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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흐름이해

분석은 이렇게 - 숫자 한국

by Diligejy 2025.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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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를 다루는 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지만, 이 책을 보며 많이 배우고 반성했다. 속칭 말하는 '인사이트' (편견일지 모르겠으나 나를 포함한 내가 아는 많은 분석가들은 이 단어를 '노력', '열정'과 같은 단어처럼 선호하지 않는다)가 담긴 분석이란 이런 것이라는 걸 정확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강하다. 노조 조직률이라는 수치를 놓고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양 사이드에 있는 정치적 의견과 국내의 시계열적 추이, 해외의 시계열적 추이와 같이 여러 차원으로 검토하며 단순히 정치적 수사를 비평하는 차원을 넘어 말그대로 '분석'을 수행한다. 

 

분석이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얽혀 있거나 복잡한 것을 풀어서 개별적인 요소나 성질로 나눔'이라고 되어있는 뜻인데 이 뜻에 맞게 사회문제를 쪼개서 살펴보고 맥락을 덧붙여 살펴본다. 

 

이 책이 탄탄한 이유는 단순히 숫자를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다. 분석 실무를 수행하다보면 '맥락'과 '관점'이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분석가라면 아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겠지만, 도메인 지식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유효하다. 저자는 국내외의 책들과 보고서, 논문을 토대로 통계 수치 속에 어떤 맥락이 담겨 있는지 해석하고 설명한다. 이로써 그는 그의 관점을 제시하고 통계 수치라는 강력한 논거를 바탕으로 굳이 강한 수사를 넣지 않고도 강력한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숫자는 숫자일 뿐이다. 저자는 숫자 앞에서 악의적 주장이 설 자리가 없다고 했지만, 그 숫자를 가지고 어떻게 해석할 지는 혹은 그 숫자를 어떻게 생성할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리고 쾌도난마하는 이 책을 보다보면 숫자를 통해 모든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나오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매우 거시적인 현상을 다룬 통계치에서 인과관계가 명확할 수는 없다. 다만 '높은' 확률로 그러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과도하게 논리적 비약을 펼칠 때 머릿속으로나마 논쟁하는 건 유의미하다.

 

분석가라면 권해주고 싶은 책이고, 세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얇지만 두툼한 책이다.

 

 

밑줄긋기

p.8-9

윤석열 정부 출범 첫해인 2022년, 노조 조직률(전체 임금 근로자 중 노동 조합에 가입한 근로자의 비율)은 전년보다 1.1퍼센트포인트(%p) 감소하고, 노동 조합 조합원 수는 21만 명이 죽었다. 이 숫자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노동계 일각에서는 이번 정부 들어 시작된 '노동 탄압'으로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며 우려를 표했고, 정부와 여당은 '유령 노조'를 적발하고 단속해 과잉 집계되었던 노조원이 정상화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각자의 정치적 이념과 노동관에 따라 같은 숫자를 두고도 해석이 달라지는 것이니, 주장만 두고 다투는 일에는 의미가 없다. 이 숫자를 좀 더 면밀히 살펴보자. 

 

앞서 2021년과 2022년 사이에 노조 조직률이 1.1퍼센트포인트 감소했고, 노동 조합 조합원 수가 21만 명 줄었다는 숫자를 살펴봤다. 이런 변화가 나타날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2021년에 노조 조직률이 높았던 이유가 있었다.

2) 2022년에 노조 조직률이 낮아질 이유가 있었다.

3) 별다른 이유 없이 우연히 수치가 변동했다.

 

정부와 여당은 유령 노조를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니 1)의 입장을 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노동계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 탄압 때문이라고 주장했으니 2)의 입장을 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주장 중 어느 쪽이 더 맞는지 확인하려면 숫자의 맥락을 살피는 과정이 필요하다. 2021년과 2022년 두 해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더 긴 기간을 비교해서 살펴야 하는 것이다.

 

p.32-33

현대적인 국가 통계가 정비된 1980년대 이후에는 단 한 차례도 평균 수명 하락이 관찰되지 않았다. 그런데 2024년 초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영국인의 평균 수명이 80.6세로 계산된다. 코로나 직전 기간보다 0.6세나 감소한 수치다. 평균 수명이 80.6세였던 해를 되짚어 가면 2010년까지 돌아가야 하니, 코로나19 범유행 한 번이 12년간 차근차근 누적된 수명 연장 효과가 감쪽같이 증발해 버린 것이다.

 

코로나19 범유행 시기의 강력한 방역 대책은 시행 당시 큰 반발에 직면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앞서 평균 수명의 변화를 살펴본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는 물론 미국조차도 그랬다. 그렇지만 강력한 방역 정책은 그만큼의 효과를 실제로 발휘했다. 가령 '집단 면역(herd immunity)'을 주장하며 방역 정책을 포기하다시피 했던 스웨덴의 경우, 2019년 83.2세이던 평균 수명이 2020년 82.4세로 감소해 영국보다 더 심한 하락(0.8세)을 겪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2019년 83.3세이던 평균 수명이 2020년에는 83.5세로, 2021년에는 83.6세로 되레 늘었다. 주요 선진국 중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 수치만 코로나 여파를 비껴간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점진적으로 종료된 2021년 이후에는 우리도 평균 수명이 감소해, 2022년에는 전년보다 0.87년이 줄었다.

 

이렇듯 갑작스럽게 닥친 감염병 재난의 여파조차 숫자를 살피면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일반 감기와 다를 바 없다는 식의 주장은 평균 수명이 처음으로 감소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반박되며, 우리나라 방역 정책이 효과가 없다던 이들의 주장도 말이 안 된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굳건한 숫자 앞에서는 정치적 편견이나 악의적 주장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p.36-37

1978년 영국에서 최초의 시험관 아기 루이스 브라운(Louise Brown)이 태어났다. 임신에 어려움을 겪던 브라운 부부가 이 담대한시도에 동의한 덕분에수많은 난임 가족이 아이를가질 수 있게 되었고, 현재도 체외 수정(In Vitro Fertilisation, IVF) 시술이난임 해결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루이스를 낳은 산모 레슬리 브라운(Lesley Brown, 1947~2012년)이 아이를 낳을 때 나이가 31세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영국에서는 초산이 평균 22.7세 즈음에 이루어져, 지금 기준으로 젊은 축에 속하는 31세 산모조차 '난임'으로 분류되었다. 더군다나 레슬리 브라운은 난관에 이상이 있어 저런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정도 있다. IVF라는 기술의도입이 지금과 같은 총체적 노산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난자 얼려 두기'라 불리는 난자 동결보존(oocyte cryopreservation)의 출산 성공률이다. 스페인의 보조 생식 기술(assisted reproductive technology, ART) 기업인 IVIRMA 연구진이 2018년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냉동 난자 5개를 IVF 시술에 사용했을 때 실제로 아이가 태어날 확률은 15.8퍼센트에 불과했다. 냉동 난자 10개를 쓰면 42.8퍼센트, 20개를 써도 77.6퍼센트에 그친다. 그런데 난자를 채취해 동결할 시점의 나이가 35세를 넘어가면, 얼려 둔 난자를 20개이상 사용하더라도 실제 아이를 가질 확률이 49.6퍼센트에 불과했다. 난자를 미리 얼려 두었다가 추후 시험관 수술을 받으면 임신과 출산을 얼마든지 유예할수 있다는 인식이 별로 타당하지 않은 것이다.  

 

p.48-53

우리는 평생 커피를 몇 잔 정도 마실까? 지금 15세인 남성이 80세까지 마실 커피의 잔 수를 한 번에 구하기는 무척 어려우므로, 이것을 조금 쪼개 보자. 15세 남성이 1년 뒤에는 커피 몇 잔 정도를 마실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현재 16세인 남성들의 평균 정도는 마실 것 같다. 10년 뒤에는? 아마 현재 25세 남성들과 비슷하게 마실 것이다. 이런 식으로 더해 가면 15세 남성이 80세까지 마실 커피의 잔 수를 거칠게나마 어림할 수 있다. 당연히 실제 값과는 차이가 나겠으나, 이런 어림값이라도 필요한 순간들이 있어서다.

 

합계 출산율도 마찬가지다. 15세 여성이 평생 낳을 아이의 수를 한 번에 구하기란 너무 어려운 문제다. 그러니 이것을 조금 쪼개 보자. 현재 15세인 여성이 1년 뒤인 16세에는 아이를 몇 명 낳을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현재 16세인 여성이 낳는 아이의 수와 평균적으로 비슷하겠거니 추정은 할 수 있다. 2023년 기준으로는 0.0001명이다. 17세는? 0.0003명이다. 가장 아이를 많이 낳는 연령인 32세는 0.082명이다. 이런 식으로 각 연령대 여성이 그 해에 낳은 아이 수의 평균값을 모두 더하면 2022년의 합계출산율 0.78이 된다. 이렇게 계산되는 값이다 보니, 결혼과 출산 연령이 예전보다 늦어지면 특정 세대의 평균 출산율이 떨어져 합계 출산율이 감소하고, 코로나19 범유행과 같은 외부적 요인으로 출산이 미뤄져도 출산율은 떨어진다. 경향은 있어도 여러 이유로 수치가 쉽게 요동친다.

 

어렵다면 계산법은 몰라도 된다. 문제는 이 값이 어떤 의미냐는 것이다. 출산율이라는 지표는 어디까지나 일종의 비이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하는 값은 출생아 수다. 연봉 인상률보다는 내가 실제로 받는 연봉이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출생아 수는 출산율과 가임기 여성 수의 곱이다. 출산이 여성만의 책임이나 의무는 아니지만, 출산은 여성의 몸을 통해서만 가능해서다. 그러니 여성 1명이 평생 아이 몇 명을 낳느냐는 합계 출산율을 따지기에 앞서, 애초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성이 몇 명인지를 셈해 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수치가 출산율보다 더 나쁘다.

 

주로 출산이 이루어지는 나이대인 만 20~34세 여성 인구는 2022년 기준 465만 명이다. 그렇다면 10년 후인 2032년은 어떨까? 미래의 일이지만 사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2022년 기준 만 10~24세의 인구가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는 만 20~34세 인구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산해 보면 2032년의 20~34세 여성은 2022년보다 20퍼센트가 줄어든 372만 명이다. 그러면 2042년에는 어떨까? 이 역시 이미 정해져 있다. 2022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20년 후에는 20세가 되기 때문이다. 그 값은 놀랍게도 2022년에서 40퍼센트만큼 줄어든 292만 명이다. 그 때는 가임기 여성 1명이 아이를 2명씩 낳아도 전체 대한민국 인구가 무조건 감소한다. 무작정 출산율을 높이자는 주장만 반복되는 현실과 달리, 이미 미래 인구는 현재까지 태어난 아이들의 숫자로 최댓값이 결정되어 있다.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정책도 여전히 필요하긴 하곘지만, 역피라미드 인구 구조를 가진 사회를 어떤 형태로 운영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데는 20년도 너무 짧다. 애초에 여성 인구가 이미 줄어든 상황에서 출산율만을 둘러싼 갖은 혼선이 아쉬울 뿐이다. 그렇다면 이미 결정된 인구 감소로 우리가 경험하게 될 것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발생할 일은 병역 자원의 감소다. 병역 자원이 될 남성 출생자 수는 꾸준히 주는데도 병력 규모를 비슷하게 유지하는 탓에, 현역 판정률이 계속 80~90퍼센트 수준을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p.66-70

2013년에는 이런 '이유 없는' 경제 활동 미참여자의 숫자가 220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2023년에는 그 숫자가 309만 명으로 껑충 뛴다. 10년 사이에 이유 없는 경제 활동 미참여자가 100만 명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혹자는 이를 실업 급여 수급 조건이 지나치게 후해진 탓에 발생한 문제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실업 급여 신청자는 같은 기간 30만 명 정도 늘어난 것이 고작이고, 다들 형식적으로라도 구직 활동을 하기에 이들은 명목상으로는 분명 경제 활동 인구다. '이유 없는' 비경제 활동 인구가 100만 명이나 늘어난 까닭을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현재 운영 중인 실업 급여 제도에 개선이 필요할지는 몰라도, 숫자를 확인해 보면 해당 제도가 비경제 활동 인구 증가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실제로 뭘 하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되질 않는다는 점이다. 어쩌면 성매매나 도박 같은 불법적인 영역에서 일할 수도 있고, 이웃 나라 일본처럼 고립, 은둔 청년(히키코모리)으로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사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현황과 원인을 모르니, 제대로 된 대책도 없는 상태다.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우리나라는 더 낳을 여럭을 고민할 단계는 이미 지났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태어난 사람을 최대한 잘 활용하는 것뿐이다. 사람이 많아 노동의 값어치가 낮던 시절의 '알바' 처우 개선은 물론,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를 비경제 활동 인구를 다시 경제 활동으로 끌어낼 방법도 고민해야만 한다. 공허한 출산율 제고 논의만 되풀이할 시간에 이런 만만찮은 과제들을 풀어 나가야 실질적인 저출산 고령화 대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노년의 삶과 죽음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p.80-81

설령 올해 기적적인 저출산 대책이 나와, 내년부터 출산율이 대폭 늘어도 바뀌는 것은 없다. 신생아가 출생 즉시 노동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서다. 앞에서도 여러 번 강조했듯, 저출산 정책을 아무리 붙들고 있어 봤자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인 간병과 돌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고령의 노인을 돌볼 인력을 양성하고, 이들에게 필요한 복지 지출과 의료 비용을 마련할 대책을 찾는 것은 이제 저출산과는 별개의 영역에서 다루어야만 한다. 그런 논의에만 쓰여도 부족할 시간이 원인조차 불명확한 저출산을 해결한다는 데 허비되고 있는 게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제는 미래의 인구 구조가 어느 정도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고민해야만 한다. 이번 장에서 살펴봤듯, 저출산 정책으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적어도 15년 전이나 20년 전에 시도했으면 몰라도 지금은 그런 시점을 놓쳤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회적 논의가 저출산 영역에만 머물고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진정한 비극이다.

 

p.86-88

내가 AI를 개발하는 IT 기업을 운영 중이라고 생각해 보자. 가령 고성능 AI를 만든다면, 기술 개발로 생겨날 부가 가치가 가장 높은 직무를 대체하는 AI를 개발하는 게 개발 비용 대비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법일 테다. 그래서 노동 경제학 연구자들의 한 분파는 기술 개발로 생겨날 부가 가치가 가장 높은 직무부터 대체되리라고 가정하는데, 그리 비현실적이지는 않다. 대체 가능성을 가늠할 지표로서 특허 출원 건수가 선택된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상업화가 불가능하면 특허 출원도 애써 노력할 이유가 없어서다. 결과적으로 현재는 의료와 관련된 AI 특허가 가장 많고, 성직 수행을 위한 AI 특허는 거의 없다. 그러니 성직자가 의사보다 대체 가능성이 작다는 결론이 난 것이다. 특정 직무를 대체하는 게 얼마나 어렵냐와, 실제로 그 직무가 대체될 가능성이 크냐는 별개의 문제라는 관점이다.

 

그렇지만 꼭 이런 방식으로만 AI의 직업 영향을 분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업적 기술 개발이 아닌, 직업 고유의 특징을 분석해 AI에 대한 노출 지수를 계산할 수도 있어서다. 예를 들어 교사라는 직업이 AI로 대체될 수 있을지를 분석한다고 해 보자. 이런 경우 흔히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은,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성토나, AI 성능에 대한 상찬, 그리고 '스승의 은혜'같이 계량화되기 힘든 정성적 개념이 뒤섞이며 난장판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던져야 할 제대로 된 질문은 이것이다. 교사라는 직업(occupation)이 수행하는 다양한 직무(task) 중 얼마만큼을 AI가 대체할 수 있냐는 것이다. 구체적인 판단 과정을 살펴보자.

 

교사라는 직업은 여러 가지 직무의 묶음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업, 학생에 대한 돌봄, 시험 문제 출제, 학부모의 민원 처리, 학교 생활 기록부 작성, 현장 체험 학습 인솔 등 교사라는 직업이 수행하는 직무는 무척 다양하다. 이 모든 직무를 AI가 대체할 수는 없지만, 일부 직무, 예를 들어 시험 문제 출제나 잡다한 행정 업무 같은 것은 어쩌면 적당한 성능의 AI로도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식으로 AI가 대체하는 직무가 교사 전체 직무의 20퍼센트라면, 교사라는 직업의 AI 노출 지수를 20퍼센트로 볼 수 있지 않겠냐는 논리다. 

 

p.114

한국전력은 2023년 자체 반기 보고서 기준으로 이미 200조 원의 부채를 짊어져, 하루에 이자만 121억 원씩 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지 오래다. 그런 곳이 추가적인 송전망 확충에 나설 여력이 있을까? 표심이 무서워 전기 요금 인상을 주저하다 데이터 센터나 전기 자동차 같은 추가 전력 수요를 외면하는 것은 장기적 산업 경쟁력을 깎아 먹는 일이다. 대체 언제까지 전기 요금 인상 억제 조치를 '착한 적자'라는 말로 옹호할 수 있을까? 진정으로 AI 시대를 준비하려면 이런 사실을 더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p.116

산업화의 역사가 곧 기계화로 인한 노동 대체의 역사인데, 육체 노동자의 일자리 감소에는 둔감하던 이들이 '생각하는 기계'의 등장으로 지식 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어들자 이를 인류의 미래와 연결 짓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노동 집약적 제조업은 다양한 장치와 설비의 도입을 통해 생산의 효율성과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자본 집약적 산업으로 변화했고, 우리는 이것을 산업화라 부른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자동화의 범주가 정신 노동으로도 한 번 확장되었을 뿐이지, 산업화의 일관된 흐름에서 특별히 벗어나지 않은 통상적인 일이다. 지식 노동자는 이런 흐름에서 언제까지나 예외적 존재라는 믿음이 깨진 것이 전부인데, 이를 인류의 멸망과 연결 지을 이유는 전혀 없다. 

 

p.128-132

그렇다면 전통적 산업에서 취업 규칙을 열람하고, 단체 협약을 통해 이를 개정하던 절차도 변용하는 것이 맞다. 플랫폼 기업에 알고리듬 열람을 요구하고, 필요시 알고리듬을 개정하는 소위 '알고리듬 단체 협약'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책임을 져야 하는 회사 측은 "알고리듬은 회사도 정확히 모른다."라며 황당한 책임 회피만 하고 있다. 물론 AI의 내부 판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연구자들도 아직 명확히 모르는 상태가 맞기는 하다. AI 모형이 학습용으로 투입된 외부 데이터를 스스로 조합, 분석해 모형을 정교화하는 방식인 딥러닝의 내부 메커니즘을 알기가 어려워서다. 오죽하면 학계에서도 딥러닝 내부의 판단 프로세스를 '블랙박스'라고 부를까. 

 

그렇지만 AI 학습에서 '최적화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전적으로 회사의 결정 사항이다. 학습에서 알고리듬이 예측한 값과 실제 결과의 차이를 비교하기 위한 손실 함수를 무엇을 쓸지, 무엇을 우선 순위로 놓고 알고리듬을 설정할지를 결정하는 과정은 모를 수도 없고, 몰라서도 안 된다. 다만 이를 구체적으로 규율할 법이 없고, 노동자도 잘 모르니 쉽게 오리발을 내밀 뿐이다.

 

이런 입법 공백의 가장 큰 피해자는 청년 세대다. 2021년 발표된 고용노동부의 [플랫폼 종사자 규모와 근무 실태]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에 종사하는 2030 청년 세대의 비율이 전체 산업보다 확연히 높다. 전체 취업자 중 2030 세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35퍼센트 수준인 데 반해, 플랫폼 산업은 55퍼센트가 2030 세대라서다. 수도권 거주자 비율 역시 전체 취업자(52.3퍼센트)보다 플랫폼 산업(59.8퍼센트)이 높고, 여성 비율도 플랫폼 산업이 4퍼센트 포인트 정도 높다. 수도권 2030 청년 세대, 특히나 여성 노동자의 무시할 수 없는 비율이 플랫폼 노동에 종사 중인 것이다. 그러니 알고리듬으로 인한 노동 환경 변화는 기술 변화의 문제임과 동시에 청년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알고리듬의 영향을 받는 것이 과연 청년들뿐일까?

 

p.150-151

2010년 서울의 연평균 기온은 섭씨 12.1도였다. 2023년에는 섭씨 14.1도였으니, 10여 년 사이에 연평균 기오닝 섭씨 2도 오른 것이다. 사람의 체감으로는 그리 큰 차이가 아닐 수 있지만, 이 정도도 세균에는 엄청난 차이를 낸다. 세균은 온도에 따라 증식 속도가 큰 폭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대장균의 경우, 섭씨 12.1도에서는 음식에 존재하는 대장균 수가 2배로 느는 데 꼬박 3일 정도가 걸린다. 그런데 고작 2도가 올랐을 뿐인 섭씨 14.1도에서는 음식 속 대장균이 2배로 느는 데 1.5일이면 충분하다. 음식을 같은 시간 밖에 두었더라도, 연평균 기온에 따라 부패 정도가 크게 차이 날 수 있는 것이다. 2009년 보건 사회 연구원이 발표한 [기후 변화와 식중독 발생 예측] 연구에서 기온이 평균 섭씨 1도 상승하면 식중독 환자가 6~7퍼센트 증가할 것이라는 결론과도 일치한다. 

 

실제로 장염 환자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2010년 한 해 장염으로 치료받은 사람의 숫자는 290만 명이었다. 이것도 분명히 많은 숫자지만, 2019년에는 이보다 154퍼센트 증가한 446만 명이 장염으로 치료를 받았다. (이후 기간에는 코로나19 범유행 영향으로 통계가 균일하지 못하다.) 그 사이 식품 위생은 월등히 좋아졌지만, 예전에는 실온에 두어도 괜찮았던 음식이 평균 기온 상승으로 더 쉽게 상하기 시작해서다. 불필요한 설사를 나도 모르게 기후 탓에 추가로 겪은 것이다. 기후 변화는 이미 식탁 위까지 쫓아왔고, 이를 방치했다간 우리가 뒤에서 겪을 쓰라림은 더욱 커질 것이다. 

 

p.161-165

30여 년 전, 사랑하는 아내가 태어난 해인 1993년 즈음에는 오징어 어획량이 연간 20만 톤에 달했다. 동해에서 한류성 어종인 명태가 7,600톤씩 잡히던 시기다. 그러다 15년 정도가 지나자 명태 어획량은 사라졌고, 다시 15년이 흐른 지금은 오징어 어획량이 난류성 어종인 방어 어획량에 추월당한 상태가 되었다. 제주대학교 정석근 교수가 [되짚어보는 수산학]에서 짚었듯, 금어기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어민의 탓도 아니고, 중국 어선 남획의 탓만도 아니다. 기후 변화로 그간 우리가 익숙하게 알던 한반도 주변의 해양 생태계가 전반적으로 바뀐 탓이다. 어민들이 금어기를 아무리 잘 지켜도, 기후 변화로 오징어는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 

 

어쩃거나 오징어 대신 방어가 잡히니, 그것대로 괜찮은 것 아이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연근해 어획량은 계속 곤두박질치는 중이다. 2016년에는 통계 작성 이후 40년여 만에 처음으로 어획량 100만 톤이 깨지더니, 2022년에는 그 수치가 89만 톤까지 줄었다. 조명 달고 오징어를 잡던 배가 하루아침에 방어잡이 배로 바뀔 수가 없고, 고령화된 어촌에서 새 어족에 대한 정보를 얻고 기술을 습득하는 데도 어려움이 커서다. 제대로 된 지원 없이 우리 어업이 기후 변화의 여파를 제대로 넘기기는 무척 난망하다는 말이다. 

 

차라리 수입이라도 되는 오징어와 달리 수입할 곳도 마뜩찮은 해산물이 있다. 최근 미국 시장에 진출해 K-푸드 열풍을 이끌고 있는 김과 같은 해조류다. 김은 통상 섭씨 15도 아래의 차가운 물에서 재배되므로, 국내에서는 겨울철과 이른 봄 정도까지만 양식이 된다. 수온이 오르면 김 생산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2023년에 발표된 부경대학교 김봉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바다의 표층 수온이 섭씨 1도 상승할 때 김 생산량은 960톤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요즘에는 '검은 반도체'라고도 불리는 수출 효자 상품인 김의 양식업이 수온 변화로 초토화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육상에서 김을 양식하는 기술을 상용화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식품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풀무원 같은 기업이 나름 절박한 시도를 앞장서 해 주는 것이 고마운 일인 셈이다. 

 

p.176

생산 과정에서 개발 도상국의 환경 파괴를 애써 눈감는다고 하더라도, 따져 볼 것은 여전히 남는다. 개인용 자동차가 개인용 전기차로 바뀌는 것도 분명 오염 감소 측면에서 개선이기는 하나, 보다 거시적으로 보자면 개인용 친환경 차량 보급 대신 대중 교통을 강화하는 과정이 환경에는 훨씬 더 중요한 정책이다. 환경 의제에서 대중 교통이 차지해야 할 자리를 '친환경' 전기 자동차가 빼앗은 것이다. 물론 굴지의 자동차 기업을 보유한 국가에서 그러기 쉽지 않다는 사실은 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보지 않았나. 친환경을 표방하며 경제적 실리를 택하는 개념을 그린워싱이라 부르자고 합의했다고. 이것이 바이오 연료와 전기 자동차 열풍의 이면에 숨은 진실이다. 에너지 소비량 자체를 줄이지 않고, 겉으로만 환경 친화적인 제품을 대체재로 소비하는 것은 실효성이 적다. 

 

p.222-223

국내외 황혼 이혼 연구를 살펴보면, 노년기 이혼의 급증 이유는 이혼과 관련된 제도 변화와 관계가 깊다. 대표적인 예가 이혼 시 재산 분할이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재산 분할 제도가 국내에 도입된 떄는 1991년인데, 관련 제도가 생기자 이혼 직전에 재산을 타인 명의로 빼돌리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이를 방지하는 법률 개정은 2007년에야 이루어졌고, 2014년에는 미래에 받을 퇴직금과 공무원 연금 등도 재산 분할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까지 나오게 되었다. 최근에는 민간 보험사에서 개발한 연금형 상품이나 사회 보험에도 연금 분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논의가 있어, 재산 분할의 범위와 규모는 현재도 계속 넓어지는 추세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런 제도 변화가 이혼을 인위적으로 조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바뀐 법은 이미 파탄 난 혼인 관계를 억지로 유지하던 이들이 마침내 헤어질 결심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게 전부다. 재산 분할 제도가 자리를 잡으며 이혼을 결심한 배우자가 노년에 겪을 경제적 불안이 줄어서다.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이혼 소송 과정에서 수천 억, 심지어는 조 단위의 재산 분할 판결이 나오기도 하는 것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이런 추이는 계속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 결국 제도는 사회 변화를 늦게나마 반영할 뿐, 사회를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끌고 가기는 어렵다. 제도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것이 아닌 보다 근원적 문제를 살펴야만 하는 이유다. 

 

p.226-231

2021년 미국 법무부가 발간한 보고서를 살펴보자. 2012년에 출소한 41만 명가량의 전과자를 5년 동안 추적 관찰해, 출소 이후 체포된 이력이 있는지를 파악했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추적 관찰한 41만 명 중 5년 이내에 재범한 누적 비율이 70.8퍼센트라서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범죄에서만 재범률이 높은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나, 강력 범죄로 좁혀도 수치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살인이나 강간, 강도 같은 폭력 범죄의 5년 내 누적 재범률은 65.2퍼센트였고, 마약과 같은 약물과 관련된 범죄는 69.7퍼센트, 절도나 사기 같은 재산형 범죄는 78.3퍼센트가 5년 내 다시 범죄를 저질렀다. 초범으로 대상자를 좁혀도 재범률이 68.6퍼센트니, 그야말로 형사 정책의 실패다. 

 

전과자의 재범 가능성이 이렇게나 크다면, 애초에 출소를 시키지 않고 계속 가둬 두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실제로 과거 미국은 이런 정책을 현재보다 더 적극적으로 폈다. 재소자를 지역 농장이나 건설 현장 등에 '파견'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되어, 죄수를 늘릴수록 주 정부의 재정이 풍족해졌기 때문이다. 노예제가 폐지되며 증발한 노동력을 갖은 핑계로 가둬 들인 죄수들의 노동력으로 채우는 식이었다. 그렇지만 1928년 앨라배마 주를 마지막으로 정부 차원에서 민간 기업으로의 죄수 임대(convict leasing)가 금지되자 기껏 인원을 늘려 둔 교도소 운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가 어려워졌고, 운영 부담을 덜기 위해 결국 민영 교도소가 허용 되었다. 교도소장부터 교도관까지 모두 민간 기업이 선발해 운영할 수 있도록 민영화를 해 준 것이다.

 

이윤 추구가 제1목적인 민영 교도소가 재범을 막는 교화 기능에 충실할 이유는 없다. 교도관 1인이 담당하는 재소자 수가 늘고, 재소자 처우가 열악해져도 이를 방치하니, 출소한 이들도 재범을 저질러 재차 교도소로 돌아온다. 아무리 민영 교도소를 늘려도 이들을 모두 수용할 시설을 갖추긴 어렵다. 재정 문제도 있지만, 2022년 기준으로 이미 약 120만 명이 수용된 상태라서다. 실제로 캘리포니아 주는 재소자가 교정 시설 수용 한계를 넘어설 것을 우려해 최근 10년간 중범죄로 의율하는 절도죄의 기준을 400달러(약 60만 원)에서 950달러(약 130만 원)로 2배 넘게 높였다. 낮 시간대 대로변 상점이 절도를 당하는 심각한 치안 공백이 발생하게 된 연원이다.

 

이런 형사 정책 실패 상황에서 국민의 분노를 달랠 방법이 뭘까? 범죄 수사와 치안을 담당할 수사 기관 인력을 늘리고, 적발된 범죄자에게는 높은 형량을 구형해 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착각을 주는 것이 현재 미국이 선택한 방법이다. 정작 그렇게 잡아들인 범죄자가 교도소에서 새로운 범죄 지식을 습득하고, 사회로 나와 재범을 저지르는 일이 반복될 뿐인데도 '속 시원한 형량'이 만족감을 줘서다. 2022년 기준 3년 내 재범률이 23.8퍼센트에 불과하고, 연간 재소자 규모를 전체 인구의 0.1퍼센트인 5만 명 정도로 관리 중인 우리나라가 부러워할 상황이 맞을까?

 

미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무작정 형량을 엄하게 책정하자는 엄벌주의는 실제 범죄 발생이라는 문제 해결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미국 형사학자들이 제안하는 것은 범죄 발생 가능성이 큰 고위험 청소년을 조기에 선별해, 이들이 범죄의 길로 접어들지 않게 교화하는 방식이다. 악인을 선인으로 바꾸는 SF 소설 속 정신 개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생게를 유지하는 방법을 배우고, 범죄 집단을 떠나서도 인간 관계를 맺고 사는 방법을 가르쳐 범죄 조직에서 벗어날 길을 열어 주자는 현실적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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