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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사결정

착각하는 CEO

by Diligejy 2020. 5. 2.

P.11~13

밀실에서 아무도 모르게 이루어지는 인력감축 계획은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직원들의 불안과 공포를 극대화시킴으로써 생산성과 품질의 저하를 야기한다. 그 손실은 차치하더라도 이런 불통과 독선은 해고되는 직원들뿐 아니라 살아남은 직원들에게도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준다. 심리에 대한 이러한 무지를 보여준 기업의 대표적 사례는 놀랍게도 세계적인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한 씨티뱅크다.

 

1997년 후반, 씨티뱅크는 비용 절감과 혁신을 목적으로 9만 명의 직원 중 9,000명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알리면서도 누가 그 대상인지 전혀 밝히지 않았다. 당연히 수천 명의 직원들은 이런 예측불가능성 때문에 실직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대상자로 지목되면 구직 활동에라도 나설 텐데 확실해진 바도 없으니 일이 손에 잡힐 리 만무했다. 씨티뱅크는 '사람'이 아니라 '직위'와 '직무'를 감축한다는 현학적인 경영학 용어만을 늘어놓으며 인력감축 계획을 마치 건물이나 설비를 내다 파는 관점에서 밀어붙였다.

 

씨티뱅크는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직원들의 'Me Issue'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예측가능한 미래를 이야기하지도 않았으며, 결국 직원들에게 인생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도 허용하지 않은 셈이었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할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뿐 아니라 일을 생산적으로 수행하는 데 애를 먹는다. 이는 심리학자 마크 무레이븐의 연구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는 피험자들에게 사전에 어떤 설명을 하거나 양해를 구하는 절차 없이 무조건 연구자의 지시를 따르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피실험자들은 과제를 계속 할 의지력이 저하됐을 뿐만 아니라 매우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는 결과를 보였다. 씨티뱅크의 패착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씨티뱅크와 같은 해에 인력 구조조정을 실행했지만 직원들의 감정을 세심하게 다루고 그들에게 예측가능성과 통제감을 보장함으로써 무리 없이 성공적으로 그 과정을 완료한 회사가 있었다. 1997년 11월에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11개 공장을 폐쇄하여 제조인력의 30%를 훨씬 넘는 6,395명을 정리해고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씨티뱅크와 다른 점이 있었다. 당시 CEO였던 로버트 하스는 인력감축계획을 발표하는 날에 왜 인력감축이 불가피한지를 설명함으로써 직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누가 해고 대상이고 각자에게 얼마의 위로금이 지급될 예정인지 등을 상세히 알림으로써 직원들이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고 계획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무레이븐의 실험에서 상세한 사전설명을 듣고 친절한 대접을 받은 피실험자들의 성적이 높았고 의지력 또한 강했다는 사실은 리바이스의 성공요인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직원들의 심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을 반영한 세심한 조치들을 마련했던 것, 바로 그것이 정리해고 규모가 매우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가 직원들의 동요와 생산성 저하를 최소화하면서 원활히 인력을 감축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기업에 중대한 변화가 생길 때 그것을 직원들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하는 이유는 실제로 서로 합병되는 두 제조공장 직원들을 대상으롷 나 데이비드 슈바이거의 현장조사에서도 바로 드러난다. 직원들은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는 두 공장이 합병되면 중복되는 부문에서 필연적으로 인력감축이 발생할 것을 염려할 수박에 없었다. 그러나 두 공장의 관리자들이 보인 행동은 확연히 달랐다. 한쪽 공장의 관리자들은 합병이 진행되던 3개월의 시간 동안 매주 모든 부서의 직원들과 면담하고 주간 뉴스레터를 발행함로써 직원들의 이해와 공감을 구한 반면, 다른 공장의 직원들은 관리자들로부터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하고 방치되다시피 했다. 슈바이거의 조사 결과, 전자의 직원들은 후자의 직원들에 비해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업무에 더 몰입했고 훨씬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p.14

하버드 대학교의 조지 밀러는 인간이 한 번에 집중하여 기억해낼 수 있는 가짓수가 일곱 개 내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러한 '매직 넘버 7'이란 개념을 주제로 밀러가 논문을 발간한 때는 1956년이었다.

 

p.22~23

통제의 도구인 규정은 기본적으로 구성원들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다. 직원들을 믿지 않아서 발생하는 손실은 규정을 정함으로써 얻는 이득을 훨씬 뛰어넘는다. 이런 사례는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한 회사가 야근을 마치고 자정 이후에 택시를 이용할 경우에만 비용을 인정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그런데 차가 자정 이전에 끊기는 지역에 사는 직원이 밤 11시경에 택시를 이용한 후 택시비를 청구하자 경영지원 부서와 마찰이 생겼다. 이를 본 직원들은 야근 후에 자정까지 PC방에서 게임을 즐기다가 자정이 넘으면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방법으로 대응했고, 결과적으로 비용이 줄기는커녕 택시비가 과다청구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또 다른 사례. 어느 직원이 입사 당시부터 밤 8시를 공식적인 퇴근시간으로 알고있음을 발견한 CEO가 밤 8시 30분이라고 정정해주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자 이전까지 퇴근시간에 별로 신경 쓰지 않으며 밤 9시가 넘도록 자발적으로 야근하던 직원은 그 뒤로 절대 야근하지 않고 업무 할당량만을 수행했다고 한다. 그 CEO는 과연 무엇을 얻었을까?

 

규정을 정해놓으면 직원들이 그대로 따를 것이라는 기대는 계몽적 관점을 가지고 직원들을 어린아이 같은 대상으로 바라보는 데서 기인한다. 조직에서 수립되는 여러 제도와 규정들은 '당신들을 성인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직원들에게 심어준다. 사실 일탈행동을 보이는 직원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으므로, 소수의 일탈을 막기 위해 모든 직원들을 새로운 규정으로 압박하는 조치는 전 직원을 잠재적 위반자로 간주하는 것과 같다.

 

p.23

규정과 함께 통제의 도구로 흔히 사용되는 벌칙도 사회규범을 시장규범으로 대체하는 역효과가 크다. 특히 그 벌칙이 벌금으로 매겨진다면 역효과는 더욱 심해진다.

 

p.26

사회적 기준을 강조하는 방식의 캠페인은 오히려 파괴적이고 불건전하며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p.28

크고 작은 변화를 시도할 때마다 '남들은 이런 상황에서 다 그렇게 하니 당신도 그것을 따라야 한다'는 기준(이를 '기술적 규범'이라고 함)만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그렇게 하는 행동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도록 무엇이 인정되고 무엇이 인정되지 않는지(이를 '당위적 규범'이라고 함)를 분명히 알려야 한다. 슐츠가 제시한 이모티콘은 전력소비에 있어 무엇이 용인되고 무엇이 용인되지 않음을 알려주는 당위적 규범의 장치였다.

 

그러므로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를 유도할 때는 기술적 규범과 당위적 규범을 적절하게 제시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p.31

무언가를 '하자', '해야 한다', '안 하면 안 된다'는 투의 전달방식은 처음엔 효과가 있겠지만 그 변화의 크기는 자긍심을 자극하는 방식에 비해 작다. 변화의 크기뿐만 아니라 변화의 지속시간 면에서도 의무보다는 자긍심을 자극하는 메시지 전달이 효과적이다.

 

p.42

직원들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그들의 행동을 통제해야 한다는 의도가 너무 지나치면 당장에는 원하는 성과를 얻을지 몰라도, 직원들에게 심리적 압박감과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장기적인 생산성은 저하되고 만다. 컴퓨터로 감시하고 감독자로도 통제하는 이중 조치는 효과가 가장 좋을 것 같지만 사실 가장 최악의 관리방식인 셈이다. 반대로, 직원들의 창의력을 복돋울 목적으로 그들에게 지나친 자율권을 주거나 방임에 가까운 조치를 취한다면 이것 역시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

 

p.52~53

콜센터나 영업팀처럼 구성원 각자가 모두 동일한 과제를 수행하는 조직이 아니라면, 하나의 팀으로 묶여 있다 해도 팀원들은 각자 다른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성과를 비교하기 어렵고 비교해서도 안 된다. 따라서 성질이 다른 개인의 성과를 비교하기 어렵고 비교해서도 안 된다. 따라서 성질이 다른 개인의 성과를 비교하여 줄을 세우는 상대평가 방식은 직원들의 사회적 태만과 무임승차 욕구를 줄이지 못한다.

 

하킨스의 실험결과를 유의하여 해석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일반 조직에서 팀원들의 성과를 개인 단위로 구분해 측정하기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비록 팀원들이 각자 다른 업무를 수행한다고 해도 한 팀원의 업무가 다른 팀원의 인풋이나 아웃풋이 되고 하나의 업무를 둘 이상의 직원이 협업하여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A의 성과이고 무엇이 B의 성과인지 구분하는 일은 칼로 물베기처럼 어렵다. 더욱이 이 실험에서는 '누가 얼마나 많은 용도를 생각해냈느냐??' 와 같이 누구나 객관성을 인정하는 정량지표로 성과를 측정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직원들의 업무 내용이 정성적이며 그 성과 역시 정성적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조직이라면 이 실험의 의미를 제한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적 태만과 무임승차자를 없애는 데 있어 개인별 성과측정이라는 단도직입적인 방법이 과연 통할까? 이 질문에 '네'라고 대답하기 어렵다는 점을 하킨스의 연구는 역설적으로 시사한다.

 

'한 방에 해결되는one-size-fits-all'해결책은 없다. 조직이 무슨일을 하고 어떤 구성원들로 이루어졌는가와 상관없이 일정 비율의 사회적 태만과 무임승차자가 존재할 수밖에 없고 무임승차자는 우리가 떠안고 가야 할 필요악이라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p.56

'무임승차자를 없애야 할까?'란 질문의 답이 '아니오'라는 점은 이제 분명해졌다. 물론 무임승차자를 줄이고 확산을 방지하려면 어느 정도의 제한조건들이 필요하지만 명심해야 할 점은 숙주가 번식이라는 '대의'를 지키기 위해 어느 정도의 기생충을 몸속에 보유하는 생존전략을 취하듯, 이 문제에 대해서도 극단적인 해결법보다는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엑스텔의 실험에서 봤듯이 무임승차자를 발본색원할 도리는 없다. 제도에 편승하고 조직에 기생하는 무임승차자가 눈엣가시처럼 보기 싫더라도 그들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것이 조직의 지속 가능한 건강과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숙주가 몸속에 사는 기생충에 눈감아줌으로써 자신의 생존력과 번식력을 유지하는 것처럼, 비록 조직발전에 긍정적인 존재는 아니지만 무임승차자들은 그냥 놔두는 편이 낫다.

 

p.58~59

'인력가동률'을 100%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인력을 조정하면 생산성이 높아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인력가동률을 높이면 하나의 업무가 완료되는 데 걸리는 시간, 즉 '사이클 타임'이 증가해서 업무 처리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노는 사람 없이 일할 때보다 여유시간을 가지고 일할 때 생산성이 더 높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하게 느껴지지만 사실이 그러하다. 적정인력은 유휴시간이 0일 때의 인력이 아니라 유휴시간을 어느 정도 보장할 때의 인력이다. 물론 유휴시간을 무한정으로 보장할 수는 없다. 인력가동률은 업무에 따라 다르겠지만 70~80% 정도가 적당하다. 즉, 하루 중 대략 2시간 정도의 유휴시간은 주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p.62~63

팀원의 수는 몇 명 정도가 적절할까? 위의 연구결과를 참조하면 기획, 연구, 문제해결과 관련된 팀은 최소 세 명에서 최대 다섯 명이 적당하고, 영업이나 콜센터 같은 운영 위주의 팀이라면 열 명 정도를 하나의 팀으로 묶는 것이 좋다. 이는 로마 군대와 영국군이 분대 조직을 열 명 내외로 설정하여 성공을 거뒀다고 말하는 안토니 제이의 의견을 따른 것이다. 팀장 자리를 주기 위해 두 명 이하의 '미니팀'을 만들거나, 임원을 팀장으로 하여 열 명 이상의 직원을 한 팀으로 묶는(이를 '대팀제'라고 함) 관행은 이제 재고해봐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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