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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글/자기발견

회식과 숙취, 비판과 반대 그리고 심리적 안전감

by Diligejy 2019. 11. 22.

엊그제 입사(저) 환영회 및 퇴사(전임자) 송별회 회식의 여파로 다들 속이 쓰려 죽으려 했습니다.

숙취가 우리회사 사람들을 조졌다..

집중과 긴장 상태로 일하던 때와 달리(쉴 때는 웃고 농담하며 쉬기도 하지만 업무에서 요구하는 집중도는 높은 편입니다) 다들 계급장 떼고(저만 뗀건지 모르지만) 웃고 재미있게 회를 즐겼습니다(저는 회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메뉴는 마음에 들지 않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회식에서 회라는 한자가 모일 회 자인걸 감안하면,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얘기하고 잠시 긴장을 풀며 팀워크를 다지는 게 즐거웠습니다).

퇴사하시는 분이 회사에 슬리퍼를 놓고 가셨는데, 제게 회식자리로 슬리퍼를 갖다 달라고 하셔서 제 숨겨진(?!) 장난끼를 건드리셨습니다. 

놓고간 슬리퍼 그건 퇴사선물

몇 번을 튕기며 안된다고 하다가 겨우 갖다 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쉽게 주면 재미가 없기에 회의 끝나고 정신없이 가느라 놓고온 척을 했습니다. 
주인공이 등장해서 제게 슬리퍼가 어딨냐고 여쭤보시기에, 당연히 회사에 놓고온 척 연기를 했고, 회식이 끝날 즈음에 분위기를 잡아 대표님이 퇴사 선물로 드릴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수준높은 퇴사 선물에 전임자분은 감동의 눈물(!)을 쏟으실 지경.. 

퇴사 선물 증정식 당시 내 표정

이렇게 회식은 끝났습니다.

다음 날 잠시 쉬는 시간, 의리(?!)있게 함께 숙취로 헥헥대는 회사 동료분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한 분께 질문을 들었습니다.

"진영님께 부과되는 업무량이 야근을 매일 해야 할 만큼 과도한가요?"

당연히 아니었다. 물론 3일간 인수인계를 받을 때는 당연히 과도했습니다. 아니 과도했어야 했습니다. 그 3일을 제외하곤 인수인계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당연한 거였습니다. 

그치만 그 이후에도 계속 야근하고 이리저리 계속 일하는 건 업무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냥 제 욕심때문이었습니다.

빨리 끝내고 뭔가 더 하고 싶다는 그 욕심 때문이었죠.

말씀을 꺼낸 동료분은 제가 번아웃이 올 수 있다고 걱정해주시면서 아주 조심스레 제 행동을 보고 다른 회사 동료분들이 눈치를 볼 수 있다고, 회사의 문화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사실 욕심을 부리고 야근을 하면서 고민한 주제였긴 했습니다. 한 번 사람을 갈아넣는 문화가 생겨버리면, 옆 사람에게 전염되고, 회사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거기 때문입니다.

그걸 어느정도 인지는 했지만, 그래도 욕심이 앞서 회사에서 더 일하고 더 빨리 성장하길 바랬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팀플레이에 맞지 않은 행동이었습니다. 회사가 탄력근무제를 실시하는 이유는 야근에 대한 보상을 주고,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목적이 있는데, 이렇게 오버워크를 하면, 다른 분들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출퇴근 거리가 먼 동료분들은 더욱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그 분이 멋쩍어 하면서 선을 넘은 얘기를 했다고 미안해 하시더군요.

보통 사회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지적하는 건 쉬운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뒤끝을 남기는 거보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피드백을 주는 게 더 고맙고 좋았습니다. 빠르게 고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뒤끝남기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이렇게 서로 open communication을 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감을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믿고 있는 인간이라, 이런 커뮤니케이션을 더 활성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몇 번을 고맙다고 했고, 오늘 점심 먹으면서도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 분도 처음엔 선을 넘었다며 계속 사과하다가 안전감을 느끼셨는지 예의상 한 거라면서 농담을 하시더라구요. 

칭찬이든 불만이든 갈등이든 무엇이든 최대한 오픈할 수 있는만큼 오픈해서 공유해야 한다는 게 제가 믿고 있는 올바른 문화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투명하게 소통해야 더 빠르게 더 소중한 일에 집중하고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심리적 안전감이라는 개념이 요새 기업문화를 연구하시는 분들 사이에서 화제인 듯 한데, 심리적 안전감은 어떤 전문가가 와서 특강하고 컨설팅한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조그마한 이벤트에서 계속 지지해주고 서로 경험이 축적되었을 때, 믿고 의지할 수 있겠다고 여길 때 생길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회사에 출근한지 1.5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버라이어티 하네요. 동료분들도 그렇게 말씀하시고...

그래도 재밌습니다. 성장할 수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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