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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념

경제적청춘(2)

by Diligejy 2017. 6. 30.

p.133~134

"정부가 금융기관을 관리 감독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경영자들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잃게 될 정도의 정부 개입은 무의미합니다. 규제 정도는 금융기관이 투명한 자기자본 요건 정도를 유지하도록 하는, 간단명료한 형태의 관리 감독 수준이면 충분합니다. 만약 그 이상의 복잡함을 요구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제도권 금융 분야를 심하게 규제한다면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 비은행 금융기관이 활성화되어 더욱 문제가 되지요. 지금까지 정부가 관리 감독을 강화했을 때 역효과가 발생하는 것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각 경제 주체가 확신을 가지고 계약을 위반하지 않고 의무를 다하며 행동한다면 규제 없이도 시장은 잘 작동할 것입니다."


p.143

행동주의 경제학자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먼은 우리시대 최후의 르네상스맨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자 할 때 흔히 부딪히게 되는 중요한 문제는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정보를 처리하는 우리 능력의 한계다. 정보가 넘쳐나는 인터넷 시대에도 인간의 의사 결정능력은 크게 향상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정보는 디지털로 쉽게 접근이 가능하지만, 정보를 처리하는 인간의 '능력'은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 방식이어서 '학습'을 해야만 습득된다. 우리가 종이책으로 독서를 하는 것은 정보처리 능력이 분별력, 판단력, 선택 능력과 관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능력은 학습된 내용과 실력이 있어야만 한다.


p.150

"우리는 도구를 만든다. 그 다음 그 도구들은 우리를 길들인다. 도구에 종속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그 도구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도구의 주인이 되려면 오직 '학습'으로만 가능하다. 학습을 위해서는 정보 장악력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얄팍한 잔재주를 버리고 더 넓고 깊게 공부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게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지 않는 길이다."


p.155

기대를 경제적으로 표현하면 '미래에 대한 예측'이다.


p.156~159

기대는 여러 정보와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먼저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기대를 형성하는 경우가 있다. 지난해 물가가 3%만큼 오를 것이라고 믿었는데, 실제로는 2%밖에 안 올랐다고 하자. 그러면 새해 물가를 예측할 때에는, 지난해의 경험을 반영한다. 지난해에 실제로 올라간 2%뿐 아니라, 당시 예측치 3%와 차이까지 고려한다. 즉, 다음 예측에서는 과거 기대와 경험을 동시에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기대를 '적응적 기대adaptive expectations'라고 한다.


적응적 기대 가설은 과거 경험과 정보에 의존해 기대를 형성하는 것으로, 현재의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과거 인플레이션율의 가중평균이다. 그런데 그런 경험이 실패로 얼룩져 있다면 그 기대 역시 믿을 만한 게 못 된다. 그렇다면 어떤 정보를 가지고 기대를 형성해야 할까?


과거 경험뿐만 아니라 예측 가능한 미래 상황을 토대로 기대를 형성할 경우, 체계적으로 미래 값을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기대를 형성하는 게 더 현실적일 것이다. 즉, 시장에서 현재 수급 상황은 어떻고 경제 사회적 현실이 그러하니, 미래는 이렇게 될 것이라 예측하는 것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현재 갖고 있는 모든 정보를 활용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이를 '합리적 기대rational expectations'라고 말한다.


우리는 주위에서 사람들이 결정을 내릴 당시 입수 가능한 최선의 정보에 의거해 미래에 대한 에측을 행하는 것을 쉽게 목격한다. 합리적 기대 가설은 사람들이 미래사건의 원인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진정으로 새로운 정보만이 예상이나 행위에 영향이 미치게 행동한다고 가정한다. 그들의 예측 모형은 예상이 언제나 정확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기에 예측 오차는 불가피하다. 단지 오차는 어느 쪽에 편중되지 않아 상쇄될 수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차에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기 때문에 평균으로 따지면 0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경우 모든 경제 행위자는 기본적으로 앞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합리적 기대란 지속적으로 정보를 재해석하고 업데이트하며 형성된다.


바로 이때 체계적인 오류가 없다는 게 '적응적 기대'와 다른 점이다. 적응적 기대에서는 과거로부터 얻은 현재에 대한 예상과 현재의 실제 수치를 비교한 결과 그 예측 오류만큼 미래의 기대에 반영되기 때문에 체계적인 오류가 존재한다.


좀 더 현실적인 예를 들어 2가지 기대 가설에 대해 설명해보자. 학창시절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늘 똑같다. 경로 의존성이 존재한다. 이게 적응적 기대 가설의 기본이다. 약속 같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대개 일정한 경로를 따라 움직인다. 그러던 어느 날 골목길에서 불량배를 만나 돈을 빼앗겼다. 다음날에도 같은 길로 귀가할 것인가?


적응적 기대 가설에 따르면 전날과 같은 길로 귀가할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할 때 과거 변수들의 동향을 중시하고, 현재의 변화를 주시면서 점진적으로 행동을 바꿔나간다. 만약 그가 적응적 기대 가설의 신봉자라면 지금까지 한 차례를 제외하고 골목길을 무사히 통과했다는 사실을 중시할 것이다. 어제 사고를 당했다는 새로운 정보는 아주 낮은 확률에 불과하기 때문에 무시된다. 따라서 그는 오늘도 같은 골목길로 갈 것이다. 만약 그가 한 일주일 정도 계속 동일한 일을 당했다면 그때쯤 이 골목길에는 불량배가 늘 있다고 판단하고, 그때까지의 정보를 수정하고 좀 멀지만 돌아가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한편, 합리적 기대 가설에 맞춰 행동한다면 앞의 경우와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난다. 어제 돈을 빼앗긴 것이 비록 처음 발생한 경우일지라도 그 불량배가 오늘도 골목길에 진을 치고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어제 만난 녀석들이 오늘도 골목길에 진을 치고 있을 것인지 사전정보를 얻으려고 애쓸 것이다. 합리적 기대를 하는 경우 귀가 길에 당한 1번의 봉변을 과거의 어떤 정보보다 중요하게 생각해 충분한 정보를 수집하고 다시 골목길로 귀가할 때 어떤 일이 발생할지를 예상해 행동을 하게 된다.


p.161

그는 국민들이 전혀 예기치 못한 통화 정책이나 재정 정책만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맗나다. 그래서 그는 빈번한 통화 정책을 반대한다. 통화 정책을 자주 쓰면 쓸수록 경제 주체들은 통화 정책의 미래를 훤히 내다보게 된다. 그리고는 자신의 선택을 바꿔 새롭게 반응하기 때문에 정부는 헛물만 켜게 된다. 여기에 비해 통화 정책을 거의 쓰지 않으면 오히려 통화량을 조금만 바꿔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통화 팽창 정책은 예상하지 않은 일이 되기 때문에 통화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루카스의 주장은 가능한 한 경제는 시장의 자율에 맡기고 정부의 간섭은 아주 예외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p.162

불황에 대처하기 위한 정부 지출 증가 등의 적극적인 정부 정책은 사람들로 하여금 언젠가 재정수지를 맞추기 위한 증세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를 형성하게 하고 소비를 줄이는 등의 행동으로 이어지게 한다. 따라서 이런 재정 정책은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한 효과가 없으며, 따라서 안 하느니만 못한 정책이라고 루카스는 경고한다.


p.164

루카스는 노벨상도 타고 경제학자로도 성공했다. 199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그는 상금을 이혼한 전 부인에게 위자료로 줘 세간의 화제가 됐다. 루카스는 늘 연구에만 매진했고, 가정에는 무관심했다. 그래서 전처는 "당신같이 가정을 돌보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언젠가 꼭 노벨상을 받을 테니 나중에 그 상금을 위자료로 달라."고 제안했따. 이혼서류에 1996년 이전에 노벨상을 받을 경우 그 상금의 일부를 위자료로 지급한다는 구체적인 조항까지 삽입했다. 그는 합리적 기대 가설을 만들었지만 앞날을 합리적으로 내다보지 못했고, 오히려 전처가 미래를 예상하고 나름대로 합리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딱 1년 차이로 말이다. 현실은 기대보다 잔인하고 아이러니하다.


p.167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에서 누군가는 일반 대중이 브렉시트의 의미를 제대로 알았더라면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주장은 이것이 EU에 관한 의견 표시가 아니라 단지 자국 상황에 대해 항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기득권 세력을 '오만과 편견'의 집단으로 판단한 민의는 잘못된 것인가? 세상살이에 '이성과 감성'의 조화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항상 가능한가?


브렉시트에 이어 또 다른 충격이 왔다. 이탈리아 마테오 렌치Matteo Renzi 총리가 정치 생명을 걸고 추진한 헌법 개정안이 국민 투표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탈리아의 정치는 후진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상하원 의원의 수가 비슷해 개혁이 어렵고 정치적 교착 상태가 지속되어 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상원의원 수를 줄이는 내용을 헌법 개정안에 담았다. 국민 투표가 부결됨에 따라 마테오 렌치 총리가 사임했다. 청년 실업이 하늘을 찌르는 상황에서 극우 성향의 야당이 정권심판 투표로 몰아갔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또한 오만과 편견과 이성과 감성의 결과일까?


p.193

분명한 것이 있다. 일자리 수를 늘리지 않고 청년들의 취업 활동을 지원해주거나 보조금을 주는 것은 취업하려는 사람들을 경제적으로 도와줄 수는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근본적인 고용을 늘리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하에서 고용이라는 건 자본가가 이윤을 낼 때만 가능하다. 장기간에 걸쳐서 경제가 크게 성장하지 않으면 실업율 상승 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구조화된다. 노동개혁과 성장 문제가 얽혀 있어 이를 해결하는 것이 고차 방정식을 푸는 것만큼 어렵다.


p.197~198

기본 소득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그것이 복지론자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견해다. 복지론자들의 생각과 다르지만 자유주의 경제학자들도 기본 소득을 옹호하기도 했다. 물론 이는 소득에 관계없이 제공되는 보편적 기본 소득의 개념은 아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에게 자유란 소극적으로는 누구로부터도 강요받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자유주의 신봉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기본 소득에 대한 주장을 들어보자.


역시나 그에게서는 박애나 이타주의의 향기보다는 '침해받지 않는 자아로부터 발생하는 자유의 향기'가 넘쳐난다. 그에게서 기본 소득의 요지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바로 다른 사람들의 강요를 받지 않을 정도의 부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합법성의 관점에서 그는 기본 소득을 바라보고 있다. 생전 그의 기록을 더듬어보자.


"기본 소득을 보장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부양할 능력을 잃어도 일정선 이하로생활 수준이 떨어지지 않게 해주는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을 공통된 위험에 대처하게 하기 위한 합법적인 보호 차원을 넘어 위대한 사회를 구성하는 요인으로서 반드시 필요하다. 위대한 사회를 위해 필요한 것은 개인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정 소수 집단에게 이것저것을 요구할 필요가 없는 사회이다."


그는 당연히 복지국가를 위대한 사회라고 보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 시장 원리, 법의 지배, 작은 정부 같은 '자유주의 원리에 기반을 둔 사회'를 위대한 사회로 보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생활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사회는 방기해야 할까? 하이에크는 개인이 스스로 충분히 자립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울 수 없을 때 무언가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국가가 일정 수준의 부에 도달해서 모두를 부양할 능력이 있는 사회를 건설했다면 개인에게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았다.


p.200

노벨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도 1960년대에 최저생계비보다 적게 버는 모든 사람에게 그 차액을 국가가 보조금으로 메워주자는 '마이너스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를 제안했다. 4인 가족에 1,000만원까지 소득 공제가 되고 마이너스 소득세율이 50%라면, 500만원을 버는 사람은 정부로부터 모자라는 500만원 에 0.5를 곱한 250만 원을 받아 소득이 750만 원이 된다. 소득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도 마이너스 과세 소득 대상이 1,000만 원이므로, 거기에 0.5를 곱한 500만 원을 정부로부터 받는다. 프리드먼은 복지를 개혁해 마이너스 소득세로 통합하고자 한 경제학자이다.


p.203

핀란드에서 기본 소득 제도가 실시되면 일정 규모의 복지 프로그램이 줄어들 전망이다. 핀란드 정부는 방만한 복지 제도를 축소 정비하고 공무원 수를 줄여 효율적 정부 구축을 위해 기본 소득 제도를 도입하고자 한다. 핀란드 정부가 기본 소득 제도를 도입하게 된 계기는, 한편으로 치솟는 실업률 때문이었다. 핀란드의 실업률은 다른 북유럽 국가보다 높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실업자 3명 중 1명이 직장을 잃은 지 1년이 넘은 장기 실업 상태라는 점이다. 정부는 지나치게 풍요로운 복지 제도가 실직자의 구직 의욕을 꺾고 있다고 판단했다. 핀란드에서는 실직자에게 5년 동안 4인 가족 기준으로 전 직장에서 받던 임금의 73%와 맞먹는 복지 혜택을 준다. 미국의 3배 수준에 달한다. 소득이나 직업 유무에 관계없이 국가에서 돈을 주면 근로 의욕이 떨어질 것이라는 인식이 많았다.


그러나 핀란드 정부는 다르게 생각했다. 기존의 복지 혜택을 받으며 실업 상태로 살고 있던 사람들이 기본 소득 제도가 시행되면 구직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정부가 지급하는 기본 소득은 핀란드 국민 평균 생활비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복지 제도 효율화에 목적을 두고 있는 우파 개혁인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도 2017년부터 19개 지방 정부가 기본 소득을 지급하는데 기본 소득을 받으면서도 정부가 제시하는 일을 할 경우 125유로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p.204~205

실리콘밸리의 기업 입장에서는 시민의 저항 없는 기술 개발, 개발된 제품의 지속적인 소비를 보장받기 위해서라도 수요자인 시민들의 안정적인 소득 체계가 필요하다. 자칫 소득 불평등과 실업자 양산이 인공지능과 로봇의 파괴로 이어질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기본 소득이 도입되면 노동자들은 인간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 소득을 보장받고, 러다이트Luddite와 같은 극단적 선택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만약 직접세를 폐지하는 베르너의 안을 도입하게 되면 법인세 회피를 위해 그동안 각종 기법에 지출한 비용을 절감할 수도 있다. 아마 이것이 실리콘 밸리 기업들이 기본 소득 도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진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p.215~216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많은 것들은 실제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개인과 사회는 상충관계에 직면하기도 한다. 우리가 돕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은 인센티브에 따라 반응한다. 이것이 바로 사회 안전망이 항상 의도한 대로만 작동하지 않는 이유다. 이 대목에서 평등과 효율성 간에는 상충관계가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사실 그의 경제관을 떠나 솔직함이 느껴지지 않나? 그의 다음 말에 주의를 기울이며 미래를 이끌 지도자상을 생각해본다.


"미래에도 사람은 인센티브에 반응할 것입니다. 정치인은 많은 공약을 하지요. 그런데 어떤 약속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할 때 사람들은 화를 낼 수 있습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도자라면 약속을 하기 전에 상황이 바뀌더라도 그 약속을 지킬 인센티브가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허풍은 오래가지 못해요. 진실을 말하는 것 그것이 좋은 평판을 얻는 방법이니까요."


p.241

'루이스 전환점'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저임금 노동력만 고수하는 경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을 보자. 여전히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의존성은 높고, 산업의 라이프 사이클에 순응한 새로운 산업의 발굴과 지원은 부재하다. 미숙한 구조 조정과 노동 개혁 실패로 루이스 전환점을 완전히 벗어나고 있는지도 의문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p.248

그는 가난한 지역을 돕는 것과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전혀 다르다고 했다. 가난한 지역에 값비싼 미술관을 짓는 것은 그 지역의 토지 가격을 높여 가난한 사람들을 그 지역에서 오히려 몰아내는 것이다. 예술에 조예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예술의 전당을 만들어주는 것은 축복이 아닌 저주라는 것이다. 가난한 지역 개발에 그런 돈을 쓰는 것보다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 주는 것이 낫다. 텅 빈 흉물로 변한 지방의 공설 운동장을 보면 그의 말이 한편으로 수긍이 간다. 일본에는 차가 지나지 않는 터널이 수도 없이 많다. '사회 전체의 혁신'은 글레이저나 아서 루이스나 모두 추구하는 가치다.


p.259

바야흐로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분석해 서로를 연결할 수 있을 것인가'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이다.


p.292~293

경기도와 충청도가 같은 통화를 공유할 수 있는 이유는 노동 이동이 자유롭고 재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한국과 일본이 같은 통화를 쓰지 않는 이유는 노동 이동이 제한적이고 재정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이 같은 통화를 공유한다면 최적통화지역 달성이 불가능하다. 유로존을 구성하는 국가들은 먼델이 말하는 최적 통화지역의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나? 유로존 국가 내 노동 이동은 완전히 자유롭지 않고 제한적이며, 경직적인 성공 가격과 임금 체계를 가졌다. 또한 개별 국가들은 각자의 재정을 운용하고 있다.


먼델은 각국이 서로 다른 경제 수준일 경우 경제에 충격이 가해졌을 때 어려움의 처지는 유사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유로존은 결국 최적통화지역을 달성할 수 없는 구조이고 재정 통합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해법이 그래서 나온다. 사실 유럽 통합은 경제적 이득보다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진행되었기에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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