신 권리를 갖기로 했다. 원래 7명이 만들어야 하는 주식회사를 돈만 있으면 1명이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지난 2017년 대법관 전원이 모여 판례를 바꾸기 전까지는 이런 '명의신탁 (이름을 남에게 빌려준다는 뜻)'을 해도 문제없다고 봤다. 어쨌든 이름을 빌릴 수 있어서 진짜로 7명을 모을 필요는 없어졌다.

 

하지만 돈 문제가 남았다. 여윳돈 5천만 원(지금으로 약 2억 원)을 가진 사람은 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돈도 잠깐 빌렸다. 그리고 자본금으로 은행 계좌에 잠깐 넣었다가 법인 등기가 되면 바로 빼서 갚았다. 며칠 동안의 이자만 낼 수 있다면 주식회사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가장납입'은 불법이었다. 사람 없는 회사는 괜찮지만 돈 없는 껍데기 회사는 거래에 문제가 있다고 본 거다. 하지만 들키지 않으면 괜찮다는 생각에 굉장히 자주 벌어지는 모습이었다. 이것이 모두 (주)를 얻기 위한 무리수였다. 자본금 1천만 원으로 혼자서도 설립할 수 있는 '유한회사'가 있었는데도 그랬다. '주식'대신 '좌'라는 어색한 말을 쓰긴 하지만 주식회사와 거의 비슷하고 이사회 같은 번거로운 조직도 만들 필요 없는 간편한 회사였지만, 사람들은 법에 따라 (유)를 얻기보다는 법을 피해서라도 (주)를 얻고 싶어했던 거다.

 

p.111

법은 원래 동업자가 7명 이상인 걸로 생각해서 이사회도 3명 이상으로 구성하도록 하고 감사라는 감독자도 두도록 했지만 창업자 혼자 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했다. 많은 것이 가짜로, 서류만으로 이루어졌다. 다행히도 이런 관행이 너무 오랫동안 널리 퍼지자 오히려 법이 바뀌었다. 1996년에는 7명이 아닌 3명만으로도 주식회사를 세울 수 있게 되었고, 2001년에는 3명이 다시 1명으로 줄어들었다. 대부분 혼자 주식회사를 시작하는 현실을 법이 따라간 거다. 2009년에는 최소 5천만 원을 내야 하는 법도 없어졌다. 공식적으로 누구나 혼자서 적은 돈으로 '주식회사'를 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p.121

합자회사: 익명조합과 비슷하게 한 명은 돈을 대고 한 명은 사업을 하는 방식인데 조합이 아니라 정식 회사로 인정받는 형태다. 돈을 대는 사람을 유한책임사원(LP, Limited Partner), 일을 하는 사람을 무한책임사원(GP, General Partner)이라고 한다. 사모투자 방식의 펀드가 주로 이런 합자회사의 형태로 만들어진다.

 

유한회사: 모든 사원이 지분만큼의 책임을 지는 회사. 다만 지분이 증권의 형태로 만들어지지 않고, 따라서 상장을 할 수도 없다. 미국의 LLC (Limited Liability Company)와는 다르다. LLC는 회사처럼 법인세를 내지 않고 조합처럼 각 사원이 직접 세금을 내기 때문에 이중과세가 되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유한회사는 법인세를 내는 회사다. 

 

p.129

이렇게 주주가 분산되어 있는 나라는 오히려 세계적으로 드물다. 대부분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꽤 높다. 우리나라도 최대 주주의 지분율이 20% 정도 되고 상위 3개를 합치면 거의 50%에 육박한다. 우리나라 특성 상 상위 3개 중 많은 부분이 친족이나 계열회사 등 최대주주와 관계 있는 주주일 것이니 실질적인 최대주주의 지분율은 더 높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여러분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이미 알아차렸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주식회사들은 아직 지배주주가 있는 3단계에 있는데, 주식회사 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주주가 분산되어 있는 4단계 나라의 것을 가져왔다는 것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p.130

우리나라 상법 회사편은 1962년에 만들어졌다. 광복 후 어쩔 수 없이 그 전부터 쓰던 일본 회사법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우리가 참고한 일본 회사법은 2차 대전 종료 후 미군정 하에서 개정된 것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일본의 재벌인 자이바츠를 해체하고 주식을 분산시키는 작업을 하면서 독점금지법 등 미국의 법제를 일본에 옮기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회사법은 당시의 미국 최신 회사법이던 일리노이 주 회사법을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일본 회사법은 1890년 처음 만들어질 때는 독일식이었는데, 이렇게 개정이 완료된 1950년에는 주주를 중시하는 최신 미국식 법으로 많이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법이 바로 우리 회사법, 1962년 상법 회사편의 모태가 되었다. 최고로 고도화된 미국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주주가 분산된 주식회사에 적용되던 법이, 막 독립해서 스스로 경제를 힘겹게 꾸리고 있던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에 거의 그대로 왔으니, 잘 맞는 것이 더 이상한 상황이었을 거다. 그리고 두 세대를 지난 60여 년 후, 아직 대부분의 우리나라 주식회사에게는 그 법의 옷이 너무 크다.

 

p.136~137

결국 상법 제398조의 자기거래 금지법은 1962년에 처음 만들어졌을 때나 2011년에 요건을 강화했을 때나 우리나라의 주식회사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둘 다 주주가 분산된 4단계 주식회사에서 전체 주주와 경영자 사이의 이해충돌을 해결하기 위한 틀이었기 때문이다.

제397조2(회사의 기회 및 자산의 유용 금지)
① 이사는 이사회의 승인 없이 현재 또는 장래에 회사의 이익이 될 수 있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회사의 사업기회를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 경우 이사회의 승인은 이사 3분의 2 이상의 수로써 하여야 한다.
1.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거나 회사의 정보를 이용한 사업기회
2. 회사가 수행하고 있거나 수행할 사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업기회
② 제1항을 위반하여 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이사 및 승인한 이사는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으며 이로 인하여 이사 또는 제3자가 얻은 이익은 손해로 추정한다.

 

비슷한 이해 충돌의 거래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던 위와 같은 이사의 기회유용 방지법도 마찬가지다. 이 조항은 2011년에 만들어진 후 제대로 적용된 적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손해배상, 연대책임 등 이해충돌 문제를 아무리 무섭게 규정해도 이사회를 통과하도록 하는 순간 죽은 법이 된다. 모두 우리 회사법이 근본적으로 지분율 30%의 최대주주가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바탕으로 태어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게속 뭔가 문제가 생겼고, 회사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이런 저런 법에서 땜빵식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해 왔던 거다. 이런 내용을 모르면 우리나라의 기업 거버넌스를 이야기하기 어렵다.

 

p.141

결국 공정거래법의 기업집단 정의는 아래와 같이 조금 더 풀어서 쓸 수도 있다.

 

'어떤 한 사람이 그 회사의 대표이사가 아니면서도 사업상 의사결정을 하는 여러 회사들'

 

p.147

이제 공정거래법의 울타리 안에서 기업집단이라는 미운오리새끼를 구출해 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공정거래법은 회사들을 기업집단이라는 울타리 안에 놓을 뿐, 회사에 돈을 낸 주주도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라고 만들어 놓은 이사회도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공정거래법은 서로 밀어주는 '부당거래'를 감시하기 위해 회사의 최대주주 지분율이 얼마나 높은지를 본다. 그리고 계열회사를 일사불란하게 이끌 수 있는 지주회사가 자회사와 손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최소한 어느 정도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규제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은 기업집단 안에 있는 계열회사에 투자한 일반주주들이 그런 일사분란한 '그룹'의 결정에 의해 어떤 이익과 손해를 보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상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을 인정하는 것은 이사회의 존재 이유와 부딪힌다. 사실 이건 매우 순수한 회사법의 문제이고 그래야 한다. 공정거래법은 독점 회사가 갑질을 하거나 짬짜미(담합)로 가격을 올릴 때 잡는 법이지, 지분으로 연결되어 있는 회사나 주주들 사이의 관계를 정하기 위한 법은 원래부터 아니었기 때문이다. 

 

p.148-149

하나의 회사 안에서 여러 사업을 할 때 남의 돈을 투자 받으면 그 회사 안에 있는 여러 사업부에 지분율이 골고루 나눠지는 것과 같다. 즉, 여러 사업에 동시에 투자한 것과 같은 효과가 된다. 반면 각 사업이 여러 회사로 쪼개져 있는 기업집단에 대해서는 어느 한 사업, 즉 한 회사에 대해서만 남의 돈을 투자받는 것이 가능해진다. 오히려 전체 사업에 똑같이 투자를 하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 이렇게 각 회사별로 남의 돈을 받기 시작하면 같은 기업집단이라도 각 사업, 다시 말해 각 회사별로 주주 구성이 달라진다. 그리고 주주들마다 이해관계가 달라진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같은 기업집단 내에 있는 회사들이 공통적인 최대주주에 대해서는 이익이 되는 사업이나 거래를 하더라도, 어떤 회사의 나머지 주주들에게는 손해가 될 수도 있다. 회사별로 주주들 사이에 이익과 손해가 엇갈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은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 공정거래법은 하나의 기업집단 안에 있는 회사들이 어떻게 서로를 밀어주고 '한 사람'을 밀어줘서 이익이 되도록 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런 거래를 하지 않도록 규제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는 각 계열회사의 일반주주가 이익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는 전혀 살펴보지 않는다. 어떤 경우가 있을까? 같은 기업집단 내에서 서로 이익과 손해가 엇갈리는 경우는 주로 합병이나 분할 같이 주주들에 관한 거래 ('자본 거래'라고 한다)가 있을 때 발생하지만, 회사의 일상적인 거래에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p.153

현실로 돌아와 한국 상위 대기업집단의 주주구성을 한 번 보자. 

  기업집단 최상위회사 동일인 지분율 일반주주 지분율
(특수 관계인 제외)
1 삼성 삼성물산 17.97% 66.53%
2 SK 에스케이 17.50% 74.01%
3 현대차 현대자동차 2.0% 70.62%
4 LG 엘지 15.7% 58.3%
5 롯데 롯데지주 13.0% 58.3%
6 포스코 포스코홀딩스 - 100%
7 한화 한화 22.65% 56.39%
8 GS 지에스 4.7% 48.08%
9 현대중공업 HD현대 26.60% 63.67%
10 농협 농협금융지주 100% -
11 신세계 신세계 10.0% 71.44%
    이마트 10.0% 71.44%
12 KT 케이티 - 100%
13 CJ 씨제이 42.07% 52.20%
14 한진 한진칼 5.78% 80.21%
15 카카오 카카오 13.27% 75.86%

 

표 -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상위 15개 기업집단 최상위회사 지분 구성

 

p.160

'한 달 평균법'은 수박 한 조각의 맛이 한 통의 맛과 같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만든 법이다. 이법은 두 회사가 합병을 할 때, 합병과 비슷하지만 법인을 합치지는 않는 포괄적 주식교환이라는 것을 할 때 모두 똑같이 적용된다. 그리고 여러분 중에는 '주식매수청구권'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합병 같은 것을 할 때 반대하는 주주에게는 회사가 그 주식을 사 주도록 하는 제도다. 이 때 얼마에 주식을 사 주는지 결정할 때도 한 달 평균법이 적용될까? 아니다. 이 때는 '두 달 평균법'이다. 두 달 평균법은 한 달 평균법과 계산 기간이 다른 것 외에도, 주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법원에 다시 계산해 달라고 신청할 수 있는 정식 절차가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건에 관해서 2022년 대법원이 삼성물산의 반대주주 일부에게 회사에서 제시한 57,234원에서 66,602원으로 조금 가격을 올려받도록 결정했는데, 바로 이런 차이 때문에 가능했다.

 

p.168

학교 때 회장 선거를 떠올려 보자. 후보로 나선 학생도 분명히 한 표를 행사했다. 자신이 가장 회장을 잘 할 수 있다며 회장 후보로 나온 것이니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 좋은 사람이 회장이 되는 것은 모두에게 좋은 일이고, 이익과 손해가 엇갈리는 투표는 아니다. 이번엔 어떤 학교가 폐교를 하고 다른 학교와 합치는 안건에 대해 폐교 대상 학생 전체가 투표를 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데 학생들 중 몇 명은 통합과 무관하게 이미 합쳐지는 학교로 전학이 확정되어 있었다. 그 학생들도 폐교 안건에 대해 투표를 하도록 하는 것이 맞을까? 또는 어떤 학생에게만 급식에 더 좋은 반찬을 내도록 하는 안건에 대해 대상 학생이 투표를 하는 경우는 어떤가?

 

p.169-170

주주인데 이사 후보가 된 사람이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학교 회장 후보의 예와 비슷하다. 이 사람은 주주총회에서 자기가 갖고 있는 지분만큼 의결권을 행사해도 될까?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사가 되는 것이 개인적 이익을 위한 것은 아니고, 누가 이사가 되는 일 자체가 회사나 다른 주주에게 손해가 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 난이도를 올려 보자. 이렇게 이사가 된 주주가 주주총회에서 자신이 포함된 보수 한도를 정하는 데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학교에서 B 학생에게 더 좋은 급식을 줄 지의 문제와 비슷하다. 깊게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상장회사의 주주총회에서 이사 보수 한도 안건이 722번 있었는데 스스로 이사인 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한 경우는 고작 네 번 뿐이었다고 한다. 사실 현실은 이렇다. 

 

그러면 다음 문제다. 회사가 다른 사람에게 회사의 중요한 사업을 팔려고 하는데 팔려는 상대방이 회사의 주주다. 그렇다면 그 주주는 회사가 사업을 팔 지를 결정하는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해도 괜찮을까? 물론 회사가 비싸게 팔면 좋은 것이고 싸게 팔면 상대방이 좋은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물건을 사고 파는데 양쪽 협상에 모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하다. 이런 것을 '영업양도'라고 하는데, 이 때는 사업을 사려고 하는 주주는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학계에서도 대부분 그렇게 본다. 거래라는 것은 이익과 손해가 엇갈리기 쉬운 것인데 사는 사람이 파는 사람 쪽에서도 결정권을 갖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니 상식에 맞는다. 

 

p.172-173

우리나라의 법 해석으로는 합병할 때는 합병 상대방인 주주도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상하지만 영업양도할 때와는 다르게 보는 것이 다수의 견해이고 실제 우리나라의 모든 주식회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실무다. 

 

그렇다면, 두 번째 구멍의 모습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특히 이 두 번째 구멍은 첫 번째 구멍과 합쳐졌을 때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옷이 아예 찢어질 것 같다).

 

'합병을 결정할 때 상대방 회사가 주주인 경우 그 합병 상대방 회사도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한다.'

 

이런 두 번째 구멍과 같이 너무 분명한 이해충돌이 있을 때, 외국에서는 MoM(Majority of Minority)이라는 방식으로 결정하곤 한다. 이것은 소수주주의 다수결이라는 뜼으로써, 합병을 하면 당연히 좋은 이해관계가 있는 주주들은 주주총회 결의에서 빠지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해관계가 없는 나머지 주주들이 합병을 할 지에 대해 결의를 해줘야 합병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p.174-175

법에는 이렇게 다시 사들인 자기주식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지에 대해 나와 있지 않다. 여기에 대해서 크게 두 가지 이론적 견해가 있다. 

 

첫 번째는 자기주식도 회사가 돈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팔았던 다른 물건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업무용 책상을 중고로 팔았다가 다시 어찌저찌하여 그 책상을 다시 사 왔다면, 그걸 다시 팔 때도 그냥 사장이 알아서 팔면 된다. 자기주식도 기본적으로 같다고 보는 이런 생각을 '자산설'이라고 한다. 

 

두 번째로는 주식이란 것은 회사가 갖고 있던 물건이 아니라 자본금, 즉 다시는 돌려주지 않기로 약속하고 받았던 돈에 대한 증표로 적어 뒀던 것인데 예외적으로 다시 돌려주면서 그 증표도 다시 돌려받은 것이니 다른 물건과는 다르고 그만큼 자본금이 없어진 것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건 '미발행주식설'이라고 한다.

 

뭐가 맞을까?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회계 원칙은 2번 미발행주식설이다. 회사가 자기주식을 사오면 자본에서 뺀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법원은 1번 자산설을 전제로 판결을 내려왔다. 이게 무슨 얘긴가! 머리가 점점 복잡해지는 김에 어려운 얘기를 좀 더 해보자. 자기주식을 사들이면 회사 밖으로 돈이 나가는데, 회계에서는 물건이 아니라 자본금이 빠져나간 것이니 자본 게정에서 사들인 자기주식 액수 만큼을 빼라고 한다. 법은 물건과 같다고 하니 다른 주식들 같이 자산 계정에 넣어야 할 것 같은데 회사의 재무제표에는 자기주식을 넣을 계정이 없다. 사실 그 밖에도 재무에서도 세무에서도 자기주식은 맞지 않는 것 투성이다. 

 

p.176-177

2024년 1월 30일, 정부가 자기주식 문제에 대한 대책을 내어 놓았다. 회사가 인적분할할 때 자기주식에 신주를 배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만 콕 집어서 금지하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자기주식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 회계 원칙과 맞지 않는 것, 무엇보다도 제3자에게 팔거나 다른 주식과 바꾸는 방식으로 기존 지배주주가 자신의 돈을 들이지 않고 지분율을 올리는 효과를 거두는 것과 같이 더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공시 이외의 대책이 없었다. 공시는 시장에 맡기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런 자사주 활용과 같은 문제에 시장이 반응한 것이 저평가이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불완전한 시장에서 공시는 일반주주를 보호하고 밸류업하는 방법이 아니다.

 

그러는 와중에 우리나라 상장회사들의 자기주식 보유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전경련 2023년 5월 조사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사들은 평균 4.36%의 자기주식을 보유하고 있고, 매출 상위 100대 기업 보유 비율은 이보다 높은 평균 4.96%라고 한다. 무려 30% 이상의 자기주식을 보유한 회사도 많다. 

 

p.227

우리나라 대기업 집단은 2006년에 개인 최대주주 가족이 평균 9.17%의 지분율로 기업집단 전체에 대해 약 39.71%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따라서 의결권 승수가 약 6.71배였다. 이 수치는 대기업 집단이 대부분 지주회사 구조로 변경된 후 더욱 증가했다. 2023년 공정거래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공시대상기업집단 (상위 82개 기업집단) 중 개인 최대주주가 있는 72개 기업집단의 최대주주 가족이 보유한 지분율은 평균 3.6%이지만, 계열회사 등을 포함하여 기업집단 전체에 대해서는 61.2%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제 의결권 승수는 17배에 달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는 이러한 높은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허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정거래법 상 지주회사는 상장된 자회사의 지분율을 30% 이상으로만 유지하면 되고, 자회사도 손자회사의 지분을 30% 이상만 갖고 있으면 되며, 이렇게 지주회사로 인정받으면 자회사가 지주회사에게 지급하는 배당에 대한 소득세(법인세)를 80~100% 감면해주기 때문이다.

 

p.253-254

상법에는 여러분이 아는 상식과 같이 이사는 주주총회에서 뽑는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식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막강한 권한을 가진 이사를 뽑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상법은 별다른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주주총회의 결의 원칙은 출석 과반수 및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1이지만, 상법의 다른 조항이나 정관에서 다르게 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사 선임에 대해서는 다른 제한이 없어서 회사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조항은 1962년에 상법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채 똑같다. 1998년 제382조의2에 집중투표제라는 소수주주 보호 방법이 들어오긴 했지만 회사가 정관으로 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만이어서 거의 죽은 법이 되어 있다. 2023년 말 기준으로 정관에 집중투표제가 적용되어 있는 회사는 2천 개가 넘는 상장회사 중 10개 남짓 밖에 안된다. 게다가 방법이 어렵기도 하다. 집중투표제란 이사를 여러 명 뽑을 때 이사 수만큼 투표용지를 주고 그 전체를 한 명에게 '몰아서' 줄 수 있는 방식인데, 보통 이런 방식의 투표를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주주에게는 매우 생소하다. 그리ㅑ고 3% 이상 주주가 따로 신청을 해야 하는 등 절차가 아주 까다롭게 되어 있다. 

 

p.255~256

중요한 문제다. 이렇게 한 명씩 가부를 결정하는 방법으로 하면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가 몇 명이든 조금이라도 지분율이 높은 최대주주가 전부를 모두 자기 마음대로 뽑을 수 있게 된다. 50%에 1주라도 더 가진 주주는 주주총회에서 보통결의로 결정하는 모든 안건을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과반수로 결정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초 중에 기초 아닌가? 하지만 그게 맞는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다.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다.

 

회사의 의사결정을 하는 기관은 이사 한 명 한 명이 아니라 여러 이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사회'다.

 

과반수 주식을 가진 주주가 '이사회'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것은 분명 합리적이다. 과반수 주식을 가진 주주가 한 명 뿐인 '대표이사'를 뽑을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것도 합리적이다. 하지만, 과반수 주식을 가진 주주가 이사회 '전체'를 갖는 것은 지나치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 전체를 한꺼번에 뽑지 않기 때문이다. 한 명씩 따로따로 뽑으면서 그 때마다 출석 과반수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다수 주식을 가진 주주가 이사회의 '전부'를 차지하게 되는 왜곡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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